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 영동 노근리 양민학살 현장을 기록한 ‘그해 여름 노근리’전이 지난 17일 후암동 ‘K.P Gallery’에서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불행한 과거사와 진실을 쫒아 작업 해온 사진가 김은주씨와 만화가 박건웅씨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KP갤러리'는 동자동과 가까워 전시 개막일만 피해 가려했으나, 미안한 생각이 들어 미루어졌다. 며칠 전 정영신씨를 통해 제안해 온 초대전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동사무소에서 마스크 얻어 오는 길에 잠시 들렸는데, 전시 기획자를 만나 거절한 이유라도 변명하려 했으나 만나보지 못했다.

 

사진가 김은주씨가 기록한 노근리 쌍굴 다리의 흰 동그라미 표식들은 당시 숨져간 원혼들의 비명인 냥 가슴에 내려 꽂혔다. 인물의 장소성에 초점을 맞춘 사진에서 그 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전쟁과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피해자 증언으로 현장을 묘사한 만화가 박건웅씨의 그림도 당시 상황재현에 일조했다.

노근리 사건은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고통스러운 기억이고 증언이었다.

전시된 작품에서 아픈 기억들이 되 살아났는데. 전시장 모퉁이에서 상영되고 있는 피해자의 증언을 듣다보니 재차 분노가 치밀었다.

 

이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미군들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에 폭격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하며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7월 25일 밤부터 7월29일 까지 자행되었다. 기밀 해제된 미국문서에 의하면 전선을 넘는 피난민까지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피난민 속에 북한군이 숨어있을 것을 우려했겠지만, 아무런 방비도 없이 무리지어 피난을 떠나는 양민을 학살한 사건이라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1999년 9월 미국 AP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비밀 해제된 미 제1기병사단 군 작전명령에는 "미군의 방어선을 넘어서는 자들은 적이므로 사살하라. 여성과 어린이는 재량에 맡긴다."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참전병사 조지 얼리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소대장이 미친놈처럼 소리 질렀다고 한다. "총을 쏴라. 모두 쏴 죽여라." 총을 겨누는 곳에 어린이도 있다고 했으나, "목표물이 뭐든지 상관없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장애인이든." 아무리 전쟁 통에 눈알이 뒤집혔다 해도 어찌 이처럼 짐승만도 못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

 

당시의 폭격과 기관총 난사로 사망자 135명, 부상자 47명 등 모두 182명의 희생자가 확인되었는데, 400여명의 희생자 대부분이 무고한 양민이었다. 지금은 겨우 20여명이 살아남았으나, 그 마저도 눈을 잃었거나 온 몸에 깊은 상처를 남긴 분들이다.

무차별 사격에 가족을 잃은 정은용 노근리사건 대책위원장이 펴낸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1994,4)와 학살사건을 고발한 영화 “작은 연못”(2010,4)이 제작되어 사건의 실체가 밝혀졌는데, 전쟁 기록 문서를 찾아 전 세계에 알린 세 명의 AP기자는 2000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건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2004년에는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법안인 노근리 사건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유족들은 미국정부와 상 하원, 그리고 한국정부와 국회에 손해배상과 공개사과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아직까지 어떤 배상이나 보상도 받지 못했다, 당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의례적인 ‘깊은 유감’ 이란 말만 들었을 뿐이다.

 

미군들의 만행은 노근리에 끝나지 않았다.

1950년 8월, 여수 남면 '이야포'와 '두룩여' 에서도 노근리와 비슷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부산에서 피난민 수백 명을 태운 피난선이 여수 안도에 도착했는데, 당시 미군이 피난선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해 150여명이 숨졌고, 당시 해상에 있던 어부들 까지 숨진 것이다.

 

그리고 1951년 1월에는 미군들의 네이팜탄 폭격과·기총사격으로 민간인 360명이 희생된 단양 곡계굴 폭격 사건도 빼 놓을 수 없다. 당시 미 전투기 10여대가 영춘면 느티마을 일대와 곡계굴을 집중 폭격한 것이다. 곡계굴에 피신해 있던 피난민들은 네이팜탄 공격에 대부분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필사적으로 탈출한 사람마저 총을 난사해 사살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 밖에도 순천, 광양, 곡성 등 전남 10여 곳에서도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다수가 숨졌지만, 기록이 부족해 인정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때죽음이었지만, 비극의 진상은 오랜 시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유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살았지만, 한 통속인 이승만정권과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날의 진실을 입에 올릴 수도 없었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구제를 위해 미국 정부와 협상했으나, 유가족이 원하는 보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참하게 양민을 학살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 하루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해 여름 노근리’전은 오는 8월1일까지 열린다. 다시 한 번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자.

 

그리고 오는 7월29일 오전 10시부터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평화공원에서 원혼들을 추모하는 기념식도 열린다. 당초 한국전쟁 70주년의 의미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대규모 행사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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