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은 모처럼 일에서 해방되었다.
원로사진가 이명동 선생님의 점심약속을 핑계 삼아 하던 일을 잠시 밀쳐 둔 것이다.
일찍 나와 가까운 ‘은평평화공원’에서 봄볕도 쬐고, 대조시장에 들려 쑥떡과 딸기도 샀다.

약수역에서 내려 선생님 계신 아파트로 들어서니, 엄청 반기셨다.
그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데, 물리치료도 받고 침도 맞아보았지만, 별 신통찮단다.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시는 일은 여전하셨다.

한 때 저축은행장이셨던 윤현수선생의 옥중 편지도 보여주었다.
삼년 후에 큰 백수잔치를 마련해 드릴 테니, 건강을 잘 지키시라는 말씀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약통을 꺼내 약 한 알을 휴지에 싸 두고는, 나머지를 넘겨 주는 것이었다.

“선생님 이기 뭡니꺼?”라고 물었더니, 모기만한 소리로 “비아그라~”라고 하셨다.
세상에!. 선생님 연세에 아직까지 비아그라를 사용하시다니...

이젠 허리가 아파 어려운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횡재한 것이다.
설렁탕집으로 자리를 옮겨, 나를 위해 소주도 한 병 주문해 주셨다.
술이 얼큰해, 이런 저런 고충들을 말씀드렸다.

“술이 깨야 자는 습관으로, 가끔 음주댓글로 말썽을 일으킨다.”고 했더니, ”큰 병이네“를 반복하셨다.
술을 안 마실 수는 없으니, 수면제라도 먹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소주 반병은 인사동에서 마실 작정으로 남겨왔다.
술기운에 인사동을 돌아다녔는데, 날씨 탓인지 지나치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아라아트’ 공윤희씨를 비롯한 아는 분을 여럿 만나 선생님 하사품인 비아그라를 나누어 주었지만,

낯 술 같이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께서 아시면 섭섭할지 모르나, 있을 때 나누어 먹어야, 없을 때 얻어먹거던.

‘갤러리 H’에서 열리는 하영준씨 전시를 둘러보고 집에 돌아왔더니,

내차 유리창에 비아그라 광고 명함이 꽂혀있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짜식~ 번지수를 한참 잘 못 찾았네, 나 오늘 비아그라 생겼어, 임마”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의 밤은 홍대나 강남처럼 북적대진 않는다.

늦은 밤거리를 걷다보면, 유랑악사들의 음악소리가 발길을 잡기도 하지만.
폐지 줍는 노인들의 구부정한 모습이나, 술 한 잔 걸치고 종종걸음 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뛸 뿐이다.

그러나 주청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사정이 달라진다.
술 익는 냄새가 술술 난다. 술꾼들이 서서 뿜는 담배연기가 굴뚝처럼 피어오른다.
술 취한 연인들의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모습도 사랑스럽더라.

‘유목민’으로 들어서니, 채현국선생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공윤희씨 옆엔 조현정, 오세현씨가 있었는데, 채선생님 인터뷰 뒷자린 듯했다.

안쪽에는 강기숙, 전인경, 전인미, 황인호씨가 앉았는데, 전인경씨는 이미 맛이 갔더라.
할아버지 같은 채선생께 안겨 응석도 부리고, 자유스런 몸짓으로 웃으며 소리 질러도,
통하는 곳이 인사동 술집 아니가? 시름도 슬픔도 기쁨도 모두 껴안아 줄 수 있는 사람들..

이제, 서러운 예술가들의 시름을  인사동 대폿집 막걸리 잔에 부려놓자.
이 지랄 같은 세상, 욕이라도 실큰 퍼 부으면, 반분은 풀리거든...

사진, 글 / 조문호








































정월 초하루, 제사상 물리기가 무섭게 호출이 왔다.
독거노인 대표주자 장경호화백이 연출한 번개팅이란다.
감기 걸려 빌빌하지만, 독거 서러움 다독이려 찾아 나섰다.

설 날, 이른 시간이라 ‘유목민’ 문이 열릴까 싶었는데,
전활철씨 안사람이 친정가, 그 역시 독거라 가능하단다.

닫힌 대문을 살짝 밀어보니, 불 꺼진 술집에 노광래, 장경호, 전활철씨만 있었다.
이미 빈 술병들이 더러 보였고, 난 몸이 정상이 아니라 대번 기별이 왔다.
느닷없이 백발의 여인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공윤희씨와 채현국선생께서 나타났다,

그리고 임재경선생이 오셨다 가시더니, 뒤늦게는 신학철선생까지 등장하셨다.
무슨 연극무대 배우 들락거리듯, 출연진들이 속속 뒤 따랐다.


술이 취하기 시작하니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정치나 비평 같은 씨잘데 없는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괜한 딴지가 딴지를 걸고, 울분이 분노를 토해낸다.
이미 고개 숙인 전사자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그 때쯤이면 어김없이 전활철씨의 기타반주와 노래가 시작된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살울림’의 ‘청춘’에 왠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미 세상을 떠나간 적음, 강용대, 김종구 이야기 끝자락이라,
그리움인지, 회한의 추억인지,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인사동 ‘실비집’에서 시작된, 우리들의 낭만은 아린 사연이 많다.
30여년의 세월을 방황하다, 이제 끝자락에 머문 것이다.
모두들 인사동의 마지막 해방구라 아쉬워 하지만,

진 꽃잎 따라 지듯, 또 다시 누군가는 피우겠지...

사진, 글 / 조문호

 

 

 

 

 


 


 

 

 

 

 

 

 


 

 

 

 

 

 

 

 

 





“6FIGURATION”전시뒤풀이가 인사동 유목민에서 있었다.

 

김진열, 성병희, 이샛별, 이세현, 장경호, 정복수씨 등 참여 작가를 비롯하여 김진하, 하태웅, 배성일씨가 먼저 자리 잡았다.

뒤늦게 미술 평론하는 유근오씨 등 반가운 분들이 나타났다. 건축가 임태종씨와 공윤희씨, 풍기에서 소설 쓰는 배평모, 구중관씨, 삼천포에서 도자기 굽는 박영현씨, 이회종, 이도흠 교수, 최혁배 변호사, 사진가 정영신씨 등 많은 분들과 여흥을 즐겼다.


그런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으니, 진득하게 마실 수가 없더라. 술판은 뭉쳐야 되고, 시끄러워야 술 맛 나는데...

 

사진, / 조문호










































구로구청장 이 성씨와 홍현숙씨의 장남 홍일군의 결혼식이
지난 10월24일 오후6시, 신도림 테크노마트 웨딩시티에서 있었다.


홍일 군은 오래 전에 한 번 보았는데, 너무 어엿하게 자라 있었다..

지금은 '우리은행' 두뇌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한다는 소개도 있었다.
긴 주례사가 이어졌으나, 아무 소리 안 해도 잘 살 커플 같아 보였다.

축하객들이 많았으나 인사동사람으로는 최혁배 변호사 내외를 비롯하여 ‘아라아트’ 김명성씨와

공윤희씨, 소설가 박인식씨, 화가 전인경씨, 큐레이트 전인미씨를 만났을 뿐이다.

모두들 ‘아내는 왜 오지 않았냐?’지만, 어찌 심사임당 지폐 한 장 넣고,

두 사람이나 먹을 수 있단 말인가. 벼룩도 낯짝이 있지...

피로연장은 8층에 있는 뷔페식당이었는데, 여러 곳에서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연회장이 얼마나 넓은지, 음식 가지러 갔다가 가방 둔 좌석을 찾지 못해 뷔페식당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함께 있던 공윤희씨가 가방을 들고 다른 자리로 옮겨 버렸는데, 더 황당한 것은 자리는 찾았지만,

챙긴 음식 놓은 자리를 몰라 다시 찾으러 다닌 것이다. 완전 시골 노인 서울서 헤맨 격이었다.

기둥에 적힌 구역번호만 기억했으면 그런 곤욕은 치루지 않았을 텐데...

좀 있으니 이성씨 내외가 식사하러 왔으나, 이곳은 혼주의 테이블도 별도로 마련되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우리가 일어나고 두 내외가 앉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축하객에게 인사 드리려,

국수 몇 젓가락만 들고 바삐 일어서야 했다.
오늘 같이 경사스러운 날, 한 끼쯤 굶어도 괜찮겠다마는, 왠지 안 서러워 보였다.

사진,글 / 조문호










김효성씨 딸이 시집간다는 기별에 정선에서 새벽부터 설쳤다.

이태원의 크라운호텔 예식장에서 신부를 처음 보았는데, 너무 예뻤다.
나처럼 지지리도 못 생긴 지네 아버지에서,
어쩌면 저렇게도 예쁜 딸이 나왔을까 신기했다.

예식장에서 반가운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그의 형 김명성씨 가족은 물론이고, 서양화가 강찬모, 연극배우 이명희,

성악가 이경오, 가수 신현수, 인사동지킴이 공윤희씨를 만나 함께 식사 했다.

급히 오느라 아침밥도 거른 상태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는
무의식 결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것이다.
붙인 김에 한 모금 길게 빨고는 불을 끄려는데, 종업원이 소리친다.

“어르신 여기서 담배 피면 큰일 납니다.”
“아이구! 지송함니더. 촌에서 금방 와, 잘 몰라 그렇심더”
장초를 버렸으나 엉겹 결에 피운, 그 한 모금의 담배 맛이 진짜 좋았다.

역시 실수도, 수는 수로구나.

2015, 10, 10

사진,글 / 조문호




















지난24일부터 이틀 동안 아내와 추석 대목장 촬영하느라 충청도 지역을 돌아 다녔다.

판교, 해미 같은 조그만 장들은 초장에 빤짝하다금방 한산한 파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진 같은 군소재지 장들은 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제수용품은 구해두었는지, 평소 자식들이 좋아한 음식들 찾느라 여기 저기 기웃거리신다.

 

우리내외도 서울에 들려 다시 정선으로 떠나야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서둘러 올라 오던 중에, 미국에서 오신 최정자시인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추석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얼굴 좀 보자는 것이다.

열흘 전에 서울 왔다는 연락은 받았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터라

급히 인사동으로 차를 몰았다.

 

인사동 '아라아트'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을 비롯해 김명성 시인, ‘유목민주인장 전활철, 그 아들 시원이,

인사동지킴이 공윤희, 사업가 이상훈, 이태규씨 등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밥 먹고, 차 마시고, 술까지 마시느라 하루를 다 보내버렸다.

 

밤늦은 시간 유목민골목에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는데, 김여옥 시인과 화가 서길원,

최경태, '유카리'관장 노광래, 번역가 이지연씨 등 주객들이 차례 차례 등장했다.

시에 관한 시잘데 없는 이야기 끝에 "안 팔리는 시집은 왜 만드냐?" 는 김여옥시인의 말에

시집은 팔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만든다.“는 명답을 최정자시인이 했다.

 

좀 있으니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현국 선생께서 쫄랑쫄랑 골목으로 들어오신다.

매일같이 강연에 끌려 다니시다 모처럼 술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요즘 돈 되는 강연회 요청은 다 물리치고, 가난한 모임의 강연회만 부지런히 다니시는데,

선생님이 계시는 시골 중학교 학생이야기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얼마 전 조그만 학생 한 녀석이 채선생께 다가와 할배!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너무 귀엽습니다

해 놓고 줄행랑을 치는대도, 선생님께서는 기분 좋아 그냥 깔깔 웃으셨단다.

그 이야기에서 채선생님의 교육철학이나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가 그대로 입력되었다.

 

또 한 가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라아트김명성씨가 병원에 누워있는 화가 이청운씨를 비롯하여 어려운 예술가 열 명에게

명절 쉴 돈을 일일이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 코가 석자인 명절 직전의 온정이라 더 크게 다가왔다.


년에 최정자 시인이 귀국했을 때는,  어려움에 처한 김명성씨가 안 서러워 모아놓은 달라 천불을 놓고 가셨단다.

그러나 가난한 시인의 돈을 차마 쓸 수 없어 책상 서랍에 넣어둔 채, 여지 것 재기를 다짐해 왔다고 한다.

그 날, 돈을 다시 돌려 주려는 김명성씨와 안 받겠다는 최정자씨의 실랑이를 들으며 발길을 돌렸는데,

인사동 예술가들의 애틋한 정은, 꺼져가는 인사동의 한 가닥 등불 같았다.


"사람나고 돈나지, 돈나고 사람났나?"

 

  사진,글 / 조문호 




 

 

목판화가 정비파선생과 저녁식사 한 끼 하자는 전화를 공윤희씨로 부터 받았다.
끝나가는 정비파선생의 전시 결과도 궁금하지만, 천성이 선비 같은 분이라 보고 싶기도 했다.

전시장 가는 길에 두 내외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
인사동 ‘자연 속으로’에 차린 밥상은 집 이름처럼 유기농 야채가 주종인 풀밭이었다.
공윤희씨와 아내는 워낙 야채를 좋아 하지만, 나는 촌놈이라 고기만 골라 먹었다.

오늘은 세시부터 인사동 터줏대감들을 만나 마시기 시작했으니, 이미 술에 절어 있었다.

이젠 나이 탓인지 점심부터 저녁까지 술 자리를 잇기가 좀 무리다 싶다.
‘유목민’에서 김명성씨의 빨리 오라는 전화에 아내를 잡혀 놓고 자리를 떴다.
그 자리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상훈, 정기영씨가 있었고, 밖에는 안영상씨 일행이 있었다.

옆 자리에는 전활철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박혜영씨의 생일케익을 잘랐다. 

 

오늘은 하루종일 공술 마시고, 밥에다 케익까지 얻어먹은 재수 좋은 날이다.

늘 오늘만 같아라.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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