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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 좋은 날 담벼락에 기대어 들판의 나락 익어가는 소리에 마음을 살찌웠던 곳, 언제나 눈앞에 아른거리는 고향 풍경이다. 그리고 5일마다 열렸던 시골장의 정겨움은 소소한 일상에서 만나는 그리움이다. 바쁜 일상에서 고향 찾기가 힘들다면 서울 근교에 있는 성남 모란장에 가보자. 지하철 8호선을 타고 모란역 5번 출구로 향하면 그 유명한 모란장이 나온다. 북녘땅에 홀어머니를 두고 온 아들(김창숙)이 고향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모란이란 지명을 붙여 모란장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 1962년, 황무지였던 지금의 모란시장 주변을 개간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역민들의 생활필수품을 조달하는 5일장도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성남대로변에 무질서하게 난립했던 상인들을 모아 지금의 자리인 대원천복개지 위로 옮긴 것은 1990년 9월 무렵이다. 3천 평이 넘는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4일과 9일이 들어간날이면 모란장이 열린다. 10만여 명의 손님들과 팔도 장돌뱅이들이 모여드는 모란장은,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5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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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부터 도심 속의 시골장터라는 입소문이 전해지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장터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과 팔려는 사람들로 온종일 북새통을 이룬다. 길 건너 건물옥상에서 내려다본 형형색색 파라솔에 뒤덮인 풍경은 지구촌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거대한 축제장같다. 오색 파라솔 숲 속에는 만병통치약에서부터 시작해 화초와 갖가지 곡식이나 생선, 그리고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산과 들, 땅이나 바다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들이 나와 사람들과 어우러진다. 지하철입구, 혹은 버스 정류장, 골목 한 귀퉁이마다 보자기만 펼쳐놓으면 곧바로 장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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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푸대를 끌고 가는 김경식(66세)씨를 불러 세워 주위 장꾼들이 짓궂은 농을 걸지만 농속에는 인정이 묻어있다. “저 사람 첨 볼 때는 코를 질질 흘리고 비실비실 웃기만 해 어디가 모자란 사람인가 했당께”, “그래도 하루에 10만 원이나 벌 때도 있다카데예”, “키가 멀대 같아도 마음이 착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불러주제. 그란디 혼자 돈 벌어서 엇다 쓰까이?” 난로 가에 모인 장꾼들이 돌아가며 김씨 이야기를 해댄다. 노숙자생활을 하던 끝에 모란장에 들어와 수레로 물건을 날라주며 살아가고 있다는 김씨는 할머니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란다. “장날 되면 짐보따리 옮겨주고 벌어들이는 돈이 5만 원이 넘어요.” 사람 좋은 웃음을 베어 문 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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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녘의 모란장은 추위와 싸우는 한 판 전쟁이다. 이른 아침부터 석유난로 위에서는 밥이 데워지고 찌개가 끓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피어오르는 장작불도 덩달아 바쁘다. 해가 뜨기 전, 푸르스름한 색깔이 장터에 깔리자 여인네들의 밥먹는 소리와, 화롯불 가에 둘러서서 날리는 장정들의 잡담들이 어우러져 훈훈한 웃음소리를 만들어 낸다. 새벽 4시부터 나와 준비 했다는 양씨(75세)가 열어놓은 2평 남짓한 난장에서 녹두전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양씨가 녹두전을 뒤집자 젓가락을 들고 기다리던 박씨(37세)가 한마디 건넨다. “고향 생각도 나고, 일이 안 풀리면 장에 나오죠. 연로하신 분들 일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절로 생기거든요. 이 맛에 장에 나옵니다.”

     

  • 때때로 장터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도 만나고, 뽕짝뽕짝 박자를 맞추는 유행가 가사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장돌뱅이들도 만난다. 이곳 저곳 돌고 도는 장꾼들의 인생이야말로 길 위에 펼쳐진 난장의 삶이다. 경기도 5일장을 돌고 도는 노씨(65세)는 각종 약재를 팔며 장돌뱅이 생활을 해온 지가 15년째라고 한다. “장에 오는 사람들은 됫박에 담긴 것을 좋아하는데, 장에서는 저울만 사용하라내요. 장에서까지 그람수를 재서 팔다가 그나마 남은 정(情)까지 없어질까 걱정됩니다. 15년 동안 내 몸뚱이처럼 지니고 다녔는데 장에서 못쓰게 한다고 버리면 벌 받지요. 이 됫박이 먹고 살게 해주었는데….” 박스에 담긴 됫박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리는 노씨의 볼멘소리가 길 위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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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란장은 IT산업의 중심인 성남시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말을 맞은 장날이 되면, 남한산성을 거쳐 모란장을 찾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역사 속의 자연을 느끼는 남한산성 성곽 길을 둘러, 모란장의 먹거리 촌에서 음식도 즐기고 물건도 산다는 것이다. 모란시장 입구에는 많은 종류의 화분들이 꽃을 피워 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그 뒤로는 자루에 담은 곡물들이 제각각 이름표를 달고 줄지어 서있다. 곡물전에서 화롯불에 손을 녹이고 있는 이씨(75세)할머니는 새벽 5시부터 나와 전을 폈다고 한다. 추운데 일찍 나오셨다며 인사를 건넸더니 “내가 여서 장사한지가 35년째나되요, 내 고향도 잊어 버리것당께, 새끼덜 갈킨다고 나오다본께 꽃색시가 할매가 되뿌렸제. 이 검정콩은 고향땅에서 올라 온 것이여.” 농사는 땅심도 좋아야 하지만 부지런해야 한다는 이씨 할머니는 장사 또한 부지런해야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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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초전 앞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약초이름과 그 효능을 읽어보는 박씨(83세) 노인이 삼매경에 빠져있다. 장터에 갈 때마다 우리네 인간들이 먹고 사는 먹거리가 참으로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물전에서는 제각각 모양을 갖춘 생선들이 누워서 사람들을 올려다본다.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른다는 물메기가 왔어요. 물메기...” 라고 외쳐대는 김씨(53세)는 새벽에 동해 뱃사람한테 직접 받아왔다는 말로 지나가는 여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빨간 고무대야 안에서 가물치와 미꾸라지, 메기, 자라, 잉어 등이 팔딱거려 끈끈한 생명력이 그대로 전달된다. 또한 의류와 신발, 잡화 등, 잠시 백화점이 외출 나온 풍경처럼 없는 것이 없는 모란장은, 넓은데도 장보기가 무척 편리하다. 채소면 채소, 어물전이면 어물 등 모든 것이 품목별로 나누어져 있다. 전국에서 올라온 싱싱하고 질 좋은 먹거리로 오후 1시쯤 되면 사람들로 절정을 이룬다. 특히 김장철이 되면 수도권 고추시세를 판가름 할 정도로 도매와 소매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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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소한 참깨 냄새가 진동하는 기름골목에 들어서면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기름집들이 즐비하다. 42곳이나 된다는 기름집에서는 참기름과 들기름은 기본이고 산초와 홍화씨 기름까지, 기름이라는 기름은 다 모여 있다. 오래된 단골들도 많아 장날이 되면 기름 사러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30년째 단골집에서만 기름을 산다는 허씨(76세) 할머니는 설날에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들기름을 사러 나왔다고 한다. 오랫동안 이웃하며 장사해온 이들은 서로 정이 들어 의형제를 맺거나 사돈지간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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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터에서 사물들을 관찰하다 보면 주인의 손길에 의해 상품이 변해가는 모습들이 멋진 데커레이션을 연상케 한다. 사람들의 눈길을 받을 수 있도록 보기 좋게 상품을 나열하는 모양새가 예술가들의 설치미술과 다를 게 없다.
      손자들 사탕이나 공책을 사주기 위해 닭장에 있는 달걀을 짚으로 엮어 장으로 향하던 어르신의 모습은 어렸을 적 보았던 눈익은 풍경이다. 충남 조치원에서 손자 방학 끝나면 책이라도 한 권 사주고 싶어 농사지은 깨와 짚으로 계란까지 엮어서 온 권씨(78세) 할아버지를 만났다. 곡물전을 기웃거리며 배낭 속의 깨를 보여주고 흥정을 붙여보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깨알 속에는 가장 먼저 햇빛을 받은 놈도 있을 것이고, 한풀이한 여인네 작대기에 혼쭐난 놈들도 섞여 있을 것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오이 하나 가지 하나도 자식처럼 정을 주면서 키운다. 그렇게 노부부가 정을 담아 키운 참깨를 짊어지고 나왔으나 할아버지 등짝에 들러붙어 내려올 줄을 모른다. 한 푼이래도 더 받으려는 권씨 할아버지의 애잔한 모습이 카메라 파인더에서 영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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