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또한 장터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장터에서 만나보는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장이 쇠락해 가는데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장날이면 장터에 나와 삶의 현장인 장터를 지켜내고 있었다. 치열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부모의 삶을 자식들에게 되 물림하지 않으려고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민들은 통 크게 밭 한 뙈기를 장터로 옮겨와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장터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는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터 골목 귀퉁이에서 홍시감 몇 개 소쿠리에 담아, 고루내리는 햇빛을 등에 이고 앉아있는 할머니얼굴은, 고향마을 입구에 600년이나 묵은 당산나무평상에서, 볼우물이 생기도록 담뱃대를 빨던 옆집 할머니모습이었다. 자연과 흙과 나무에서 흘러나온 푸르디푸른 이야기가 숨어있는 얼굴을 찾은 것이다. 그 모습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았다. 사람이 그리워서 호박 한덩이 갖고나와 온종일 바람과 공간과 햇빛과 놀아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 장터에 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내가 찾고자했던 얼굴이었고, 여기에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이 솟구치게 일어났다. 

  
사진을 처음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이다. 그 당시 장날은 잔치가 열리는 날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장터에 가면 어렸을 적 동무들과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공기놀이를 하던 고향집 마당처럼 편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장에 나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함께 놀고, 시골마을까지 따라가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장터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았다. 이 얼굴들은 시간을 뒤로 돌려 타임머신을 타고 보여 지는 향수와, 어머니 고향 같은 연민의 정보다 더 따뜻한 사랑이 그곳에 있었다. 어느 할머니 얼굴에서는 아쟁 소리처럼 심금을 울리고, 또 다른 얼굴에서는 남도의 육자배기처럼 정겨움이 흘러넘쳤다. 그런데 시골장터에도 서서히 문화가 바뀌기 시작해, 장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이, 물건과 복장이 바뀌어 갔다. 모든 것이 변하는 걸 지켜보며 사진이 시간성을 갖는다는 말이 점점 실감 있게 다가왔다. 서둘러 우리나라 장터를 모두 기록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의 장터를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540여 곳의 전국에 있는 오일장을 기록했으나 아직도 수 십 개의 장터가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대상을 보는 관점이나 접근하는 방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보부상에 대한 사료를 찾아가면서 포괄적인 인문학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장을 지키는 개개인의 사람들로 집중되었다. 그 사람을 모르면 그 사람 마음을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찍히는 사람과의 소통에 관점을 두어 인터뷰를 시작한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그 사람과 똑같은 위치에서 앵글을 잡아 평면적인 사진만을 고집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따뜻한 인간애이기 때문이다. 내 사진의 시작은 장터였다. 그래서 그 끝 또한 장터가 될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필생의 작업이다.

  
그리고 벙어리로 남는 사진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혼이 담긴, 말할 수 있는 사진을 만드는 것이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사진이다. 그곳 장터에 가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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