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수 추모유작전 29일부터

 

  “내가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당시 열아홉이란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형의 죽음에서부터였다. 들것에 실려 하얀 홑 이불을 덮고 동네의 한쪽을 빠져나가던 그 모습은 아직도 나에게 죽음으로 이르는 모양이 그때의 풍경이라고 믿게 한다. 그 죽음의 풍경은 나의 마음속에 선명히 찍어놓은 낙관처럼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인 줄을 나는 성장하면서 알았다.”

자신의 비극적 체험을 소재로 삼아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화가 박권수(1950∼2005)의 추모유작전이 29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3층에서 열린다. 

무제.
박그사 제공

 

55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친 박권수는 1982년 서울 미술회관에서 소외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한 무채색 자화상으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987년부터 미국 뉴욕, 로스앤젤레스, 스페인 마드리드 등에 초대받아 소나무, 동산 형상을 배경으로 그린 자화상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는 1990년 당시 국내 미술인으로는 처음으로 소련 모스크바 초대전을 열어 한·소 문화교류의 첫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991년부터는 일본 도쿄의 ‘무라마쯔 갤러리’와 나고야의 ‘APA 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했다. 이때 형광색이 이용된 33.4×24.2㎝의 작은 작품들이 독립적으로 또는 크고 작은 화면을 구성하는 연작 ‘유년의 기억 속에서’를 통해 발표됐다. 박권수는 줄곧 거친 나무, 삼베 재질의 천 등을 이용해 마티에르(질감)가 강한 화면에 자연 친화적인 작품을 평면과 입체로 선보였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인간성의 위기에 처한 사회 속 한 개체인 우리들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권수의 회화는 사회적 현실 가운데 자생하는 허무와 직면한 불안과 고뇌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업은 일체의 지반 상실 가운데서 인간의 근본적 자유를 발견하고, 절망을 전도시켜 창조의 동기로 삼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영화배우 최민식, 소설가 박인식, 개그맨 전유성, 성우 배한성 등 107명으로 이뤄진 박그사(박권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 모임이 추진위를 구성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박권수가 남긴 작품 500여점 중 4∼150호 사이의 작품 100여점이 공개된다. 29일 오후 5시에 열리는 전시회 개장식에서는 김백기 작가의 고인을 기리는 퍼포먼스와 소리꾼 장사익, 가수 최백호의 공연이 진행된다.

 

세계일보 /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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