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11번 출구로 나가는 후암동에 멋진 사진전문갤러리가 생겼다.

사진기획자 이일우씨가 사진창작지원 사업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개관한 전시장인데, 내가 머무는 쪽방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정영신씨와 함께 가기위해 미루다보니, 23일에서야 갈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 듯이 같은 후암동이지만 낯설었다.

쪽방촌에서 3-4백 미터에 불과한 거리지만, 바닥이 달랐다.

 

신진작가 지원전으로 정예진씨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라는 제목의 사진전이었다.

개관전이라면 유명작가를 내세우는 전례에 비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묵직한 느낌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로데스크한 느낌을 주는 초상사진들이 압도했다.

젊은 야성이 꿈틀거리는 이미지에서 인간의 심리적 불안과

욕망의 찌꺼기가 스물 스물 기어 나왔다.

 

타인의 초상을 통해 스스로의 고민과 욕망을 드러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민은 시대가 만들어 낸 모순이었다.

자유분방한 초상사진이 주는 울림이 강열했다.

 

난, 전시작가 정예진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사람은 물론 이력 한 줄 아는 바 없는, 말 그대로 신진작가다.

경험 많은 중견이면 뭐하고, 오래 찍은 원로면 무슨 소용있겠는가?

생각이 신진작가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사진에서 청춘의 고민과 심리적 불안을 엿볼 수 있었고,

넘치는 욕망의 에너지를 읽을 수 있었다.

정체성의 가면을 쓰고 이중적 삶을 살아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대변한

작가노트에 적은 아래 말이 작품 창작의 계기를 잘 말해준다.

 

“세상은 나와 다른 모습으로서의 삶을 강요하였다. 나는 내가 아니었다.

이것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진들은 젊은이의 고민과 욕망이 범벅된 외침이었다.

 

전시가 열리는 곳은 천장이 높아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겼는데,

마치 정예진씨 전시를 위해 만들어 진 공간처럼 잘 어울렸다.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나가려니, 낯익은 분이 반겨주었다.

오래 전 ‘스페이스22’에서 여러차례 뵌 분인데, 큐레이트로 일하는 오혜련씨였다,

기어이 차 한 잔 하고 가라지만,

관장 이일우씨가 갤러리 보수공사 하느라 정신없었다.

 

일손을 놓게 할 것 같아 도망치듯 빠져 나와 버렸다.

이제 가까운 곳에 오붓한 데이트 코스 하나 생겼으니,

눈 먼 할멈이라도 한 분 꼬셔야겠다.  꿈도 야무지지만...

 

글 / 조문호

 

‘Korea Photographers Gallery‘ 개관전

정예진씨의 “Masquerade ; 나는 내가 없어서 남의 그림자를 훔쳐 입었다”

전시기간 : 2020_0616_0707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KP갤러리 : 서울 용산구 소월로2나길 12(후암동 435-1 B1)

Tel. +82.(0)2.706.6751 / kpgaller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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