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 인사동을 넘나들며 그림을 그려 온 화가 칡뫼 김구의 황무지, 우상의 벌판

지난 13일부터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개막식 날 다른 일로 보지 못하고 이틀 뒤 정동지와 전시장을 들렸더니,

전시작가와 김경일 신부가 함께하고 있었다.

 

전시된 황무지, 우상의 벌판작품들을 돌아보니,

정치검찰의 날선 칼이 공동묘지 묘석처럼 솟아나기도 하고,

사람 없는 법복만 그려 법관을 얼굴 없는 유령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온 천지에 돈 쓰레기가 난무하고, 기레기 들의 나팔이 세상을 어지럽히며 십자가가 불탔다.

오늘의 비참한 정치, 사회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이다.

 

한 때는 분단의 현실에 집착한 작업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에는 항상 비판적 시선이 깔려있다.

 

동시대인은 자신의 시대에 시선을 고정함으로써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지각 하는 자라는 말처럼

김구는 작금 한국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뒤틀린 현실에 기꺼이 발을 담그고

시대의 어둠을 직시하고 있는 셈이며, 그의 작업 역시 착종된 현실에서 다종의 폭력을 배태시키는

인자들에 대한 증오와 그로인해 황폐화된 시대의 암흑을 형상화 한다는 화가 장경호씨의 전시서문처럼,

정치검찰이나 기레기 같은 쓰레기 들이 판치는 현실을 풍자하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 왔다. 

 

작가로서의 작품이 아무리 훌륭할지언정 정작 비틀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한다면,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정치나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던 말던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는 그런 의식에서 무슨 작품이 되겠는가?

 

좀 있으니, 전시서문을 쓴 장경호씨가 막걸리 두병을 들고 나타났다.

술을 끊어 술자리를 피해 다니는 형편이라 모른 척 딴전을 피웠는데,

책상에는 이번에 펴낸 화문집 고양이처럼 출근하기가 쌓여 있었다.

 

 

전시와 때 맞추어 한국스마트협동조합에서 펴낸 화문집에는 열여섯 편의 글과 그림이 실렸는데,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자 삶을 향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었다.

 

재치 있는 글 솜씨와 더불어 생각을 끌어내는 그림까지 곁들여, 사 볼만한 책이었다.

 

전시는 오는26일까지 열린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이광수의 "인간은 악이다"(따마스)사진집 출판을 기념하는 퍼포먼스와 특강이

지난 15일 오후4시부터 충무로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렸다.

 

시간이 임박해 정동지와 전시장을 들렸더니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이 먼저 와 있었는데,

전시장 분위기가 마치 신전에 온 느낌이었다. 여러 신도가 교주의 가르침을 기다리듯...

 

신전의 깃발처럼 어지럽게 늘린 이미지를 스쳐가며 벽에 붙은 사진들을 돌아보았는데,

이미 사진집에서 보았지만 묵직한 톤의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해진 순서가 없으니, 앞서 본 이미지와 연관되어 그 사진을 다시 돌아보기도 했다.

 

야릇한 사진이 옆 사진과 충돌하여 역류하듯 이야기가 펼쳐졌는데,

‘인간은 악이다’는 인간의 속성이 딱 들어맞았다.

 

첫 장은 '태초의 바다'로 시작되어, 총 12장으로 나누어진 사진집에는

각각 12 컷씩 총 144장의 이미지가 들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힌두교 세계관의 중요한 상징 숫자인 12로 구성했다는데,

각 장의 텍스트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었다.

 

이미지로 쓴 문학이라는 사진의 또 다른 장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전시에 참가한 분 중에 이광수씨의 부인 유재희씨도 오셨다.

남편의 전시를 보기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교수 말이 걸작이다.

쪽 팔리게 왜 왔냐며, 질의 시간에 손 들어 질문하는 것 까지 탓하는 촌티를 낸다.

 

전시 작가인 이광수교수의 사진에 대한 특강에 이어 참가자들 질의 응답이 끝난 후

충무로 ‘김삼보‘집에서 뒤풀이를 가졌다,

 

이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관장, '눈빛' 이규상대표, 사진가 김문호, 김영호, 성남훈, 정영신,

이윤기, 이세연, 최석태, 김태진씨 등 이십 여명이 모여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은 마시지 못할 처지지만, 이광수교수의 이런 저런 이야기 듣는 것 만으로 흡족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두 번째 강의는 16일(토요일)오후 3시부터 시작된다.

사진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니,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이광수 “따마스“사진집 (눈빛출판사 : 240면, 양장 : 가격 4만원)

 

시간이 되지 않는 분은 '눈빛'에서 출간된 “따마스”사진집을 구해 보셔도 된다.

 

전시가 끝나는 일요일까지 작가가 전시장을 지키니 많은 관람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전라도 닷컴"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이광수의 “따마스“사진집 (눈빛출판사 : 240면, 양장 : 가격 4만원)

 

부산 이광수씨가 마련한 자리가 지난 28일 오후 갤러리 브레송에서 있었다.

 

마침 그날이 아산 전시가 쉬는 날이라 전날 밤 올라와 동자동에서 점심때가 되도록 퍼져 잤다.

아침을 겸한 점심을 먹은 후, 모처럼 컴퓨터를 끼고 노닥거릴 수 있었다.

 

팔 년 넘도록 쪽방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쪽방 환경에 길들어 버렸다.

왠지 밀폐된 좁은 공간이 마음 편한 것이다.

 

네 시 무렵에야 녹번동에 들려 정영신 동지를 태워 충무로로 갔더니,

약속 장소인 갤러리 브레송에는 이광수 교수를 비롯하여 김남진 관장, 김문호, 김영호,

고정남, 이세연씨 등 여섯 분이 있었고, 전시장에는 김미경씨의 타자의 숲이 전시되고 있었다.

 

다들 충무로 김삼보 집으로 옮겨 갔으나, 술을 마실 수 없어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날 모임은 이광수씨가 새로 나온 따마스사진집을 선물하며 전시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본인은 책으로 보여주면 되지 굳이 전시할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한다면 기존 전시 방법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사진을 바닥에 깔거나 빨래 줄에 거는 식으로 펼치는 방법에서,

악의 소굴처럼 어두침침한 터널식으로 전개해 관람자의 시선을 유도하는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는데,

그 문제는 김남진 관장이 효과적으로 설치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날 나누어 준 인간은 악이라는 따마스사진집은 인간의 본질을 고민하는 인문학자가

사진으로 서술한 인간 속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열두 편으로 나눈 사진집은 사진으로 만든 문학이나 마찬가지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몇 번이나 다시 보게 만들었다.

 

보는 이마다 해석하는 바가 다르겠으나,

어둡고 붉은색이 강한 다양한 이미지에서 인간의 본성인 이글거리는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인은 물론 타 분야 예술가를 비롯한 사진에 관심 있는 모든 분 들이 보아야 할 사진집이었다.

 

사진으로 말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진적 지식 보다 찍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진집이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고정남촬영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지난 24일 막을 올렸다.

전시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이번 처럼 힘든 전시는 처음이다.

 

경비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몸이 송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전시는 열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눅들어,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전시장 찾은 손님 받는 게, 상가 문상객 받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대마불사주라도 마음껏 대접할 수 있고,

손님도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여러 사람 고생만 시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이곳까지 오라는 말도 부담스럽지만, 오셔도 손님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음식이야 김선우가 준비했지만, 술을 끊었으니 술 고문을 어떻게 당하느냐도 관건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오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승용차로 오면 술을 마실 수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만 없다면 역까지 마중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일을 벌였으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다.

전 날밤은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등 온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힘들게 길 낸 가마솥에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전시 날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문 열자마자 세종시에 산다는 오세인씨가 오셨다.

 

이광수씨 페북을 보고 알았다는, 첫 손님의 진지한 관람에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드렸더니, ‘두메산골사람들사진집도 한 권 사주었다.

 

이어 홍유선, 김현아씨가 다녀가고 나니, 소설가 임헌갑씨가 심영태씨와 같이 오셨는데,

지리산 막걸리를 두 박스나 가져오셨다.

 

때맞추어 온 완주의 사진가 김종신씨는 오다 보니 안내 현수막이 없더라며

현수막 두 개를 주문해 주었다.

 

임헌갑씨 일행은 온천장에 숙소를 잡았으나,

김종신씨는 캠핑 카에서 지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헌갑씨는 지난번에 주지 못한 책이라며, 인도로 가는 동안이라는 연작 소설을 한 권 주었다.

 

초대일인 26일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마산 중리 막걸리를 가져왔다.

유목민전활철씨가 준 '느린마을' 막걸리와 '송명섭' 막걸리 두 박스에다

우리가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비롯한 대마불사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명주가 다 준비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주막 같은데, 아무래도 술은 남아돌 것 같았다.

 

이튿날은 화가 신상덕씨와 정복수씨, ‘사진바다곽명우씨,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연이어 오셔서 전시장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정복수씨는 나무화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초상화를 전복하는 초상화 작품집을 선물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광수교수로 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선물 '따마스' 사진집이었다.

 

무겁게 마음을 휘어잡는 사진에서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스토리의 연관성보다, 인간은 악이지만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존의 전시형식에서 벗어난 좋은 사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게는 뮤아트김상현씨와 기타리스트 김병수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시작된 두 분의 협연은 가을밤의 정취를 무르익게 했다.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에 덧붙인 김병수의 기타 음율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데, 수술 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김상현씨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보다 음색이 훨씬 깊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딱 맞았다.

특히 하얀 목련은 듣는이의 심금을 울려 준 절창이라, 우리 식구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모닥불 앞에서 듣는 협연이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새벽닭이 울어 시간을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었더라.

편치 않은 몸으로 먼 길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너무 고생하셨다.

 

그들의 뜨거운 음악 사랑과 깊은 인정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다음 일요일에는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술안주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좀 있으니 사진가 고영준씨는 친구들을 데려 왔고,

우기곤씨 역시 사우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뒤이어 전통무예가 하태웅씨가 지리산에서 오셨고,

시인 이은정, 전태수, 홍대춘, 서정란씨 등의 문인들과 사진가 마동욱, 김영숙 내외,

화가 칡뫼 김구, 함상규, 고선애, 최보현, 박효링, 권현석, 노인자, 송춘애,

박귀옥, 엄근배, 성혜선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오는 1113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황무지, 우상의 벌판개인전을 여는

화가 칡뫼 김구는 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오셨는데, 가제본 된 책을 가져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지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손님 접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떠나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만 남았다.

 

오죽하면 전시 시작한 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는 커녕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 뒤 이틀 동안 오신 분 사진 역시, 정리할 시간이 없어 주말까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것이다.

끝나는 날까지 마무리하려면 두 번은 더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빚진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은 분을 위해 주말인 1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

가을 가기 전에 나들이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성원해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현충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전시 일자가 다가오나 준비작업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 잘 마무리했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기웅서씨가 앵글 작업을 마무리해주자,

오후에는 김창복씨와 양이현이는 물론 평이 까지 함께 도와 밤늦도록 일했다.

 

김창복씨는 감나무를 가리는 패널 제작 등 어려운 일을 맡아 주셨고,

이현이와 나는 현수막 사진 묶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어두워 머리에 전등을 달고 일했는데, 마무리하고 나니 자정이 가까웠다.

 

다들 24시 해장국집에서 자정 무렵이 되어 저녁 식사를 한 것이다.

이런 강행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나야 내가 벌인 일이라 감수해야 겠지만,

김창복씨와 이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식사를 끝낸 후 정동지와 나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정동지도 아침 일찍 일이 있지만, 나역시 동자동에 볼일이 있었다.

늦게 먹은 저녁 탓에 졸음이 몰려오지만, 목숨 건 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개 명세에 가깝다.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 만드는 천성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진 놈 탓에 주변 사람들만 힘들게 한다.

 

다들 불평 없이 도와주어 고맙고 고맙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전라도 닷컴"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지난 9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박흥순의 잊혀진 그림을 찿아서가 열렸다.

첫날 들리지 않으면 못 볼 것 같아, 아산 가려고 두 시쯤 짐을 챙겨 동자동에서 나왔다.

한글날이라 그런지 인사동에 사람이 엄청 많았다.

 

'나무화랑에 올라가니 박흥순씨를 비롯하여 김진하 관장과 장경호씨가 있었다.

 

전시작들은 오래전 보아왔던 복서연작 말고도 환경 비판적인 작품이나 다른 작품도 있었다.

 

승자보다 패자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잔인한 말초성을 까발린 복서연작은 비애감이 감돌았다.

 

링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권투선수도 그렇지만, 맞아 쓰러지는 선수 보며

객석에서 환호하는 사람은 또 뭔가? 폭력의 관음증에 노출된 인간 심리를 나무라고 있었다.

 

승자를 대리 체험하는 자기도취가 결국 권력과 자본이 연출한 허구임을 까발린 것이다.

한편으로 쓰러진 복서의 비참한 모습은 80년대 군부독재에 핍박받은 민중의 모습이기도 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는 젊은 시절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감시받아 가며 힘겹게 작업했다.

쓰러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복서나 마찬가지였다.

 

박흥순씨는 1982년 결성된 임술년창립 멤버로,

당대 현실을 소재로 비판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리얼리스트다.

한때 민미협대표를 지내기도 했는데, 작품도 좋지만 사람은 더 좋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초상화 전시를 열며 나까지 그려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돈 없는 거지 그리는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전시가 끝난 후 작품을 싸 주는데, 벼룩은 낮짝이라도 있다지만 벼룩보다 못하다.

그냥 그림만 챙기고 다음에 술 한잔 산다는 게 십 년이 넘었다.

 

초상화 또한 얼마나 멋지게 잘 그렸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 솜씨라면 당연히 잘 그리겠지만,

여태 다른 화가가 그린 내 초상화도 보았으나 최고였다.

 

그리고 복서신작도 있었는데, 정치적 풍자로 대상이 바뀌었다.

김정은의 주먹에 쓰러지는 트럼프를 보며 왜 그리 속이 후련한지 모르겠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트럼프는 주는 것 없이 밉다.

 

트럼프 뿐 아니라 때려잡을 놈이 어디 한두 놈이겠는가?

다시 불을 지핀 박흥순의 새로운 복서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서문 일부를 옮겼다.

고향의 불안, 1991,갈증, 1994은 심각해지는 환경문제를 거론했고, 이라크와 성조기, 2006를 통해서 미국의 폭력적 전쟁을 고발하고, 독도와 촛불, 2008은 일본 정치인들의 독도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장엄한 현장을 그리고, 북에서 바라본 NLL, 2012은 핑크 모노톤으로 NLL의 긴장을 경쾌하고도 모던한 팩러독스 문법으로 회화적 실험을 하고, 만남, 2019은 남북정상회담에 거는 작가의 기대를, 미완의 종지부, 2020를 통해서는 여전히 5.18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전두환을 비판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다시 복싱에 북·미 관계를 대입한 풍자화 북미의 이벤트를 그렸다. 복서로 링에 오른 김정은이 역시 복서인 트럼프를 다운시키는 장면이다. 그런데 둘 다 상처투성이다. 심한 밀당으로 상호 어떤 이익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남은 북·미 간 협상 실패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상황을 걱정해서인데, 결국 2024년 현재 그의 염려대로 한반도는 심각한 갈등상태에 처해 있다. 그의 염려가 예지였던 셈이다. 결국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그에게는 여전히 우리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 리얼리스트의 피가 흐른다는 게 반증된 것이라고 하겠다

 

전시를 보고 나니, 뒤늦게 정영신 동지와 정해레나씨가 나타났다.

박흥순씨가 삶아 온 약 밤 까먹으며, 님도 보고 뽕도 땄다.

 

전시는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전시가 아니오니, 놓치지 마십시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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