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에는 오랜만에 '눈빛출판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80년대 농민들의 삶을 기록해 둔 정영신씨 사진집 출판을 타진하는 자리에 따라 갔는데,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여지 것 갈 때마다 승용차를 끌고 갔으나 이번에는 차가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더니, 같은 건물인데도 들어가는 입구를 몰라 한참을 헤매는 촌극이 벌어졌다. 세 차례나 사무실에 전화를 걸고 여기 저기 물어보는 등 완전 시골 노인 행세를 단단히 한 것이다.

 

어렵사리 구멍을 찾아 올라갔더니 이규상씨가 입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 간 사진파일을 검토하는 동안 책상위에 늘린 사진집들을 살펴보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사진집이 가 편집된 양승우의 ‘나의 다큐사진 분투기’였다. 미처 글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강열한 사진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한정식선생께서 준비하는 포토에세이에 들어 갈 사진원고도 보여 주었는데, 여지 것 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기회도 얻었다.

 

‘눈빛출판사’ 이규상, 안미숙씨 내외와 성윤미씨, 그리고 정영신씨와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데, 담배 피우러 간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성매매를 반대한다는 어느 단체에서 ‘청량리 588’사진집을 두고 시비를 걸더라는 것이다. 이미 40여년이 지난 사진이고, 본인의 동의하에 찍은 사진이라며 설득하였다고 한다. 미투가 사회쟁점화 되니 별 것으로 다 시비를 건다. “책도 팔리지 않는데, 문제 한 번 만들어 책이나 좀 팔자”는 농담을 했으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평소 이규상씨와 술자리만 하다 모처럼 커피 마시는 오붓한 시간도 가졌다. 그이의 구수한 입담에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뜻밖의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SNS가 성행한 10여 년 전부터 책보는 사람이 줄어들어 책이 팔리지 않았는데,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보니 책보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사진집이 아니라 주로 인문서적이 잘 팔린다지만... 코로나가 세상질서를 많이 바꾸고 있었다.

 

이제 정영신씨만 바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하는 일이 많아 얼굴보기 힘든데, 오래된 필름사진 수정하랴 그 당시 이야기 풀어 쓰랴 똥오줌 못 가리게 되었다. 늙어가며 편하게 살 생각은 않고 계속 일만 만드는 그가 안쓰럽지만, 어쩌겠는가? 죽고 나면 돈도 명예도 아무 짝에 쓸모없다는 내 말은 한 낱 메아리에 불과했다.

“노세노세 늙어 노세, 죽고 나면 못 노나니...”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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