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최민식, 소설가 박인식, 개그맨 전유성, 탤런트 이효정, 성우 배한성, 연극배우 이호성, 행위예술가 심철종, 영화감독 이만, 화가 오만철, 연극연출가 기국서, 시인 송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문화예술인 등 각계 인사 107명이 최근 한데 뭉쳤다. 모임의 이름은 ‘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박·그·사)’로 지었다. 최민식과 박인식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박권수는 누구인가. 쉰다섯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서양화가다. 1950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그는 77년 홍익대를 졸업한 뒤 82년 서울 미술회관 전시를 시작으로 31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86년 미국 뉴욕 바자렐리센터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을 해외에 수출한 그는 90년에는 옛 소련 모스크바 프롤레타리아 뮤지엄에서 한국 작가로는 처음 초대전을 열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스페인 미국 일본 프랑스 등 국내외를 오가며 치열하게 활동하던 그는 그러나 2005년 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초기에는 ‘소외된 인간의 고뇌’를 주제로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의 자화상을 그렸다. 90년대부터는 소나무와 옛 동산을 자화상의 배경으로 삼았다. 자연과 인간의 친화적인 교감을 꾀한 것이다. 고뇌에 찬 그림이 좀 더 밝고 따스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혼자 작업하는 시간 외에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작업이 끝난 뒤 밀려드는 고독과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생계수단으로 홍대 입구에서 디자인 가게를 운영하면서 최민식을 만났다. 무명배우였던 최민식은 화가인 형 최찬식과의 인연으로 알게 돼 가게를 함께 꾸리면서 호형호제했다. 최민식은 지금도 각종 인터뷰에서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이라는 질문에 “권수 형”이라고 답한다.

‘박·그·사’가 뜻을 모아 ‘박권수 화백 추모 유작 전’을 29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3층 전시실에서 연다. 90년대 후반 건강이 악화돼 화단과 단절된 삶을 사는 가운데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은 고인의 예술혼을 담아 ‘죽음보다 그림’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크고 작은 화면을 이어 붙인 ‘유년의 기억 속에서’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에 유작 전이 열리기까지 고인의 작품을 온전히 지켜온 부인 황예숙씨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주도자기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낸 도예가 황씨는 ‘한국적인 정서를 현대회화로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은 남편의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를 보다 못한 ‘박·그·사’가 나서 이번 전시가 성사됐다.

최민식·박인식 공동대표가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목숨보다 그림을 더 사랑했던 사내! 붓질로 죽음마저 넘어 하늘로 올라가서도 붓을 놓지 않았을 사내! 그의 피와 살이, 예술혼으로 피어난 유작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작품들은 우리를 죽음 너머의 세계와 동심 시절로 초대해주었습니다. 부디 이 자리서 그가 살아 있을 때처럼, 다시 박권수를 뜨겁게 껴안으시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피 끓는 심장 속으로 그의 예술혼이 스며들기를!”

전시 개막일인 29일 오후 5시 행위예술가 김백기의 ‘박권수를 기리는 퍼포먼스’와 국악인 장사익, 가수 최백호의 ‘박권수 추모 공연’이 마련된다(02-733-1981).

국민일보 /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