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황예숙씨의 ‘노랑 드레스 입은 도자의자’ 초대전이

지난 9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황예숙씨는 실용적 속성을 바탕으로 조형적 유희를 담아내는 도예가다.

정해진 기법에 따라 반복하는 그렇고 그런 도예가가 아니라,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작가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도예를 전공하고 홍익대학원에서 도자조각을 공부했다.

세계 각국에서 스물 여덟차례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역량 있는 작가다.

그동안 건축물의 도자조각과 환경조형물 같은 대작들을 많이 제작해 왔다,

 

지금은 여주에서 ‘후후아트조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여주국제도예협회장’으로 한국도예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도예계 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이유는

고인이 된 남편 박권수 화백의 유명세에 가린 탓도 있다.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일보다 남편의 유작을 펼쳐 보이는데, 온 힘을 쏟아왔다.

 

며칠 전, 황예숙씨로 부터 전시를 연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요즘은 가급적 전시 보러 가는 일은 자제하지만, 안갈 수가 없었다.

작가를 알게 된지가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

여지 것 사진으로만 작품을 보았지 실제 작품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전시는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가 아니던가.

 

지난 9일 정영신씨와 손님 몰리는 개막식을 피해 이른 시간에 전시장을 찾았다.

황예숙씨는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보완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들은 도자의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시장에 의자만 놓여 있으니, 앉아 쉬기도 좋았다.

 

고난도의 제작과정과 소성과정을 거쳐야하는 돌덩이 같은 도자 의자를

연약한 여성의 힘으로 어떻게 구워냈는지 모르겠다.

온 몸을 불사르는 치열한 작가정신이 돋보였다.

 

그의 작품들은 투박하면서도 간결했다.

대담한 구성으로 만들어진 의자들은 세련된 조형미를 자랑했다.

자칫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 도자의자를 포근하게 이끈 색깔 또한 매혹적이었다.

몸체에 입힌 유약이 원하는 색상이 나올 때까지 4번 이상 소성해 완성했다고 한다.

 

작품이 도발적이고 육감적이지만, 어머니 몸처럼 포근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실용성은 물론 장식성까지 두루 갖춘 작품에는 정겨운 여성의 감성이 물씬 묻어났다.

모양이 다르고 삐딱해도 안정감을 주는 의자 다리,

거칠어 보이면서도 섬세한 조형감각도 돋보였다.

 

쪽방에 사는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지만,

거실이 넓은 집에 옮겨 놓으면 집안의 격이 달라질 것 같았다.

즉, 작품의 예술성 뿐 아니라 상업성도 겸비했다는 말이다.

 

소설가 박인식씨는 서문 말미에 이렇게 적고있다.

 

"황예숙의 의자는 신통하다.

생각하는 사람을 앉혀 사랑에 미친 짐승으로 바꿔 놓을만하다.

이 의자는 한글 자음의 'ㄴ'이다. 여기 시가 앉아 신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여태 보지 못했던 사랑의 형상 Shape of love를 본다.

 

누가 황예숙의 의자에 시를 앉히는가

당신은 어떤 사랑의 형상으로 그 의자에 시로써 앉겠는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전시는 오는 15일까지지만,

여주 '경기세계생활도자관'전시는 16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글 / 조문호

 

 

2016서울한옥박람회 개막식에 내외빈들이 테이프커팅을 하고 있다.


전통장인들의 대장간 가마 재현에서 정자 건축까지, 전시와 체험으로 한옥의 전통과 미래를 만나볼 수 있는
‘2016 서울한옥박람회’ 개막식이 지난 2월1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렸다.

서울시와 아시아투데이가 주최하고 2016 서울한옥박람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김덕룡)가 주관한

이번 한옥전문박람회는 전통장인에서부터 작가, 한옥 건축‧자재업체, 대학교 등 200여 곳이 참여한 최대의 규모다.
개막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구본홍 아시아투데이 부회장과 우종순 사장, 게르하르트 자바틸 유럽연합대사 등
주요 인사 및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최근 집을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 '셀프'로 한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우리 전통 한옥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어,
전통문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한옥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한옥문화예술관’에서는 한옥에 어울리는 다양한 작품전도 열린다.

전통공예와 전통가구를 비롯하여 ‘민예총’에서 주관한 우리가옥미술전, 박권수화백 초대전, 여주도예작가협회전,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의 아리랑관도 마련되어 있다.

‘민예총’의 우리가옥미술전에는 장터사진가 정영신의 사진에서부터 고선례씨의 그림과 조각 , 도예가 황예숙씨와

김희갑씨 등 여러 사람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박람회는 21일까지 나흘간 진행된다,


                                                                

 인사말을 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 23일 열린 박권수씨 추모전 뒤풀이가 인사동 산수갑산에서 열렸다.

 

이 전시는 박권수를 사랑하는 모임’(박그사)이 마련했는데, 소설가 박인식, 방송인 전유성,

영화배우 최민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탤런트 이효정, 시인 송 현, 연극배우 이호성, 행위예술가 심철종,

화가 강찬모, 106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날, 100여 만 원이나 되나 뒤풀이 술값을 아라아트김명성씨가 낸 것이다.

전시장도 그냥 빌려주었는데, 뒤풀이까지 내겠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여지 것 인사동 지인들의 전시 때마다 숱한 도움을 준 그였지만, 지금은 자기 코가 석자다.

당장 빈손으로 물러나야 할 처지를 훤히 아는데...

돈이 없어, 후배 이지하씨에게 200만원 상당의 판화를 줄 테니 대신 내라는 것이다.

 

전생에 가난한 예술가를 위해 태어난 팔자인지는 모르지만, 코끝이 찡했다.

끝 날 무렵 불어 준, 김정남씨의 피리소리가 구슬프게 했다.

 

이날 뒤풀이에 함께한 분은 미망인 황예숙씨와 그의 아들 박상하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전유성, 김명성,

이효정, 이성용, 이호성, 이상철, 이두엽, 강찬모, 김대웅, 송일봉, 주홍수, 정영신, 김행수, 김정남, 조해인,

장경호, 최인선, 김진석, 이정아, 박관식, 김희갑, 권경희, 서길원, 서혜운, 노광래, 이영기, 백남이, 이지하,

임경일씨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글 / 조문호















 

 


 

 

 

 

 

 

 

 

 

 

 

 

 

 

 

 

 

 

 

 

 

 

 

 

 

 

 

 

 

 

 

 

 

 

 

 





박권수씨를 잘 모른다.


모임에서 한 두 차례 만났을 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농심마니’ 박인식씨가 주동이 된
‘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모임에 함께하며 관심을 가졌다.

지난 해 열린 유작전에서 그의 작품을 얼추 보았지만,
이번에는 그의 전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4개 층에 전시된 작품들은 하나같이 좌절과 절망,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그는 왜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했을까?
처자식 거느리며 행복한 가정 꾸렸고, 그렇게 가난에 찌들지도 않았다.
그의 작업노트에 유년시절에 품은 비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무슨 원한이 있었던 것 같다.

인간성 상실을 다루었다지만, 어떻게 시종일관 한결같을까?
공포와 고통에 굳어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화상이었고, 자연인 나무는 부러져 있었다.
심지어 칼로 후벼 판 목판에도 그의 분노가 녹아 있었다.
아니라지만, 내가 볼 땐 암울한 시대적 저항으로 보인다.

그 분노가 독이 되어 병을 만들었고, 그 병은 목숨을 앗아갔을 게다.
결국, 작품에다 온 몸을 불태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행스럽게, 그의 고향 서천에서 박권수미술관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박권수의 예술혼을 결집시킨 미술관건립을 기대한다.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31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저승에서도 그림을 그리겠다던 박권수화백이 떠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를 추억할 수 있는 세 번째 유작전이 오는 10월31일부터 11월9일까지 ‘서천문화원’에서 열린다.

'농심마니'와 '박그사'가 함께하는 오프닝은 10월31일 오후5시다.

“지인들이여! 그 시절을 돌아보며, 도예가 황예숙(미망인)씨와 눈 맞추자.
그리고 함께 어울려 술잔을 들자.


전시 오프닝과 연계한 '농심마니'의 산삼심기 행사도 서천 천방산에서 있다.

서울의 '농심마니' 버스는 10월31일 오후2시에 서울'세종문화회관' 뒷편에서 출발한다.

함께 할 분은 '농심마니'총무 이상철(010-9063-5510)씨에게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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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박권수 추모 유작전이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서천문화원(041-953-0123)에서 열립니다.
전시오프닝은 10월31(금) 오후5시

 

 

 

 

 

 

인간 군상 그린 그림, 고통과 소외 속 ‘현대인의 자화상’
소련 연방 해체 직전 모스크바에서 개인 초대전 열기도…

 

 

지난 해 11월 29일 오후 5시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3층 전시실에서는 ‘목숨보다 그림’이라는 주제로 서양화가 박권수의 유작전 개막식이 열렸다. 이 전시회는 ‘박권수를 사랑하는 모임’(박그사)이 마련한 것이었는데, 박그사는 영화배우 최민식과 소설가 박인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개그맨 전유성, 탤런트 이효정, 성우 배한성, 연극배우 이호성, 행위예술가 심철종, 영화감독 이만, 화가 오만철, 연극연출가 기국서, 시인 송현 등 107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박권수 화백의 유작전 개막식에는 생전에 친분이 있는 각계의 지인 2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개막식에 참석했던 한 지인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박그사 박인식 대표의 사회와 부인 황예숙 여사의 인사말로 시작된 개막식에는 무세중 전유성 송현 김명성 이성룡 이호성 이효정 이두엽씨 등 여러 벗들이 나와 지난 회고담으로 박화백의 생전 주벽을 털어놓아 그 때 그 시절을 그립게 했다. 그리고 아들 박상하군이 생전에 박 화백이 즐겨 불렀던 노래를 불러서 옆에서 듣던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다. 고 박권수 화백을 기리는 추모제로 행위예술가 김백기씨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얼굴에 촛물을 쏟아가며 고통을 끌고가는 그의 행위는 목숨보다 그림을 사랑했던 서양화가 박권수의 치열한 작품세계를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 박권수 화백은 서천 사람이다. 1950년 한산면 죽촌리에서 태어나 한산중학교와 서천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동토’의 작가 박경수(1930~2012)는 그의 친형이다.

197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그는 1982년 서울미술회관 전시를 시작으로 31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1986년 미국 뉴욕 바자렐리센터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을 해외에 수출한 그는 소련 연방 해체 직전인 90년 모스크바 프롤레타리아 뮤지엄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대전을 열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스페인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을 오가며 치열하게 활동하던 그는 2005년 간암으로 쉰다섯 짧은 생을 마감하고 한산 죽촌리 생가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안당리 유택에서 영면하고 있다.

 

그는 10여년 세월동안 인간을 그렸는데 그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이 된 듯한 소외된 인간상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포즈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굳어있고 극단의 고통 속에 일그러지거나 자신의 내면을 투시하는 표정들이다. 이에 따라 화면의 뒷배경은 생략되어 있고 여럿이 같이 있어도 서로가 타인으로 머물러 있다. 즉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현실적인 상황 설정이 없이 상호간에 교류나 교감이 완전히 단절된 군상들이 대부분이다. 미술평론가 이일은 그가 그려낸 인간 군상들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박권수 자신의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자기 자신을 모델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의 회화 그 자체가 자전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회화는 어던 한 개인의 ‘자화상’임을 뛰어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자화상 너머의 현대인의 인간조건 바로 그것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화백의 부인 황예숙씨(도예가)도 그의 그림을 민중미술이나 어떤 이로올로기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편이 워낙 사람을 좋아했다. 전국에 산삼 씨 뿌리는 모임 ‘농심마니’를 주도하고, 홍대 앞에 화랑을 내면서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생계를 이으려 홍익대 입구에 차린 디자인 가게에서 최민식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최민식은 화가인 형 최찬식과의 인연으로 박 화백과 가게를 꾸리면서 호형호제했다. 최민식은 지금도 인터뷰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고인을 꼽는다고 한다.

그가 주도했던 농심마니의 산삼심기 행사가 오는 10월 31일부터 2박3일 동안 지역 주민들과 함게 서천군 관내 산에서 열리는데 이 때 서천문화원에서 박권수 화백의 추모행사와 공연이 함께 열릴 예정이다.

 

 

[스크랩 / 뉴스서천]


 

내달 12일까지 '목숨보다 그림'展

 

 

 

영화배우 최민식, 소설가 박인식, 개그맨 전유성…. 영화·문학·방송·의료·언론 등 각계 인사 107명이 한 화가를 위해 뭉쳤다. '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박·그·사). 고(故) 박권수(1950~2005·사진)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는 모임이다. 이들이 박 화백 유작전 '목숨보다 그림'을 29일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연다.

'소외된 인간의 고뇌'를 무채색 자화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1982년 서울 미술회관서 첫 개인전을 가졌던 박 화백은 1990년 옛 소련 모스크바에서 초대전을 가지며 주목받았다. 거친 나무, 삼베 같은 질감 강한 화면에 자연 친화적 작품을 그려 평면과 입체로 선보여 왔다. 이번 초대전엔 작품 100여점이 걸린다.

박 화백의 부인 황예숙씨는 "남편이 워낙 사람을 좋아했다. 전국에 산삼 씨 뿌리는 모임 '농심마니'를 주도하고, 홍대 앞에 화랑을 내면서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이번 유작전은 그 친구 분들이 열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02)733-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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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107명, 박권수 화백을 기억하다" [서울신문]

 

최민식·박인식·전유성 등 ‘그리워하는 사람들’ 창립 새달 12일까지 유작전 열려

 

“목숨보다 그림을 더 사랑했던 사내! 하늘로 올라가서도 붓을 놓지 않았을 사내!”를 위해 쟁쟁한 문화예술인들이 뭉쳤다.

영화배우 최민식과 소설가 박인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개그맨 전유성, 탤런트 이효정, 성우 배한성, 연극배우 이호성, 행위예술가 심철종, 영화감독 이만, 화가 오만철, 연극연출가 기국서, 시인 송현 등 107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인 ‘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박·그·사)이 29일 창립 모임을 갖는다.

고(故) 박권수 화백의 추모 유작전이 열리는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3층 전시실에서다. 유작전은 다음 달 12일까지 이어지는데 1990년대 후반 건강이 악화돼 화단과의 관계가 끊긴 가운데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은 고인의 예술혼을 오롯이 담아 ‘죽음보다 그림’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크고 작은 화면을 이어 붙인 ‘유년의 기억 속에서’ 등 100여점이 선보인다.

이날 오후 5시에는 행위예술가 김백기의 ‘박권수를 기리는 퍼포먼스’와 국악인 장사익, 가수 최백호의 공연이 마련된다.

고 박 화백은 1950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77년 홍익대를 졸업한 뒤 82년 서울미술회관 전시를 시작으로 31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86년 미국 뉴욕 바자렐리센터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을 해외에 수출한 그는 연방 해체 직전인 90년 모스크바 프롤레타리아 뮤지엄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대전을 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스페인 미국 일본 프랑스 등을 오가며 치열하게 활동하던 그는 2005년 병으로 쉰다섯 짧은 생을 마감했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 말고는 늘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생계를 이으려 홍익대 입구에 차린 디자인 가게에서 최민식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무명이었던 최민식은 화가인 형 최찬식과의 인연으로 박 화백과 가게를 꾸리면서 호형호제했다. 최민식은 지금도 인터뷰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고인을 꼽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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