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아세아경제' 스크랩

오래전부터 대마에 대한 약리작용이나 실용성은 널리 알려졌으나.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몇 일전 YTN ‘사이언스 투데이’에서 ‘대마 성분’으로 뇌 시계 되돌린다“는

내용이 방영되어 치매성 질환을 앓는 분들의 귀가 번쩍 뜨이게 만들었다.

 

사진, YTN에서 스크랩

독일 본 대학과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공동 연구팀이

대마 성분으로 뇌 인지기능에 대한 변화를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대마 성분을 투여한 늙은 쥐의 인지기능이 젊은 쥐처럼 개선되어

늙은 쥐의 생체 시계가 되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외신에서 스크랩

사실 오래전부터 대마가 뇌전증과 치매에 대한 효능이 인정되었으니, 뜬금없는 결과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외신에 의하면 대마가 코로나19의 잠재적 치료법 목록에 올랐다고 할 정도로

방대하고 신비한 대마의 효능에 세계 석학들이 주목하고있다.

 

하기야! 대마의 CBD성분이 알츠하이머성 치매, 파킨슨질환, 뇌전증, 암,

우울증, 다발성경화증, 심뇌혈관질환, 당뇨 합병증 등 17개 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검증되었으니 최고의 약초임은 틀림없다.

 

사진, 외신에서 스크랩

약으로서의 효능 뿐 아니라 종이와 삼베, 에너지 등 산업용으로 활용가치도 높다.

어제는 대마로 만든 배터리가 리튬이온보다 성능이 8배나 더 좋다는 외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안동시를 산업용 헴프(HEMP)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기 직 전이고,

춘천에서도 대마특구를 추진한다고 한다.

 

대마에 대해 궁금한 분에게는 최근에 나온 책 "올 어바웃 카나비스"를 소개한다.

한국에 나온 대마초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심도가 깊으면서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 대부분의 특허를 독점한 상황이라 때늦은 감은 있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엊거제 정선 가려니, 자동차가 없어 난감했다.

차를 폐차해 발이 묶인 셈인데, 하루만 차를 빌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렵사리 인사동 ‘유목민’의 전활철씨께 부탁했더니, 새벽 일찍 차를 끌고 왔더라.

고맙기 그지없으나, 너무 염치없는 부탁을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차 주인이 떠난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갑작스런 사고가 터져버렸다.

조용한 새벽이라 백 밀러를 보지 않고 출발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뒤에서 달려 온 택배차량이 운전석 앞 펜더를 치고 가 왼쪽 눈알이 튕겨 나와 버렸다.

보험처리할 형편이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갈 길 바쁜 택배기사가 쌍방 과실이니 각자 수리하자며 먼저 떠나버렸다.

 

일단 수습은 되었으나, 정선에 가야할지 망설여졌다.

튀어나온 헤드라이트야 밀어 넣어면 운행에 지장은 없으나

운전대를 잡자말자 터진 사고라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다.

 

그러나 제사는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차가 소나타라 운전하기는 편했으나, 마음의 짐은 무거웠다.

가는 길에 평창 자동차정비소에 들려 상담을 받았는데,

도장하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비용이 적잖으니 그냥 타라는 거다.

거지인줄 알아챘는지 모르지만, 타는 속을 어찌 알겠는가?

 

활철씨께 수리비를 건네줄 작정을 했으나, 받아 줄지 모르겠다.

운전하는 내내 걱정에 쌓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마당 밑을 뒤덮은 도라지꽃과 조롱조롱 달린 돌배에 그나마 위안되었다.

 

서울로 돌아와 자동차를 돌려주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보험처리하면 된다고 안심시켰으나, 마음의 큰 빚을 지게되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일이 많아, 이젠 소설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정권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지 않나,

대권에 뜻을 둔 유망 정치인들은 모조리 ‘미투’란 올가미에 걸려 잡혀 가거나,

목숨까지 잃는 별의 별 일이 다 벌어지고 있다.

음모와 저주가 난무하는 드라마 같은 현실에 누가 소설을 읽겠는가?

 

느닷없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보를 접하며 한동안 멘붕 상태에 빠져 일손을 놓았다.

업 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마지막 희망으로 지지해 온 

정의당의 망자에 대한 부도덕한 처신도 마음을 뒤집었다.

조문하기 싫으면 안 가면 될 것이지, 왜 나팔을 불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잘난 채 하고 싶었을까?

 

시장으로 재임하기 전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 활동할 때부터 존경해 온

박시장과의 첫 만남은 ‘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 시절이었다.

당시 ‘민예총’ 사무총장이었던 김용태씨 소개로 사진 5점을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창녕군 장마면이 고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향후배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친근감을 느꼈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러한 호감에 금이 간 것은 2018년 여름 그가 동자동 쪽방 촌을 방문하면서다.

그 당시 쪽방 촌에 장관을 위시하여 여러 정치인들이 찾아 와

빈민들을 들러리로 정치 쇼를 벌이는 일이 잦아 심기가 불편했다.

더위에 지친 빈민들에게 수박화채를 나누어주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는 일이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대부분 기자들 사진촬영을 위해서 벌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빈민들을 정치판 들러리로 내 세우지마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이번에 나팔 분 정의당 철부지가 한 말이나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일은 자신의 뜻이라기보다 보좌진들이 짜놓은 일정에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사과드린다. 부디 용서하시고, 저승에서나마 못 다한 일 이루시길 바란다.

 

어저께는 동자동에 짐 옮길 일이 있어 차를 끌고 나왔다.

그러나 신호에 걸려 출발하려니 갑자기 변속이 되질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 시동을 끈 후 다시 걸었는데, 이젠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빵빵 그리는 뒤차의 성화에 정신이 없었는데,

호출한 견인차마저 일이 많다며 늦게 출동해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삼일 전에도 밤 늦게 정선에서 돌아오다 타이어가 터져 서울까지 견인해 오지 않았던가?

그 때 폐차해야 했는데, 당장 차 쓸 일이 많아 중고타이어 두 짝을 구입한 것이다.

이번엔 엔진을 들어 올리는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하다며 수리비만 40만원이 넘는단다.

노후경유차라 고장 나기 전에 폐차했더라면 백 오십만원이나 되는

서울시에서 주는 조기폐차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는데,

재수가 없으려니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격이었다.

 

결국 애마를 폐차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루 전에 구입한 타이어가 아까웠다.

좋은 타이어를 산 가격 그대로 준다던 주인 말이 생각나 다시 찾아간 것이다.

타이어 휠까지 끼워 줄 테니 산값의 반만 돌려 달랬으나 한사코 손사래 친다.

오히려 자기가 아는 곳에서 폐차시켜 줄 테니 차를 견인해 오란다.

아마 폐차장에서 주는 소개비가 탐나는 모양인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버렸다.

십여 년간 거래한 단골이지만, 돈 앞에서는 본색을 더러 냈다.

 

3년 전, 500만원에 사들여 끝 까지 운명을 같이 할 거라며 다짐했지만, 또 먼저 보내게 되었다.

장안평 중고차 장사꾼 말에 속아 탈 많은 고물차를 너무 비싸게 사, 수리비가 더 들어갔다.

이번 주말에는 울 엄마 제사도 있지만, 무덤 이장할 일로 정선 갈 일이 난감했다.

 

그동안 이십년 넘게 정선을 오갔지만, 한 번도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은 없다.

정선에서 하루에 네 차례 다니는 마을버스를 갈아타고 귤암리에 내려

한참을 걸어가는 산길이라 차 없이는 힘든 곳이다.

 

어디서 어떻게 차를 구할까를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데,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김명성씨와 김상현씨가 와 있다며 빨리 오라는 것이다.

꼼짝하기 싫어 머뭇거렸는데, 정영신씨를 통해 독촉이 빗발쳤다.

 

도살장 끌려가듯 나갔더니, 그날 강찬모씨 딸 결혼식에 갔다 왔단다.

왜 나 한데는 연락하지 않았을까? 거지라 봐 주는지 모르겠으나,

아들 햇님이 결혼 때도 축의금을 보낸 터라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뒤늦게나마 결혼식을 축하하며, 행복하게 잘 살기 바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서니 ‘뮤아트’ 김상현씨가 반겼다.

이 친구도 병원에 입원해 수술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병문안을 가지 못했다.

요즘은 핸드폰을 멀리하며 사람 만나기를 기피하니, 사람 도리를 제대로 못한다.

사람 만나는 일은 커녕, 술 마시는 일 자체를 만들지 않지만, 이 날은 한 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술자리의 화제는 온통 비명에 떠난 박원순시장 이야기 뿐이었다.

김명성씨는 독립운동 자료전시 문제로 박시장이 만나자는 날짜를

문자 메시지로 보내 왔다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난감해 했다.

가족에게 사실을 털어놓아 딸로부터 원망을 듣고 나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마음 여린 분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술 마시는 중에 최명철씨와 이인섭, 안완규 씨등 여러 명이 지나갔다.

너무 과음한 탓인지 눈물이 앞을 가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눈물인냥, 비까지 하염없이 내렸다.

엎드려 있다 잠들기를 반복했는데, 김상현씨가 부른 노래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란 슬픈 노래 소리가 빗물에 흘러내렸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소서!”

 

인사동의 정체성은 골동품이나 예술품보다 예술가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풍류가 아닌가 생각된다.

 

10여 년 전부터 인사동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김명성씨가

인사동 대표적 묵객으로 여겨지는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선생의 동상을 세우려 했으나,

관청의 협조를 얻지 못해 미루어져 왔다.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과 멋쟁이 방송작가 박이엽선생은 차지하고라도

‘귀천’ 찻집을 주 무대로 인사동 낭만을 풍미한 천상병 시인 동상만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일요일 정오 무렵,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가 유진오씨를 데리고 녹번동을 급습했다.

주말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것을 알아 술안주까지 준비해왔는데, 어찌 술자리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두 달 전 술을 사두고 갔으니, 술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유진오씨는 이른 시간부터, 때 늦은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흥겨운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술 마시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인사아트플라자’에서 장소를 제공해 그 인근에 천상병시인 동상을 세운다는 것이다.

동상을 제작할 작가는 최민화씨로 정해져, 머지않아 인사동의 상징물 하나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인사마당에 대형 붓 하나를 오래 전에 세워놓았으나, 사물보다는 사람이 더 정겨울 것이다.

어떤 모습의 천상병 선생이 인사동에 등장할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애들처럼 깔깔거리는 천상병선생의 천진난만한 웃음도 매력적이지만,

천국 갈 시간을 기다리는듯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모습도 생각난다.

그리고 장난 끼 넘치는 모습의 술자리도 연상되었다.

 

다들 낮술에 취해 인사동으로 넘어왔다.

'서울아트가이드' 6월호 구하러 간다는 핑게로 따라나섰지만,

천상병시인 동상 세워질 장소가 궁금해서다.

 

정확한 위치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건물 가까이는 자칫 건축 조각으로 여겨질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동집’ 골목으로 들어가는 코너가 마땅할 것 같았다.

 

주말의 인사동거리지만 거리두기 정도의 사람들이 나왔는데,

예년처럼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모습은 당분간 볼 수 없게 되었다.

 

거리를 지나치는 행인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마치 외계인들 세상 같은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인사동도 세월 따라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천상병시인이 살아계신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목여사 말씀은 곧잘 들었으니, 쓰기 싫은 마스크를 턱 아래 걸치고 거리를 휘젓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동집 골목 안에 있는 지금의 최대감집이 선생께서 자주 드나들던 ‘실비집’이었으니,

기분 좋은 표정으로 그 골목을 돌아 서는 포즈도 연상되었다.

 

아무튼 최민화작가의 기발한 구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너무 일찍부터 김칫국 마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으나,

인사동의 멋진 상징물이 들어서길 간절히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여파 이주원씨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잘 모르는 분이라 궁금했는데, 칡뫼선생과 함께 가겠다는 말에 나만 모르는 주변 분 같았다.




12일 오전엔 김명성씨 따라 장호원에 갈 일이 있어 일찍부터 차를 끌고 나왔다. 
서울로 돌아오니, 약속시간인 다섯시가 임박해 차 돌려 줄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인사동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주원씨와 약속한 ‘화인갤러리’로 간 것이다.




그 자리는 옛날 이해림씨가 운영한 술집 ‘평화만들기’ 자리였다.
수안스님 전시 뒷풀이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생각나는 예사롭지 않은 장소였다.



쌈지 뒷골목은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는데, 이름도 반가운 '정선곤드레쌈밥'집도 생겼더라.



'화인갤러리'로 바뀐 후 첫 걸음인데, 마침 전시작을 철수하고 있었다.
칡뫼 김구, 여파 이주원 선생 등 여러 명이 참여한 단체전이었다.



칡뫼선생이 먼저 와 있었는데, 걷어내기 직전의 출품작 두 점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전을 못 봐 아쉬웠는데, 두 점이라도 봐 천만다행이었다.



뒷골목 밤 풍경을 그렸는데, 작품에 애틋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칡뫼선생 이야기로는 몇 년 전에 한 작업으로, 그 때는 작품도 제법 팔렸다고 한다. 
왜 주제를 바꾸었는지 모르지만, 계속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그리움에 병든 세상이 아니던가?




뒤 이어 여파선생이 나타났는데, 서울이 아니라 천안에서 왔다고 했다.
하기야! 칡뫼선생도 김포서 왔지 않았는가? 서울역 부근에 사는 거지 팔자가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난, 이주원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그는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블로그 ‘인사동 사람들’ 단골손님으로 가끔 정다운 댓글로 위안도 준 분이다.
온라인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진 몇 안 되는 귀한 인연이었다.




뒤늦게 임경일씨가 나타나 술 마시러 갈 때가 되었는데, 끌고 온 차가 골칫거리였다.



'툇마루'로 가기 위해 골목을 나서는데, 정영신씨가 지나가다 손을 흔들었다.

사진으로 본 정영신씨보다 더 젊어보인다는 여파선생 말에 내가 사진을 잘 못 찍은 것 같았다. 




술 마시려면 차는 어쩔 것인가?  일단 마시고 보자.
‘툇마루’에서 녹두빈대떡 안주로 막걸리 한 사발 마셔버렸다.
이 좋은 날, 술 한 잔 마시지 못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이차로 간곳은 벽치기 골목에 있는 ‘유목민’이었다.
요즘 술 마시러 인사동에 잘 나오지 않아 몇 달 만에 들렸는데, 대개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화가 여파선생은 사진 작업도 병행한다는데, 그 작업들이 궁금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인섭선생과 주인장 전활철씨가 나타났다.



술은 땡기지만, 몸에서 그만 마시라는 신호가 왔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면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지만,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대리운전을 부르라며 여파선생이 따라 나섰지만, 손을 흔들었다.
주차비도 제법 나왔을 텐데, 여파선생이 계산해 버렸다.
차를 끌어 내 ‘아라아트’ 옆 빈자리에 세워두고 지하철 타러 간 것이다.



내일 새벽 다시 나올 생각하면 귀찮지만, 어쩌겠는가?
“성질 마이 죽었다. 음주면허증으로 그 술 마시고 두 번 걸음하다니...”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월요일은 동자동 복귀하는 날이었다.
주말에 정영신씨 집에서 쉬고 아지트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 였다.
“행님 어딧습니꺼? 녹번동이마 시상식 중계 보면서 술 한 잔 하입시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미 출발한 것 같았다.

 

 



이 집은 밥을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 정오 무렵에 밥 먹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침, 정영신씨가 돼지고기 수육을 삶아 놓았다.
자식 자취방에 보내는 심정으로, 가는 놈 몸보신 시킬 속셈이었다.
마침, 전 날이 보름이라 오곡밥과 나물도 남아 있었다.
술은 이름도 거룩한 ‘불사주’가 있으니, 걱정할 것 없었다.

 

 



전활철씨는 오전에는 시장보러 다녀 항상 등짐을 짊어지고 다닌다.
보따리를 뒤지더니, 송이버섯을 꺼냈다.
철 지난 송이라 향은 없으나, 명색이 송이버섯이 아니더냐.
그 정도의 술안주면 요리집에 비길 바가 아니었다.

 

 

 

 

누가 문을 두드려 열어보니, 요즘 제주에서 벌어먹는 공윤희씨였다.
반갑게 어울려 함께 술을 마셨는데, 화제는 온통 ‘기생충’ 이야기 뿐이었다.
난, 상 받는 자체를 좋아했지만, ‘기생충’이란 영화 내용도 몰랐다.
대략의 줄거리를 들어보니 흥미롭기도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건드려 더 관심이 컸다.

 

 


그나자나, 이 집은 영화 보는 모니터는 있으나, 티브이를 볼 수 없도록 해 놓았다.
노트북으로 YTN 뉴스 틀어 놓고 마셨는데, 빈속에 들어가는 낮술이라 기분 좋았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기생충’ 상 받는 게 안 좋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전활철씨는 남다르다.
봉준호 감독 일행이 ‘유목민’ 단골이라 그 속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각본상에 이어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네 개 부문을 차지했다는 소식에 모두 들떴다.
다들 기분 좋아 축배에 축배를 거듭한 것이다.

 

 



전활철씨는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 아쉽지만 먼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을 뇌까리며...
뒤이어 조해인시인이 왔고, 한 참 후에는 사진가 김수길씨도 등장했다.
코구멍한 집구석에 인근에 사는 인사동 사람들은 다 등장한 것이다.

 

 



술 기운에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여기 저기 전화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공윤희씨가 미국 사는 최정자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돌아가며 바꾸어 주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반갑기는 했으나, 미국 같으면 그 때가 새벽3시 무렵이었다.
잠자는 노친네를 깨운 그 죄를 어쩌려고, 정말 대책 없는 술꾼들이다.

 

 



기분 좋게 취했으나, 조해인씨는 술을 너무 급하게 마신 것 같았다.
신이 나서 십팔 번 노래까지 불렀는데, 문제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부득이 집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자리가 파하자 나 역시 녹초가 되어버렸다.

 

 

 

밥 먹으며 간단히 끝내려 했던 술자리가 결국 하루 종일 땡땡이 친 셈이다.
자고 일어나니 몸속의 기생충이 들고 일어났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불사주'는 관절에 특효인 약술로 조금씩 마시면 아주 편하게 취하는 좋은 술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술도 지나치면 독일 뿐이었다.

 

 

 

몸이 안 좋아 술을 피해 다니니, 술이 나를 찾아다니는 격이었다.

 

 



하루종일 땡쳤으니, 국 쏟고 뭐 데인 격이지만 누굴 원망하랴!
술이 원수냐? 상이 원수냐? 친구가 원수더냐?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지난 일요일은 두 차례나 술자리가 생겼지만, 운전 때문에 마실 수가 없었다.
술 마시다 혼 쭐난 후 부터, 한 동안 밀밭에도 가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팠겠나.

일요일엔 녹번동의 동지 정영신씨 집에서 죽치는 날인데,
느닷없이 인사동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들이 닥친 것이다.
일요일엔 녹번동서 논다는 정보는 알았겠지만, 전화도 없이 찾아와 놀랐다.
하기야, 엊그제 전화번호를 바꾸었으니, 연락 될 리가 만무했다.






평소 핸드폰을 가까이 두지 않아 전화를 잘 받지도 않았지만,
여지 것 다른 사람 명의의 핸드폰을 사용해 내 전화가 아니었다.
거지에게는 통화료를 받지 않는 전화기가 있다기에 바꾸었더니,
바뀐 번호를 안내도 해주지 않았다.

전활철씨는 배낭에 술과 안주까지 잔뜩 사왔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한 시간 후에 운전하여 김포까지 가야 하는데, 어찌 술을 마실 수가 있겠나. 
일어 설 때까지 전활철씨 혼자 술을 마셨는데, 고문도 그런 고문은 없었다.
술 마시며 하는 이야기가 인사동 ‘유목민’ 손님이 젊은 층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나이 많은 자신마저 손님들이 꺼려해, 현장에서 은퇴해야겠다는 것이다.
“아이구야!” 늙은 것도 서러운데 마지막 아지트까지 뺏기면 어디로 가지?
이제 낙원동 ‘다리밑집’ 아니면 ‘풍류사랑’ 뿐이었다.





술은 남았지만, 시간되어 자리에서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김포 가는 일은 정영신씨 조카 심지윤씨의 저녁초대를 받아서다.
김포로 이사 간지가 제법 되었지만,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초대하지 못했는데,
마침 시어머니가 지방에 외유 중이라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걸렸는데,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주차장이 종합운동장 몇 개나 되는 크기였다.
촌놈이 서울 딸 내 집에 찾아 온 격인데, 주차장에서 한 참을 헤매었다.
난, 아파트 살 형편도 되지 않지만, 그냥 준다고 해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왠지 감옥 같은 느낌이 드는데다, 그 넓은 곳을 청소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






조카사위 김중호씨가 저녁상을 마련해 두었는데, 백숙에다 소주가 나왔다.
차 때문에 한 잔 받아 입술만 축이려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식사하며 나눈 주된 대화는 어머니 험담이었다.
정치적 이념에서 부터 생활습관 등 모든 것이 달라, 같이 살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골통 태극기부대 스타일이고, 아들과 며느리는 촛불의 주역이니 보나마나다.






돌아가신 김중호씨 부친은 박정희시절에서 전두환 정권 초반까지
중수부장과 검사장을 지냈으니, 어머니 자부심은 대단했던 것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굽신굽신하던 옛날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검사장 시절의 명패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버지의 그런 행적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이다.
가끔 김포에서 열리는 공식적인 행사에 아들을 따라나서고 싶어 했으나,
김중호씨는 기겁한다는 것이다. “돈 프레이 뎃 송‘이란다.

태극기부대와 촛불시민의 갈등이 집안까지 번진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

사진, 글 / 조문호










뮤지션 김상현씨가 중병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들은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아는 분들을 만나기만 하면 그 이야기로 걱정 해왔는데,
뜻밖에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5일 인사동 ‘유목민’의 실내 공사를 한다기에 찾아 간 것이다.
외장에 사용할 오래된 인사동 풍경사진을 의논하기 위해서다.






강남의 송재엽씨 기공식에 갔다가 ‘통인가게’ 관우선생 차에 편승해 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분을 만난 것이다.






한 때 인사동에서 ‘북스’란 책 갤러리를 운영한 김호근씨 였다.
제주도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마치 인사동 유령이 나타난 것 같았다.






일단 볼 일부터 본 후, '유목민'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먼저 임하룡씨가 전시를 한다는 ‘토포하우스’로 갔다.






무슨 전시인지도 모른 채 이야기만 듣고 갔는데,
개인전이 아니고, ‘제5회 오늘전’이란 단체전에 참여하고 있었다.






29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임하룡씨 외에도 정승재, 심영숙, 이경근,
박춘우, 이유림, 김은숙, 백순진, 한정혜, 권혁철, 샤샤정, 장용주, 이혜영,
유준희, 이준섭, 최재영, 오현금씨 등 열 일곱명의 화가가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시장에서 임하룡씨 외에도 정승재씨를 만난 것이다.
전시 보러 오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참여 작가라 했다.






그 부지런함에 존경감이 일었다.
학교 강의하랴 소설 쓰라, 이젠 그림까지 그리니, 식구들 얼굴 볼 틈은 있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제 작업에 물이 올랐나보다.






전시를 돌아본 후 ‘유목민’으로 갔다.
‘유목민’ 안방을 터, 통유리로 밖이 보이게 하는 모양인데. 화가 양서욱씨가 열심히 돕고 있었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반가운 사람이 줄줄이 나타났다.
‘유담’커피숍 앞에 김명성씨가 서 있었고, 안에는 정기범씨가 계셨다.






좀 있으니, 김호근씨가 찾아 와 ‘유목민’에 자리잡고 막걸리를 시켰다.
이어 김완기, 최종선, 김영국, 김상윤씨가 줄줄이 등장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김상현씨가 나타나, 죽은 사람 살아온 듯 반가웠다.
김명성씨가 연락했다는데, 좀 수척해 보이기는 하나 생각 외로 좋아 보였다.






그동안의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오랜만에 그의 노래까지 들을 수 있었다.
‘회상’과 ‘떠날 때는 말없이’ 두 곡을 불렀는데, 너무 절절했다.
감정에 몰입되어 터져 나오는 노래 소리에 가슴이 미어졌다.






김상현씨의 노래 소리가 오랜만에 인사동을 울렸다.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사진, 글 / 조문호





'제5회 오늘전' 전시작


임하룡작

임하룡작

이준섭작

장용주작

샤샤정작

정승재작

정승재작


























 




현대도예의 거목 한봉림씨가 요즘은 그림 삼매경에 푹 빠졌다. 
작년에 완주 작업실에 가보았더니, 완성된 대작들과 진행 중인 작품도 있었다.

아마 원광대에서 정년퇴임하며, 그림에 매달렸던 모양이다.
이미 그만의 확고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어,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지난 12일에는 그가 상경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끼는 몇 안 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인사동에서 전시를 한다는 거다.
그동안 인사동에서 술 한 잔하자는 말은 여러 차례 오갔으나 성사되지 않았는데,
모처럼 친구와 한 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6층으로 올라가니 최범홍씨의 도예전이 열리고 있었다.
한봉림씨와 안문선씨가 먼저 와 있었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너무 좋았다.
“연을 먹인 器”란 제목이 붙은 최범홍씨의 도예작품은 묘한 마력이 있었다.
연 먹인 빛깔도 이채롭지만, 도자에 번진 무늬가 신비로웠다.





뒤틀린 도자 작품들도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난, 마음이 뒤틀려 그런지, 뒤틀린 작품이 좋았다.
좌우지간, 한봉림씨가 아낄만한 제자였다.






식당으로 옮기는 길에 시장 봐 오던 ‘유목민’의 전활철씨를 만나기도 했다.






‘툇마루’ 된장비빔밥으로 간만에 입맛을 돋구었는데,
한봉림씨는 밥은 거들떠보지 않고 술만 마셨다. 점심은 본래부터 안 먹는다나...
그냥두기 아까워, 두 그릇이나 먹어 치웠더니, 술 들어 갈 자리가 없었다.
낮술에 쥐약인 내가 그 날 살아남았던 이유다.






한봉림씨는 인사동 옛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학창시절엔 연적을 만들어 인사동 필방에 납품한 적도 있단다.
그가 디자인한 독특한 맵시의 연적을 필방주인이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만난 친구가 인사동의 양두 거목인 ‘통인가게’ 김완규 대표와

공화랑’의 공창호 대표라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학교 다니는 것 보다 전통 문화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공창호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표구점에 들어갔지만, 김완규씨는 달랐다.
학교를 안 가고 가게를 기웃거리니, 부친께서 가게 점원으로 일시키고,
대신 밤에 가정교사를 불러 공부시켰다고 한다.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장인이란 정규교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작업이 풀리지 않아 “내가 왜 이 짓을 하냐?”며 붓을 놓은 적도 있단다.
그렇지만 한봉림이가 누구인가? 그 장인정신은 기어이 뿌리를 뽑는다.






요즘은 밤 그림자에 끌려 다닌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몇 시간동안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 다닌다고 한다.
아내는 “몽유병 환자처럼 어디를 떠돌아 다니냐?“고 타박한다지만,
대붕의 뜻을 누가 알리오.
그가 구상하는 작품이 어떤 울림으로 닥아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빈 술병이 몇 개나 나왔다.
안문선씨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한봉림씨가 세병은 마신 것 같았다.
이미 고속버스 표를 예매해 둔 터라, 더 마실 수는 없었다.






안국역으로 지하철 타러 갔다.
난 습관적으로 인사동 거리를 찍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이다.
화가 장흥래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부리나케 지하철로 내려갔는데, 이산가족 찾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빨리 종로경찰서 앞으로 오라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안문선씨를 배웅해 주고, 지하철로 내려와서는 나를 잠시 보잖다.
똘똘 뭉친 파랑새 뭉치를 내손에 쥐어주며, 술 사먹지 말고, 밥 사먹어란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추위를 녹였다.


"고맙다 친구야! 술 안주로 밥 사먹을께..."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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