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순례(38)·청주 미원장

 

어르신들 말소리 웃음소리로 아직도 떠들썩~

4·9일 들어간 날에 장 열려
인근에 평야 발달…쌀 등 농산물 풍부
 

 

7월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미원장도 ‘청원 미원장’이 아니라 ‘청주 미원장’이 됐다. 미원장은 예부터 ‘쌀안장’이라 불렸다. 쌀이 떨어지지 않는 고을이라 ‘쌀안’이라 했다지만, 상당산성 안쪽에 있어 ‘산안’으로 불리다가 ‘쌀안’이 됐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미원(米院)이라는 지명은 이를 한자로 옮겨 쓴 것이다.

 미원장(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은 아직도 촌로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제 장바닥에 떠도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잘나갈 때 무용담밖에 없다”는 이씨 할아버지(83)의 막걸리잔 위로 지나가버린 시간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우체국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수산리 박씨 할머니(90)의 사정도 비슷하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 나들이가 유일한 외출이유. 장에 나와야 사람 얼굴도 보고 얘기도 하고 웃기도 혀유.” 할머니는 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친구라며 웃는다.

 30년째 곡물장사를 하는 조덕님 할머니(78)도 얼굴이 환하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쌀이 떨어지는 벱이 없는 동네였어유. 다른 디는 가물어도 여그 동네는 물이 마르지도 않아유. 헌디 요샌 잡곡이 좋다고 쌀은 쳐다도 안 봐유. 세상 참 많이 변했시유.” 됫박 위로 쌀을 수북이 담는 조씨 할머니 손잔등에 햇빛이 살포시 내려와 앉는다.

 이맘때 장터는 색의 향연이다. 텃밭에서 금방 수확해 온 여러 채소와 온갖 과일이 알록달록 펼쳐져 있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이와 호박의 수줍음은 초록으로 번진다.

 잿물과 폐기름으로 만든 빨랫비누를 길 위에 펼쳐놓은 이씨(67)가 지나가는 여인네만 보면 소리소리 지른다. “마트에서 파는 세제는 이 비누 못 따라와유. 하나만 사다 빨래해 봐유. 다음 장에 또 사러 오구만유. 한장에 천원이유~!” 아무리 외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 펼쳐진 만물상에는 모기장을 사려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모여든다. 잣대를 대고 크기를 재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쇠똥 먹고 자란 옥수수 좀 사가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외치던 이분순씨(61)가 마르면 맛이 없다며 부대에 옥수수를 주섬주섬 담는다. 영 안 팔리는 눈치다. 그런데 큰길가 트럭에 쌓인 옥수수는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옥수수를 고르던 권태영 할아버지(87)의 말씀이다. “사람도 제각각이듯이 옥수수 맛도 다 달라유. 햇빛 많이 본 놈이랑 이슬 많이 받은 놈 맛은 전혀 다르구먼유.”

 미원면 지역은 길게 뻗은 구룡천과 미원천 유역으로 평야가 발달했고, 산간에서는 고랭지채소가 잘된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비롯해 옥수수·감자·수수·고구마·청결고추와 은행·표고·산나물·대추·은행 등이 생산된다. 매년 9월에는 미원면 주민들의 화합을 위한 ‘쌀안축제’도 열린다.

 과거 청원군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인 ‘소로리볍씨’의 고장으로 유명했고, 친환경 농산물의 명산지로도 이름 높았다. 특히 <청원생명쌀>의 명성은 전국에 알려졌으며, 청원생명쌀 마라톤대회(올해는 9월28일 개최)도 있을 정도다.

 이제 청원이라는 지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4일과 9일이 들어간 날이면 미원리 우체국 옆길에는 여전히 장이 들어선다. 보은군에서 이곳으로 오는 버스와 여기서 청주시내로 가는 버스가 연결돼 다들 보은장이나 청주장을 찾으면서, 이제 미원장은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기는 하다.

그래도 장날이면 인근 마을에서 나온 어르신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로 아직은 떠들썩하다. 행여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정거장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이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정을 느끼게 한다.

 미원장 외에 과거 청원군 지역에서 열리는 장은 대청호 인근의 포도로 유명한 문의장(상당구 문의면, 1·6일), 가까이 오송생명과학단지가 있는 옥산장(흥덕구 옥산면, 3·8일)과 오창과학산업단지가 있는 오창장(청원구 오창읍, 3·8일), 초정약수로 유명한 내수장(청원구 내수읍, 5·10일)이 있다.

이명동선생께서는 “사진하려면 독해야 한다”는 말씀을 늘 하시지만,
천성 때문인지 그게 잘 안 된다.

지난 22일 맛있는 삼계탕을 먹자는 전갈을 받고 아내와 함께 선생님 자택이 있는 약수동으로 갔다.

서둘렀으나 선생님께서 먼저 나와 약수역 3번 출구에서 기다려 송구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생애 처음으로 사진전을 가져 장안의 화제를 만들었던, 지난 전시 후 처음 뵙는 자리인지라

그 때 찍은 기념사진 몇 장을 드렸더니, 선생님의 드라마틱한 삶이 실린 ‘신동아’ 9월호를 보여주셨다.

그 잡지에 몰랐던 사실이 실려 여쭈었더니, 당시의 숱한 이야기보따리를 꺼 내셨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맛 선도 보지 않고 결혼한 삼일 째 되던 날 아내의 누드를 찍겠다고 방을 스튜디오로 꾸몄단다. 누드 찍는다는 생뚱맞은 이야기에 승강이를 벌이다 촬영용 램프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났다는 것이다. 호랑이 만난 사슴같이 놀란 신부가 맨발로 뛰쳐나가 시어머니를 찾았는데, 한걸음에 달려온 어머니가 “미친놈”이라며 꾸짖어, 유일하게 미수로 끝난 사건이 되고 말았단다.

치열한 삶을 살아오며 선생님이 이룬 업적들은 너무 많았다.

1960년 4월19일 경무대 앞의 발포사진은 유일하게 사진으로 남은 ‘혁명최전선’의 기록이 되었다.

유지광을 비롯한 정치깡패들을 찍어 그들을 체포하게 했던 장충단공원집회 사진도,

개표할 때 정전시켜 표를 바꿔치기하는 장면을 찍은 특종사진도 모두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4,19 유공자로 지정되고, 종군기자 시절의 공적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두 개나 받았다.

물론 보상을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병든 아내를 보살피는 원로사진가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비라고는 모두 합쳐 한 달에 36만원 밖에 되지 않고,

왠 만한 노인들에게 다 주는 기초노령연금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노인 연금 20만원인 너 보다는 내가 많으니 내가 밥을 산다”며 지갑을 여신다.

놀란 아내가 계산대에 달려 나가니 “다시 보지 않으려면 계산하라”며 어름장을 놓으시는 것이다.

선생님! 사 주신 삼계탕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십시오.

 

 

 

 

 

 

 

 

 

 

 



지난 21일 정오 무렵, 인사동 '허리우드'에 인사동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최백호씨가 말한 '효교'의 발기대회를 한다는데, 발기되지 않는 사람은 어쩌지?" 

‘아라아트’의 김명성, 공윤희씨, 서양화가 최인선, 전인경씨, 가수 최백호씨, 사진가 정영신씨, 큐레이트 전인미씨, MBC광장페스티벌 대표 변 석씨, 광장페스티벌 작가 함상희씨, 산악인 정기범씨, 사업가 권영진씨 등 많은 분들이 약속이나 한 듯 차례차례 모여 들었다.

자연스럽게 지난 모임에 나왔던 '효교'가 재론되기 시작했다.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효교'의 취지에 찬동하는 분들이 점차 늘고 있고,
구체적인 방안도 하나 둘 마련되고 있다. 쉽게 말해 '창예헌'의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
인사동 예술가들을 주축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좋은 일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 날은 최백호씨가 체험한 새로운 건강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몇 일만에 효능을 봤다는 그 처방이란, 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잠자리 들기 전에 한 번, 하루에 두 번씩만 소주를 입속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 내면 된다.

10분이상 머금었다 완전히 뱉어내면 내장은 물론 기력까지 향상된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호흡기에 이상이 있는 분은 특효라고 한다. 최백호씨도 비염으로 고생했으나
소주 머금은 몇 일만에 코가 시원하게 뚫렸다는 것이다.
이젠 예전의 맹맹이 소리가 없어졌으니 노래 소리도 새로워 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술을 머금고 뱉는 것만으로 인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이치를 설명하며,
체질에 따라 몸을 보양하는 방법까지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만났다하면 술부터 마셨는데, 그 날은 모두들 술을 마시지 않아 입이 간지러웠다.
요즘은 술을 많이 못 마시지만, 없으니 더 그리운 것이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오래된 술 사랑이니 어쩌겠는가?

‘효교’의 공식적인 첫 모임은 오는 9월13일 오후5시에 '아라아트'에서 모이기로 했다.
회비는 모일 때 마다 한 사람 당 만원씩 내어 술값에 충당하고, 모자라면 교주가 책임진다고 했다.

 

 

 

 

 

 

 

 

 

 

 

 

 

 

 

 

 

 

 

 

 

 







광복절이었던 지난 8월15일, 아내와 함께 인사동에 나갔다.

배성일씨와 약속한 ‘툇마루’에는 그의 친구 양재순씨와 함께 있었다.
신소재로 개발된 알미늄이나 강판 프라스틱을 활용한 프레임의 한국 특판권을 가지고 있다는

양재순씨가 사진에 대한 자문을 얻겠다고 불러 낸 모양이었다.

그이가 가져온 샘플을 사진전시에 활용한다면 전시가 끝난 후 보관이 용이하고, 야외전시나 이동 전시 때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용에 따라 어울리지 않는 사진이 있는데다 대중적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사진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울리는 기획사진전을 열어  액자가게들을 공략하는 방법론의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인사동이나 정선시장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커플들을 멋지게 찍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란 말도 했다.

“이 프레임 안에 갇히면 평생 헤어질 수 없다”는 식의 퍼포먼스를 벌여 즉석에서 만들어 주면

그 홍보효과로 프렌차이즈 업소가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등의 의견을 나누며 술을 마시는데,

난데없이 신학철씨와 장경호씨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서울시청 앞으로 “세월호 특별법” 데모하러가다 막걸리생각이 나 잠시 들렸다는 것이다.

자리를 옮겨 마시다 보니 술은 좀 취했지만, ‘세월호 특별법’ 관철을 작당한다는데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운 날씨에 술마저 취해 서울시청까지 걸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럴때는 사진 찍으며 천천히 걸어가면 좀 나아진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 것 저 것 주변을 살피며 걷는데, 같이 가던 장경호씨가 힘 덜어 준다며 카메라를 받아 간 것이다.

갑자기 긴장감이 풀어지니 온 세상이 뽀얗게 보였다.
난생 처음 당한 일이라,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당시 시청 앞에서 강민선생님을 만날 때는 완전히 혼이 빠진 상태라 인사를 드렸는지 모르겠다.

다시 카메라를 돌려받아 사진에 몰두하니 정신이 좀 차려졌다.  술 취해 사진 찍는 버릇이 중독된 모양이었다.

인사동 술자리에서도 술이 취하면 카메라 들고 인사동거리를 한 바퀴 돌아 오면 나아지고 그랬다.

아마 사진을 찍지 않았다면 벌써 죽은 목숨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날은 벗들과 작당하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눈빛아카이브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눈빛출판사’(대표:이규상)가 또 다른 사진문화운동을 펼쳐

사진계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월5일 오전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눈빛' 편집장 안미숙씨의 전화를 받아, 

출판사 부근의 추어탕 집에서 이규상대표와 함께 만났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안미숙씨의 모습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마치 20대 소녀처럼 가녀린 모습이라 어디 아프기라도 한지 걱정스러웠는데,

동안 꾸준한 다이어트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나 마찬가지인 아내의 부러워하는 표정이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반주로 막걸리를 나누는 자리에서 "또 큰 일을  벌렸다”며 이규상씨가 말을 꺼냈다.
눈빛아카이브에 이어 사진가들의 대표작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사진선집 제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사진인들이 잘 살아야 사진출판사도 살아 날 수 있다”는 평소지론으로 사진이 좋은 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해 온 그였다.

가난한 출판사에서 돈이 되던 안 되던, 유명이건 무명이건, 개의치 않고 좋은 사진집 출판에 메달려 왔기에

여 문을 닫게 되지나 않을까 늘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그의 황소고집을 아무도 말릴 수 없으나, 오히려 그 고집 때문에 오늘의 ‘눈빛’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새로 만들게 되는 사진선집은 시 선집처럼 작가별 대표작 50여점으로 엮게되며,

한 가지 주제에 의한 사진집과 병행해서 시리즈로 출판하겠다는 것이다.

일단은 독자들의 부담을 줄여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가격을 저렴하게 하는 대신,

중요한 작품들만 간추려 그 작가의 작품세계나 주제에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편집한다고 한다.

그리고 순수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순수사진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는 만드는 사진이나

비 사진적인 작품들은 여전히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외관에 치중한 호화 판형보다는 쉽게 펼쳐 볼 수 있는 부담 없는 사진집들이 시대적 흐름인 것 같다.


5년 내 100권을 출판한다는 목표아래 가까운 시일 내에 20여권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이규상씨로부터

사진을 정리해보라는 출판의뢰까지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냐, 아니면 누구나 좋아하는 객관적인 사진인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겠지만,

일단은 먼지묻은 필름 파일들을 뒤져가며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정영신의 장터순례(37)제주 세화장



“은갈치 참말로 좋수다”
직접 낚시질해 좌판에 좍~

세화해변 옆에서 5·10일마다 장 열려
옥돔·우럭 등 싱싱한 해산물 풍부
70여년 장에서 산 할망…“사람 소리 없으면 못 살 것 같아”

 

 

 

“매일 보는 바다지만 영감하고 바닷가로 달리니 참말로 좋수다.” 경운기에서 내리는 고씨 할머니(73)의 웃음소리가 제주 바다를 닮아 푸르기만 하다. 영감님이 드라이브 가자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따라나선다는 고씨 할머니는 오늘도 경운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장에 나왔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답게 제주 세화장 어물전에는 자리돔·옥돔·우럭·조기·갈치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갈치는 은빛을 뽐내며 좌판에 일렬로 누워 있다.

 제주도는 잘 알려진 대로 돌·바람·여자가 많은 삼다도다. 키가 워낙 커서 한라산을 베개로 삼은 ‘설문대할망’이 제주를 창조했다고 한다. 제주 창제 신화에 따르면 설문대할망이 치마로 흙을 날라 제주도를 만들었는데, 한라산을 쌓던 중에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 오늘날 숱한 오름(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름의 능선이 보여주는 곡선미는 엄마의 너른 품처럼 완만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거기 담긴 제주 여인의 삶이 여행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코발트빛 맑은 세화해변이 지척인 세화장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고선아씨(45)는 이곳에서 15년 동안 제주 갈치만 팔았다. 세화해변에서 멀지 않은 성산포의 갈치를 알아준다는데, 고씨는 이걸 잡으려고 밤낮없이 낚시를 한다. 봄 갈치는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낚고 가을 갈치는 밤에만 낚는다고. “어둠을 뚫고 올라오는 은색 갈치의 꿈틀거리는 모습이 바로 예술입니다” 하는 고씨 옆에서 옥돔을 손질하던 박씨 할망이 “야야, 이제 갈치 박사 다 됐네” 하고 거든다. 그 순간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장옥을 건너 바다로 스며든다.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낡은 장옥에서 반가운 얼굴, 김옥순 할머니(83)를 만났다. 김씨 할머니는 3년 전 고성장(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서 만났을 때 채소와 과일을 팔면서 점까지 봐주고 있었다. 염주알을 돌리고 쌀과 작은 종지를 뿌리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예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일곱살에 글을 깨친 후 장에 나와 장사하다가 말문이 트여 점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겨울 여기서 잘 아는 할망이 이것저것 묻기에 점괘 따라 말해줬더니 그 이후로 할망 얼굴이 보이질 않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해 그만뒀어.” 70여년을 장에서 살다 보니 사람 소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할머니의 미소가 밀짚모자에 숨는다.

 “어디에서 와시냐?” 하고 묻는 송씨(60)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친 김에 제주도에는 논이 안 보이는데 벼농사를 짓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물이 빠지는 현무암 지대라 논농사는 못 짓고, 대신 ‘산듸’를 심어 제사도 지내고 잔치할 때도 쓴다는 답이 돌아온다. 산듸는 밭에 씨를 뿌려 키우는 찰벼인데, 파종과 밭매기가 힘들어 부지런하지 않으면 경작할 수도 없다고 한다.

 송씨가 대뜸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았냐고 물어온다. 제주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 4·3사건의 아픔이 눅눅하게 배어 있는 땅이다. <지슬>은 제주 사람이, 제주 땅에서, 제주 토박이말로 만든 독립영화로, 1948년 3월부터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풀린 1954년 9월까지 7년7개월 동안 이어진 4·3사건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슬은 감자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세화장 외에 제주에서 열리는 장은 감귤과 갖은 채소가 많이 나는 함덕장, 성산포 은갈치와 성산 겨울무로 유명한 성산장, 대정 암반수 마늘로 유명한 모슬포장(이상 1·6일), 은갈치·옥돔·대장간이 이름난 제주민속장,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이 가까운 표선장(이상 2·7일), 옥돔·갈치·고등어가 많은 중문장(3·8일), 열매를 먹으면 백살까지 산다는 백년초 군락지가 있는 한림장, 제주의 대표 축제인 들불축제와 노천탕이 있는 고성장, 자리돔 축제가 열리는 서귀포장(이상 4·9일) 등이 있다.

 

[스크랩 / 농민신문]

 

 




지난 8월2일 장천아트홀에서 열린 ‘미주 영피아니스트 콘체르트 아벤트’ 에 참석한 인사동 사람들이 공연장 인근의 ‘서초동 연가’에서 맥주 한 잔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음악발전소’를 운영하며 원로음악인이나 재능 있는 신인들을 도와 온 최백호씨가 문화관광부의 지원으로 마포에 ‘뮤직스탕스’라는 공연장을 신축하게 되었다기에 모두들 축하해 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최백호씨가 ‘효교’에 대한 포교에 나서 함께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나, 그의 강론을 듣고는 모두들 공감하게 되었답니다.

 

이야기인즉슨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썩거나 불에 타지만, 그 영혼은 어디로 가겠냐?"는 것입니다, 결국 망자가 평소 애착을 가진 자식의 몸으로 들어가 자식들을 보살펴 주니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망자의 넋은 구천을 떠돌게 된답니다. 자식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과잉보호하지만 조상을 거들떠보지 않는 현 세태를 나무라는 이야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 식사라도 하며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자는데 모두 합의 했고, 신도들이 내야하는 회비 만원씩은 그 날의 회식비로 사용키로 했습니다.

평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동차를 끌고 다녀 술을 잘 마시지 않던 최백호씨가 이 날은 술을 마셔가며 열변을 토했는데, 아무도 교주에게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답니다.

 

그날 ‘효교’를 믿고 따르기로 한 사람은 김명성, 조문호, 정영신, 임태종, 조경석, 공윤희, 전인미씨 등 열 명이었습니다.

 

 

 

 

 

 

 

 

 

 

 



'인디프레스 서울'(대표:김정대) 개관 기념전으로 열린 구본주, 신학철, 박불똥, 장경호 4인전 개막식이 지난 8월1일 오후6시 무렵, 효자동 전시실에서 열렸다.
아담한 전시장을 대가들의 거작으로 꽉 채운 것도 모자라, 박불똥씨의 작품은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프닝에 참석한 인사들도 만만찮았다. 좀 늦게 도착해 백기완선생은 만나지 못했지만, 작년에 결혼한 미술평론가 성완경씨와 소설가 공선옥씨 부부를 비롯하여 민미협 그림쟁이들이 총 출동했다. 그러나 많은 지인들이 전시를 축하해 준 건 고맙지만, 가난한 작가들의 뒤풀이에 짐을 지우지나 않았는지 마음이 편치 않다.

구본주의 유작 '칼춤'과 신학철의 '관동대지진'은 이미 보았던 작품이었지만, 장경호씨의 신작은 귀가 번쩍 뜨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네오록 광고에 소개된 신학철선생의 작품, 풀밭에서 소변보는 여인네 엉덩이가 무척 보고 싶었으나 검열에 걸렸는지 광고에서도 사라지고 전시장에도 걸리지 않았다. 물방아 도는 내력 후속 탄인 모양인데, 선정적이기보다는 오랜 향수를 끌어내는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이었다.

참석한 분은 신학철, 장경호, 박불똥씨 등 출품 작가들을 비롯하여 백기완, 임진택, 성완경, 이강군, 문영태, 김태서, 최석태, 김명성, 조준영, 공선옥, 정영신, 김정대, 황정아, 정유정, 전인미, 배성일씨 등 50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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