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인사문화마당'에서 찍은 포도대장과 순라꾼들

인사동은 추억을 먹고 산지 오래다,

40여 년 전 예총회관이 있던 인사문화마당 자리는 ‘포도대장과 순라꾼’들이 사용한 곳이다.

순라꾼들이 인사동 거리를 돌며 조선시대 풍정을 연출했으나,

재개발로 파헤쳐지며 지하에 묻힌 유물만 쏟아내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사동은 문화마당만 바뀐게 아니라, 사람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고 인심까지 변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만 아무런 대책도 관심도 없다

왜, 나만 못잊어 한물 간 인사동 노래를 줄창 부르고 있을까?

아마 그리운 사람들을 만난 추억의 창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두문불출하다 모처럼 인사동에 나갈 일이 생겼다.

‘인사동이야기’ 사진전 결산이 안 된다는 노광래씨 연락을 받아서다.

홍수표씨가 사진 값을 본인이 직접 와야 준다는 것이다.

사진 전해 준 사람에게 주거나 계좌이체하면 될 텐데...

 

해가 바뀌었으나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탓인지 인사동 거리는 한산했다.

홍수표씨를 만나러 인사동14길 골목을 들어서서 ‘신궁장 모텔’ 앞에 섰는데,

 ‘지리산’ 건물이 사라진 골목이 낯설어 보였다.

 

그러나 ‘지리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천도교 중앙대교당' 서쪽 면이 훤히 드러났다.

다시 새 건물이 들어서면 볼 수없는 진귀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철거된 자리에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모르나, 변하는 것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SK허브빌딩 쉼터인 ‘개천정’위로 솟은 앙상한 가지들이 스산한 겨울풍경을 연출했다.

‘개천산업’ 회장실에 들어가니 홍수표씨 혼자 있었다.

자주 만날 수가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얼굴 한번 보자는 심사였다.

 

홍회장은 사진가 한정식선생의 고등학교 제자였고, 나와는 동갑내기다.

젊은 시절 법원 서기로 일했으나 월급 많이 주는 은행으로 직장을 옮겼단다.

행원 공채에 응시해 인사동 태화관 자리에 있는 국민은행에서 긴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홍회장 사무실은 흡연이 가능한 보기 드문 장소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연신 줄담배를 피운 것은 흡연자의 설움에서다.

얼마나 냉대를 받았으면, 담배 피우는 사람만 만나면 동지애를 느낄 정도인가?

 

그곳을 나와 거리를 싸돌아다녔으나,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었다.

‘대감집’으로 바뀐지 오래된 옛 실비집 주변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실비집에서 만났던, 먼저 떠났거나 소식 끊긴 사람이 그리워서다.

 

적음 시집출판기념회에서 스스로 천재시인이라며 웃고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민폐를 가장 많이 끼친 땡초 적음이었다.

‘월간 빠’란 이야기로 온몸을 흔들며 파안대소했던 옛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잡지지만, 자기가 주간이고 날 더러 조대표라며 수시로 깔깔거렸다.

서울만 오면 실비집에 죽치며 물주 나타나기를 기다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실비집에서 술 마시다 잠든 적음스님

그런 그가 갑자기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한 번 웃자며 ’일소암‘이라 이름붙인 그의 방을 들여다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오래 전 찍어 준 초상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었고,

숨진 지 며칠이 지났는지, 바닥에 시신 썩은 자욱이 선명했다.

벽에 목을 기대어 기도가 막혀 숨진 것 같았으나, 스스로 열반에 들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그의 시 처럼 너무 그리워서 이승을 떠났을까?

 

적음스님이 열반한 자리

저녁에 / 최영해

 

“왜 그처럼 늦게 연락을 주었는지

어제는 감꽃이 지기 시작하더니

초가을 바람이 벌써 한차례 비를 몰고 가는구나

 

저녁엔 스산해서 한 잔 소주로 목을 달랬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놓아두고

그렇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이 저녁을 꾸려가야 하는 것인가

 

연락은 한차례 내리는 비처럼 왔다 갔다.

감이 발갛게 익어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 하겠다“

 

실비대학 총장 모녀와 사진기자 김종구, 소리꾼 김민경씨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세상을 하직한 인사동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이랴 마는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낄낄거리며 인사동 술꾼들 물주 노릇 톡톡히 한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

 

인사동 밤거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화가 이청운과 강용대

별을 그리다 별나라로 떠난 작은 거인 강용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끊긴 이근우씨와 실비대학 총장님

 

이근우와 벼평모씨가 어울려 '레떼'에서 춤을 추고있다.

인사동이 그리워 ‘서울로 서울로’ 노래 부른 미국계신 최정자시인,

 

최정자시인 좌우로 김정혜씨와 이점숙씨가 자리를 잡았다.

사람만 / 최정자

 

사람만

사람을 속이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미워하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배신하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등치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뒤집는 거야.

 

사람만

양의 탈을 쓰는 거야.

 

눈오는 인사동 거리에서 포즈를 취한 최정자시인과 정영신씨

다 바뀐 인사동을 방황하는 것은 그 때 그 사람들이 그리워서다.

 

사진, 글 / 조문호

 

최정자시인 출판기념회에서... (좌로부터 최규일, 최정자, 박이엽, 채현국선생)

 

인사동이 변하고 있다.

가게들이 바뀌고 낭만은 사라졌다.

지루한 거리두기로 거리가 지루하다.

 

그래도 인사동은 인사동이다.

변하는 것은 미워도 인사동은 미워할 수 없다.

 

일주일에 두 번 가던 곳이 한 번가고,

이젠 한 번도 못갈 때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다.

전시 작품보다 정 나눌 사람이 없다.

 

예술가 만나기도 쉽지 않고 대폿집 풍류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 죽일 놈의 코로나가 부채질한다.

 

 

몸은 멀어도 마음마저 멀어질 수는 없다.

영원한 추억의 저장고기 때문이다.

 

 

미국 가신 최정자 시인이 생각난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서울로 서울로’를 노래했다.

그 시집 나온 지가 어언 20여년이 되었다.

 

몇 년 전만해도 생활비 줄여 만든 돈으로

일 년에 한 번은 빠지지 않고 오셨으나,

힘들어 못 오신지가 사 오년 된 것 같다.

 

한번 갔다 오면 며칠 동안 앓아눕는다더니

이젠 도저히 엄두를 내지 못하신단다.

 

인사동이 그리워 틈틈이 블로그나 찾았는데,

영영 인사동과 작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 최정자 시인뿐이던가?

강 민시인은 저승에서 '인사동 아리랑' 노래를 부른다.

인사동 사람들이 한 분 한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인사동을 그리는 인사동 사람들이 있다.

멀리서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들려 향수 달랜다.

내가 거리풍경을 찍어 올리고 인사동타령을 해대는 이유다.

 

인사동 사진집을 만들려고 출판사 계약서 받은 지가 일 년이 가깝지만,

 아직도 원고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마침표가 될 사진집이 내 발길을 멈추게 할까 염려되어서다.

 

요즘은 세상이 뒤숭숭해 인사동도 잘 나가지 않는다.

동자동에서 녹번동 가는 길에 잠시들려 안부나 묻는 정도다.

인사동 거리를 기웃거리지만,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엊그제도 지나치는 길에 인사동에 잠깐 들렸다.

미친 코로나에다 폭염까지 겹쳐 거리는 한산했다.

 

일주일 만에 본 인사동 거리지만 계속 변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추억 지우느라 안달하는 것 같았다.

 

전통적 상품을 거래하던 매장들이 옷가게로 바뀌고 있다.

민예품이 놓였던 진열대는 옷과 마스크가 대신했다.

 

코로나가 시작될 때부터 문 닫았던 ‘보물창고’가

더디어 새 주인을 만났는지 실내장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쌈지 건물 벽에는 임금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궁녀 설화가 담긴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치 누굴 기다리 듯 애잔하다.

 

‘통인화랑’은 ‘미술관 속 그림과 조각전‘이 열렸고,

‘나무화랑’은 인사동활성화를 위한 신진작가 공모전이 열렸다.

 

전시장마다 작품은 걸렸지만, 반가운 사람이 없다.

인사동을 사랑했던 인사동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몽유병 환자 같은 늙은이만 거리를 떠돈다.

 

인사동의 봄은 요원한 것인가?

아! 그 때 그 사람이 그립다.

 

사진, 글 / 조문호

 


최정자 시집 '별사탕 속의 유리새' 표지

인간과 문학사 발행 / 2017.12.28일 발행/ 값 9,000원



요즘 너무 한가하게 지낸다.

전시장은 물론 바깥출입을 자제하는데다 핸드폰 번호까지 바꾸어버리니 찾는 사람도 없다.

쪽방에서만 딩굴며 낮잠까지 자는데,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큰일이다



1990, 9 인사동 '귀천'앞에서

 

 

몇일 전 정영신씨 집에서 서재를 뒤져 볼만한 책을 뒤적거리다 뜻밖의 시집을 발견했다,

미국에 계신 최정자시인이 쓴 별사탕 속의 유리 새였는데, 일 년 넘게 잊었던 시집이다.

작년에 미국에서 최정자 시인으로 부터 시집이 부쳐왔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깜빡 잊어 버린 것이다.

눈에 부딪히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그의 치매수준이니 이일을 어쩌랴!




2016,9 인사동 '귀천'


    

몇 권의 책을 챙겨 와 모처럼 책 속에 푹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최정자시인 시집 표지에 나온 프로필 사진을 보니, 할머니가 처녀처럼 찍혀있었다.

뽀샵은 아닌 것 같은데, 사진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사기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2012.9 인사동 커피숍에서


    

최정자 시인은 80년대 중반 인사동에서 만난 누님 같은 분이다.

천방지축 날뛰던 개막난이를 거두고 보살펴 주셨다.

돌아가신 천상병, 민병산, 박이엽씨를 비롯한 인사동 터주대감 반열에 드시는 분인데,

어느 날 뉴욕으로 이민 간다며 보따리를 싸셨다.

나라꼴이 싫어 갔을까? 아니면 사는 게 힘들어 가셨을까?




2013.12 인사동에서 / 좌로부터 정영신, 박양진, 최정자시인

    


가끔 생각나면 처녀작이나 마찬가지인 개망초 꽃 사랑을 뒤적였는데, 어느 날 새 시집을 보내 주셨다.

얼마나 서울이 그리웠으면 제목이 서울로 서울로였다. 구구절절 서울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2016. 9 인사동 '귀천'



어려운 형편에 여비만 마련되면 서울로 나오셨는데, 신판 유배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미동부한국문인협회회장을 맡는 등 마음을 붙이시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뉴욕에서만 일곱 권의 시집을 펴냈으니, 온통 시작에만 매달린 셈이다.


    

 2012.9 인사동에서 / 좌로부터 배평모, 최정자, 공윤희, 편근희씨



나는 한국이다란 제목의 시에서도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전략) 내가 한 발자국 걸으면 거기가 한국이다./ 내가 두 발자국 걸으면 거기가 한국이다./

나는 걷고 또 걷는다./ 내가 걸으면 걷는 대로 다 한국이 됨으로....”



2015.9 인사동 커피숍에서

 


그런데, 작년에 펴낸 별 사탕 속의 유리 새 표제 시는 시인 자신의 유년의 모습이며 현재의 모습이었다.

백일홍 꽃밭에서는 어머니는 꽃밭 앞에 서 있었다./어머니는 왜 거기 서 있었을까.“로 적고 있는데,

공터에 핀 백일홍을 보면서도 어머니를 떠 올리고, 봉숭아꽃을 모티브로 한 첫사랑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했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이 남아 있어/ 첫눈이 내리면 첫사랑을 만난다는/ 철석같이 믿은 그 말인데, 태어 난 나라를 떠나와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봉숭아 꽃물을 들인들./물빛 위로 첫눈이 내린들./첫사랑이 온들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한숨이 섞여 있었다.

제주도에서 온 낙타를 대상으로 한 마두금소리나 제주도 해녀를 대상으로 한 숨비소리“,

양노원을 말한 거기 가고 싶지 않다등 대부분의 시들이 자아성찰에 의한 그리움이었다.



2013,12 문학의 집 PEN문학 수상식에서 



뉴욕과 고향 사이의 거리라는 제목으로 쓴 문학평론가 유한근씨의 서문에서는

시는 의미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있어야 한다. 그처럼, 시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거기에 있어야 한다. 뉴욕의 최정자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는 최정자 시인이 있다고로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별사탕 속의 유리 새를 화두로 삼고 최정자 시인의 시를 읽었다. 그리고 그 화두가 함유하고 있는 의미를 하나의 판타지로, 시인 자신의 유년의 모습이나 현재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도 떨칠 수 없는 것은 별 사탕 속의 유리 새라는 이미지다. 그 존재가 어떤 것이든 그 이미지는 곧 최정자 시인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라고 마무리했다.



 2013,12 문학의 집 PEN문학 수상식에서 



위에 거론되지 않은 시중에서 인사동 민병산선생 이야기를 비롯한 마음에 남는 시  세 편을 옮긴다.



2013,12 문학의 집 PEN문학 수상식에서 


 

<사망금지령>

 

죽지 마라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

사망금지령을 내린 도시가 있다. 인구 370만 명이 사는 이탈리아의 한 도시,

팔치아노 델 마시코, 줄리오 세사르 파바시장이 시장 령을 내렸단다.

사망금지령을 내렸단다.

 

반갑다고

즐겁다고

시민들은 춤추었단다.

 

죽지 말라는 명령, 영원히 살아라, 는 명령,

너도 나도 좋아라, 는 명령

명령이라도 죽지 말라면 살아라, 면 좋아라, 는 것

명령이란

따르는 자가 있고 어기는 자가 있기 마련인데

 

당연하게 반란자가 생겼다.

앞장선 노인 두 명

사망금지령을 어기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명령불복종자들.

 

살아야 하는 것이냐,

명령을 거슬러야 하는 것이냐,

무서운 독재자의 명령도 기어코 거스르는 자가 있는 법

아무리 백세시대라 노래 불러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2016. 9 인사동에서 / 좌로부터 최정자시인과 정영신씨


 

<사람만>

 

사람만

사람을 속이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미워하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배신하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등치는 거야.

 

사람만

사람을 뒤집는 거야.

 

사람만

양의 탈을 쓰는 거야.



   

2013.12 인사동 '유목민'에서/ 좌로부터 최정자, 조경석, 이명희



<민병산 선생님 20주기에 드리는 편지>

 

살아계셨다면 이제 겨우

여든이실 텐데

살아계셨다면

힘없고 가난하고 슬프고 외롭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인사동 골목골목에 선선한 바람 불었을 텐데

말없이 말하는 법을

낮게 앉아 높이 보이는 법을

가진 것 없이 넉넉한 법을 배웠을 텐데

 

불광동에서 탄 버스 남대문시장에서 내려

건포도 한 봉지, 바나나 한 개 사면

늘 반기는 옆 집 여섯 살짜리 아가씨 생각나서

절로 나오는 미소까지 배낭에 담으시고

명동을 거쳐 관철동을 거쳐

유행의 물결을 거쳐 인사동으로 오시던 선생님.

 

인사동 세월 느릿느릿 간다 하시더니

선생님 안 계신 세월

그새 스무 해가 지났네요.

강산이 두 번 변했네요.

 

맨해튼 가로수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청설모를 보면

고속 도로변에 서 있는 사슴 가족들을 보면

흐드러진 풀꽃을 보면 생각나는

슬프면서 슬프지 않았던 선생님.

변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선생님 그리워

모두 모였네요.

      

사진, / 조문호



2013 인사동 '귀천'앞에서 / 좌로부터 목영선, 최정자








 

 

 

 

 

 





지난 27일의 인사동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미국서 온 최정자 시인이 ‘귀천’에 계신다는 전갈로 나왔으나, 인사동 나올 형편은 아니었다.

요즘 신경을 너무 곤두세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데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인사동 길을 걸었으나, 마치 술 취한 듯 비틀거렸다.

카메라를 꺼내, 비오는 거리도 찍었으나, 대부분 흔들려 있었다.

‘귀천’에 계신 최정자씨는 고향친구들과 계셨고, 그 옆에는 정영신씨가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최선생 친구 분들께서 서둘러 일어나셨는데, 핸드폰의 요금충전도 해야 하고,

미국에 보낼 화물 박스를 구하는 등, 할 일이 많단다.

일보러 나간 사이 혼자 꾸벅꾸벅 졸다 정신 차리려 잠시 나갔는데, 지나가던 ‘민예사랑’ 장재순씨를 만났다.

화가 문영태씨와 사별해 힘들지만, 항상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은 경주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 초청으로 잠시 귀국하셨는데, 몇 일전 ‘유목민’에서 만났다,

그 자리엔 공윤희, 정영신, 김수길씨가 함께 했으나, 뒤늦게 사진가 박진호씨도 합류했다.

술이 취한 뒤에는 장경호씨가 등장한 것 같으나, 박진호씨와 이야기 나누는 사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날따라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아,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것이 죄가 되어, 힘들어도 다시 나온 것이다.

뒤늦게, 국수 좋아하는 최정자씨를 모시고 ‘안동국시’에 들려 마지막일지도 모를 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미국 이민가기 전인 8-90년대 자주 다녔던 인사동의 ‘누님칼국수’를 그리워하며,

밥값보다 더 비싼 9천 원짜리 안동국시를 먹었는데, 다들 맛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최정자씨는 모래 미국으로 돌아가신다는데, 다들 몸이 편치 못하니 다시 뵐 날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외로움을 시로 달래며 사시니, 살아 계시는 동안 건강하고 보람된 여생을 보내길 빌 뿐이다.

그 날은 인사동에 나와 술 한 잔 마시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인지, 삶에 대한 피로감인지, 떨어지는 빗물이 눈물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24일부터 이틀 동안 아내와 추석 대목장 촬영하느라 충청도 지역을 돌아 다녔다.

판교, 해미 같은 조그만 장들은 초장에 빤짝하다금방 한산한 파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진 같은 군소재지 장들은 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제수용품은 구해두었는지, 평소 자식들이 좋아한 음식들 찾느라 여기 저기 기웃거리신다.

 

우리내외도 서울에 들려 다시 정선으로 떠나야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서둘러 올라 오던 중에, 미국에서 오신 최정자시인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추석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얼굴 좀 보자는 것이다.

열흘 전에 서울 왔다는 연락은 받았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터라

급히 인사동으로 차를 몰았다.

 

인사동 '아라아트'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을 비롯해 김명성 시인, ‘유목민주인장 전활철, 그 아들 시원이,

인사동지킴이 공윤희, 사업가 이상훈, 이태규씨 등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밥 먹고, 차 마시고, 술까지 마시느라 하루를 다 보내버렸다.

 

밤늦은 시간 유목민골목에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는데, 김여옥 시인과 화가 서길원,

최경태, '유카리'관장 노광래, 번역가 이지연씨 등 주객들이 차례 차례 등장했다.

시에 관한 시잘데 없는 이야기 끝에 "안 팔리는 시집은 왜 만드냐?" 는 김여옥시인의 말에

시집은 팔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만든다.“는 명답을 최정자시인이 했다.

 

좀 있으니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현국 선생께서 쫄랑쫄랑 골목으로 들어오신다.

매일같이 강연에 끌려 다니시다 모처럼 술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요즘 돈 되는 강연회 요청은 다 물리치고, 가난한 모임의 강연회만 부지런히 다니시는데,

선생님이 계시는 시골 중학교 학생이야기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얼마 전 조그만 학생 한 녀석이 채선생께 다가와 할배!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너무 귀엽습니다

해 놓고 줄행랑을 치는대도, 선생님께서는 기분 좋아 그냥 깔깔 웃으셨단다.

그 이야기에서 채선생님의 교육철학이나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가 그대로 입력되었다.

 

또 한 가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라아트김명성씨가 병원에 누워있는 화가 이청운씨를 비롯하여 어려운 예술가 열 명에게

명절 쉴 돈을 일일이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 코가 석자인 명절 직전의 온정이라 더 크게 다가왔다.


년에 최정자 시인이 귀국했을 때는,  어려움에 처한 김명성씨가 안 서러워 모아놓은 달라 천불을 놓고 가셨단다.

그러나 가난한 시인의 돈을 차마 쓸 수 없어 책상 서랍에 넣어둔 채, 여지 것 재기를 다짐해 왔다고 한다.

그 날, 돈을 다시 돌려 주려는 김명성씨와 안 받겠다는 최정자씨의 실랑이를 들으며 발길을 돌렸는데,

인사동 예술가들의 애틋한 정은, 꺼져가는 인사동의 한 가닥 등불 같았다.


"사람나고 돈나지, 돈나고 사람났나?"

 

  사진,글 / 조문호 




지난 12월 23일 늦은 시간 ‘노마드'에서 김명성씨를 만났다.
술기운은 좀 있었지만 약간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형! 이제 풀렸어, ‘아라아트’절반을 10년동안 임대하기로 했어”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면서 계약서와 함께 봉투 하나를 꺼내보였다.
최정자선생님께서 미국 떠나시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미화 1,000불을 두고 가셨다는 것이다.
그 돈 봉투를 술상에 놓고 최선생님에게 바치는 시를 쓰고 있었는데,

삭막한 세상이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그런 시간이었다.

공윤희씨, 현장스님, 이지연씨 일행은 먼저 자리를 떴지만, 기분이 좋은 탓인지 소주 맛이 짝짝 달라붙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갑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가 어려운 형편을 아는 최선생님의 돈을 받을 수 없듯이, 나 역시 그 돈을 받을 수 없어 사양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집에 돌아와 펼쳐보니 적은 돈이 아니라 내일 다시 돌려주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그의 시에 적힌 구절처럼 “메리 크리스마스”다.

 

 

 

 

 

 

 

 

 

미국에서 활동하시는 최정자 시인께서 2013 PEN문학 해외작가상을 수상하셨다.

 

지난 12월6일 오후5시부터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린 2013년 PEN 문학 시상식에는

최정자씨를 비롯하여 국내외 많은 문인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는데, 인사동연가' 회원들도 함께하여

최정자시인의 해외작가상 수상을 축하하며 즐거운 만찬의 시간을  함께 했다.
참석하신 분은 강 민 선생님을 비롯하여 공윤희, 가 람, 노광래, 박진숙, 이상이, 이점숙, 정영신씨 등이다.

 

 

 

 

 

 

 

 

 

 

 

 

 

 

 

 

 

 

 

 

 

 

 




(사)국제 PEN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2013년 PEN 문학상 시상식 과 PENPOEM 출판기념회 및 송년회가

지난 12월6일 오후5시부터 남산 '문학의 집'에서 열렸다.
박두순 부이사장의 PEN헌장 낭독으로 시작된 본 행사에는 이상문이사장의 인사말과 김남조 원로시인의 축사가 있었다.

시상식에서는 각 부문별 시상에 따른 심사평과 수상소감이 이어졌으며,

김율희편집장의 경과보고와 송년회 만찬으로 모든 행사는 마무리되었다.

 

처음으로 참석해 본, PEN문학 시상식을 지켜보며 놀란 것은 젊은 작가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경로잔치처럼 느껴졌는데, 세월의 연륜 속에 농익어 가는 사람 사는 정과 문학의 깊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문학인들의 축하 속에 치루어진 2013 PEN문학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시부문 : 윤석산, 최금녀, 이은별
소설부문 : 백시종
수필부문 : 심상옥
아동문학부문 : 정두리
PEN 해외작가상 : 미주동부지역 : 최정자 / 미주서부지역 : 이승희
PEN 문학활동상 : PEN 경기지역위원회 회장 정성수, 경남지역위원회 회장 이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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