정영신의 ‘장에 가자’ 사진 산문집 출간을 기념하는 전시가 2020년 11월 11일부터 20일까지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립니다.

 

전염병으로 특별한 오프닝 행사는 없지만, 전시기간동안 빠짐없이 작가가 지키고 있어 저자와 대화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많은 관람있기를 바랍니다.

 

‘경향신문’의 사람과 사람 인터뷰 기사에 이어 어제는 국악방송에서 한 시간에 걸쳐 생방송을 하는 등 정영신씨가 요즘 바쁘게 불려 다니는데, 출판된 ‘장에 가자’ 책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습니다. 출판된 지 며칠 되지 않아 재판을 찍어 베스트셀러 후보군에 들 정도입니다. 아마 코로나로 대인관계가 단절되니 사람 사는 정이 그립나 봅니다.

 

장돌뱅이 사진가 정영신씨가 그동안 장터에 관한 책을 여러 권 펴낸바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시골 오일장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유산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터와 유적을 연관시켜 장터가 문화 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하였는데, 각 지역별 역사와 인물, 특산물 등 일곱가지 주제로 분류해 전국 22개 장터를 다루었습니다. 찍어둔 기존의 장터 사진을 두고 다시 발품팔아 찍은 따끈 따근한 사진들입니다.

 

책값은 18,000원이지만 인터넷에서 구입하면 10% 활인된 16,200원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전시장 오실 때 구입한 책을 가져오시면 서명은 물론 작품사진(5X7) 1장도 증정해 드립니다.

 

네이브에 '정영신 장에 가자'를 검색하니 책에 베스트 셀러라는 빨간 딱지가 붙었네요. 

한국전쟁 중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 현장을 기록한 ‘그해 여름 노근리’전이 지난 17일 후암동 ‘K.P Gallery’에서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불행한 과거사와 진실을 쫒아 작업 해온 사진가 김은주씨와 만화가 박건웅씨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KP갤러리'는 동자동과 가까워 전시 개막일만 피해 가려했으나, 미안한 생각이 들어 미루어졌다. 며칠 전 정영신씨를 통해 제안해 온 초대전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동사무소에서 마스크 얻어 오는 길에 잠시 들렸는데, 전시 기획자를 만나 거절한 이유라도 변명하려 했으나 만나보지 못했다.

 

사진가 김은주씨가 기록한 노근리 쌍굴 다리의 흰 동그라미 표식들은 당시 숨져간 원혼들의 비명인 냥 가슴에 내려 꽂혔다. 인물의 장소성에 초점을 맞춘 사진에서 그 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피해자 증언으로 현장을 묘사한 만화가 박건웅씨의 그림도 당시 상황재현에 일조했다.

노근리 사건은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이고 증언이었다.

전시된 작품에서 아픈 기억들이 되 살아났는데. 전시장 모퉁이에서 상영되고 있는 피해자의 증언을 듣다보니 재차 분노가 치밀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들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 폭격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며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7월 25일 밤부터 7월29일 까지 자행되었다. 기밀 해제된 미국문서에 의하면 전선을 넘는 피난민까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숨어있을 것을 우려했겠지만, 아무런 방비도 없이 무리지어 피난을 떠나는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라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비밀 해제된 미 제1기병사단 군 작전명령에는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참전병사 조지 얼리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소대장이 미친놈처럼 소리 질렀다고 한다. "총을 쏴라. 모두 쏴 죽여라." 총을 겨누는 곳에 어린이도 있다고 했으나, "목표물이 뭐든지 상관없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장애인이든." 아무리 전쟁 통에 눈알이 뒤집혔다 해도 어찌 이처럼 짐승만도 못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

 

당시의 폭격과 기관총 난사로 사망자 135명, 부상자 47명 등 모두 182명의 희생자가 확인되었는데, 400여명의 희생자 대부분이 무고한 양민이었다. 지금은 겨우 20여명이 살아남았으나, 그 마저도 눈을 잃었거나 온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긴 분들이다.

무차별 사격에 가족을 잃은 정은용 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이 펴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1994,4)와 학살사건을 고발한 영화 “작은 연못”(2010,4)이 제작되어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전쟁 기록 문서를 찾아 전 세계에 알린 세 명의 AP기자는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건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4년에는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인 노근리 사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유족들은 미국정부와 상 하원, 그리고 한국정부와 국회에 손해배상과 공개사과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어떤 배상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의례적인 ‘깊은 유감’ 이란 말만 들었을 뿐이다.

 

미군들의 만행은 노근리에 끝나지 않았다.

1950년 8월, 여수 남면 '이야포'와 '두룩여' 에서도 노근리와 비슷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부산에서 피난민 수백 명을 태운 피난선이 여수 안도에 도착했는데, 당시 미군이 피난선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해 150여명이 숨졌고, 당시 해상에 있던 어부들 까지 숨진 것이다.

 

그리고 1951년 1월에는 미군들의 네이팜탄 폭격과·기총사격으로 민간인 360명이 희생된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도 빼 놓을 수 없다. 당시 미 전투기 10여대가 영춘면 느티마을 일대와 곡계굴을 집중 폭격한 것이다. 곡계굴에 피신해 있던 피난민들은 네이팜탄 공격에 대부분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마저 총을 난사해 사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 밖에도 순천, 광양, 곡성 등 전남 10여 곳에서도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다수가 숨졌지만, 기록이 부족해 인정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때죽음이었지만, 비극의 진상은 오랜 시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살았지만, 한 통속인 이승만정권과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날의 진실을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했으나, 유가족이 원하는 보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참하게 양민을 학살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해 여름 노근리’전은 오는 8월1일까지 열린다. 다시 한 번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자.

 

그리고 오는 7월29일 오전 10시부터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원혼들을 추모하는 기념식도 열린다. 당초 한국전쟁 70주년의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글 / 조문호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정예진展 / JUNGJEJIN / 丁藝振 / photography

2020_0616 ▶︎ 2020_0707 / 공휴일 휴관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22_100×67cm_2020

 

 

초대일시 / 2020_0618_목요일_01:00pm

Korea Photographers Gallery 개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KP 갤러리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 B1)

Tel. +82.(0)2.706.6751

kpgallery.co.kr

 

 

한국 사진예술의 발전과 정체된 국내 사진문화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설립된 Korea Photographers Gallery (이하 K.P 갤러리)가 2020년 6월 16일 신진작가 정예진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전시를 시작으로 오픈합니다. 서울사진축제 예술감독, 대구사진비엔날레 큐레이터 등 전시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일우 기획자가 설립한 K.P 갤러리는 동시대 사진예술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고민을 바탕으로 사진인들을 위한 창작지원 사업, 국제교류사업, 학술행사개최, 예술가 매니지먼트 등 사진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01_155×100cm_2020

 

정예진 작가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전시가 2020년 6월 16일부터 7월 7일까지 K.P 갤러리에서 개최됩니다. Masquerade 는 '가면무도회', '진실, 또는 진심을 숨기고 가면을 쓰다' 의미로 이번 전시에서 정예진 작가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정체성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은 22점의 초상사진을 소개합니다.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03, #02, #04_155×100cm×3_2020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18, #08, #05_155×100cm×3_2020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개인의 의지와 달리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매 순간 다양한 정체성의 마스크를 바꾸어 쓰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과 그 속에 감춰진 개인들의 욕망을 담고 있습니다. K.P 갤러리 개관 전시이자 첫 번째 신진작가 지원사업으로 정예진 작가를 초청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사진 속 인물들의 숨은 이야기와 그들이 지닌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욕망을 소개하고 우리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바라보고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 K.P 갤러리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14, #10, #12_155×100cm×3_2020

 

정예진_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07, #06, #16_155×100cm×3_2020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 심한 우울증을 겪던 18살의 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아 둔 수면제를 모두 삼켰다. 하지만 어떤 상황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 난 도망치듯 고향과 부모님을 떠났다. 새로운 곳의 삶은 한 순간 내게 심리적 안정을 주기도 했지만 내게 감쳐진 나의 내적 불안감은 시간이 지나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현실에서의 삶은 내가 원하는 나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와 다른, 원하는 않는 다른 내 모습으로서의 삶을 강요하였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내 속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친구에게 우연히 구입한 사진기로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의 생각과 감정, 그들을 바라보는 내 욕망을 투영하였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 현실의 삶은 여전히 나의 생각과 괴리가 있고 아직도 여전히 아프지만 사진은 내게 위안을 준다. 사진을 통해 나를 찾고 싶다. ■ 정예진

 

Vol.20200616e | 정예진展 / JUNGJEJIN / 丁藝振 / photography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From Father's Times

 

이선민展 / LEESUNMIN / 李宣旼 / photography

2020_0605 ▶︎ 2020_0628 / 월요일 휴관

 

이선민_윤병천 뉴라이트 전자, 1942년생_C 프린트_150×12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1119c | 이선민展으로 갑니다.

이선민 홈페이지_www.sunminlee.net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룩스

GALLERY LUX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7길 12(옥인동 62번지)

Tel. +82.(0)2.720.8488

www.gallerylux.net

 

 

이선민 작가는 한국 사회의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삶의 방식이 묻어나는 공간을 사진으로 포착하고, 이로써 구현된 내러티브를 통하여 자신의 호기심을 사회학적 차원으로 확장해가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From The Father's Times』는 오랜 시간 동안 손으로 정교한 기술을 연마하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년기에 접어든 아버지의 모습에 주목한다. 주로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 태어난 이들의 삶은 변화무쌍한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나왔다. 해방과 한국전쟁, 혁명과 쿠데타, 유신 등 격동의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의 생생한 기억들을 넘어선다. 작가는 그들의 초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연마한 숙련된 기술뿐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부터 자신의 생에 대한 책임감까지 선연히 포착한다. 또한 초상 사진 배경으로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브제들을 응시하며 아버지의 아버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한 장인 정신들을 반추한다. 켜켜이 책이 쌓인 건축가의 오래된 서가와 50년 동안 광장시장을 지킨 유비상회와 그 안에 수북이 쌓인 원단들, 성수동 금속 제조 공장에 빽빽이 쌓여있는 수많은 물건들과 커다란 시계, 4대째 이어온 대장간의 망치 등. 작가는 노년기에 접어든 아버지와 오랜 시간 함께한 공간을 담은 사진으로 그들의 삶의 정체성을 반추해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나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시간들을 조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갤러리 룩스

 

이선민_송병도 상원 ENG, 1958년생_C 프린트_150×120cm_2018

 

 

오래된 공간, 기억의 시간들 ●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오랜 시간동안 한 가지 일을 연금해온 노년 남성들에 대한 초상 작업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다난한 한국의 근현대사가 변화무쌍하게 펼쳐졌던 시대를 연금술사로서 또 아버지로서 살아낸 이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의 작업은 격랑의 시대를 살아온 노년 세대에 대한 초상인 동시에 이들이 연금한 기술과 가치와 그 살아온 시대를 이들 스스로의 서술을 통하여 반추하는 기억하기의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 이 작업의 시작은 2015년 「연금술사」란 가제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디지털화와 기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모든 것이 속전속결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오랜 시간 한 땀 한 땀 손으로 정교한 기술을 연마하며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능숙한 연금술사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보고 싶었다. 현자를 찾아가 질문을 던지는 순례자처럼 이들이 연금한 것들을 직접 바라보고 그들이 붙잡은 가치에 대하여 또 지금까지의 삶의 여정은 어떠하였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무슨 질문을 하고 또 무슨 대답을 들을지는 미지수였다. 막연히 그들의 오래된 작업 공간에서 그동안 나의 윗세대와 나누지 못했던 오래된 궁금증들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것이다. ● 첫 만남은 3대째 수제맞춤 양복점을 경영하고 있는 테일러 이경주님이었다. '종로 양복점'이라는 가게 이름처럼 종로에서 대대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다. 처음 양복점을 방문했을 때 장식장에 걸려있는 양복들보다 그 위에 나란히 세워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하며 두런두런 그의 과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50년 동안 양복을 만들어온 그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 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가 독립할 때 본가로부터 들고 나온 것은 달랑 종로양복점이라 쓰여진 간판 하나였다. 그에게 양복 만드는 기술은 부모에게 받은 유일한 유산이며 동시에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가업의 계승이라는 책임감보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절박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그 말 속에 그가 감당해야했던 것들이 묵직한 무게감으로 전해졌다. 또 한 가지 인터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있는 양복 학교에서 양복을 배웠고 그의 아버지는 만주에 있는 유명한 일본 양복 회사에 취직하여 양복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태어난 곳은 만주였고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와 할아버지가 하시던 종로 양복점을 운영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하에서 일본으로 만주로 이주를 감행하며 기술을 습득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가업을 세워갔던 것이다. 이 종로 양복점의 연대기가 연금술사라는 작업의 가제를 「아버지의 시대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변경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태어난 년도를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을 해방둥이라고 소개하였다. 평범하게 보이는 그의 테일러로서의 삶은 이러한 시대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었고 결혼하여 이사를 10번이나 다니면서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종로 양복점의 간판만은 계속 가지고 다닐 정도로 이 '종로 양복점'이라는 말에는 그의 전 삶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이선민_정현, 연극배우, 전 극단 민예 대표, 1945년생_C 프린트_150×120cm_2016

 

 

이번 작업을 함께한 인물들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사이에 출생한 세대들이다. 해방 전후로 출생하여 전쟁을 실제로 경험한 세대이며 이들이 독립하여 직업을 가지고 결혼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60, 70년대는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로 얼룩진 시기였다. 해방과 전쟁, 혁명과 쿠데타, 유신 등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접한 사건들을 이들은 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세대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겪은 전쟁과 가난과 이주의 기억들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 뇌리에는 여전히 생생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 이번 작업의 인물 중 88세로 최고령자인 1932년생 김원하님은 14살 때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고 바로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18살에 6.25 전쟁이 발발했고 비행기 폭격으로 집의 유기공장이 모두 불타버려 온 가족이 경주로 피난을 떠났다. 20세에 장남으로서 6남매를 대표하여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하여 생계에 도움이 될 약학을 전공한 후 서울로 상경하여 제일향료회사와 종근당에 근무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45년간 황학동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서울로 이주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한 30살 무렵인 1960년대에는 4.19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목격하였고 70년대에는 유신과 대통령 암살, 12.12 군사 쿠데타를 목격했으며 80년대에는 광주항쟁과 민주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지나왔다. 이 모든 시대적 사건들을 겪으며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중학교 때 6.25전쟁이 일어나 집이 폭격 당했던 일과 기차에 매달려 피난 갔던 일과 고등학교 때 남의 집에 입주하여 과외를 하며 고학했던 때라고 대답했다. 종로 양복점 이경주 사장님도 6.25 전쟁이 일어나 온 가족이 피난갔던 일이 살면서 가장 기억나는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당시 5살 어린 아이였음에도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고 하였다. 이렇듯 이 노년 세대들에게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주'라는 키워드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자 극복해야 할 절박한 문제였다는 것이 작업을 함께한 분들의 공통된 진술이다. ● 10여 년 전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도 이 분들과 비슷한 1935년생이다. 나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시대」작업의 인물들처럼 전쟁과 가난을 겪었고 홀 홀 단신 고향인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하여 낯선 땅 서울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전쟁'과 '가난', 그리고 '이주'라는 키워드는 「아버지의 시대로부터」 모델이 된 노년 세대들에게 공통분모와 같은 기억이다. 1999년부터 2004년에 걸쳐 작업했던 초기작 「여자의 집」 사진에서는 명절에 모인 여러 세대들의 시선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교차한다. 그 수평을 달리던 시선들이 이번 노년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서 사진가의 눈에 보여지고 들려지기 시작하였다. 이 세대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을 극복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집중하고 생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좌우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세대였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하였고 '취미도 못 가져봤고 이거저거 돌아보고 살 정신 없었다' 는 말속에서 이 노년 세대들이 통과해야 했던 절박한 삶의 여정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였다.

 

이선민_강영기, 동명 대장간, 1952년생_C 프린트_120×150cm_2015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사진 속 노년의 인물들이 평생에 걸쳐 연금한 일들과 지켜온 가치와 그 살아온 시대를 조명하고 있다. 수 십 년의 시간이 응축된 그들의 공간과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과 하나가 된 듯 익숙한 이들의 모습들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운 오래되고 손때 묻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응시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오래된 물건들과 평생 연금한 기술과 가치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지 그들의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 보려 한다. ●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진이 올려진 테일러 이경주님의 장식장 안에는 이들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양복들이 차곡차곡 걸려 있다. 이것들을 배경으로 서있는 노년의 테일러를 바라보며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몸으로 부딪치며 겪어왔던 세월을 생각한다. 또 그가 지켜온 것들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본다. 켜켜이 책이 쌓인 건축가의 오래된 서가와 50년 동안 광장시장을 지킨 유비상회와 그 안에 수북히 쌓인 원단들, 성수동 금속 제조 공장에 빽빽이 쌓여있는 수많은 물건들과 커다란 시계, 4대째 이어온 대장간의 망치 등 이들의 오래된 오브제들도 천천히 바라본다. 종로 양복점과 유비상회 사장님의 50년을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우정도 떠올려 본다. 컴퓨터도 없었고 기계화도 되지 않았던 시절 몸과 손으로 일구고 지켰던 이들의 시간들이 이 공간에 가득히 흐르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손에서 손으로 전수한 정신과 기술들도 함께 말이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마치 오래된 서가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꺼내 읽듯 천천히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려 한다. ● 이렇듯 이번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노년 세대들의 시간을 기억해주는 작업이다. 이들 노년 세대가 감당해온 삶의 네러티브와 그 기억이 담긴 공간을 응시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1996년 『황금투구』란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나는 아버지를 시이저에 비유하여 바라보았다. 25년이 지난 지금 내 딸이 그 당시의 나의 나이와 비슷해질 제법 많은 시간들이 흘렀다.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은 지금 세상에는 없지만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비로소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며 익숙한 내 아버지의 포우즈와 문장들이 보여지고 들려졌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버지의 삶으로 초청되었고 그 시대와 대화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시대로부터」작업이 아버지의 세대와 동시대의 또 다른 세대들과 나누고자 하는 담론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이선민

 

이선민_이경주 종로 양복점,1945년생_C 프린트_120×150cm_2015

 

 

Old Spaces, A Time for Recollection ● The project 「From the Fathers' Times」 is a portrait of older generation of men who have devoted numerous years into their line of work. The men featured in the photos are those who have lived through some difficult periods of modern Korean history as alchemists and fathers. This is why 「From the Fathers' Times」 project is not only a portrait of the older generation who have witnessed the country's turbulent past, but also a way to remember their skills and the values they hold through their own narrative. ● The project took off through the working title 「The Alchemists」 in 2015. With digitalization and mechanization quickly taking over and changing the society, I wanted to meet the skilled alchemists who were unaffected by the new shift in society and still put in long hours to perfect their skillsets. I also wished to hear their stories. Like a pilgrim who goes to the wise man to ask questions, I too wanted to see for myself what they were working on and listen to the values they were holding onto and their life's journey. I went into this not knowing what kind of questions to ask, nor what kind of answers to expect. I vaguely saw this as an opportunity to converse with the older generation and ask them questions that I longed to know the answers to in their old workspace. ● The first model I met was Mr. Gyeongju Lee, a tailor and owner of a tailor shop that had been run by his family for three-generations. Like the shop's name 'Jong-no Tailor Shop,' the store was located in Jong-no. When I first visited the tailor shop, the first thing that caught my eyes was not the suits that were hanging up, but the pictures of the owner's father and grandfather. After the photoshoot, Mr. Lee shared some of his past with me in an interview. He started off by saying that he had been making suits for 50 years and was taught by his father. The only thing he took with him when he first left home was a sign that had 'Jong-no Tailor Shop' written on it. For him, having the skillsets to make suits was the only thing that he inherited from his parents and the only way to make ends meet. After hearing this story, I thought that he may have had a stronger sense of responsibility towards being a father than inheriting his family shop. I could also feel the pressure he had to endure in his words. Another interesting part of the interview was when he told me that his grandfather had learned how to tailor suits by attending a tailoring school in Japan while his father acquired his tailoring skills by working for a famous Japanese tailor shop in Manchuria. As a result, Mr. Lee was born in Manchuria, but after Korea's liberation, his father moved the family to Seoul to run the Jong-no Tailor Shop that was originally run by his father before him. Even before Mr. Lee was born, Mr. Lee's grandfather and father had risked migrating from Japan to Manchuria to learn the skillsets to support their family and start a business due to historical events. The chronicles of Jong-no Tailor Shop was the reason behind the changing of the working title of 「The Alchemists」 to 「From the Father's Time」. When we first started the interview, I had asked him when he was born and he introduced himself as a 'Liberation Baby,' someone who was born in 1945, the year of Korea's liberation. Underneath his life as an ordinary tailor, he had undergone a rough period in Korean history and had to move around 10 times even after he got married. However, he always carried the shop's sign 'Jong-no Tailor Shop' with him, showing how much weight these three words held in his life. ● The men featured in this project were all born from the years 1930s to 1950s. Most of them were born during the time of Korea's liberation from Japan and directly experienced the Korean War at a young age. By the time these men found a steady job and settled down to raise a family, they were faced with the turbulent political periods of the 60s and 70s. This generation of men witnessed periods of history that the young generation today can only see in textbooks. This may be why even though many years have passed, the men can still recall vivid memories of the war, poverty and migration. ● The oldest model in this project was Mr. Wonha Kim, a 88 year-old who was born in 1932. He was fourteen in Japan when Korea was liberated and managed to go back to his home in Pohang. At eighteen, the Korean War had begun, and due to a plane bombing, his family's factories all burned down, forcing them to evacuate to Gyeongju. As the eldest son of six children, he was the only one who was able to get a college education. After choosing to study medicine to support his family, he moved to Seoul and worked for Cheil Perfumery Company and Chongkundang Pharmaceutical Company. He later opened his own pharmacy in Hwanghak-dong and has been running it for the past 45 years. When he first started working in Seoul at the age of thirty, he had to witness the April 19 Revolution and military coup of the 1960s. He also had to live through the Yushin regime and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Park in the 1970s, another military coup in December 12, 1979, and the Gwangju Uprising, the fight for democracy, and the change to a direct presidential election system in the 1980s. When asked at which point in life he had felt the most devastated, Mr. Kim answered the time in middle school when his house was bombed during the Korean War, which led his family to barely hang onto a running train and evacuate and when he had to live in someone else's house and tutor other students to support his family in high school. Mr. Lee, the owner of Jong-no Tailor Shop had also replied that the memory of his family fleeing for shelter during the Korean War was the most striking to him. He added that even though he was only 5 years old at the time, it was such a shocking incident that he still had a vivid memory of it. For the older generation that took part in this project, war, poverty, and migration were common keywords that came up that reminded them of the most difficult times in their lives and as pressing issues that they desperately wanted to resolve. ● My late father, who passed away around 10 years ago, was born in 1935, similar to the men mentioned above. Like the men featured in the project 「From the Fathers' Times」, my father underwent the war, faced poverty and came to Seoul alone from Busan to make a living. Like mentioned above, memories of the war, poverty, and migration became a common theme for the models in this project. Working on this project took me back to my first project 「A Woman's House」, which I worked on from 1999 to 2004. The photos taken show how the different generations feel somewhat distant from each other when they gathered during the holidays. After working on this project did I finally understand why there was such a distance. This generation of men had spent all their time and energy to overcome the difficult times to make a living and support their families. I was able to acknowledge how rough their life's journey was when they said that they were not able to afford the time to enjoy a hobby or to just stop and take a look around. ● 「From the Fathers' Times」 project casts light on the works and values that the older generation have lived by and the periods in history that they underwent. The photos portray the decades old workplace with the men there, looking like they have been a part of the space from the beginning, filled with old, personal objects. Furthermore, this project will slowly follow how the men's old objects and lifelong skillsets and values will be passed on to the next generation. ● Inside the display cabinet that has the photos of Mr. Lee's father and grandfather above, there are suits hanging inside, which were made with the skills Mr. Lee learned from father and grandfather. As I looked at the old tailor who stands in front of this background and also hear his stories, I was able to get a glimpse of the years of life he had to endure and also think about what was it that he held onto. Additionally, I captured moments in an architect's old bookshelf full of books, the 50-year old Yubi Store located in Gwangjang Marketplace that is also full of fabrics, the metal manufacturing factory full of many objects and the large clock in Seongsu-dong, the blacksmith's hammer that was passed down for four generations, and their other old objects. I also thought of the 50 years of friendship between the owner of Jong-no Tailor Shop and the owner of Yubi Store. Their workplaces are made up of all the hours that they spent doing everything by hand, without the help of computers or machineries. The space is also filled with the spirit and skills that have been handed down for generations. I plan on depicting their stories slowly, like reading one book after another from an old bookshelf. ● Thus, 「From the Fathers' Times」 is a project to remember the lives of the older generation. The project focuses on listening to the older generation's narrative and capturing the spaces that hold their fondest memories. In my first exhibition 『The Golden Helmet』 in 1996, I compared my father to Caesar. 25 years have passed and now my daughter is almost the same age as I was back then. 「From the Fathers' Times」 is also a story I share with my late father. I saw similar poses and heard similar phrases that reminded me of my father during this project. Time has passed and I am now invited to listen to my father's past stories and connect with his generation. I hope for the viewers of different generations to experience such a connection through this project. ■ Sunmin Lee

 

 

Vol.20200605f | 이선민展 / LEESUNMIN / 李宣旼 / photography

리틀 포레스트 2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2019_0711 ▶︎ 2019_0723 / 일요일 휴관


엄효용_광나루 한강공원 미류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90102a | 엄효용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9_0711_목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토요일_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반도 카메라 갤러리

BANDO CAMERA Gallery

서울 중구 삼일대로4길 16 반도빌딩 2층

Tel. +82.(0)2.2263.0405

www.bandocamera.co.kr



중첩된 이미지 숲을 탐문하는 이유 ● 한 사람의 몸에는 몇 개의 자아가 존재할까? 공적인, 개인적인, 사적인 혹은 규정할 수 없는 또 다른 것일 수 있다. 여러 개의 자아는 중첩과 분할을 거듭하면서 마치 칼집의 칼을 꺼내들 듯 상황에 대처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 대해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모호함으로 궁색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상대는 둔갑술로 우리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로만 설명이 안되는, 팍팍한 삶의 조건과 대처법이 몇 개의 자신으로 내밀어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하나가 아닌 것에 하나로만 인식하려는 타자의 안이한 욕망과 편리함이 다양한 정체성, 자아를 구속하는 게 아닐까. ●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대전제는 동서고금의 화두다. 진짜를 밝히려는 인간의 부단함은 지칠 줄 모른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대신할 때 우리는 '실존(實存)'이라 말하기도 한다. 본질, 진짜, 실존을 정의하고자 하는 이 지속성은 결국 사진가 엄효용 에게까지 이르렀다. 무던히 차창 밖으로 흐르는 나무의 형상이 어느 날 갑자기 그에게 들이 닥 친 것이다. 작은 화분을 모으는 취미 생활에 그치지 못한 그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나무의 이면적 이미지네이션을 규명하게 된 것이다.


엄효용_노을해안로 가이즈향나무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80×142cm_2016

엄효용_담순로 메타세쿼이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80×142cm_2016

엄효용_소월로 은행나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4

엄효용_잠실 한강공원 이팝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9

엄효용_잠원고수부지느릅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120×90cm_2015


그의 사진은 의도했건 안 했건, 분명히 나무 그 이상의 나무 혹은 숲을 이뤘다. 100장에서부터 200장에 이르는 사진을 한 프레임에 중첩함으로써 나무의 생물학적 속성을 넘어 고도의 회화성으로 치환 시켰다. 도로 가장자리에서 단상으로 존재하던 나무는 너무 평범하고 익숙한 모습이어서 우리의 관심에서 쉬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수십, 수백 그루를 한 그루에 묶어두니 '저건 뭐지'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작가는 이 사진들을 작업하면서 논리적 의도보다는 정교한 촬영과 후속 컴퓨터 작업을 통해 자신의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을 만들고자 했다. 그 숲은 도시를 중심축으로 자신만의 정원을만드는 과정이었다. 집 안의 작은 화분으로는 감정이입이 어려웠을 것이다. 진짜 숲보다 더 완고한 숲의 정원을 마음에 심고자 했다. 어쩌면 사진가로서 표현의 갈증을 넘어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자 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이 자신을 깨우치는 결과물의 흔적인 것처럼, 다중의 자아가 아닌 궁극의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의 안내판처럼 엄효용의 사진은 단단하게 서 있다.


엄효용_조정경기장 은행나무 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40×30cm_2015

엄효용_종합휴양지로 메타세쿼이어 여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5


현재 그를 찾아 온 도시의 숲 이미지는 불안한 실존의 종착지가 될 수 없다. 예술은 문제점 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영혼을 치유하지는 못한다. 사진가로 살아가는 엄효용에게 오늘의 사진은 완성한 자아도 실존도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고 여러 개의 자아처럼 그만큼의 숲을 만드는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 언젠가 그의 손에서 카메라가 사라지고 자신의 눈과 마음이 하나 되어 그리는 숲이야말로 진정 그가 이루려는 숲이다. 그 숲에 가기 전에 그가 가꾼 형형색색의 숲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 육상수


엄효용_죽향대로 메타세쿼이어가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5

엄효용_허만석로 벚나무 봄_코튼지에 피그먼트 프린트_60×45cm_2018


여러해 전 강남역 근처를 지나갈 때 부서지는 햇살 아래 찬란한 하얀 꽃을 품은 가로수들... 그 아름다움도 잠시... ● 나의 뒤통수는 무엇인가에 맞은 충격으로 묵직했다. 왜 그 동안 보지 못했을까? 그 동안 내가 이 길로 다니지 않은 걸까? 이 가로수들은 올해 심어진 걸까? 이렇게 크고 많은 나무들을 보지 못한 걸까? ● 그렇다. 생산적인 행동만이 내 지각의 중심부에 있었고 하얀 꽃이 피어나면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팝나무는 배경으로 흘려보냈기에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 이전에도 여여하게 우리 곁에 존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는 자연... 나무, 하늘, 공기... 등을 내 지각의 중심부에 가져올 때 삶의 황홀경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무한반복 되는 평범한 일상에조금 더 민감하게 깨어있을 수 있다면 ● 햇살아래 부서지는 찬란한 꽃을발견할 것이다. ■ 엄효용



Vol.20190711c | 엄효용展 / UMHYOYONG / 嚴孝鎔 / photography





성북동에 있는 갤러리카페 ‘탭하우스 F64’에서 이재정씨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7일 사진가 이정환씨의 문자메시지에 영문도 모르고 나갔는데, 이재정씨 사진전 오프닝이 열리고 있었다.






카페에는 이재정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이정환, 임성호, 변성진, 권 홍, 이미리씨 등 여러 명이 모여 있었다.






임성호씨의 사회로 이재정씨 작가의 변과 이정환씨 건배사도 있었다.
작품들은 제주4,3에 관한 사진이었다.






탁자에는 맥주와 피자가 놓여 있었으나, 통풍 때문에 맥주를 마실 수가 없었다.
마침 이정환씨가 페트병에 담긴 소주를 준비해 마시고 있었다.
‘제사보다 제사떡에 관심이 많다’는 말처럼 소주만 축냈다.






그런데, 처음 가본 ‘탭하우스F64'는 사진가 변성진씨가 운영하는 갤러리카페로 소품전 하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한성대 입구역 5번 출구에서 300미터정도이니 교통도 편리한 편이었다.






실내장식에 카메라나 확대기 등 사진을 상징하는 장식이 많았다.

사진가의 고충이 느껴지는 가게인데, 나 역시 오래전에 술집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사진을 이용한 장식은 일반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감격시대’에서는 해방되어 서대문교도소에서 만세 부르며 나오는 대형사진을 메인 사진으로 활용하였고,

‘이별의 부산정거장’에서는 판자 촌 같이 만들어 임응식선생의 피난 시절 사진으로 장식하였으나,

술집은 손님 자체가 장식이었다.





처음부터 손님이 많으면 계속 몰려오지만, 없는 집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매상에 도움 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젊은 여인들을 불러 모아 술집에서 노닥거리게 만들었다.

실내장식 같은 사업수단이 손님을 끌어들이는데 반을 차지한다면 반은 운이 따라야 한다.






이차로 이정환씨를 따라 지척에 있는 ‘혜화 칼국수’로 갔다.
약 8년 만에 찾아 간 맛 집이지만, 육수 맛은 변함이 없었다.
임성호, 이미리씨 등 네 명이 갔으나 술을 과음한 것 같았다.





술이 취해 지하철역까지 무임승차 한다며 청소차 뒤에 메달렸는데,

청소부에게 들켜 내려와야 했다.
왜 이리 술만 취하면 나이 값을 못하고 어린애가 되는지 모르겠다.
철들자 노망한다는 소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가 박찬호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과연 저승이란 신화의 세상이 있는 걸까?
한 가닥 위안일 뿐, 죽고 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아는 분들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박찬호. 2013, 제주도 남원, 동백나무가 있는 마을당,



그런데, 엊그제 뜻밖의 사진집을 전해 받았다.
박찬호씨의 ‘歸’사진집인데, 마치 귀신 사진집 같았다.
그 사진집을 볼수록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게 하였다.



ⓒ박찬호.2014. 제주도 표선면



난, 우물 안 개구리다.
사진가 박찬호씨는 알지만, 여지 것 어떤 사진을 찍는지 몰랐다.
그동안 인간의 죽음에 집착하여 오랫동안 그 현장을 찾아다닌 사진가였다.
오래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비롯된 의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십여 년 동안 작업해 왔다고 한다.


그동안 해외 전시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의 전시를 열었는데,
작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둘러싼 제의를 촬영하다’라는
제목으로 박찬호의 전시를 소개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박찬호. 2017 전라북도 부안



요즘은 가능하면 전시장에 나 다니지 않으나, 사진집을 보니 궁금증이 발동했다.
전시장에서 직접 죽음의 세계에 직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곧 끝나게 될 크리스 조던의‘아름다움 너머’도 꼭 봐야 할 숙제였지만,
어제 문을 연 안창홍씨의 작품도 볼 겸, 한나절을 전시장에 돌아다닌 것이다.



ⓒ박찬호. 2017.경기도 구리.



박찬호씨의 ‘歸’가 열리는 전시장에 들어가니 작가가 반갑게 손을 잡았는데,
마치 저승사자가 반기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은 시커먼 흑백사진들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무당의 신 칼이 번쩍였고, 마치 혼령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실상과 허상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영혼을 추적하고 있었다.
직설적인 시신의 형상은 보이지 않았으나,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이야기했다.
제사, 굿당, 무당, 꽃상여, 스님 다비식 등의 흔적을 찾았더라.




ⓒ박찬호. 2013. 경북 안동시 서후면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여준 박찬호의 사진은 귀신 씌인 사진같았다.
느닷없이 화면에 빛이 새어들거나, 어떤 사진은 반사되어 뿌옇다.
비뚤어진 화면이 불안감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는 혼령을 작위적으로 끌어 낸 것이다.



ⓒ박찬호.2013.제주도 남원읍


박찬호의 사진을 보니, 죽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기존의 생각에서 실오라기 같은 기대가 생겼다.
진짜 영혼이 떠돈다면, 나쁜 놈들은 어떻게 지낼까?
뉘우치고 있을까? 거기서도 나쁜 질하는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박찬호. 2014, 제주 제주시, 굿-영감놀이.


영혼이고 귀신이고, 죽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다.
생과 사의 경계를 기록한 박찬호의 ‘귀’ 사진전을 돌아보며,
앞만 보고 살아온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박찬호.2014, 제주도 구좌읍 월정리



이 전시는 청운동 ‘갤러리 류가헌’에서 5월 12일까지 열리고,
5월24일부터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6월15일부터는 광주 ‘혜움 갤러리’에서 각각 순회전을 연다.




박찬호 ‘귀(歸)’사진집
양장본 143쪽, 6만원,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주말 북촌로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황규태선생의 'PIXEL'전에 들렸다.
무한한 시공간을 보여주는 선생의 끝없는 실험정신을 만날 수 있었다.






3개 층에 전시된 여러 형태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전체적으로 텅 빈 느낌이 오는 것은 왜일까?
작은 픽셀로 이루어 낸 색의 패턴이 합쳐져 결국 사라진다는 말인가?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이란 말처럼, 모든 형체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마치 선승이 던지는 화두 같았다.






선생께서는 60년대부터 필름 태우기. 몽타쥬, 이중노출 등으로 기존 사진틀을 깨며
새로움에 도전해 온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로 알려진 분이다.
80년대부터는 디지털이미지의 시각 확장으로 젊은 작가들 기를 죽였는데,
선생의 연세가 이제 팔순을 넘기지 않았던가?






작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는 방식도 젊은이들 빰 칠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그 열정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존경스러웠다.
아무리 창의력이 용솟음쳐도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데 말이다.






그리고 충무로에서 열리는 윤한종의 ‘보이지 않는 존재’도 눈여겨 볼 전시였다.
전자부품 검사 장비인 정밀한 눈을 이용해 깨알 같은 전자 부품을 찍었더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결을 더러 낸 형상이 마치 우주처럼 낯설었다.
사진과 미술의 구분이나 과학과 예술의 경계 자체가 무의미한 시대에 산다.






황규태 선생은 기하학적인 이미지로 무한한 시공간을 보여주었고,
윤한종씨는 미시적 결을 끄집어내 첨단화 되어가는 물질문명을 말했다.
디지털문명에 사는 우리들에게 이미지 정체성을 생각게 하는 전시들이다.






북촌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황규태선생의 ‘픽셀’전은 4월 21일까지 열리고,
충무로 ‘반도카메라갤러리’에서 열리는 윤한종씨의 ‘보이지 않는 존재’는 3월 19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황규태 ‘PIXEL’





윤한종 ‘보이지 않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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