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따! 월하네는 잠도 안자고 나왔능갑네, 어짜쓰까 영감이 할매들 잠 안 자고 나와뿐게 일찍 서두르라고 해샀드만, 많이 기둘려야 짜것는디….” 임피에서 나온 이씨(76세) 할머니가 줄지어 선 푸대 앞에 들깨자루를 내려놓는다. 이른 아침부터 방앗간에는 기름을 짜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오는 순서대로 놓아둔 자루가 바뀔세라, 지키고 앉아 있는 할머니들 표정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  

  • 기다리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임피 인물 자랑 좀 해 달랬더니 “내 이름이 뭔지 알어 이끝례여, 하도 자식을 낳싼게 끝례라고 지었다는구먼. 울 동네서 내가 인물이여 노래 잘 허지, 김치 맛나게 담그지, 자식 잘 키웠제. 이만허면 인물 났제이.” 이씨 할머니 입담에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이 벗겨지듯 할머니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지나가는 사람 발만 멍하니 쳐다보던 할머니들의 말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한다. “요새 걷는 것이 유행인지 우리 동네 근처에 구불 길이 생겨갔고 사람들이 솔찬히 왔사드만. 주말에는 절에서 점심도 공짜로 준다고 헙디다.”

  •  

  • 군산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도시다. 군산에서 즐기자는 슬로건인 ‘구불 길 군산도보여행’은 일곱 개의 스토리 구불 길이 있다. 비단 강 길을 시작으로 구불7길이 새만금 길이다. 시간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남긴 전설이나 역사의 흔적, 그리고 편안한 자연을 품에 안을 수 있다. 또한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테마로 마련된 ‘2013 군산세계철새축제’가 겨울에 열린다.

  •  

     

    •  

      군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오일장이 대야장(전북 군산시 대야면 산월리)이다. 끝자리 1일과 6일이 들어간 날에 서는데, 전라선이 지나는 요충지라 시골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부터 군산 앞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수산물까지 없는 게 없다. 큰길 따라 양쪽으로 줄지어 장이 들어선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500평이 넘는 장옥을 지었으나 상인과 장돌뱅이들이 길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장이 옮겨지게 되었고, 기존의 장옥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  

    • 교통이 좋아 군산, 김제, 익산, 전주 상인들뿐만 아니라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정읍, 고창, 충남 서천에서도 온다고 한다. 장사꾼들이 모여드니 사람들도 모이는 것이다. 장날이면 곡물, 생선, 젓갈, 채소류 등과 각 지역 특산품들이 나오지만 대야장의 명물은 무엇보다 묘목이다. 큰 도로가에 대봉감이 줄렁줄렁 달린 감나무가 수직으로 서 있어 가까이 가보았다. 감나무 잎이 싱싱해 감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테이프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농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장날만 나온다는 김씨(67세)는 나무는 가을에 심어야 봄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땅이 얼기 전에 심어줘야 한단다.

     

    •  

      21세기를 약속받은 땅이 군산이라고 한다. 시간이 일을 만들어내듯 지금도 새만금간척사업은 진행 중이다. 군산항은 일제강점기 때 호남평야의 미곡수출항으로 크게 성장했다. 군산시를 에워싸고 있는 옥구읍 이름을 풀어보면 물 댈 옥(沃)자에 개천 구(溝)자다. 개천에 물을 댄다는 뜻이다. 이제 개천에 물을 대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다. 새만금간척사업은 고군산군도와 비안도를 거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를 잇는 33km의 바다방조제를 쌓아 서울 여의도의 140배 규모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단위 간척사업이다. 

    •  

    • 100년 전인 1904년 대야면 지경리에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지경장이 대야장으로 이름만 바뀌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대야면에서 장 구경나온 장기봉(73세) 씨는 대야에서 나오는 쌀이 국내 최대 규모의 농산물 품평회에서 장관상을 받은 ‘큰 들의 꿈’이라며 쌀 자랑에 열을 올린다. “나락은 잡종 없이 혈통을 잇어간께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안 헙디여, 사람도 똑같은 것 보믄 쌀이 사람을 맹근당께. 글고 벼꽃은 봤는지 모르겄네, 요것이 오전 10시에서 12 사이에 딱 한 번 펴는디 당체 부지런 떨어야 볼 수 있당께.” 요즘은 오히려 잡곡이 부자들의 음식이 되어가지만 쌀은 우리가 살아가는 힘의 원동력이다. 

    •  

    • 한의원 앞에서 할머니들이 펼쳐놓은 난장에는 산과 들, 밭에서 가을걷이를 끝낸 작물들이 사람들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검정 쌀이 되박에 얌전히 담겨져 있고, 무 여덟 개가 북처럼 다소곳이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녹두 위에 올려진 참기름병이 지휘만 하면 자연의 음악이 연주될 것만 같은 풍경이다. 나포에서 온 박순자(75세) 할머니가 “선유도 구경 왔는갑네, 군산 온 게 볼거리가 많지라우.”
      군산하면 선유도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선유도(仙遊島)는 이름 그대로 풀어도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신선도 머물다 간다고 했을까. 선유도를 포함한 고군산군도는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는데, 자연이 창조한 천혜의 해상공원이다.

    •  

    •  

      길게 늘어서 있는 장터에는 밀고 다니는 수레꾼 장돌뱅이가 많았다. 손수레 위에는 여인네들이 김장철에 사용할 수 있는 갖가지 재료들이 실려 있다. 청각과 남새우, 김장 봉투와 고무장갑, 고무줄 같은 잡화까지 손수레 가득 싣고 나와 여인네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닌다. 청각과 남새우를 파는 장옥례(67세) 씨는 바구니 안에서 톡톡 튀는 남새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할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  

    • “할매요,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남새우사다 아욱국 끓여 잡사 봐, 소고깃국보다 맛나.” 죽산리에서 나온 김다분(85세) 할머니가 “시계 고치는데 2만 원이나 써 뿌려 오늘은 못 사것구먼, 도란장에도 오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얼굴이 신용이었는데 지금은 외상으로 달라는 사람도 없는 듯하다. 생선가게에서 잠시 쉬는 김씨 할머니께 대야장의 옛날이야기를 부탁했다. “참말 옛날이 좋았제이, 소 새끼가 지 엄니 졸졸 따라 가기도 허고, 국밥집에서 밥 먹다가 사돈도 맺고, 동지 지나 문 길가에 자리 깔고 토정비결 봐주는 사람 옆에 붙어서 귀를 세우고 듣고 그랬제. 그 뭐시냐 동백기름 맨드르하게 볼르고 양복 입고 폼재며 어슬렁거리던 사람들도 있었당께.”

    •  

    • 생선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이씨(67세) 좌판에서 봉지 열어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는 할머니가 참견한다. “소시장 있을 때는 여그 장이 볼만했어라, 사람이 많이 모인께 벼라별 사람들이 다 왔어, 소 판 돈으로 투전판 벌이다가 돈 잃고 술주정 부리고, 소 헐하게 폴았다고 한잔, 잘 폴았다고 한잔, 국밥집에는 이쁜 새악시도 있었당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삶의 터전이었던 장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  

    •  

    • 대화장 끝머리에는 집에서 만들어온 도토리묵을 맛보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드는 박씨(75세)가 도토리묵 자랑에 열을 올린다. 임피에서 온 문말자(88세) 할머니는 마늘과 콩을 팔고 있다. “집에 있기 갑갑혀서 콩 쪼까 갖고 왔는디 당체 시세를 모르겄어, 마늘은 얼마에 폴아야 쓰까? 오늘 사람구경 많이 했승께 남는 장사했제.” 수줍게 웃으며 아쉬운 듯 말을 이어간다. “서로 필요한 것끼리 바꿀 때가 좋았어라, 장사허는 사람들은 농사를 안 진께 모다 바꾸고 그랬어, 임피아짐 오늘은 뭣 갖고 나왔소? 함서 아는 체하고들 그랬는디, 시방은 모다 남이나 마찬가지여, 옛날 생각하믄 안 되는디 그때 생각나서 한 번씩 나오믄 중국산이냐, 농사진 것이냐 물어봤싸, 사람 말을 안 믿고 자꾸 물어싸….”

     

    • 요즘 장터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다. 각 장터에는 팔 물건이 있을 때만 나오는 지역 원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손수 농사진 것만 갖고 나오기 때문에 경운기와 오토바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중간도매상이 물건을 빼앗아 흥정에 들어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싸게 사려는 도매상과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농민들은 몇천 원 때문에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그들은 이른 봄부터 땅을 일구어 씨앗에서 곡식이 나올 때까지,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한 톨의 농산물도 허투루 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룬다. 흙과 함께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의 흔적들이 흥건히 고여 있는 곳이 시골장터다.

     

     

     

     


     

    정영신 글.사진 / 눈빛 / 2012년 8월

     

     

     

     

     

     

     

     

     

     

     


    살아온 날을 사진으로 되짚다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38] 정영신, 《한국의 장터》(눈빛,2012)

     


    - 책이름 : 한국의 장터
    - 사진·글 : 정영신
    - 펴낸곳 : 눈빛 (2012.8.1.)
    - 책값 : 29000원

     


    (1) 시골 저잣거리


    저녁 여덟 시가 살짝 넘은 구월 한복판, 시골은 바야흐로 깜깜합니다. 어느 집에서고 말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몇몇 집은 이무렵에도 텔레비전 켜 놓은 불빛이 바깥으로 살짝살짝 퍼집니다.


    모처럼 두 아이가 일찌감치 잠들어 우리 집도 조용합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나도 지쳐 아이들 곁에서 드러눕고 싶지만, 내 마음은 아이들이 잠든 틈에 무언가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읽고 싶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하고는 함께 보기 어려운 영화 〈책 읽어 주는 남자〉를 보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술 한잔 생각이 납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밤길을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자전거 앞등과 뒷등을 환하게 밝힙니다. 사람 발자국도 자동차 바퀴자국도 없는 고요한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자전거로 달리니, 자전거가 바람 가르는 소리만 가득합니다. 아니, 들판에서 풀벌레 노래하는 소리가 훨씬 크게 울려퍼집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로 자전거가 지나가는데, 어느 풀벌레도 자전거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풀벌레가 자전거를 따사로이 품습니다. 그래 반갑구나 씩씩하게 달리렴, 하는 듯한 노랫소리입니다. 나는 밤길 시골길 논길을 자전거로 천천히 달리면서 밤노래를 듣습니다.


    면소재지 가게에 닿습니다. 보리술 한 병과 막걸리 한 병을 삽니다. 면소재지 가게 앞에 면내 고등학교 아이들 너덧이 앉았습니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으면서 가게 앞에 앉은 채 저희끼리 이야기를 나눕니다. 다시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갑니다. 면내 고등학교 교실에 불이 밝습니다. 그렇구나, 구월 한복판이지, 이곳 아이들도 입시나 취업을 맞딱드렸겠구나, 이 가운데 몇몇 아이들이 교실에서 몰래 빠져나와 가게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이 아이들은 무슨 꿈을 이야기할까, 교실에서 밝힌 불빛을 받으며 늦게까지 수험공부를 하는 시골 아이들은 무슨 꿈을 생각할까.


    군내버스 한 대 마주 달려옵니다. 이 늦은 때에도 버스가 있네, 하고 생각하다가, 읍내에서 저녁 여덟 시 반에 면내를 거쳐 지죽마을 바닷가까지 가는 막버스라고 떠올립니다. 읍내 고등학교를 다닐 지죽마을 아이들은 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테지요.


    아이들은 알까? 아이들은 느낄까?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라며 시골에서 학교를 다니는 줄 아이들은 알거나 느낄까 궁금합니다. 이 아이들은 시골에서 태어난 보람을 얼마나 누리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태어나지 못해 여느 도시처럼 온갖 물질문명과 문화시설을 못 누리는 삶을 안타까이 여길는지 궁금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를 마친 뒤부터는 도시로 가서 다시는 시골로 안 돌아오겠다고 다짐할는지 궁금합니다.


    .. 한 할머니는 이름도 성도 없는 무지렁이라며 한사코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 (90쪽)

     

     

     

     


    면내에서든 읍내에서든 학교옷 입은 아이들을 봅니다. 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수험공부에 바쁩니다. 어느 아이라 하든, 고흥군에는 대학교가 없으니 고흥군에 남아 젊은 나날을 보내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아이라 하든,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이웃 도시 순천이나 광양이나 여수에 가든, 또는 전남 광주에 가든, 아니면 대전으로 가든, 또는 부산으로 가든, 아니면 서울까지 가든, 되도록 커다란 도시로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도시이든 고흥 시골마을을 한 번 떠나면, 다시는 고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전남 고흥군 도화면에는 고등학교 한 곳 있습니다. 이곳에는 아직 백 명 넘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데, 이곳 아이들이 해마다 졸업식을 하고 보면, 고3이던 아이들은 거의 모두 썰물처럼 고흥 바깥으로 나갑니다. 대학교를 가든 일자리를 얻든 더 큰 도시로 나가요. 이제부터 시골내기 아닌 도시내기가 돼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고3을 마치고 도시로 가기 앞서를 헤아리면, 아직 고흥에 남아 시골내기로 지낼 적조차 참말 시골내기인지 도시내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시골내기라면 ‘먹고 입고 자는 곳이 시골’이라는 뜻이 아니라, ‘일하고 놀고 살아가는 나날이 시골’이 되어야 걸맞아요. 흙을 만지고, 흙을 누리며, 흙을 아끼는 삶일 때에 비로소 시골내기입니다. 주민등록 주소지가 시골이라서 시골내기이지 않아요.


    한가을 바쁜 일철에 푸름이나 어린이는 들판에 없습니다.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찾아들어 바쁜 일철에 푸름이나 어린이는 들판에 없습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모두 저희 학교에서 중간시험이든 기말시험이든 치르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시험공부’로 바쁘고, 어른들은, 이 가운데 늙은 어른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들판에서 흙을 만지느라 바쁩니다.


    면소재지 장날이든 읍내 장날이든, 장마당을 이루는 사람은 모두 할머니와 할아버지요, 장마당에서 무언가 장만하는 사람 또한 으레 할머니와 할아버지입니다. 장이 서든 말든, 아이들은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학교에 있습니다. 아이들 모두 학교에서 시험공부만 합니다. 일요일이나 토요일에 장날이 끼더라도, 아이들은 가까운 도시로 놀러가지, 면소재지 장터나 읍내 장터를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젊은 어버이는 자가용을 몰아 커다란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이웃 순천으로 물건을 사러 가지, 읍내 장터나 면내 장터에서는 물건을 사지 않습니다.


    젊은 어버이는 몸은 시골에서 살지만, 삶은 시골내기가 아닙니다. 시골에 주민등록 주소를 두지만, 삶은 도시를 바라보는 흐름이기에, 이 흐름에 맞추어 ‘젊은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은 처음 태어날 적부터 ‘주소지만 시골일 뿐 삶은 도시내기’로 지냅니다.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될 적에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꿈을 꾸는 모습은 너무 마땅합니다. 이 아이들은 비록 시골에서 산다 하지만, 마음이 온통 도시내기예요. 이 아이들은 ‘주민등록 주소지’까지 도시가 되고 싶어요. 시골마을 들일이나 바닷일은 해 본 적이 없고, 시골마을 앞메나 뒷메를 오른 적이 없으며, 시골마을 이웃 할매나 할배랑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시골내기로 보이지만, 손전화나 컴퓨터로 도시 아이들하고 사귀어요. 겉차림은 시골학교 아이들이지만, 속알맹이는 도시학교 수험생일 뿐이에요.


    우리 집 두 아이를 데리고 면내 우체국이나 가게를 들를 때이든, 이 아이들과 읍내 저잣거리를 돌아다닐 때이든, 어디에서고 아이들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시골에서조차 아이가 태어나면 일찌감치 보육원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차근차근 보냅니다.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보육시설에 들어가 영어를 배웁니다. 보육시설 시간이 끝나면 방과후학교나 방과후학원 같은 데에 갑니다. 시골마을이라서 시골아이답게 마음껏 뛰놀며 클 터전이 아닙니다. 시골마을에서 아이를 낳는 분들 스스로 아이하고 하루 내내 함께 들판에서 일하고 놀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한결같이 도시바라기로 클밖에 없습니다.

     

     

     

     

     

     

     

     

     

     

     

     

     


    (2) 살아온 날을 되짚는 사진


    소설을 쓰는 정영신 님이 내놓은 사진책 《한국의 장터》(눈빛,2012)를 읽습니다. 1980년대 끝무렵과 1990년대 첫무렵 한국땅 골골샅샅 장터 사진이 깃들고, 이때부터 스무 해를 건너뛰어 2010∼2012년 사이 한국땅 골골샅샅 장터 사진이 어우러집니다.


    사진책을 넘기며 자꾸 궁금합니다. 정영신 님 사진에서 1990∼2010년은 무엇일까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니, 정영신 님은 소설을 쓰는 분이지만, 이에 앞서 ‘당신 집에서는 여느 어머니’이지는 않을까 싶습니다. 정영신 님이 아이를 낳아 돌보았는지 아닌지까지는 책날개 해적이에 안 적혔기에 모릅니다. 다만, 사내가 스무 해를 가로지르며 사진을 찍을 때하고, 가시내가 스무 해를 가로지르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뭇 달라요.


    .. 장터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다양한 삶을 보게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 어느 날은 할머니가 찢어진 고무신을 갖고 나와 때워 달라고 했는데, 고치는 값이나 새로 사는 값이나 같다고 했다가 혼쭐이 났단다. 할머니는 몇 백 원이면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고향을 찾아가듯이 오일장을 찾았다면 고향과 같은 색깔을 만날 것이다 .. (24, 66, 387쪽)


    나는 사내이지만 집일을 도맡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옆지기와 내가 함께 마주하고 서로 돌보며 살아갑니다. 이제껏 집에서 아이들 기저귀를 얼마나 빨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 똥오줌을 날마다 만지고, 아이들 밥을 날마다 차리며, 아이들한테 자장노래를 불러 주고, 아이들이랑 복닥복닥 씨름을 합니다.


    나는 내 삶을 서운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남녀평등이라 하지만, 정작 집일을 즐겁게 맡는 사내는 몹시 드뭅니다. 부부가 맞벌이라 할 적에도 집일은 으레 가시내가 한다고 하는 한국이에요. 명절이 되어 차례상이나 제사상을 차릴 적에 언제나 가시내만 부엌에 들어가는 한국이에요. 이 나라에서는 가시내가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기란 참 빠듯합니다.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 사내는 꽤 있을 텐데, 집일을 도맡고 아이를 돌보며 글쓰기와 사진찍기를 나란히 하는 사내는 얼마나 있을까요.


    언뜻 보기에는, 집일을 안 하고 아이를 안 돌보며 ‘겨를이 넉넉해’야 글쓰기와 사진찍기를 잘 할 만하다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일을 도맡고 아이를 돌보는 사내로 살아오며 돌아보면, 집일을 늘 하고 아이를 언제나 돌보는 사이, 내 눈썰미와 눈길과 눈빛이 차츰 거듭나요. 나는 ‘기록’을 하려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아요. 나는 문화를 꽃피우려는 글을 쓰지 않아요. 나는 예술을 빛내려는 사진을 찍지 않아요. 나는 내 ‘삶’을 좋아하기에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요.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싶으며 아끼고 싶어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요.


    집에서 으레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을 글로 써요. 마땅한 노릇이에요. 나는 집에서 살아가니까요. 곧, 정영신 님이 이 나라 장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쓸 수 있었다 한다면, 정영신 님한테는 장터 이야기가 ‘기록’이 아닌 ‘삶’이었으리라 느껴요. 정영신 님이 ‘사진기를 손에 쥐’기 앞서 누린 삶을 되짚는 사진입니다. 정영신 님이 ‘연필을 손에 쥐’기 앞서 보낸 삶을 톺아보는 글입니다.

     

     

     

     

     

     

     


    .. 차들이 다니지 않았던 오래전 어린 시절의 장터를 상상해 본다. 사람들은 현대식 의복도 아닌 허름한 옷차림에 짐 보따리를 이고 지고 나와, 공터에 보따리를 풀어 놓았을 것이다 … 도계에서 왔다는 박씨(67) 아주머니는 마땅히 살 것도 없지만, 사람이 보고 싶으면 장에 나온다고 한다 … 할머니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소일거리는 농산물을 갖고 나와 장에서 친구를 만나는 일이다 .. (60, 83, 408쪽)


    사진책 《한국의 장터》를 읽으며 1990∼2010년 사이 사진이 거의 비었네, 하고 느끼다가는, 앞으로 2020년이 되거나 2030년이 된다면, 2010∼2012년 사이에 바지런히 찍은 사진이 많이 실렸기 때문에, 오늘(2012년)을 돌아보는 뒷날(2020년대나 2030년대) 사람들한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겠구나 싶어요.


    오늘 쓰는 글은 어제를 돌아보며 모레에 누리는 글이에요. 오늘 찍는 사진은 어제를 되짚으며 모레에 누리는 사진이에요.


    디지털사진은 찍은 그 자리에서 사진을 살펴볼 수 있다지요. 그러나, 사진기 화면으로 사진을 살필 뿐, ‘사진 누리기’는 하지 않아요. 사진을 누리는 일이란, 사진을 찍은 그 자리에서 하지 않아요. 사진을 찍고 한참 지나고서야 비로소 사진을 누려요.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오늘 삶을 가장 빛내기에 사진도 찍고 글도 쓰며 그림을 그리지만, 오늘 삶을 가장 빛내며 일군 사진·글·그림은 모레와 글피를 맞이하며 살아갈 기운이 새로 솟도록 이끌어요.


    즐겁게 어제를 돌아봐요. 즐겁게 지난해를 생각해요. 즐겁게 그러께를 되짚어요. 즐겁게 지난 옛일을 아스라이 떠올려요.

     

     

     

     

     

     

     


    .. 장사하는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없어 자유롭다. 보자기 위에 콩대 몇 개 갖고 나와 팔고 있는 할머니들도 여든이 넘는 사람들뿐이다 … 한편 도화장은 농촌의 현실을 읽을 수 있는 시골장의 모습 그대로다. 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동차 대신 경운기를 끌고 나오고, 장 보는 사람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뿐이다 … 제주할망들은 또 다른 우리 엄마들을 이야기한다. 물질을 하고, 밭농사를 짓고, 남은 시간에는 장터에 나와 온갖 것을 팔아 가정경제를 살리고 자식을 교육시킨다. 이 땅의 엄마들이 있기에 산업이 발전해 가고 경제가 살아나고 농촌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 (149, 238, 459쪽)


    좋아하는 삶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 이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을 펼치면서 ‘참 좋구나’ 하고 느낍니다. 예쁘장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 이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을 펼칠 때에 ‘그림이 그럴싸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누군가는 ‘참 좋구나’ 하고 느낄 사진을 즐깁니다. 누군가는 ‘그림이 그럴싸하구나’ 하고 느낄 사진을 즐깁니다. 어느 사진을 즐기든 이녁 마음입니다. 어느 사진이 더 돋보이지 않고, 어느 사진이 덜 떨어지지 않습니다.


    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즐거운 하루’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내 아이들을 사진으로 옮기며 ‘멋스럽거나 예쁜 모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버이마다 아이들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을 찍는 사진이 달라집니다.


    내 아이들을 찍는 사진이니까, 더 값지거나 더 비싼 장비를 갖추어서 사진을 찍어야 할까요. 아마, 누군가는 이렇게 하겠지요. 내 아이들을 찍는 사진이기에, 언제라도 손전화를 꺼내어 사진을 찍는 분도 있겠지요. 내 아이들 살아가는 모습이기에, 늘 가슴에 살포시 담아 언제라도 가만히 떠올리며 이 아이들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곱게 그리는 분도 있겠지요.

     

     

     

     


    .. 농촌 사람들은 땅이 주는 질서를 지키고 있다. 봄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물과 햇빛과 공기와 더불어 키우고, 가을이면 거둬들인다 … 여인들에게 있어 땅은 보물창고다. 온갖 씨앗에 수많은 비밀을 담아 봄이 되면 땅이라는 보물창고에 시간을 심어 넣는다 … 읍내에서 학교 다니는 아들을 국수집에 데려가 곱빼기 국수를 먹이고 차를 태워 보내면서도 여인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장날이다 .. (315, 345, 373쪽)


    예전에 사진기가 없을 무렵, 어버이는 누구나 아이들 모습을 가슴으로 담았습니다. 따로 사진기로 사진을 안 찍었어도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마음속에 아로새겨서, 언제라도 그립게 떠올렸습니다.


    한국땅 장마당을 지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가운데 ‘당신이 장사하는 모습’을 스스로 사진으로 찍어 건사한 분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도 당신 장사하는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도 안 찍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작가들만 장마당을 돌며 당신들을 사진으로 더러 찍었겠지요.


    그런데, 장마당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예순 해 앞서 일을 환하게 떠올려요. 쉰 해 앞서, 마흔 해 앞서, 서른 해 앞서, 당신들이 지키는 장마당이 어떤 모습이었는가 그림으로 알뜰히 떠올립니다. 따로 사진기라는 기계를 쓰지 않았고, 따로 사진작품이라는 예술이나 문화를 빚지 않았으나, 당신들은 이야기를 일구었어요. 이야기를 일구는 나날을 사랑으로 누렸어요.


    장마당에서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이들은 바로 ‘할머니 이야기’를 가만히 살펴보며 사진을 얻습니다. ‘할아버지 이야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글을 얻습니다.


    집에서 아이들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도 ‘아이들 이야기’를 찬찬히 돌아보면서 사진을 얻어요. 아름답다는 멧자락을 올라 사진을 찍을 때에도 ‘멧자락 이야기’를 가슴으로 시나브로 느끼며 사진을 얻어요. 우리들은 늘 이야기를 사진으로 되살립니다. 우리들은 늘 이야기를 사진꽃으로 다시 피웁니다. 우리들은 늘 이야기를 사진빛으로 다시 그립니다.

     

     

     

     


    .. 장이 이미 폐쇄되었는데도 난장을 펼쳐 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반평생을 장터에서 살았는데 장은 없어져도 장바닥은 남아 있다며, 사람이 있는 한 장에 나온다는 여든다섯 살 된 할머니도 있었다 .. (477쪽)


    이 나라 장터를 두루 돌아다녀도 두툼한 사진책 한 권 나옵니다. 여든다섯 할머니 이야기를 가만히 듣거나 사진으로 빚어도 사진책 한 권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남들을 살필 것 없이 나 스스로 내 하루를 차근차근 짚을 적에도 내 발자국을 사진책 한 권으로 엮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살아온 날을 되짚는 사진입니다. 살아온 날은 웃음일 수 있고, 눈물일 수 있습니다. 살아온 날은 즐거움일 수 있으며, 괴로움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시원함이요 때로는 고단함입니다. 어느 때에는 망설임이요 어느 때에는 씩씩함입니다. 모든 모습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이어지면서 삶이 이루어집니다. 삶이 이루어질 때에 책 하나 태어납니다. (4345.9.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한국의 장터'를 펴낸 사진가이자 소설가인 정영신씨는 농민신문의 '정영신의 장터순례'에 이어
    오는 11월25일부터 방송되는 교통방송의 "정영신의 장터, 속 이야기"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교통방송 '브라보 마이웨이 1부' "정영신의 장터, 속 이야기"는 각 오일장의 정보와 함께 따뜻한
    사람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는데, 매주 월요일 자정부터 45분 동안 진행된다.

    그 첫 회분의 녹화현장 모습이다.

     

     

     

     

     

                                          스탭 기념촬영, 왼쪽부터 PD 조문행, MC 서혜정, 사진가 정영신, 작가 최형미씨

     

     

  • “할아버지이~ 가까이 가서 한번 만져 보고 싶어.” 외할아버지 따라 장 구경 나온 신환(4세)이가 장 뒤쪽에 열린 가축 전으로 박경훈(61세) 씨의 손을 끌어당기고 있다. 병아리를 낳은 어미 닭을 비롯해 토종닭, 고양이, 개 등 갖가지 가축들이 좁은 우리 안에서 뒤뚱거리는 모습이 신기한지 쳐다보는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마치 작은 동물원 같은 풍경이다. 가축 전 끝머리에는 주인 따라온 장 닭 두 마리가 한낮인데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꼬~끼오 꼬~끼오를 연발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 어미 품을 떠나온 백구형제가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다.

  •  

  • 진천장의 이분택(70세) 씨는 35년째 가축을 팔아 왔는데, 우리 토종닭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내 얼굴이 장 닭 닮았다고 허대유.” 이 씨가 얼굴 가까이 장 닭을 갖다 대며 웃는 모습이 흑백사진 속 고향집 마당 같이 정겹다. 여름날이면 쑥으로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닭이 닭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추억은 지금도 서랍 속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풍경 중 하나다.

  •  

     

  • 1911년 9월 읍내리 장터거리에 개설된 진천장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읍내리의 백곡천 주변과 시가지 동쪽 공터에 날짜 끝자릿수가 5일과 10일이 되면 들어선다. 장날이 되면 지역 상인들과 장돌뱅이는 물론 시골 할머니들이 산이나 들에서 수확해온 갖가지 농산물들을 고만고만하게 펼쳐놓아 향수 어린 진풍경을 자아낸다. 가을이 시작된 요즘 장터에는 제철인 밤과 호박, 콩, 고추, 무, 가지 등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축 전 옆에는 20여 가지의 곡식 보따리가 정물화처럼 앉아있고, 장터 한쪽으로는 국밥집이 주욱 늘어서 있다. 장옥 없이 난장으로 길게 늘어선 진천장은 옛 장터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들은 콩을 까면서도 옆 할머니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다. 가을 들판 소식을 콩속에 가득 담아 와 좌판을 펼친 김형언(77세) 할머니는 “병원 옴서 콩하고 도라지 갖고 왔어유. 내 손으로 농사 진 거라 팔리기만 하면 쏠쏠허구먼유”라며 가슴이 부풀어 있다. 

  •  

  • 훈훈한 정이 좋아 5년째 진천장 나들이를 한다는 지암리의 공인식(72세)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진천 자랑 좀 해 달랬더니 소녀처럼 웃기만 하신다. 대신 옆에 있던 김 씨 할머니가 신이 난 듯 농다리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구먼유. 지네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여 옛날에는 지네 다리라고 했지유.” 문백면 구곡리에 있는 돌다리 진천농교(鎭川籠橋)는 고려 때 만들어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다. 농다리라고도 불리는 이 농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에 속한다. 천 년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물과 관련된 오랜 이야기들이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천 년의 신비를 지닌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매년 ‘농다리 축제’를 열기도 한다.

  •  

    •  

    • 파장 무렵, 배낭에 밤을 가득 채워와 장바닥에 펼쳐놓은 이성명(69세) 할머니는 산에서 곧장 장으로 왔다고 한다.
      “가을볕이 좋아 산에 올라 갔구먼유. 요즘 산에 가면 밤이 지천에 떨어져 널렸어유.” 말하기에도 지친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주섬주섬 밤을 펼쳐놓는다. 이 씨 할머니는 “혼인날 폐백 때 시부모님이 치마폭에 던져준 밤을 먹어서인지 자식이 많아유.” 설핏 웃는 모습이 왠지 애잔해 보인다. 

    •  

    • “장날이 기다려 지구먼유, 팔 게 없을 때는 산에 나가 팔릴만한 것을 만들어유. 차비만 벌면 되니께유.” 살아가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숭고하기까지 하다. 좌판에 펼쳐 놓은 물건은 몇천 원에 불과하지만 밤 한 톨도 허투루 하지 않고 귀하게 여긴다. 밤은 선조를 잊지 않는 나무라 하여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폐백 올릴 때는 시부모가 아들을 많이 낳으라며 며느리 치마폭에 던져주는 풍습도 있다.

     

     

     

  • 한쪽에서는 구절초가 굴비처럼 엮어져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약재상을 운영하는 박 씨(58세)는 “요즘 들어 여자들이 부인병에 좋다고 사러오기도 하고 향이 좋아 베갯속에 넣는다며 사가는 사람도 있네유”라며, 마디가 아홉이라는 구절초는 꽃과 줄기, 잎과 뿌리를 음력 9월 9일에 채취해야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한다. 장날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온다는 권점선(82세) 할머니가 옆에서 듣고 있다 끼어든다. “냉장고가 없는 옛날에는 떡 시지 말라고 구절초 잎을 얹어 며칠씩 먹기도 했지유. 말려서 좀이 슬지 않도록 옷장에 넣어두기도 하고….” 상처가 났을 때 구절초 잎을 찧어 붙이면 곪지도 않았다고 한다. 약이 귀했던 옛날에는 산에서 나는 약초의 쓰임새가 컸을 것이다. 요즘 시골 장터에는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검증되지 않은 잡초가 약초로 팔려나가 안타깝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흔한 풀이었는데, 올여름부터 약초로 팔리는 경우도 있었다.

  •  

  •  권씨 할머니는 장날마다 나오기에 장사하는 할머니들을 거의 알고 있었다. 흰 저고리와 까만 치마에다 꽃고무신이며 목걸이, 귀걸이까지 온갖 멋을 잔뜩 부렸는데, 허리가 기역으로 굽어 손수레 없이는 걷기가 힘들다고 한다. 좌판에 들러 쉬면서 말참견으로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목소리로 이긴다는 권 씨 할머니가 지난 장날 열린 ‘생거진천문화축제’ 이야기를 꺼내자 초청된 가수 노래가 좋았느니 안좋았느니 할머니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 이야기가 나오는 TV 드라마에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 ‘생거진천문화축제’는 진천군 대표 축제다.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소통하는 생거진천’을 주제로 백곡천 둔치에서 열린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비옥한 농토, 후덕한 인심에서 붙여진 것이란다.

  •  

    •  

    • 백곡천이 끝나는 길목에서 호박과 마늘을 갖고 나온 도리원의 신천호(78세) 할아버지와 장복순(75세) 할머니를 만났다. 노부부가 농사지어 가져온 것들을 사람 왕래가 뜸한 곳에 펼쳐 놓아 파장이 돼가는데도 마수도 못했다며 울상이다. 경운기에 싣고 나온 물건을 다시 주섬주섬 담는 모습을 차마 지켜볼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 외국에서 가이드 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장돌뱅이로 나섰다는 성기원(38세) 씨는 여주 말린 것을 팔고 있다.

    •  

    • 동의보감, 약초본까지 들먹이며 여주가 당뇨에 좋다는 설명을 늘어놓지만 물어만 보고 가버리기에 지칠 때도 있단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풋풋한 인심과 인정에 끌려 장이 서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갈 것이라고 한다. 처음 장에 왔을 때 느낌이 어땠느냐는 물음에 “할머니들 삶이 굉장히 치열하면서도 인정이 넘쳤어요. 그리고 농촌경제가 장에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  

    • 1988년도 진천장에서 만난 등에 북을 맨 아저씨의 난전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북쟁이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에 웃으며 박수들을 치는 바람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유행가를 한 가락 뽑아 가며, 배꼽을 거머쥐는 그의 입담에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불 하나에 단돈 만 원”하고 구성진 노래를 부르다가도, 호주머니를 뒤적이는 사람만 눈에 띄면 재빨리 이불을 보여주었다. 

    • 장이라는 공간은 사람과 사람의 다리가 되어, 윗마을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친척을 만나기도 한다. 홍시감 몇 개 갖고 나온 박 씨(81세) 할머니는 홍시만 한 붉은 무게로 앉아 “사람들 보고 싶어 나왔구먼유.”라고 말한다. 사람들 사이로 정(情)도 붉게 익어가고 있다.

     

    •  

    • 진천장 외에 열리는 장은 거봉포도, 돌실사과, 꿀수박, 생거진천쌀, 진천장미, 그리고 덕산약주로 불리기도 하는 천년주가 나오는 덕산장(4일, 9일), 쌀, 이월장미, 이월관상어, 시설채소가 특산물로 나오는 이월장(1일, 6일), 관상어와 장미가 많은 광혜원장(3일, 8일)이 있다.

       

    •  

     

     


     

     

    (19)경북 고령장


    “햇볕에 말린 고추 때깔 좀 보소 , 톡 쏘는 매븐 맛이 쥑인다카이”

    조선시대 장기리에 형성됐다가
    구한말 대홍수 인해 지산리로 옮겨와
    인근 큰 장 없어 성주·합천서도 찾아
    건고추 등 농산물 흥정 ‘시끌벅적’
    쫄깃한 식감 ‘수구레국밥’ 별미




     손수레에 토란대를 가득 실은 이씨 할머니(73)가 희미한 장터 불빛 속으로 들어온다. 새벽 3시 무렵 전등이 일제히 켜지자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경운기 가득 실려 있던 고추 포대를 내려놓자 도매상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포대를 열어젖히고 맛을 본다. 5시가 지나자 고추를 비롯해 고구마·호박·땅콩 등으로 장터는 붉고 푸른 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 된다. 농민들의 땀으로 만들어진 풍족한 농산물들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새벽을 깨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햇볕에 말린 내 고추 때깔 좀 보소. 하루에도 열일곱번이나 변하는 기 고추 아인기요. 혀에 닿으면 달달하고 톡 쏘는 매븐(매운) 맛이 쥑인다카이.”

     경운기 가득 고추를 싣고 나온 심씨 할아버지(82)의 자랑이다. 저울 눈금이 집에서 단 것과 다르다며 흥정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장바닥을 흥건히 적신다.

     대가야의 숨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북 고령은 곳곳에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또 질 좋은 고령토가 많아 우리나라 최초로 가야토기를 재현해낸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에 고령읍 장기리에 형성된 고령장은 구한말 대홍수로 인해 지금의 자리인 고령읍 지산리로 옮겨왔다. 4일과 9일이 들어 있는 날이면 장이 열리는데 인근에 큰 장이 없어 장날이면 인접한 경북 성주, 대구 달성, 경남 합천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우곡수박·쌍림딸기·개진감자·성산참외·덕곡토마토 같은 고령 지방 특산품이 장터 가득 펼쳐지기 때문이다. 향부자와 천궁 등의 약용작물, 은은하고 순한 민속주인 ‘국청’, 고령읍 본관리의 향토주인 ‘본관동스무주(本館洞二十日酒)’도 유명하다.

     운수면에서 토란대와 호박을 갖고 나온 김씨(65)와 부인은 달려드는 중간상들을 물리치고 “비료값이라도 건지려면 직접 팔 수밖에 없다”며 자리를 잡고는 한마디 건넨다. “운수벼루 압니꺼? 대평리에서 캔 원석으로 만드는데, 먹도 잘 갈리고 마르지도 않고 글 쓰마(쓰면) 붓도 잘 나가는…. 내가 거기 산다 아입니꺼.” 토란대 팔 생각보다는 마을 자랑에 열을 올리는 김씨의 웃음소리에 논에서 벼 익어가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장터에서 3대에 걸쳐 55년 동안 고령대장간을 이어오는 이씨 부자도 만나볼 수 있었다. “여가 어릴 때부터 울 아부지 따라 일한 데 아이가.” 반세기 동안 일해온 대장간을 집안의 성전으로 생각하는 이상철씨(70)는 지금도 새벽 3시30분이면 어김없이 불을 지펴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는 “쇠를 다루는 데는 담금질이 제일 중요해. 쪼매마 한눈 팔면 고마 못 쓴다카이” 하며 아들 이준희씨(40)가 구슬땀을 흘리며 낫 두드리는 모습을 찬찬히 내려다본다.

     고령장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가 수구레(소의 가죽 안쪽의 쫄깃한 아교질 부위)를 넣고 끓인 수구레국밥. 이 고장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가을 수확철이 되면 장바닥은 한해 동안 몸과 마음을 바쳐 가꾸고 거둔 농산물 흥정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지천으로 널린 고추 사이로 만원짜리 지폐가 흔한 종이처럼 오간다. “고추 시세가 좋지 않지만 빌린 농자금 때문에 조금이라도 건지려고 나왔는데 전국에서 고령 고추값이 제일 싸서 걱정”이라는 게 장씨 할아버지(78)의 하소연이다.

     주전자에 미꾸라지를 넣어온 김씨 할머니(87)는 가지와 오이·논우렁·토란으로 좌판을 꾸몄다. 40년째 고령장에 나온다는 할머니가 마수걸이로 미꾸라지 만원어치를 팔았다. 하얀 이가 귀에 걸릴 듯 좋아하던 할머니는 고쟁이 속에서 복주머니를 꺼내 돈을 넣더니 다시 고무줄로 묶는다. 호박 한덩이와 콩 두어되 가지고 사람 만나는 재미로 장에 마실 나오던 옛날 할머니들의 모습을 점점 보기 어렵게 된 게 요즘 시골 장터란 생각에 마음이 조금 쓸쓸해진다.

     



     

     

                                                                          이십여 년간 장터 사진을 찍어 온 소설가

     

    1958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87년부터 전국의 시골 장터를 기록해 온 사진가이며 소설가이다.

    그동안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2012, 덕원갤러리) 및 다수의 단체전을 열었으며,

    저서로는 『시골 장터 이야기』(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2012 눈빛) 가 있다.

     

                                                         jungys1102@hanmail.net

     

     

    '인사동 정보 > 인사동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송희 (시인)  (0) 2013.12.16
    신동명 (시인)  (0) 2013.09.23
    문 숙 (서양화가)  (0) 2013.09.02
    김하은 (서양화가)  (0) 2013.09.02
    전항섭 (조각가)  (0) 2013.08.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