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강원 동해 북평장

 

갓 잡아온 해산물 가득한 어물전 활기 넘쳐

역사 200년 넘은 강원도서 가장 큰 장
오징어·가자미·문어·곰치 등‘눈길’
갖가지 농산물도 노점에 널려




 

아침 일찍부터 장을 여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다. 열무는 금방 뽑았는지 흙이 채 마르지도 않아 함께 실려온 땅 냄새가 그대로 장바닥에 퍼진다. 인근 마을에서 농산물을 갖고 온 할머니들의 난장에는 가을 들판이 통째 이사 온 듯 없는 것이 없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빨간 고무통을 메운 곡식들이 새 주인이라도 기다리는 듯 소곤거린다.

 그 옆 좌판에는 추억의 옛날 사탕이 올라왔다. 많은 사탕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돌사탕.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먼 길을 걸었던, 그래서 ‘십리사탕’이라고도 했던 그 아련한 추억의 돌사탕을 북평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강원 동해시 북평동의 북평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된 도로 덕분에 날로 번창하는 장이다. 전국에서 세번째로 크고 강원도에서는 가장 큰 장이며, 역사도 200년이 넘는다. 3일과 8일이 들어 있는 장날이면 주민들이 직접 심고 가꾼 농산물과 인근 항구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이 800여개의 노점에 깔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이기도 하다.

 북평장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은 아무래도 어물전이다. 가까운 동해안에서 잡혀온 오징어·가자미·곰치 등이 나란히 누워 시집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꼬맹이가 수족관의 오징어를 지켜보는 모습도 정겹다. 북평동에서 장보러 나온 최씨 어르신(74)은 한시간이나 생선 좌판을 돌아다닌 끝에 못생겼어도 시원한 국물을 내는 곰치 한마리를 산다.

 쪽파를 도매상에 넘긴 박씨 할머니(78)는 살아 꿈틀거리는 문어를 살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자 고향이 경상도라는 어물전 주인 김씨(48)가 한마디 건넨다. “할매요, 문어 한마리 무마 전복이랑 꽃게, 가리비를 다 묵는 기나 마찬가지라요. 할매 보니 고향의 울 어무이 생각이 납니더.” 할머니는 김씨의 말재주에 못 이겼다는 듯 “주말에 자식들 오면 삶아주게 암놈으로 한마리 줘봐” 하신다. 김씨의 휘파람 소리에 춤추듯 기어다니는 문어의 꿈틀거림을 풍경처럼 바라본다. 바다의 카멜레온인 문어는 감정 변화나 주변 환경에 의해 몸 색깔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숨기기 위해 먹물을 뿜어내는 등 지능이 가장 높은 연체동물이다.

 다래와 머루를 갖고 나온 최향자 할머니(74)는 37년째 이 장에서 생산자이자 판매자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이 키워준 농산물은 할머니의 소중한 종잣돈이 되어 병원 다닐 때나 손자들 용돈 줄 때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그 옆에서 오이와 가지, 호박을 펼쳐놓고 부추를 다듬는 또티호완씨(30)는 5년 전 베트남에서 이 고장으로 시집왔단다. 올해로 3년째 북평장에 나오고 있다는데, 오이를 산 할머니에게 두개나 더 얹어주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 덤 문화까지 잘 알고 있는 듯해 정겹다. 베트남의 재래시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유창한 한국말로 답한다.

 “베트남 시장도 여기와 비슷해요.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이 돈을 벌기 때문에 시장에 나와 장사하는 사람들도 모두 여잡니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고요. 북평장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남자들이 장사하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가는 또티호완씨의 미소가 아름답다.

 호박과 열무를 가져온 전씨 할머니(74)는 자릿세 500원을 내고 한평 남짓한 공간에 보따리를 풀었다. 용돈을 만들려고 장 나들이한 지가 8년째에 접어든다고 한다. 할머니가 옆마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젊은 아낙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봉지를 펼쳐놓는다. 묵호에서 온 김옥녀 할머니(76)는 32년째 물미역을 팔고 있단다. “어렸을 때 이름에 ‘옥’ 자가 들어가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한평생 일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할머니는 쉬지 않고 미역을 가르고 자르는 일을 반복한다.

 국밥집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장에서 만난 친구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농사 걱정을 부려놓는 중이다. “도시로 나가야 사람 행세하는 세상은 이제 옛날이야기구먼. 자연이 제일이지.” 사계절 자연을 벗 삼아 땅에 의지해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이 오늘따라 더욱 소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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