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정영신의 장터순례(27)충북 괴산장

 


뻥튀기집 앞 순서 기다리는 할머니들 수다 삼매경

600년 전통자랑…충북서 가장 커
지역에서 직접 키운 농산물만 파는
토요일 ‘할머니 장터’ 눈길

 

난장 끝머리 뻥튀기집 앞에 늘어선 줄. 할머니들이 추위와 지루함도 잊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위 사진)

2004년 괴산장을 방문했을때 본 뻥튀기 기계.(중간 사진)

장터 체험에 나선 어린이들로 순식간에 화사해진 괴산장.(아래 사진)

 

 

 

 “남들이 도와줘 장사헌 것이지 혼자 한 것이 아니구먼유.”

 55년 동안 괴산장터를 지키고 있는 백명희 할머니(88)의 철물점은 지금 3대가 함께 하고 있다. 스물다섯살에 혼자되어 장삿길로 들어섰다는 백씨 할머니가 말을 잇는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지유? 장사는 때로 밑지기도 허구먼유. 남자들 상대하면서 안 싸우려면 밑지고도 팔아야 해유. 나중엔 단골이 되지만유.”

 새마을운동으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던 시절, ‘와랑와랑’ 돌아간다고 해 ‘와랑기계’라 부르던 탈곡기와 ‘새끼 꼬는 기계’인 제승기(=새끼틀)는 사람들이 줄 서서 사갈 만큼 잘 팔렸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지만 1970년대 무렵에는 농촌에서 가장 필요한 기계였다고 한다.

 “그땐 100원만 있으면 오징어 10마리를 살 수 있는 시절이었어유. 돈은 귀했지만 서로 정도 많고, 사람 맘들이 참 순했지유. 지금 사람들은 무조건 소리부터 내지르고 참질 않네유. 사람들 맘은 늘 그대로 있어야 되는데 세월 따라 자꾸 변해가는구먼유.”

 철물점이 사랑방 역할까지 하는지 이야기하는 사이에도 장에 나온 사람들이 백씨 할머니를 찾아왔다. 불정면에서 온 김씨(68)는 인사차 들렀다고 한다.

 “아버지 때부터 단골집이어유. 이 집 어르신을 보고 가야 장에 온 것 같구먼유.”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을 장터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6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괴산장은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선다. 3일과 8일이면 읍내 시계탑 로터리를 지나 도로 양쪽으로 길게 노점이 늘어선다. 도로를 경계로 장옥이 설치된 곳은 상설시장이고, 그 반대쪽이 오일마다 한번씩 펼쳐지는 난장이다. 충북에서 가장 크다는 장답게 나오는 물건 종류만도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다. 산처럼 쌓아놓은 과일이며 채소와 수산물, 잡화 등이 사람들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종류별로 과자를 잔뜩 바구니에 담아놓고선 “맛보는 건 공짜”라고 외쳐대는 장꾼의 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든다. 입구에 펼쳐진 가축전은 장터 체험에 나선 어린이들로 소란스럽다. 어린이들이 강아지와 노는 것을 보니 마치 작은 동물원에 온 것 같다. 아이들이 철망 안에 오밀조밀 드러누운 강아지를 만지자 강아지가 부스스 일어나 귀를 쫑긋 세운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짓는 말간 웃음이 햇살에 퍼져 나간다.

 난장 끝머리 뻥튀기집 앞에는 이름표를 단 깡통과 올망졸망한 보자기들이 50여개나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농번기가 끝난 겨울 장터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뻥튀기집이 가장 바쁘다. 튀기는 곡물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뻥튀기가 노인들의 ‘참살이(웰빙) 주전부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도 아랑곳 않고 이웃 마을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기삼녀 할머니(78)를 만났다. 할머니는 마을 자랑을 해달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 신이 나 대답한다.

 “우리 동네 입구에 80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있구먼유. 그 느티나무 덕분에 가뭄도 없고 큰물도 들지 않아 모두가 잘 살고 있네유.”

 괴산은 영험한 느티나무가 유난히 많은 고을이다. 느티나무를 뜻하는 ‘괴(槐)’자를 써 괴산(槐山)이라 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전해지고 있다.

 괴산장은 3년 전부터 3~11월이면 토요일마다 ‘할머니 장터’를 열고 있다. 괴산에 사는 할머니들이 직접 농사지은 우리 농산물만 파는 장이다. 토요일장에 나온다는 신현자 할머니(77)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씀바귀를 비롯한 각종 나물, 한여름이면 대학찰옥수수와 배추 모종, 가을이 되면 곡물과 콩이 많이 나온다며 자랑을 한다.

최근 괴산장은 ‘산막이시장’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산막이 옛길’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이름을 고쳤다고 하는데, 상인들은 아직도 ‘괴산장’이라고들 부른다. 옆에서 장돌뱅이 인생만 20여년이라는 박씨(59)가 한마디 던진다.

 “내용이 바뀌어야 되지유, 이름만 바뀌면 어쩐대유.”

 괴산장 외에 괴산에서 열리는 장은 사과가 많이 나오는 연풍장(2·7일), 목도막걸리를 생산하는 목도장(4·9일), 전국 으뜸의 고추 산지로 유명한 청천면에서 열리는 청천장(5·10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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