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도시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유성장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5일장이자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장이다. 그리고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춰,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유성이다. 유성장 주위에는 온천장과 계룡산 등의 관광지가 있는데다 교통마저 편리해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유성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온천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온천으로 많은 신혼부부들의 신혼여행 코스이기도 했다. 많은 유성온천에 대한 이야기 중 백제 때 이야기는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전장에서 다쳐 돌아온 아들을 위해 약을 구하러 돌아다니고 있을 때, 날개를 다친 학 한 마리가 뜨거운 물이 흐르는 곳에서 몸을 비비고는 곧바로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엄마는 약 대신 그 물을 떠다가 아들에게 발라주었는데, 신기하게도 상한 아들 몸의 상처들이 거짓말처럼 아물었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뜨거운 물이 나오는 유성’의 온천 효능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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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박순임(86세) 할머니 말로는 원래 유성장이 5일과 10일에서는 장이었는데, 장날마다 비가 내려 4일과 9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유성장을 찾아간 날도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박씨 할머니는 토종탱자와 모과를 펼쳐놓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이렇게 움직거려야 덜 추워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허지유, 보기 좋게 진열해 놓아야 더 잘 팔려유.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고 하지만 못생겨도 차 맹글어 먹으면 감기에 이보다 좋은 약이 없다우.

     

  • ” 비가 내려 따뜻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길가 난전에서 장사하는 할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모과를 촬영했더니 “할망구나 모과나 못난 것들만 찍는다.”며 옛이야기까지 들려주신다. “옛날에는 소시장도 있었다우.

    정월 보름날에는 줄다리기를 했고, 7, 8월 달에는 풍물패들이 난장에서 질펀하게 놀았지유~ 세월이 참 많은 걸 변하게 허는구먼유~ 지금도 옛날 그때 장터가 그리워유~.” 그 옛날 짚신을 신고, 등 짐을 지고, 밤새 걸어 장을 찾던 장꾼들이 사라진 대신 지금은 트럭에 갖가지 물건들을 싣고 다니며, 장 서는 곳을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들의 시대가 됐다. 기동력이 좋으니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정보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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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정지역 무주에서 왔다는 박해수(54세) 씨는 농사지은 호박을 싣고 와 트럭 위에서 탑을 쌓듯 정성을 들인다. 무너지면 다시 올리기를 반복해 보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하다. 수직으로 서 있는 호박을 보던 할아버지가 “그 호박 한번 잘 생겼네, 젤 큰 놈은 얼마나 한 대유?”, “말만 잘하면 꽁짜로도 줘요.” 박 씨의 거침없는 말솜씨에 사람들이 꼬여든다. “차가 있으니 먼 데 있는 장도 다녀유~ 충청도는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안 가는 곳이 없지유. 아무리 인심이 삭막하다 해두 아직 옛날 인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장도 많구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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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도 쉬지 않고 장터를 찾아다닌다는 박 씨의 너스레와 함께 난로 위에 얹어놓은 고구마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올라 지나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있기에, 고구마 한 쪽이라도 나눌 수 있는 정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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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장은 1916년 10월에 개설되어, 대전 유성구 장대동 일대에서 열린다. 대전은 물론 인근 지역인 옥천, 공주, 연기, 조치원, 금산, 논산, 무주에서까지 장을 보러온다. 장 규모가 크다 보니 장옥주변 공터와 골목까지 장이 들어선다. 장대동사무소 뒤편에는 가축장이 열리고, 그 안쪽으로 어류, 채소류, 의류, 식기류 좌판이 쭉 늘어서 있다. 유성의 특산물로는 구즉마을의 묵, 학하리 고구마, 세동 상추, 유성배가 유명하다.

     

  • 처음에는 곡식이 많이 거래되었으나 지금은 고추와 마늘이 더 잘 팔린다고 한다. 또한 유성장에서 맛볼 수 있는 먹거리로는 보리밥과 팥죽, 잔치국수가 있다. 선비가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유성(儒城)’은 우리나라의 중심지다. 1973년 5월부터 대덕연구단지가 자리를 잡으면서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곳에 모인 지성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광과 첨단과학 도시 유성의 글로벌화’란 기치를 내걸고, KAIST와 함께한 국제화거리를 유성의 명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국제화거리는 외국인과 내국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문화 장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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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도시’ 유성은 천혜의 온천을 내세워 해마다 ‘유성온천문화축제’도 연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어 온 유성온천은 1907년 유성에 정착하게 된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성온천을 찾는 절반 이상의 손님이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었다고 한다. 그 후 대전역이 생기고,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각지의 우리나라 사람들도 찾아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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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에는 비가 오는 날씨 탓인지 손님들이 적었다. 장꾼들만 난로 옆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장날만 되면 교통이 너무 번잡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복합터미널쇼핑몰까지 생긴다고 혀서, 모두들 걱정이 많아유~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장날이면 구암역 주변과 유성농협, 유성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도로가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여기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선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시골장터에 오면 특색 있는 물건들은 무엇이든 다 구입할 수 있어야 된다는 등, 장사 안 된다고 아무거나 갖다 팔면 못쓴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자 장씨(52세)가 한마디 거든다. “장사꾼끼리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뱁인디, 좀 팔린다 하면 너도나도 갖고 나오니께 문제지, 눈에 돈만 보이고 상도덕이 없어지고 있구먼유~” 유성장옥 안에서는 지난 8월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참 조은기름’ 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하고 있다.
    유성장에서 거래되는 참깨와 들깨들을 모아 압착하는 방법으로 기름을 짜서 시세보다 싸게 판다고 한다. 유성시장 안의 백세두부집에서 파는 어르신들이 짠 참기름과 들기름에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할머니들의 손맛이 더해져 고소한 냄새를 장터에 풍기며 시장의 건강한 먹거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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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옷을 입고 대파와 호박순을 팔고 있는 오명근(87세) 할아버지는 공주에서 오셨다. 직접 대파농사를 지어 싸게 팔고 있지만 사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 씨 할아버지는 할멈하고 같이 장사한 지가 50년이 되어간다고 한다.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할망구 잔소리 듣기 싫어 떨어져 장사해유. 이쁜 여자 손님에게 덤을 줘도 잔소리 안 하니 좋구먼유~ 자~ 대파 드려유~ 복 받으려고 싸게 파니 한 단씩 사가유~.” 

    • 멀리 떨어져 장사하고 있는 신현분(81세) 할머니는 장날마다 딸과 외손녀를 만나 온천하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고 자랑한다. 3대가 장날마다 만나 온 지도 5년째란다. 한때 유성장에서 곡물 장사를 했다는 신 씨 할머니는 “세상 모든 게 변해도 장바닥만은 그대로 있구먼유~.” 할머니 눈에는 옛날 장사하던 모습이나 물건은 물론 인심마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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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터에 가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하찮은 이야기에도 같이 웃고 같이 걱정해주는 정겨운 이웃이 많아 좋다. 장터에는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와 삶의 자취까지 함께 진열되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옷을 바꿔 입는 자연을 마중하듯 사람들은 장터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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