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갈수록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고향 영산의 연지 못에서 썰매 타다 얼음이 깨져 허우적거릴 때나,

잘 못 던진 돌에 친구 머리가 맞았던 사고 등 끔찍한 일부터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는 아름다운 추억도 떠오른다.

 

이웃 소녀에게 첫 연정을 느꼈을 때다.

우연히 데이트 할 기회가 생겨 밤길을 나란히 걷게 되었는데,

어두운 밤길에 손이라도 잡아주면 좋으련만, 부끄러워 손도 못 내민 쑥맥이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잡은 그 두근거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런 아련한 추억이야 머리에만 남았을 뿐, 증명할 아무것도 없다.

당시는 카메라가 귀해 학교에서 찍은 졸업사진 정도가 고작이라 있을 리 만무하다.

사진첩에 남아있던 오래된 사진이라고는 67년 무렵 구입한 ‘페추리’카메라로 찍은 사진인데,

대개 친구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관에서 뽑은 사진이었다.

그 때부터 찍은 사진들이 모아져 나의 가족사가 담긴 사진첩을 이룬 것이다.

 

가끔은 사진첩을 꺼내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고 말았다.

앞뒤가 보이지 않던 이혼전쟁의 희생물이 되고 만 것이다.

상대가 미우면 같이 있는 사진만 태울 것이지, 왜 씨를 말렸는지 모르겠다.

내 가족사는 그 난리 통에 연기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몇 년 전 우연히 본 책갈피 속에서 오래된 사진 두 장을 발견했다.

한 장은 60년대 후반 첫 직장 들어갈 때 찍은 조그만 증명사진이고,

또 한 장은 훈련병시절 39사에서 찍은 기념사진인데, 너무 반가웠다.

전형적인 어리숙한 촌놈 모습과 폐잔병 꼴로 폼 잡은 기념사진인데,

그 두 장 사진만이 오랜 추억을 불러들이는 유일한 유적같았다.

 

사진을 찍는 찍사의 가족사가 이리 초라해서야 쓰겠는가?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요즘은 사진이 너무 흔해 온갖 모습들이 인터넷에 떠돌지만,

아무리 많아도 오래된 사진 한 장에 비기겠는가?

 

지금 60대가 넘은 사람들은 다들 기억 날 것이다.

안방 천정 밑이나 마루 문턱 위에 빼곡이 사진을 끼어 걸어 놓았던 사진틀 말이다,

할아버지에서부터 시작하여 결혼사진, 졸업사진, 백일사진 등

가족의 역사적 자취가 수놓은 사진틀은 그 집의 족보처럼 자랑스럽게 걸렸었다.

아무리 훌륭한 그림이 좋다지만, 가족으로서는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작품이 어디 있겠는가?

가족 사진첩은 가족의 역사이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의 저장고가 아니던가?

 

오래된 가족 사진틀이 새삼 그리워진다.

90년대 찍은 최종대씨 내외 사진에는 안방 벽에 가족 사진틀이 전시장처럼 걸려있었다.

아직까지 장가도 못간 아들 창수는 자랑스럽게 사각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최씨 집안의 족보나 다름없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당신의 가족사는 안녕하신가요?

무고하다면 책장 깊숙이 숨겨둘 것이 아니라

추억될만한 오래된 사진들을 골라 작품하나 만들어 거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오도록, 아주 촌스럽게 말입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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