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심우성선생께서 인사동으로 올라 온지도 벌써 해를 넘겼다.
여관방에서 자고 끼니는 식권으로 해결하지만, 마냥 행복해 하신다.
매일같이 친구 만나고, 고서점을 더나들며 책 사 모우는 재미로 산단다.
거기다 간간이 들어오는 원고청탁에다 무대공연까지 있으니 신바람 난 것이다.

선생께서 혼자 상경하셨을 땐, 안 서러워 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잘 됐다 싶다.

천성이 떠도는 광대나 다름없는데, 갇혀 사셨으니 감옥이나 마찬가지였을게다.


 

지난 27일 인사동 ‘유목민’에서 술 한 잔 하시며 인사동 아리랑 이야기를 꺼내셨다.
인사동 숙소에만 아리랑과 관련된 서적이 50권이나 있고,
제주에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부터 아리랑에 관한 자료들이 없는게 없단다.
언젠가는 인사동에 아리랑박물관 하나 만드는 게 마지막 꿈이란다.

수집한 아리랑 책들을 보기위해 신궁장여관 숙소에 들렸더니, 여관방 자체가 박물관이었다.

한 평 남짓한 방에 오밀조밀 붙이고 걸고 쌓아, 마치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화개장터 같았다.

그 책들의 표지들을 모두 복사했는데, 더러는 귀중한 자료들도 여러 권 보였다.

심우성선생께서 신문에 난 사진자료까지 다 오려 스크랩하기에,

컴퓨터 한 대 들여 놓으라 말씀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인터넷에 왠 만한 사진자료들은 다 있는데다, 원고지에 글 쓰는 게 안 스러워 한 말이지만,

민속학자가 컴퓨터 가지고 노는 것도 좀 웃긴다 싶었다.

비록 여관에서 혼자 지내는 신세지만 친구 분들 중에는 제일 부자다.
받은 원고료로 책사고, 남는 돈은 매일같이 친구들 술 받아 드린다.
“선생님께서 술값 내시면 여관비하고 밥값은 우짭니꺼?”라며 물었더니
제자들이 여관비로 한 달에 60만원씩 보내주고, 잘 아는 후배가 식권도 대 준다는 것이다.
부러웠다. 선생님은 분명 복 받은 분이셨다.

그 복으로 인사동 아리랑박물관까지 꼭 만들 것으로 믿는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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