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충남 부여장

넓은 공터에 난전 벌여놓고… “이것 좀 사 가봐유”


1916년 개설…100년 전통 자랑
버스터미널 가까워…보령서도 방문
표고버섯·양송이버섯 곳곳에…
할머니의 호객 행위 부담스럽지 않아
시골 오일장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냄새가득

 

어릴 적 추억을 일깨워준 한국식 바나나 ‘으름’(아래 오른쪽 사진), 장에 내다 팔려고 온 종일 텃밭을 일구고 나물을 캐는 시골 할 머니들의 삶을 만날 수 있다(아래 왼쪽 사진), 부여장은 대부분 의 장꾼들이 공터에 난전을 벌여놓아 난 장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위 사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부여장터의 풍경은 울긋불긋한 축제장같이 화려하다. 마치 들판 한쪽을 뚝 잘라온 듯 온갖 농산물들이 어지럽게 널렸지만 전혀 수선스럽지 않다. 장옥 밖에 펼쳐놓은 천막 주변에서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장꾼들의 모습은 삶에서 느끼는 또 다른 경이로움이다. 그들이 펼쳐놓은 보따리 보따리에는 싱그러운 자연이 스며 있고, 농민들이 살아온 시간의 자취가 숨 쉬고 있다.

 부여장은 1916년 개설돼 10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끝자리가 5일과 10일이 되는 날이면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에서 장이 선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지척에 있어 규암면·장암면·은산면·남면·구룡면·내산면·외산면 주민들은 물론이요, 인근 보령시 미산면에서도 장을 보러 온다.

 남면 송학리에서 요즘 제철인 밤을 갖고 온 장주연 할머니(79)는 밤을 펼쳐놓자마자 마수걸이를 했다며 신이 나 있다.

 “내가 나이보담 젊어 뵈지유? 고란사 약수 먹어서 그려유. 한바가지 먹을 때마다 3년은 젊어진대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밤 몇톨을 손에 쥐여준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머리가 백발인 김재연 할머니(78)도 마찬가지다. “나도 처녀 때는 예쁘다고 따라다닌 총각들이 많았어유. 꽃구경 가자며 추근댄 남정네도 있었당께. 딸도 나 닮아 그런지 모두들 이쁘다고 난리여유.”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신민정 할머니(70)가 한마디 쏘아댄다. “백발 머리를 하고 이쁘단 소리가 나온갑네유. 그 머리나 염색허든가. 듣기 민망스러워 죽겠네유. 콩이나 빨리 까유.” 김재연 할머니도 지지 않는다. “냅둬유. 내 입으로 하고 자픈 얘기 못하면 병 나구먼유.” 두 할머니가 토닥거리자 주위 사람들은 또 시작이라며 빙그레 웃는다. 두 할머니는 장날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면서도 점심 먹을 때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서로 챙겨준다고 한다.

 부여장에서는 표고와 양송이를 많이 볼 수 있다. 부여에서 나는 표고와 양송이가 전국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또 부여장은 고추와 마늘을 비롯해 생선·약초·잡화 등을 파는 장꾼들이 대부분 넓은 공터에 난전을 벌여놓고 자리 잡아 난장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부여장에 다닌 지 5년째라는 청양군 정산면의 우정숙 할머니(75)는 집에서 장까지 거리가 멀어 장날 하루 전에 집에서 나와 부여에 있는 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온단다. 콩과 호박, 그리고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으름을 펼쳐놓은 할머니는 “옛날에는 화장품이 귀했지유. 그때도 으름 속살로 손등을 문지르면 손이 고와졌어유” 하며 으름 자랑이 대단하다. 어렸을 적이 생각났다. 으름 알맹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씨앗을 뱉어내면 목으로 넘어가는 건 거의 없었지만 입안에 넣었을 때의 그 달콤함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어여 와봐. 이것 좀 사 가봐유.”

 텃밭에서 키운 파와 열무 몇단을 펴놓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대는 할머니의 애처로운 호객도 이곳에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부여장은 늘 그런 모습으로 시골 오일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사는 냄새를 질펀하게 풍겨낸다. 물론 상권이 인근 도시와 마트에 잠식되면서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장옥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장에 내다 팔기 위해 온종일 나물을 캐고 텃밭을 일구는 할머니들의 삶은 여전히 자연에 더 가깝다. 그 자연의 삶이 시골 장터를 살리는 최고의 경쟁력이자 희망이라는 것을 오늘도 장터에서 배운다.

 부여장 외에 충남 일대에서 열리는 장은 딸기·토마토·오이로 유명한 홍산장(2·7일), 쌀과 오이가 많은 임천장(4·9일), 사과·배·오이가 많은 은산장(1·6일), 소 방목지인 외산목장이 있는 외산장이 있다. 외산장은 5·10일에서 4·9일로 장날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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