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경남 진주 반성장
 
 
임진왜란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일반성면 등 5개면 중심 상권
3대째 50년 동안 내려오는
‘진주반성 전통한과’ 유명세
진주는 민속놀이 소싸움 발원지
전용경기장서 토요일마다 열려
 
 

 

“할매, 올해는 감 많이 열렸습니꺼? 내사 마 장에 내다 팔 게 없슴니더.”
 “지난 장에 안 보이드만 오늘은 뭐 갖고 가노?”

 잘 익은 <대봉>감 한자루를 손수레에 실은 강씨 할머니(75)와 팥 몇되 담긴 보자기를 손에 든 박순남씨(58)가 장터 가는 길에 나누는 이야기다. 박씨의 보자기에서는 바람과 햇볕을 실은 자연의 소리가 가만가만 흘러나온다. 강씨 할머니는 50여년 전 감을 이고 장에 가다 산기가 느껴져 집으로 달려와 아이를 낳았다며, 붉은 감만 보면 딸 생각이 난단다. 감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여 담아내는 할머니의 정이 사람들 사이로 붉게 익어간다.

 “벌써 제사장 보러 왔나?”

 경남 창원시 진전면 대정마을에 사는 조씨 할머니(76)가 장 끝머리에서 생선 파는 김얼리 할머니(83)를 찾아왔다가 들은 인사다. 김씨 할머니는 48년째 장사를 하다 보니 장에 나오는 사람 제삿날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다.

 “제사상에 올릴 생선들이 모두 내 손에서 나갔으니 내 죽으마 괄세는 안 할 기다. 그자?”

 겨울철 생선 노점에는 장작불이 피어올라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다. 지나가는 사람 한두명만 모여도 잊어버린 시간을 꺼내듯 옛 장터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반성장은 임진왜란 이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져 비탈길에 장이 섰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과 여러 보부상이 모여 필요한 물건들을 교환했던 일이며, 반성유치원 자리가 옛날 비탈장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넘실거리며 장작 타는 소리를 깨운다.

 오늘날 반성장은 경남 진주시 일반성면 창촌리에서 3일과 8일이 든 날에 열린다. 일반성·이반성·사봉·지수·진성면 등 5개 면의 중심 상권인 반성장은 따끈한 국밥이며 인근 주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비롯해 수산물·건어물·식료품·의류·잡화 등 없는 것이 없다.

 3대째 50년 동안 내려오고 있는 ‘진주반성 전통한과’는 쌀을 삭힌 조청을 이용해 전통 비법으로 만들어 반성장의 특산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격전을 벌인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넋을 기리기 위해 등을 밝히던 것이 축제로 이어졌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군사적인 목적이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등불을 띄웠다고 한다.

 “오늘 갈지 내일 갈지 오째 알겄노? 기냥 웃고 살다 가는 기라.”

 김월례 할머니(88)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가 북새통인 방앗간을 건너와 울려 퍼진다. ‘웃고 살다 가는’ 마음으로 살기 때문인지 그동안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할머니는, 오늘도 웃기 위해 나왔다며 소주 파티로 할머니들을 불러 모은다.

 “소싸움 하는 데 가이께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이 왔데. 그런 데나 가지, 장에 뭐 볼 거 있다고 사진을 찍어 쌌노.”

 대정에서 참기름 짜러 나왔다는 강꽃순 할머니(83)가 아는 척을 한다. 소싸움 이야기 좀 해달라는 소리에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왜놈들 밑에 살 때, 그때 분풀이로 소한테 싸움을 시킨 기라. 남강 백사장을 모래 문지(먼지)로 하얗게 뒤덮고 있으면 왜놈들이 겁이 나 나루를 못 건넜다 안 카나.”

 “말도 마소. 우리 영감쟁이는 소 출전시킬라고 인삼에다 배암까지 달여 믹였는데, 집에만 있던 소가 암내를 맡고 고마 암소를 올라타뿐 기라. 화가 난 영감쟁이가 퇴장된 소를 바로 도살장으로 보내부렸다 안 카나.”

 조선의 민속놀이인 소싸움은 진주가 발원지로, 지금은 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토요일마다 상설 경기가 열리고 있다.

 일본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혼이 살아 있는 것인가. 무질서하게 보이는 장터지만 옛 어르신들의 기백을 장터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스마트폰 문자로 대화하는 시대이지만 아직은 얼굴을 마주보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눌 수 있기에 오늘도 반성장에는 장날이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반성장 외에 진주에서 열리는 장은 봉곡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난장이 열려 많은 농산물이 쏟아져 나오는 진주장(2·7일), 딸기와 호박이 나오는 금곡장(1·6일), 파프리카가 특산물인 대곡장(1·6일), 단감·배·홍고추로 유명한 문산장(4·9일), 미천밤과 상황버섯, 배즙이 나오는 미천장(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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