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순례(28)강원 고성 거진장

 

거진항서 10분 거리…“싱싱한 도치·대게 팔아요”
인근엔 북녘 볼수있는 통일전망대
덩달아 관광객 사시사철 붐벼
상인들 새벽녘 항구서 작업한 해산물
장터로 건너와 내다 팔아

 


 강원 고성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남북교류 1번지’로 불리며 활기가 넘쳤었다. 군 전체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데다 절반가량은 군사지역이지만, 북녘이 그만큼 가까운 까닭에 금강산 관광의 통로 구실을 했던 것이다.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한때 주춤했던 고성이 요즘 동해안 관광명소로 이름을 얻고 있다. 금강산이 보이는 현내면의 통일전망대는 사시사철 실향민들과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인지라 거진장도 덩달아 잔칫집처럼 웅성댄다.

 “고향과 가장 가까운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60년이 넘었수다. 처녀 때 피란와서 이젠 할망구가 다 됐어. 살아생전 고향 땅이나 한번 밟아보고 죽는 게 소원이드래요.”

 행여 바람에 실린 고향 냄새라도 맡을 수 있을까 해 높은 지대에 집을 마련했다는 김동선 할머니(86)의 오래된 습관 하나는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60년째 생선을 말려 거진장에 내다 팔고 있다. 처음에는 생선을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아다니며 장사했다고 한다.

 거진장은 고성군 거진읍 거진리에서 1·6일에 열린다. 장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거진항이 나온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명태잡이로 유명해 ‘명태의 고향’으로도 불렸다. 명태가 귀해진 지금은 그 빈 자리를 다른 생선이 넘보고 있다.

 요즘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겨울 생선 중 하나가 도치다. 도치는 아귀·물메기와 함께 ‘못난이 삼형제’로 꼽힐 만큼 못생겼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공처럼 웅크려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데, 이곳 사람들은 ‘심퉁이’란 별명으로 부르며 즐겨 먹는다. 암컷은 시큼한 김치를 넣어 알탕으로 요리하고, 수컷은 데쳐서 숙회로 먹는다고 한다.

 거진항에서 도치를 고르던 최씨 할머니(78)가 죽왕면에 있는 왕골마을 자랑을 한다.

 “왕골마실에 한번 가봐. 집집마다 다른 항아리굴뚝이 있어 구경꾼들이 많아.”

 왕골마을은 양근 함씨와 강릉 최씨의 집성촌으로, 북방식 전통한옥의 원형과 함께 600여년의 세월을 지켜오고 있다. 집마다 다르게 쌓은 굴뚝 위에 항아리가 얹힌 것이 특징이다.

 해가 떠오르는 거진항의 아침은 너무도 정겹다. 잡은 생선을 배에서 내리고 경매에 붙이느라 아수라장이지만, 치열한 삶이 아름다운 시(詩)로 재탄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새도 마찬가지다. 먼저 날아든 갈매기 한 마리가 신호를 보냈는지 갈매기들이 순식간에 손수레 옆으로 날아든다. 도치를 사러 나왔다는 박순덕 할머니(85)는 “먹이 찾아 갈매기들이 날아드는 것 보믄 사람이나 똑같은 기래요. 나도 묵고 살라고 반평생 동안 죽자 살자 이곳에 나오니께” 하며 웃는다.

 대게 작업이 한창인 곳에서 일손 빠른 외국인을 만났다. 인도네시아에서 1년 전에 왔다는 라스니까씨(38)는 한국말도 드문드문 잘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었다.

 “한국 사람들 참 친절하게 잘해 줍니다. 그렇지만 두고 온 가족이 보고 싶어 바다를 향해 소리도 질러보고, 고향 노래도 불러 본답니다.”

 말끝을 흐리는 라스니까씨 어깨 위로 아침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거진항과 거진장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다. 거진항에서 대게 작업을 끝낸 허씨 할머니(70)가 손수레 가득 대게를 싣고 거진장으로 건너왔다. 새벽녘에는 거진항에서 대게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장이 서면 장터로 와 대게를 내다 판다.

 허씨 할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거진항과 거진장을 오가며 살고 있단다. 대게 색깔에 맞추었는지 할머니의 옷과 장화 모두 붉은색이다. 젊어 보인다고 했더니 할머니 입이 귀에 걸린다. “방금 잡은 대게가 만원에 일곱 마리!” 하는 목소리도 쩌렁쩌렁 울린다. 평생 일손을 놓은 적이 없다는 할머니는 즐겁게 일하는 것이 젊게 사는 비결이라며 멋진 포즈로 한마디 건넨다.

 “빨간 옷 입고 빨간 대게 파는 할머이 잊지 말래요.”

 고성에는 이 밖에도 진부령 용대리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간성읍에 서는 간성장(2·7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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