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21일 서양화가 정순겸씨의 안내로 도예가 김용문씨, 연출가 고상준씨, 소리꾼 김민경씨가 정선을 찾아와 사진가 정영신씨 등 여섯 명이 정선 고한에 있는 ‘삼탄아트마인’을 방문했다.

작년 5월 개관한 ‘삼탄아트마인’은 레지던시 작가들이 상주하는 숙박시설과 각종 작품들이 전시되는 현대미술관, 작가들의 아틀리에, 예술체험실, 공연장, 레스토랑 등을 골고루 갖춘 복합예술테마파크인데, 폐광된 정선의 삼척탄좌가 예술광산으로 거듭난 명소다. 오후2시경 ‘삼탄아트마인’ 김민석대표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김진만 전무의 안내로 곳곳의 시설들과 작품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무더운 날씨를 만나 와인저장고로 사용하는 갱에 들어갔더니 에어컨보다 더 찬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다양한 볼거리와 전시들이 많았지만, 이런 산골에서 '삼탄삼현'전 같은 좋은 전시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모두들 '삼탄삼현'전의 작품 속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는 등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강민선생의 시선집 ‘외포리의 갈매기’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이 지난 7월14일 오후6시부터 인사동 ‘노마드’에서 있었다. 그동안 시인들과의 출판기념회 자리는 몇 차례 있었지만, 인사동유목민 가족들을 위해 특별히 제안했으나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불참한 분이 더러 있었다.

 

함께 하신 분은 강 민선생님을 비롯하여 이행자, 전활철, 장경호, 조경석, 정영신, 이청운, 이승철, 조준영, 김상현, 김명성, 노광래, 공윤희, 권두현, 이명희씨가 참석하여 시집출간을 축하하며 시낭송의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이계익선생과 소설가 이단원씨를 노광래씨가 모시고 와 뜻 깊은 자리를 만들기도 했다.

 

 

 

 

 

 

 

 

 

 

 

 

 

 

 

 

 

 

 

 

 

 

 

 

 

 

 

(36)경기 평택 안중장

“덤이 바로 정이고, 정 없는 장은 장이라 할수없지~”

골목골목 장이 들어서는 골목장…1·6일이 드는 날 열려
난전엔 앵두·오디 등이 다소곳이…
100개 노점갖춘 민속 5일장 개장 활기
주변에 평택항 있어 제철 해산물 많아

 

 

안중장은 경기 평택시 안중읍 안중리 안중버스터미널 주변에서 1일과 6일이 드는 날에 열린다. 이 장은 골목골목 장이 들어서는 골목장이다. 여름이면 나무가 무성하게 잎을 매달듯 장날이면 골목마다 울긋불긋한 파라솔 행렬이 장날임을 알린다.

 안중은 서해안 개발붐 덕분에 최근 활기를 띠기 시작했지만 이곳 장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됐다. 처음에는 안중 남쪽에 있는 현덕면 황산리에 장이 섰는데 인근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고 한다.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방조제가 없던 그때, 보부상들은 만에 물이 빠지면 걸어서 황산리로 왔다. 수로와 육로의 교차점인 황산리 일대가 조선시대 보부상의 길목이 되자 이들의 왕래로 마을이 번잡해졌다. 그러자 마을 터줏대감인 정씨 일가가 장꾼들을 쫓아냈고, 삶의 터전을 잃은 보부상들이 북쪽에 있는 지금의 안중으로 장을 옮겼다고 한다.

 안중버스터미널 주변에 형성된 골목 난전에는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앵두부터 보리수·복분자·오디에 청솔방울까지 이름표를 내걸고 할머니들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텃밭에서 따왔음 직한 호박과 마늘종은 싱그러운 초록을 뽐내고, 한창 물오른 매실의 향긋한 내음이 지나가는 여인네의 발길을 붙든다.

 해마다 매실청을 담근다는 신덕자 할머니(71)가 지난해에 비해 값이 너무 싸다며 매실을 고르자 사람들이 몰려든다. 매실을 파는 과일장수 김득수씨(52)도 해마다 생산량이 많아져 가격이 내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매실에 우리 신체의 생존 에너지를 생성하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재배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졌다”는 게 김씨의 이야기다.

 스물다섯 ‘꽃각시’ 시절에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씨 할머니(76)는 올해로 51년째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안중장에 내다 팔고 있다. 반평생을 장에서 살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다 식구 같다면서 “여기가 살기 참 좋은 곳이여. 좋은 쌀도 많이 납니다” 하고 안중 자랑을 한다. 안중장에서 덤 많이 주기로도 소문난 김씨 할머니는 “덤이 바로 정이고, 정 없는 장은 장도 아니지” 하며 “땅이 주는 선물을 나누어 먹을 수 있으니 장이 참 좋다”고 덧붙인다.

 장터 한쪽에서는 물놀이로 더위를 쫓는 어린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에 현대·기아는 물론 외국의 완성차업체에까지 납품하는 자동차부품 공장들이 있어 다른 장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어린애들도 더러 나온다는 게 이유식 할머니(80)의 말이다. 이씨 할머니는 “농사짓기가 힘들어 장에 나온 지 31년이나 됐는데 그동안 돈도 못 벌고 몸만 늙어버렸다”면서, 지금은 오히려 농사짓던 그 시절이 그립다며 푸성귀 같은 초록빛 웃음을 건넨다.

 장터를 다니면 다닐수록 이런 생각이 든다. 전국 어디든 전통시장이 활성화되려면 현대적인 아케이드를 설치하는 일보다 제철 식재료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구색을 알차게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이를 깨달았음인지 평택시도 기존의 안중전통시장 내에 100여개의 노점을 갖춘 민속 5일장을 개장하고 6월11일 개장식을 가졌다. 이제 장날이면 안중전통시장 일대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안중장은 또 평택항이 가까이 있어 싱싱한 제철 해산물도 많이 나온다.

 어물전이 몰려 있는 곳 옆에는 뻥튀기 가게가 있어 인근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까지 한다. “뻥!” 하는 소리에 문득 든 ‘우리네 정을 뻥튀기 하면 그 크기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지나가는 바람에게 물어보며 발길을 돌린다.

 안중장 외에 평택에 서는 장은 서정장(2·7일), 안정장(3·8일), 송북장(4·9일), 통복장(5·10일) 등이 있다. 또 평택 송탄관광특구의 심장부인 신장쇼핑몰도 미군 부대를 기점으로 한 신장동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나라 안팎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35)전남 진도 십일시장

밭일하던 여인네도, 장터에서 마주친 여인네도…
틈만 나면 흥얼흥얼…삶을 노래로 승화시켜

열흘 간격 장 들어서 마을이름 ‘십일시’…지금은 4·10·14·20·24·30일에 열려
인근섬 사람들 드나들어 어물전 지천

 

 

진도에는 유달리 한(恨)의 노래가 많다. 삶의 희로애락에서 비롯된 소리들이 이어지는 것이 마치 유장하고 애절한 아쟁 가락 같다. 삶과 노래가 따로따로가 아니게 느껴지는 것은 “오메!” 하는 장터 여인네의 추임새 때문일까. 그 소리에 한바탕 어깨춤을 추면 푸르디푸른 남도 가락이 흥얼흥얼 장터 안으로 흘러가다 멈추어 선다.

 얼마 전 십일시장을 찾았을 때는 무거운 안개가 내려앉은 듯 장 안에 활기가 없었다. 농번기이기도 하지만 온 나라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한 참사 현장인 팽목항이 장터에서 10여분이면 닿는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으로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바닥에 퍼져 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 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쩌겄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

 임회면 석성 인근에 사는 김순단 할머니(76)가 펼쳐놓은 쟁반 위의 문어 두 마리가 조곤조곤 얘기하는 할머니 말을 알아듣는 듯 꿈틀거린다.

 십일시장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석교리의 자연마을인 십일시리에서 열린다. 마을 이름이 십일시(十日市)인 것은 옛날에는 이 시장이 10·20·30일에 열흘 간격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세기 중엽에는 장이 한 달에 두 번이나 세 번쯤 열렸지만, 18세기 이후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대부분의 장들이 오일장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오늘날 십일시장은 임회장이라고도 하며, 특이하게도 4·10·14·20·24·30일에 열린다. 고군면 고성리에 서는 고군장(이 장은 십일시장을 피해 1·5일에 열린다)과 장날이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석교천이 흐르는 십일시교를 건너면 장터가 시작되고, 오른쪽 길목으로 들어서면 장옥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이어온 장터의 흔적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십일시장은 인근에 있는 상조도·하조도·각흘도·관매도·가사도·조도군도 등의 섬사람들도 드나드는 장이란다. 장터 바닥은 그야말로 바다를 옮겨놓은 듯 어물전이 지천이었는데, 요즘은 장이 선 이래 가장 조용하다고 한다.

 어물전 멋쟁이로 유명한 김씨 할머니(71)가 “요 꽃게나 사람이나 사는 게 같당께” 하며 꽃게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꽃게는 달이 작은 그믐때는 많이 먹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아 살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반면 달이 밝은 보름에는 활동을 많이 해 살이 오르지 않는단다. 할머니는 “사람이나 꽃게나 많이 움직이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것은 같은 이치”라며 꽃게를 들어 보인다. 그러면서 45년째 생선을 만지다 보니 소리도 좀 한다며 <진도아리랑> 한 자락을 뽑아낸다. ‘진도 가면 글씨자랑·그림자랑·노래자랑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괜한 말이 아니다.

 십일시교 앞에는 할머니들이 장보따리를 세워놓고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그는 땅 모양만 갖추어도 밭을 맹글어부러 놀고 있는 땅이 없당께. 진도 땅이 기림져서 뭐든 심기만 허믄 잘돼야. 진도 대파는 한양서도 소문 났드만. 징허게 맛나다고.”

 밭일 하던 여인네도, 장터에서 마주친 여인네도 틈만 나면 절로 터지는 노래로 삶을 승화시킨다. “이년아, 가슴에 저미는 한이 있어야 소리가 되는 벱이여.” 영화 <서편제>에 나오던 대사가 이 장터에선 여인네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진도에서는 십일시장 외에도 앞서 말했듯 고군장이 1·5·11·15·21·25일에 선다. 구기자·홍주·돌미역·돌김·대파로 유명한 진도장은 2·7일에, ‘돌아온 백구’와 ‘신비의 바닷길축제’로 알려진 의신장은 1·6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34)전남 곡성 석곡장

 

“기러기며 별난것을 다 가져와 잡아달란당께”

1770년 책자에 기록된 오래된 장터
우시장 없어져 ‘한산’…인정은 그대로
“시끌벅적한 씨름판 재미났었는디…”

 

 

 

 

“뺑뺑 돌아라 돌실장 어지럼병 나서 못 본다. 방구 통통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 보고, 아이고 데고 곡성장 시끄러워서 못 본다.”

 ‘돌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石谷)면의 옛 이름이다. 석곡장도 예전엔 돌실장이라 불렸는데, 장돌뱅이들이 부르던 노래에도 나온다. ‘뺑뺑 돌아라 돌실장’의 뜻을, 석곡장에서 만난 양씨 할아버지(83)가 친절히 일러준다.

 “시방은 길이 나서 막 통과하제, 옛날에는 모두 산이었응께 냇가로 돌아 돌아 다녔제. 긍께 돌실이여. 또 보성강 주변이 모다 돌멩이였어.”

 석곡장은 1770년에 간행된 백과전서 <동국문헌비고>에도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래된 장이다. 지금은 5일과 10일이 드는 날에 곡성군 석곡면 석곡리에서 열린다.

 머리에 닿을 것만 같은 대형 현수막을 인 채 각종 씨앗과 약재를 펼쳐놓은 석곡장의 대장 전씨 할머니(85)를 만났다. 수많은 씨앗의 가격을 훤히 깨고 있어 “할머니 천재시네요?” 했더니 할머니가 답한다. “시악시만 알어. 공책에 모다 적어놓고 짬 날 때마다 외우제. 치매도 안 걸리고 좋아라.”

 수줍게 웃던 전씨 할머니가 순천댁 얘기 들었냐며, 지금도 할머니들만 모이면 그 이야기를 한단다.

 “순천댁이 여그 돌실장에서 백반집을 했는디, 인심이 그런 인심이 없었지라. 산골 사람들 새복 장에 이고 지고 오믄 순천댁이 다 사주고 그랬제. 물건 죄다 사주고 뚝배기라도 한 그릇 먹여서 보냈는디, 소문이 안 나겄소. 순천댁 고기 맛볼라고 서울서 오고, 부산서도 오고 난리도 아니었제.”

 이렇듯 장은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가 숨 쉬고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그 지역 역사를 두루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곡성은 천혜의 자연과 지순한 인심으로 효와 충이 성한 고장이다. 요즘은 증기기관차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오곡면 오지리의 섬진강기차마을로 유명하다. 기차마을 여행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옛 정취까지 맛볼 수 있어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느낌이다. 기차마을 일원에선 효녀 심청의 효심을 새롭게 조명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0월이면 ‘심청 효 문화 대축제’도 연다.

 농번기라 그런지 장터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한가하다. 장터 맨 끝자리에 있는 ‘석곡닭집’ 앞 닭장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채 우리 안에 갇힌 닭들이 졸고 있다. 양동래씨(66)는 낯선 손님만 보면 외친다.

 “촌닭 한 마리 삿시오. 집에서 키운 닭이라 질기지 않고 맛있어라.”

 양씨는 손수레에 닭을 싣고 장터에 나온다. 장에 온 손님들이 닭을 고르면 양씨는 그 자리에서 직접 잡아준다. 양씨는 요즘 기러기를 잡아달라고 갖고 나오는 사람이 많다며 웃는다. “아따, 요새는 테레비가 사람 잡습디다. 장에 나온 사람들이 다 의사랑께. 별난 것을 갖고 와서는 다리 아픈 데 좋으니 잡아 달라 허고…. 잡아주는 삯이야 따로 받제만, 내 닭도 팔아야제.”

 사람들이 없는 한산한 장터는 이웃집 마당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처럼 자연스럽다. “곡성에서 가장 크다는 장인데 사람들이 없네요?” 하며 인사를 건네자 박막동 할아버지(86)가 답한다.

 “우시장이 없어져서 그러제. 그전에는 순천이랑 벌교에서도 소 팔러 석곡장으로 왔제. 소전 있을 때는 날 새기 바쁘게 장에 달라 들더니, 시방은 장도 사람도 끼우러져 불었어라. 백중날이면 소 걸고 씨름판을 열어 영판 재미났는디, 그 맥이 다 끊어졌당께. 여가 전통 있는 장이었는디, 시방은 장도 아니여….”

 말을 마친 박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흑백사진 속에 숨어 있는 고향 같다.

 곡성에는 석곡장 외에 멜론·사과·토란으로 유명한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이 3일과 8일에 열린다. 효녀 심청의 원류를 찾게 해준 관음사와 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가 유명한 옥과장은 4일과 9일에 열린다.  

 

 [농민신문 스크랩]


 

 

[스크랩 / 월간사진 6월호]

(33) 충남 공주 산성장  

 

 

“밤꽃 냄새에 홀려 반평생 장터 지켜유~”

200년전 형성…1·6일 드는 날에 열려
주변이 우리나라 최대 밤 생산지
밤으로 만든 국수·떡 등 음식 다양
호두 많이 나오는 ‘유구장’도 가볼만…
“덤 없으면 장이 아니어유. 저울 눈금대로 살게 되나유. 말 한마디에 덤도 주고 그러면서 살지유.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도 있지유.”

 박씨 할머니(78)는 밤꽃 냄새에 홀려 장터에 들었다가 반평생을 장 덕분에 버텼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소랭이마을 산자락에 하얀 눈 내리듯 밤꽃이 피면, 박씨 할머니는 창문을 두드리는 비릿한 밤꽃 냄새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단다. 그러다 땡볕에서 기른 상추와 오이를 머리에 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주 산성장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박씨 할머니는, 어수룩한 청상과부를 장터로 불러낸 것이 밤꽃 냄새라고 추억한다.

 박씨 할머니가 사는 정안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밤 생산지로 6월에는 밤꽃축제도 열린다. 밤막걸리·밤국수·밤파전·밤떡을 자랑하는 할머니 목소리에도 밤꽃 향기가 배어 있다.

 200여년 전부터 형성돼 오늘에 이르는 공주 산성장은 1일과 6일이 드는 날이면 공주시 산성동 일대에 선다. 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장이 열리는 이곳에는 장날이면 크고 작은 난전이 펼쳐지고, 사람들의 표정도 역동적이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려놓고 잡화난전을 차린 김씨 아저씨(67)가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시방 못 사면 평생 못 사유. 천원이유, 천원~!” 그러자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이 모여든다. 고무줄을 고르는 오달성 할머니(83)에게 어디에 쓰실 건지 용도를 물어봤더니 할머니 하시는 말씀. “장항아리 묶는 데도 쓰구유, 개미 지나가는 길에도 냅둬유. 장화 신고 밭에 갈 때 바짓단 내려오지 말라고 묶기도 허구만유.” 장터에서 검정 고무줄은 진열 방식이 독특하다. 그냥 툭 던져놓기만 해도 저절로 ‘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이다. 마치 꿈틀거리는 생물처럼 짓밟히면서 존재를 드러내기도 한다.

 서해안 시대를 맞아 충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공주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교육과 박물관의 도시다. 세종특별자치시도 지척에 있어 자동차로 20여분이면 닿는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를 거쳐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의 삶의 원형을 만날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은 무령왕릉의 모든 출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계룡산과 금강의 청정 환경을 즐길 수 있는 ‘5도2촌마을’을 운영해 평일 5일은 도시에서, 주말 2일은 공주에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그래도 공주 땅 자연과 사람의 진면목을 알게 하는 것은 역시 장터다. 자연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다시 거두어간다. 씨앗 한 톨이 흙과 만나는 시간과 그 이후 벌어지는 일들이야말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예술임을, 장터 마당에 가면 어렵지 않게 배우게 된다. 장터는 또 사람과 사람의 중심에 서 있다. 이곳에 가면 걸어다니는 시간을 볼 수 있다. 장터에서 만난 더벅머리 총각과 순박한 시골 처녀를 백발의 촌로로 만든 것도 시간이다.

 시대적 환경 변화와 상관없이 43년 동안 시계 고치는 일만 해온 박영철씨(72). 멈춰버린 시계를 장날 하루에 스무개에서 서른개 정도 고친다고 한다. 요즘은 휴대전화가 시계 역할을 대신해 시계 고치는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박씨는 오히려 옛날보다 요즘 들어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직하게 해주니까 단골이 많아지지유. 홍보가 별건가유. 오로지 입소문 하나로 되는 거지유.” 박씨는 말하는 중에도 쉬지 않고 시계를 고친다. “40년이 넘다 보니께유, 믿고 오는 사람이 많아유. 장날이면 누가 보냈다고 손님들이 찾아오는 맛에 홀려 나도 모르게 장에 나오게 되구먼유.” 박씨의 손끝 사이로 늦은 봄바람이 한움큼 바르르 떨고 지나간다.

 공주에는 산성장 외에 고랭지 무와 호두가 많이 나오는 유구장이 3일과 8일에 선다. 유구읍에서는 8월 초순이면 우렁각시축제도 열린다.

 

 

(32)경주 양북장

70여년 애환 녹아있는 고풍스러운 장옥 그대로…



5·10일 든 날 열려
경주 동쪽 해안가에 위치
싱싱한 해물 많아 어물전 커
파종기 종묘상엔 사람들 북적
쇠락의 길 걷지만 인정은 여전


 

 

 

“논두렁에서 캔 씀바귀 좀 사이소. 이거 무마 안 늙는다 카드라. 내 얼굴 좀 보래이. 우리 영감이 지금도 각시 같다 안 카나.”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산다는 황정분씨(73)가 나물을 다듬으며 자랑을 한다. 봄날 장터는 산과 들에서 불려 나온 원추리와 돌나물·취나물·머위·부추·달래·냉이·쑥부쟁이·씀바귀·미나리 등이 가득 펼쳐져 마치 나물 전시장 같다. 황정분씨 자랑처럼 장 안은 봄나물의 쌉쌀한 향기로 가득하다. 저 먼 산과 들에서 내지르는 봄나물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 신라 천년의 역사가 서린 장터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다.

 경주의 동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양북장은 감포에서 경주 가는 길목인 양북면 어일리에서 5일과 10일이 든 날에 선다. 찬란한 문화유적(문무대왕릉)과 첨단 에너지산업(월성원자력발전소)이 공존하는 양북면은 서쪽으로는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이, 동쪽으로는 문무대왕릉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문화재가 지천이라 선조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노천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1942년에 개설된 양북장은 고풍스러운 옛 장옥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 장터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장터 입구에서 강아지 두 마리가 새 주인을 만나기 위해 두리번거리자 범곡리에서 온 이군자씨(73)가 그 앞으로 다가간다. 강아지 한 마리를 잡아 암놈인지 수놈인지 구분하려고 치켜든 모습이 마치 자식을 대하듯 다정하다. “식구를 한 명 들이는데 우째 그냥 사겄노? 그런데 이기 암놈 맞나?” 하고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살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이씨는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양북장은 지척에 바닷가가 있어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나온다. 자연산 전복을 비롯해 살아 있는 생물이 많아 어물전이 큰 편이다. 생선 눈만 보면 냉동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박씨 할아버지(83)는 어물전에서 장사한 지 53년째다. “여가 어일리(魚日里) 아이가. 마을 앞산이 고기 한 마리 뒤집어놓은 것 같아서 고기 어(魚)자를 붙였다 카드라.” 요즘 제철인 도다리와 소라가, ‘고기 박사’로 통하는 박씨의 말솜씨에 꿈틀거린다.

 파종기를 맞은 종묘상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선 강의실을 방불케 할 만큼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나누다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지만, 그 많은 친구들도 이젠 하나둘 떠나가 시골 장터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장터 모퉁이 모퉁이에는 사람 사는 정이 피어나고 있다.

 “내사 마 봄만 되믄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카이. 산에 피는 꽃과 나물도 이뿌지만 요새가 일하기 딱 좋은 날씨 아이가. 내가 탯자리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늘 같은 하늘만 이고 산 토백이라 카이.”

 호암리에서 씨앗을 사러 나온 양씨 할머니(78)의 말이다. 꽃이 피면 힘든 한 해 농사일이 시작되긴 하지만, 꽃밭에서 꽃잎들이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씨앗 떨어지는 소리처럼 정겹기만 하단다. “할 일이 없으면 사는 것 같지 않고 일을 해야만 사는 것 같다”는 양씨 할머니는, 분단장한 지가 언젠지 뒤돌아본 적도 없다며 살포시 웃는다. 고추·토마토·하수오·마·도라지·콩·호박 등 온갖 작물을 심고 가꾸는 방법에 대한 양씨 할머니의 강의는 끝이 없다.

 경주 최씨 집성촌인 봉길리에 산다는 최씨 할머니(79)가 “니만 입이가? 나도 좀 하자” 하며 끼어든다.

 “여가 절과 탑이 많은 건 알지예? 절이 얼매나 많으마 하늘의 별만큼 많다고 했겠노. 여가 부처님 세계인기라.”

 도라지는 3년은 돼야 약이 된다는 이야기와, 봄볕이 아까워 흙 묻은 몸뻬 바지 주물러 빨랫줄에 걸어놓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할머니들의 소박한 삶이 눈에 아른거린다. 밭이 자꾸 불러낸다는 최씨 할머니가 호박씨 심어야 한다며 훌훌 털고 가는 길을, 봄도 덩달아 졸래졸래 따라간다.

 경주에는 양북장 외에도 대표적 전통시장인 성동장(2·7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가는 서면장(1·6일), 감포 방파제가 있는 감포장(3·8일), 재미난 그림이 있는 외동장(3·8일), 불국사가 인근에 있는 불국시장(4·9일), 싱싱한 수산물이 많은 안강장(4·9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남장(4·9일), 옛 장옥이 그대로인 건천장(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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