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연합군이 북한군에게 뿌린 삐라 원본을 처음으로 구경했다.

삐라는 영어 bill(광고지, 전단)의 일본식 발음을 삐라라 말했다는데,

듣기 싫은 일본식 발음이 마음에 걸려도 이보다 직감적인 말은 없겠다싶다.

전단, 찌라시 등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우리말의 ‘뿌린다’는 느낌과

쌍비읍의 쌍스러운 어감이 전쟁 통의 심리전과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았다.

 

오래전 김명성씨 사무실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오래된 서책들을 촬영할 때,

‘안전보장 증명서’라는 생전 처음 보는 삐라를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전쟁 통에 유엔군을 이끈 미군이 인민군에게 살포한 삐라였다.

붉은 글로 ‘안전보장 증명서’라 쓴 전단에는 ‘살랴면 지금 넘어오시오“라는

유치찬란한 협박에 가까운 문구가 적혀있었다.

 

또 다른 삐라에는 붉은 마수에 속아 숨진 두 인민군장교의 죽음을 알리며

‘살아서 돌아오라’는 긴 편지 형식의 내용을 담은 삐라 였다.

 

이게 탈북단체 박상익이가 북한에 보내 말썽을 일으킨 삐라 원조가 아니던가?

7월27일자 ‘뉴스타파’에 “끝나지 않은 전쟁-삐라 심리전”이란 기사가 실렸다.

“적을 삐라로 파묻어라!” 한국전쟁 때 미 육군부장관 프랭크 페이스가 한 말이라고 한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전쟁 3년 동안 최소 25억 장에서 최대 40억 장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북한 공산당 지도부를 괴물로 그려 체제 불신을 유도한 미군 삐라 [사진 스크랩/ 뉴스타파]

 

 

당시 미군들은 B-29 등 대형 폭격기로 전단을 담은 포탄을 투하하는 방식과

소형 항공기를 이용하여 손으로 뿌리는 방식, 그리고 105밀리 곡사포와 박격포 포탄에

삐라를 채워 지상 포격을 하는 방식 등으로 뿌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일본 도쿄 인근 비행장에서 극동사령부 심리전 부대원들이 B-29 폭격기에 탑재할 포탄 안에 전단지를 넣고 있다.

500파운드 폭탄 탄피 하나에 22500장의 삐라가 들어갔다. 미군이 뿌린 삐라 유형은 투항권고, 안전보장, 향수자극,

전의상실 유도, 공산당 및 체제 비판, 북한지도부 비판 등으로 분류된다. [사진 스크랩/ 뉴스타파]

 

 

전협정 67년이 지난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이 바로 ‘삐라 심리전’이란다.

지난 6월 4일 북한 김여정 부부장이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 측 지역으로 날려 보내는 악의에 찬

행위들이 방치된다면 남조선 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말한 지 보름 남짓 만에 개성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빌미도 결국 삐라 때문이 아니던가?

 

탈북자 단체가 접경지역에서 대북 전단 풍선을 날리고 있다. [사진 스크랩/ 뉴스타파]

 

 

2000년대 들어서면서 탈북자단체들이 주도하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가 시작되었는데,

10년 동안 날려 보낸 대북 전단이 무려 2천만 장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도 미국의 지원이 따랐다니, 삐라의 주범은 바로 미국이 아닌가 싶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살포한 삐라. 8.15 전 일제강점기 일제 장교로 복무한 리종찬, 백선엽, 김석원이

해방 후엔 미국 앞잡이가 됐다고 풍자하고 있다. 이들의 창씨개명도 적어놓았다. [사진 스크랩/ 뉴스타파]

 

 

‘종이폭탄’이라 불리던 삐라 살포 심리전은 이제 한 물 갔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그만 끝내라.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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