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전남 구례 산동장



지리산 자락에 1956년 7월 개설
12월초~1월 산수유 거래로 성시


옛날 양철지붕 그대로…
신발집·곡물전·철물점 등 모두 한곳
생선가게만 두군데 있어

 


한 해의 시작과 끝이 가장 긴 나무가 산수유다. 이른 봄과 늦가을, 마치 물감을 뿌려 놓은 것 같은 전남 구례 산동마을에 가면 알 수 있다. 봄에는 산수유꽃 노란 물결, 가을에는 산수유 열매 붉은 물결이 흘러넘쳐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이 만든 황홀경에 흠뻑 취하게 만든다. 어떤 이는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고 했다.

 산 크고 물 크고 들도 넓은 지리산 자락의 구례 산동면. 이곳 원촌리 삼거리에서는 2일과 7일이 드는 날이면 산동장이 선다. 산동장은 1956년 7월에 개설됐다. 구례장에 비하면 한쪽 귀퉁이밖에 안 되는 조그만 장이지만 산수유 수매가 시작되면 산동면 58개 마을에서 새벽부터 산수유를 갖고 나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산동장은 이 지역에서는 ‘파싹장’이라고도 한다. ‘파싹(잠시 잠깐)’ 열렸다가 오전 10시가 넘으면 장이 파하기에 붙은 이름이다. 산동장은 12월 초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산수유 거래로 성시를 이룬다. 다른 지역에 비해 우수한 산수유 품질을 자랑하는 산동면 일대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로, 전국 산수유의 74%를 생산한다. 그래서 이즈음 장에 나온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또한 “어째, 산수유 많이 땄는가?”로 시작해 “많이 따소”로 끝난다.

 “나가 산수유 때문에 시집갔당께. 쬐깐해서부터 산수유씨를 입으로 깠어. 몸에 좋은 산수유씨를 입으로 발라내는 산동 처녀와 입 맞추고 살면 보약이 따로 없다며 순천에서 찾아왔었당께. 말도 마소. 어릴 때부터 핵교만 파하믄 책보 던져놓고 산수유 까는 것이 일이였어. 봐봐. 기계 나오기 전에는 입으로 씨를 발라냈으니 내 앞니가 많이 닳아부렀제. 아따, 요것 맛봐. 달달하고 시고 떫제라. 그랑께 약이 되제.”

 산수유를 갖고 장에 나온 장옥계 할머니(80)가 산수유 몇알을 입에 넣어주고는 아까 받은 목돈을 헤아리며 웃는다. 할머니의 발그레한 얼굴이 산수유보다 붉다.

 서너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 보낼 수 있어 산수유나무를 ‘대학나무’로 불렀다는 김덕선 할머니(76)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가 산세가 좋아서 그런지, 여그서 쪼금만 벗어나도 산동 산수유 같은 육질이 없다고들 해싸. 이 때깔 좀 봐봐. 곱지라? 내가 시집갈 때 볼랐던 연지색이랑께. 김장할 새도 없이 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고생바가지여. 씨 발라서 씻어야제, 쪄서 말려야제, 일이 겁나 많애. 그래도 큰돈 만진께 고상한 보람이 있제이.”

 지금은 달랑 산수유 한 자루를 갖고 나온 김씨 할머니. 시세가 궁금해서 나와봤단다. 천년 전 중국 산둥성(산동성)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올 때 산수유씨를 가져와 여기에 심었다고 해서 마을 이름이 ‘산동’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동 계척마을에는 천년 된 산수유나무가 있다. 산수유는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신선이 먹는 열매로 알려져 있다.

 산수유가 나오는 철이면 장터도 덩달아 활기를 띤다. 옛날 양철 지붕을 그대로 쓰고 있는 몇 채 안 되는 장옥 안에는 생선가게만 두 군데가 있을 뿐 신발집·주방잡화점·옷집·곡물전·채소전·건어물전 등이 모두 하나씩밖에 없다. 철물점도 단 한곳인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산동장은 산수유가 끝나야 장이 돼. 산수유 딸라고 사람들이 다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섣달이 넘어가야 슬슬 장에들 나오제.”

 임실철물집을 하고 있는 최영일씨(74)의 이야기다. 이 철물점에서 산수유씨 분리작업을 하기 때문에 가게는 경운기 가득 산수유를 싣고 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줄곧 산수유농사만 지었다는 오완식씨(65)는 어머니 배에서부터 산수유를 먹어서인지 병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산수유 105㎏을 싣고 나와 큰돈을 받았다면서도 얼굴이 밝지 않다. 사연을 물었더니 산수유를 몰래 따가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편히 잘 수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도둑들 손을 타 시방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요. 내 몸뚱이보다 더 정성 들여 키웠는데 그러면 안 되제라. 남의 것인디.”

 구례에는 산동장 외에 구례읍 봉동리에서 3일과 8일에 서는 구례장이 있다. 구례장은 섬진강 은어를 비롯해 지리산 자락의 기름진 땅에서 나오는 자연송이와 토종꿀, 표고, 능혈버섯(능이버섯)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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