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대지가 잠든 겨울의 새벽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 새벽 4시 무렵, 어둠을 뚫고 한 대의 트럭이 들어와 멈춘다. 동시에 또 다른 트럭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트럭 천막 사이로 간간히 들리는 소 울음소리가 잠든 대지를 깨우자 새벽이 일어날 채비를 서두른다. 소를 실은 차량들의 전조등이 어슴푸레한 새벽을 밝히는 가운데, 구슬픈 소 울음소리가 허허로운 공간을 메운다. 우시장이 개장하는 새벽 6시 무렵에야 소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소와, 끌어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과의 사투가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6시부터 경매에 들어가 8시 30분이면 완전히 끝나는 우시장의 풍경은 서글픈 노예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을 올려보며 슬피 울어대는 어미 잃은 송아지의 애잔한 울음에 마음까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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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우시장은 1977년부터 홍천읍 갈마곡리 일대에 형성됐으나 2005년경 주거지역으로 바뀌면서 지금의 북방면 하화계리로 옮겼다. 인근에 위치한 횡성이나 양양의 우시장보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우시장이다. 춘천이나 인제, 철원, 양구, 고성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홍천우시장을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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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천은 강원도 영서 내륙의 중앙에 자리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기에 동쪽과 서쪽의 말과 기후도 다르다고 한다. 동쪽 사람들은 거센 영동지방 사투리를 쓰지만, 서쪽 사람들은 경기도 말씨에 더 가깝다. 2000년대부터 홍천 전체를 대표하는 ‘늘푸른 홍천 한우’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새롭게 탄생했다. 가족처럼 키우는 한우는 외국 소에 비해 올레인산이 많아 구수한 맛이 난다고 한다. 소의 사육기간은 거세우가 30개월이고, 일반 소는 2년 정도. 치솟는 사료 값과 수입쇠고기를 감당할 수 없는 농민들의 근심이 소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울린다.

     

     

     

     

  • 옛날부터 농가의 소는 논밭 다음으로 큰 재산이었다. 지금도 산비탈에 있는 밭이나 경운기가 들어가지 않는 땅은 소가 끄는 쟁기를 이용한다. 소는 힘든 일을 척척 해내는 든든한 일꾼이기에, 집안의 머슴처럼 사람대접 받으며 한 식구로 살았다. 남의 논밭을 가는 품앗이로 돈을 벌어주기도 하고, 소를 팔아 도시에 공부하러 간 자식들 등록금을 해결하는 등 농촌에서의 재산목록 1호였다.
    “내 자식도 이렇게는 안 키웠어.” 소 팔러 나온 장 씨(76세)는 “방 옆 헛간에 키우며 끼니도 먼저 챙겨줄 정도로 귀하게 여겼으나, 사료값 때문에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소를 내다 팔려니 가슴이 아프다”며 한숨을 내쉰다.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중개인의 입만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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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시장 앞에 피워놓은 장작불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모두들 소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이한경(84세) 할아버지는 14마리나 되는 많은 소를 몰고 나왔단다. 직접 소를 키운다는 할아버지는 젊은이와 힘을 겨루어도 이길 수 있다며 힘자랑에 열을 올린다. 일할 수 있는 자신감이 큰 힘이 된다며, 정직하지 않은 사람과는 상대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와 함께 살아서인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진 이 씨 할아버지는 점점 목소리도 소 울음을 닮아간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새끼에 대한 애정은 사람 못지않다며 말을 이어간다. “송아지가 팔려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미 소가 밥도 안 먹고, 밤낮으로 울어대서 차마 볼 수가 없어. 소가 밥을 안 먹으니, 내 입에 밥숟가락 넣는 것도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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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소가 좋은 소냐는 물음에 이 씨 할아버지는 “콧등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어야 하는데, 콧등이 말라 있으면 건강한 소로 안 본다”고 답했다. 눈에는 눈곱이 없어야 하고, 배는 늘어지지 않아야 하며, 소털 또한 부드럽고 많아야 한다. 그리고 머리가 너무 큰 송아지는 잘 크지 않는다며 덧붙이는 얘기가 재미있다. “소도 각선미가 있어야 허요. 앞다리 무릎 아래가 가늘어야 좋은 소 인겨.” 사계절 중 소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계절이 언제냐는 물음에는 귀신도 모른다면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때 쯤 되면 소 값이 다소 내린단다. 또한 소 볼 줄 안다고 남의 소에 대해 한마디 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다고 한다. 말 한마디에 몇 십만 원이 왔다 갔다 하기에 우시장에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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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선에서 소금(소값)이나 알아 볼 겸 나왔다는 최종대(59세) 씨는 “소털 셀 수 없듯이, 소 값도 알 수 없드래요. 소 살 사람은 소 콧구멍과 숨소리까지 따지는 기래요.”라며 소를 살 때 뿔이 앞으로 나왔는지, 뒤로 났는지, 옆으로 퍼졌는지까지 살핀다고 한다. 소의 좋고 나쁨을 알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살펴보는 수밖에 없단다. 이 소나 저 소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소 값의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 홍천우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은 경매가 시작되고부터다. 피를 말리는 경매를 없애고 직거래를 터야만 농민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남정네들의 푸념이 새벽공기보다 무겁게 내려앉는다. 언젠가는 소가 아닌 사람 마음도 경매할 날이 올 것이라는 농민들의 원망이 소 울음소리와 함께 허공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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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날에는 소를 육용으로 키우는 것보다 일을 시키기 위해 키웠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의 운명과 역할까지 바뀌어, 일하는 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소도 사람의 주민등록증처럼 등록시켜 귀표를 하나씩 달아야 하는데, 귀표 없는 소는 팔 수도 잡을 수도 없단다. 소는 암소와 황소, 송아지와 임신한 소로 분류하여 체중에 따라 가격을 정하지만, 시세에 따라 매번 다르다. 한쪽에서는 도축장으로 갈 덩치 큰 소들이 저울에 올랐다 빠져나가기도 한다. 소가 새 주인을 따라가지 않으려고 뒷걸음치며 뻗치다 힘에 부쳐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는 순간, 그 순한 눈망울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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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시장 한쪽에는 밭갈이할 소를 보러 나왔다는 나병연(53세) 씨가 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 씨의 밭은 모두 산비탈에 있어 아직도 소 두 마리로 밭갈이를 하는데, 밭갈이 소는 어려서부터 코뚜레를 꿰어 길을 잘 들여야 쟁기를 끌 수가 있단다. 나 씨가 밭갈이 소를 고르자 즉석에서 품평회가 벌어진다. “엉덩이가 암팡진 것이 쟁기질은 잘하겠어, 한 달만 길들이면 되겠구먼.” 소를 평가할 때는 먼저 소의 골격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살피고, 뿔의 모양과 소 울음소리까지 들어본다고 한다. 그리고 빼놓지 않고 살펴야 하는 것은, 소도 주인을 닮아가기에 주인의 성격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 장터에 가면 마치 과거를 먹고 사는 것만 같다. 특히 홍천우시장에서 유명한 소몰이꾼 이야기는 몇 해 전 일인데도 전설처럼 남아 있다. 소몰이꾼이 산을 넘다 만난 도둑과 싸우다 의형제를 맺어 같이 소몰이꾼이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큰돈이 오가는 우시장에는 야바위꾼들이 모여들어 투전판이 벌어지기 마련인데, 그 꾐에 빠져 소 판 돈을 몽땅 날린 사람들의 술주정은 소 울음소리보다 더 구슬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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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개상인 거간꾼의 농으로 영하의 차가운 공기에도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퍼져 나간다. “요 울음이 쌍둥이 만들 울음이요”라며 소꼬리를 잡아채자 큰 소가 움직거리며 긴 울음을 토해낸다. 잠시나마 사고파는 사람들의 무거웠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영화 <워낭소리>를 보면 달구지에 나무를 실은 소와 지게에 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나란히 걷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불교의 선종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를 찾는 과정으로 상징화해 심우도(尋牛圖)라는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소는 사람 가장 가까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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