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갈담장

 

“모처럼 파마하는 날”…장터내 미용실 ‘떠들썩’

 섬진강 상류지역 중
밤·약초 주산지인 강진면에 위치
2·7일 드는 날 열려
가을걷이 끝난 농산물 좌판
호두·은행·표고 등 널려

 

“시방도 이쁘단 소리가 좋은 것 보믄 늙어도 여자랑께. 아짐! 벌써 참기름 짜 갖고 오요.”  차영자 할머니(72)가 운영하는 미용실에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육젓 사러 왔는디 다 폴아부렀다고 허요.”  음력 6월에 잡히는 새우가 알이 차고 살이 튼실해 이 새우로 만든 육젓이 김치에 들어가야 개운한 맛이 난다, 전라도 김치는 청각이 들어가야 제맛이 난다는 등 김치 이야기 하나로도 미용실 안이 떠들썩하다. 30년째 미용실을 지키고 있는 차씨 할머니는 고구마 캤다고 가져오고, 호박 땄다고 가져오고, 김장했다고 가져오는 할머니들의 인정에 모두들 한식구처럼 지낸다며 자랑이다. 할머니들은 파마하느라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장을 보거나 물건을 팔기도 해 미용실은 장날이면 덩달아 바빠진다.

 “아따, 요즘은 교회서 호떡도 나눠주네이. 자네도 먹었는가?”   조순임 할머니(81)가 호떡을 갖고 미용실로 들어오다가 “오메! 젊은 손님도 왔능갑네. 여자는 미용실에 와야 이뻐지제. 파마하러 왔소?” 하고 말을 건넨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건네는 질펀한 사투리가 고향을 느끼게 한다.

 이곳은 전북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 갈담장터. 나가 보니 근처 교회에서 장에 나온 사람들을 위해 장터가 서는 버스터미널 앞에서 호떡과 대추차를 종이컵에 담아 나눠주고 있었다. 덕분에 시장 곳곳에서는 사람들이 종이컵을 손에 든 채 시장을 본다.

 장옥 너머 산에서 날아온 가을 햇살을 받으며 고들빼기 한단 펼쳐놓고 앉아 있는 채말순 할머니(79)의 순수한 웃음이 은행잎과 함께 땅 위에 떨어진다. 노란 은행잎을 건너다보던 할머니가 이야기한다.   “살 제 남원, 죽어 임실이란 말이 있어라우. 산과 산이 병풍 두른 것맨치로 여그 풍경이 좋응께 죽으면 모다 고향 땅에 묻어달라고 해쌌제.”

 삶과 죽음을 가까운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채씨 할머니가 사는 덕치면 천담리 구담마을은 섬진강 지류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섬진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갈담장에는 밤·호두·은행·표고와 각종 약초가 나오는데, 특히 약초와 밤은 강진면이 주산지라고 한다.

 오일장은 역시 지역경제의 모세혈관이자 문화센터 역할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안부를 묻는가 하면, 할머니들은 가을걷이 끝에 모아온 농산물을 펼쳐놓은 좌판을 어슬렁거리며 눈 도둑 하기에 여념들이 없다.

 “아따! 돈이 없어 못 사제, 없는 것이 없당께. 하래네(돼지감자) 다듬어 갖고 왔는디 이삐지라?”

 강진면 옥정리에서 돼지감자를 갖고 나온 곽순임 할머니(81)의 말이다. 당뇨에 좋고 체지방도 분해한다고 알려진 돼지감자를 이곳 사람들은 뻥튀기처럼 튀겨 물 끓여 먹는 데 쓰려고 사 간다고 한다. 옥처럼 맑고 찬 샘이 있다는 옥정리는 조선 중기에 이곳을 지나가던 한 스님이 머지않아 맑은 호수가 될 것이라고 한 예언이 적중한 곳이라고 한다. 1960년대에 옥정호 확장 공사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치즈의 발상지이며 호남좌도 필봉농악으로 유명한 임실(任實)은 ‘씨앗이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 치즈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우유를 숙성시켜 만드는 치즈는 우리나라의 된장이나 청국장과 비슷하다. 각 가정의 장맛이 다르듯 서양의 치즈 맛도 발효하기에 따라 색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임실이 고향인 김용택 시인은 “나도 아버지처럼 풀과 나무와 흙과 바람과 물과 햇빛으로 시를 쓰고, 그 시 속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장터에 가면 자연이 키워준 농작물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땅과 흙과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살아 있는 시’를 몸으로 쓰는 농민들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 아닐까.

 갈담장은 2일과 7일이 드는 날에 선다. 면(面)의 이름을 따면 강진장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갈담장이라고 부른다. 갈담장 외에 임실에서 열리는 장은 임실장(1·6일), 오수장(5·10일), 관촌장(5·10일), 신평장(3·8일)이 있다. 주로 나오는 것은 생활 필수품과 쌀·고추·채소류. 가을에는 감, 봄이면 산나물이 많이 나온다. 특산물은 운암면의 붕어, 청웅면의 ‘남양수시’ 감, 성수면의 송이, 삼계면의 콩잎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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