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경북 울진 흥부장

“꼽꼽하게 말린 간재미 사무봐라! 디게 맛있데이~”


바다와 경계 짓는 장터 담벼락엔
바닷가 풍경 그려져 있고
장대 위에는 손질한 생선들이…
과거 우시장·어물전으로 유명
죽변항 개설된후 쇠퇴 시작
난로 주변 장꾼들 밥 나눠 먹는 모습
사람 사는 정은 여전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 /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이 노래는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 춘양장까지 130리 길인 십이령 고개를 넘어가면서 선질꾼(지게꾼)들이 부른 노래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보부상이 뜸해지자 그 역할을 대신한 행상이 바로 선질꾼이다. 선질꾼은 울진 흥부장에서 미역·소금·어물 등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사다가 등에 지고 굽이굽이 먼 고갯길을 걸어 봉화 춘양장까지 가, 거기서 내륙의 산물인 곡식이나 의류·잡화 등과 교환했다고 한다.

 십이령은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흥부장에서 하당리를 지나고 두천리 말래마을을 거쳐 크고 작은 열두 고개를 넘어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춘양장으로 가는 ‘미역과 소금의 길’이다. 민초들의 애환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이 길에서 선질꾼들은 들꽃을 꺾어 혼인도 하고, 주막에서는 아이도 낳았다고 한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무장공비가 출몰하고 다른 교통로가 생기면서 발길이 끊어졌던 것을, 2010년 7월부터 울진군에서 트레킹 코스로 개통한 것이다.

 초창기의 흥부장은 3일과 8일이 드는 날에 섰으나 1997년 부구리로 이전하면서 1·6일 장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경북 최북단에 위치한 흥부장은 수협 맞은편에 들어서는데, 뒤편으로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풍경과 함께 원자력발전소가 내려다보인다.

 흥부장을 찾은 날, 바람막이로 서서 바다와 경계를 짓는 장터 담벼락에는 바닷가 풍경이 그려져 있고, 장대 위에는 손질한 생선들이 걸려 햇빛과 노닐고 있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바다 그림에서는 고기떼들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몰려올 것만 같고, 한가한 어촌 풍경의 그림에서는 고기잡이 간 남편을 기다리며 끓인 된장국 냄새가 그윽하게 풍기는 밥상이 보이는 것 같다.

 해가 어스름하게 고개를 내밀자 장 풍경들이 일제히 일어나 제 모습을 드러낸다. 모자와 목도리로 둘둘 감아 눈만 내놓은 할머니가 마스크를 벗더니 “고포미역 먹어봤능교? 우리 동네 바닷가에서 나온 긴데, 옛날에는 임금한테도 바쳤다카데예” 한다. 나곡6리 고포마을에서 미역을 갖고 나온 박순심 할머니(73)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고포미역은 수심이 얕은 암초에서 자연적으로 성장한 미역을 채취한 것으로,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손으로 간재미를 정리하던 김연옥 할머니(75)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죽변에서 아침 6시부터 나와 간재미를 정리하고 있다는 김씨 할머니에게 손 시려운데 장갑이라도 끼고 하시라고 말을 붙이자 할머니가 씩씩하게 대답한다.

 “내사 늙어 그런지 추운 걸 잘 모르고 산다 아이가. 사시사철 이 간재미만 파는데, 꼽꼽하게 말라 디게 맛있데이! 니도 한번 사무봐라.”

 검은 비닐봉지로 둘둘 말아놓은 발로 뒤뚱거리며 걷는 김씨 할머니의 모습이 마치 곡예사 같다.

 겨울철 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추위를 이겨낸다. 큰 깡통 안에 촛불 두어 개 켜놓고 의자로 사용하기도 하고, 갈탄을 지핀 화롯불 위에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은 장터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장작불을 지피거나 난로가 있는 곳에는 주변 장꾼들이 모여들게 마련인데, 서로 밥을 지어 나누어 먹는 넉넉한 풍경에서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한다.

 우시장과 어물전이 유명해 울진에서 가장 컸던 흥부장은 죽변항이 개설되고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옛 보부상들의 자취나 흔적이 느껴지는 길 위에서 여전히 장은 열리고 있다.

 흥부장 외에 울진에 서는 장은 생토미발아쌀·고포미역·송이·대게·오징어·은멸치 등이 나오는 울진장(2·7일), 죽변항이 있는 죽변장(3·8일), 후포항과 대게축제로 유명한 후포장(3·8일), 왕피천하늘조청·매화장수쌀엿·야콘즙·산골솔잎이 나오는 매화장(4·9일), 망양갯바위로 유명한 기성장(1·6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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