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4일부터 이틀 동안 아내와 추석 대목장 촬영하느라 충청도 지역을 돌아 다녔다.

판교, 해미 같은 조그만 장들은 초장에 빤짝하다금방 한산한 파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당진 같은 군소재지 장들은 온 종일 사람들로 붐볐다.

제수용품은 구해두었는지, 평소 자식들이 좋아한 음식들 찾느라 여기 저기 기웃거리신다.

 

우리내외도 서울에 들려 다시 정선으로 떠나야하기에 마음이 바빴다.

서둘러 올라 오던 중에, 미국에서 오신 최정자시인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추석 다음 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얼굴 좀 보자는 것이다.

열흘 전에 서울 왔다는 연락은 받았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터라

급히 인사동으로 차를 몰았다.

 

인사동 '아라아트'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정자 시인을 비롯해 김명성 시인, ‘유목민주인장 전활철, 그 아들 시원이,

인사동지킴이 공윤희, 사업가 이상훈, 이태규씨 등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밥 먹고, 차 마시고, 술까지 마시느라 하루를 다 보내버렸다.

 

밤늦은 시간 유목민골목에 모여 앉아 술잔을 나누는데, 김여옥 시인과 화가 서길원,

최경태, '유카리'관장 노광래, 번역가 이지연씨 등 주객들이 차례 차례 등장했다.

시에 관한 시잘데 없는 이야기 끝에 "안 팔리는 시집은 왜 만드냐?" 는 김여옥시인의 말에

시집은 팔려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해서 만든다.“는 명답을 최정자시인이 했다.

 

좀 있으니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현국 선생께서 쫄랑쫄랑 골목으로 들어오신다.

매일같이 강연에 끌려 다니시다 모처럼 술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요즘 돈 되는 강연회 요청은 다 물리치고, 가난한 모임의 강연회만 부지런히 다니시는데,

선생님이 계시는 시골 중학교 학생이야기로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얼마 전 조그만 학생 한 녀석이 채선생께 다가와 할배!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너무 귀엽습니다

해 놓고 줄행랑을 치는대도, 선생님께서는 기분 좋아 그냥 깔깔 웃으셨단다.

그 이야기에서 채선생님의 교육철학이나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가 그대로 입력되었다.

 

또 한 가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라아트김명성씨가 병원에 누워있는 화가 이청운씨를 비롯하여 어려운 예술가 열 명에게

명절 쉴 돈을 일일이 보내 주었다는 것이다. 자기 코가 석자인 명절 직전의 온정이라 더 크게 다가왔다.


년에 최정자 시인이 귀국했을 때는,  어려움에 처한 김명성씨가 안 서러워 모아놓은 달라 천불을 놓고 가셨단다.

그러나 가난한 시인의 돈을 차마 쓸 수 없어 책상 서랍에 넣어둔 채, 여지 것 재기를 다짐해 왔다고 한다.

그 날, 돈을 다시 돌려 주려는 김명성씨와 안 받겠다는 최정자씨의 실랑이를 들으며 발길을 돌렸는데,

인사동 예술가들의 애틋한 정은, 꺼져가는 인사동의 한 가닥 등불 같았다.


"사람나고 돈나지, 돈나고 사람났나?"

 

  사진,글 / 조문호 




 

 

목판화가 정비파선생과 저녁식사 한 끼 하자는 전화를 공윤희씨로 부터 받았다.
끝나가는 정비파선생의 전시 결과도 궁금하지만, 천성이 선비 같은 분이라 보고 싶기도 했다.

전시장 가는 길에 두 내외를 만나 기념사진도 찍었다.
인사동 ‘자연 속으로’에 차린 밥상은 집 이름처럼 유기농 야채가 주종인 풀밭이었다.
공윤희씨와 아내는 워낙 야채를 좋아 하지만, 나는 촌놈이라 고기만 골라 먹었다.

오늘은 세시부터 인사동 터줏대감들을 만나 마시기 시작했으니, 이미 술에 절어 있었다.

이젠 나이 탓인지 점심부터 저녁까지 술 자리를 잇기가 좀 무리다 싶다.
‘유목민’에서 김명성씨의 빨리 오라는 전화에 아내를 잡혀 놓고 자리를 떴다.
그 자리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상훈, 정기영씨가 있었고, 밖에는 안영상씨 일행이 있었다.

옆 자리에는 전활철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박혜영씨의 생일케익을 잘랐다. 

 

오늘은 하루종일 공술 마시고, 밥에다 케익까지 얻어먹은 재수 좋은 날이다.

늘 오늘만 같아라.

사진,글 / 조문호

 

 

 

 

 

 

 

 

 

 

 

 

 



지난 20일, 한정식선생과의 오찬 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으나,
할 일이 많아 서둘러 귀가해야 했다.

집에 도착해 여장을 풀기가 무섭게 ‘유목민’의 전활철씨로부터 전화가 온 것이다.
“형! 오늘 전시오프닝 아닙니까? 신용이 형과 조해인씨가 와서 기다립니다.”
"아뿔사!" 일전에 술좌석에서 한 말을 그대로 믿고 나온 모양이었다.
몸이 천근같이 무거웠지만 다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목민”에는 김신용씨와 조해인씨가 마주앉아 맥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이미 김신용씨는 불콰하게 취해 있었지만,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갑게 술잔을 나누었다.
얼마 전 출간된 김신용씨의 소설 ‘새를 아십니까?’가 독립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
그리고 조해인씨의 소설이 내년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다는 등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조금 있으니 김명성, 박인식, 전인미, 김억씨 등 지인들이 나타났고,
나중에는 채현국선생께서 많은 손님들을 모시고 오셨다.
년 말 분위기가 무르익은 대폿집 ‘유목민’은 시끌벅적 달아올랐다.
한 사람 두 사람 빠져나간 자정 무렵에는, 몸도 마음도 취해 비틀거렸다.

 

사진,글/ 조문호

 

 

 

 

 

 

 

 

 

 

 

 

 




지난6일, 오랜만에 조준영씨를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집에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20분이나 늦어버렸다. 

 

약속장소인 ‘유목민’에는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전활철, 손성근, 유진오씨가 자리하고 있었고,
뒤늦게 편근희씨와 김대웅씨가 나타났으나 현충일인 탓인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혜영씨의 맛깔스런 안주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술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유익한 이야기들도 나누었으나,
이틀 날 컴퓨터 자판을 잡으니 어제 밤 나눈 이야기들이 까마득하다.
단지 조준영씨의 ‘예쁜 여자는 잠꾸러기“란 바람둥이 이야기만 떠오를 뿐이다.

 

아마 여자이야기는 치매 증세도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다.

 

 

 

 

 

 

 

 

 

 

 

 

 

“장사꾼들만 판치는 인사동에 무슨 예술과 풍류가 남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사동 골목골목을 돌다보면 인사동 기억을 소주잔에 부어 마시는 예술가들도 있고, 그들이 즐겨 찾는 아지트도 가뭄에 콩 나듯 한 두 곳은 남아있다.

 

인사동 술집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서양화가 강용대, 사진가 김종구, 시인 적음스님을 비롯한 인사동 골통들이 죽치던 실비집(‘실비대학’이라 부름)부터 생각난다. 그 실비대학 총장님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조차 묘연하지만...

50여 년 전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강 민, 민 영, 신경림, 황명걸, 채현국씨 등의 여러 선생님들이 관철동에서 인사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며 인사동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그 인사동의 선구자적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란 바로 목순옥 여사가 운영했던 ‘귀천’을 기점으로 ‘실비집’과 ‘누님칼국수’, ‘하가’, ‘시인통신’등 이다. 이젠 고담준론을 나누던 그 대폿집들은 물론 객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거나 사라지고 있다.

 

예술로 빌어먹는 술꾼들이 외상술에 개똥철학 풀던 그런 대폿집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 인사동을 떠도는 사람들이 남아 있기에 그 풍류적 가치를 지키려는 술집도 생기는 것이다. 인사동을 떠도는 예술가들이 원하는 공간이란 흥에 겨워 즉석에서 유행가라도 한 곡 뽑을 수 있는 마음 편한 술집이다. 신용카드 때문에 외상술은 안 통하겠지만 안면 있는 벗들이 곳곳에 있어 공술도 가끔 얻어 마실 수 있고, 자정이 넘었다고 손님들을 칼같이 내쫓지도 않으며, 소주잔에 담배연기 날려가며 마실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술집 말이다.

 

인사동 16길에 있는 ‘노마드(유목민)'가 그러한 요건을 두루 갖춘 대폿집이다.

’노마드‘는 오랫동안 인사동에서 민예품을 만들어 왔던 전활철(60세)씨가 2년 전에 만든 술집인데, 인사동 술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공간이 그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본래 애주가로 아무리 마셔도 취기 한 번 보이지 않지만, 매일같이 손님들과 어울려 술을 마셔대니 몸이 성할지 걱정스럽다.

 

’노마드‘의 술집 문을 열면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예술가들이 구석구석 박혀 있고, 그 시절의 감정을 자극해가며 술집을 흥건히 적셔주는 음악 또한 기가 막힌다. 가끔은 ‘뮤아트’ 김상현씨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생음악도 감상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얼큰하게 취한 전활철씨의 열창도 들을 수 있다. 술 종류야 어느 집이나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이 집에서 자랑할 만한 술안주로는 홍어찜이나 가오리찜, 귤전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두부를 곰삭은 묵은지에 싸 먹는 두부김치 맛이 압권이다.

 

그 곳에 들락거리는 인사로는 철학자 채현국, 행위예술가 무세중선생을 비롯하여 시인 강 민, 김신용, 조준영, 김명성, 서양화가 이청운, 허미자, 장경호, 김언경, 차기율, 전인경, 전강호, 도예가 김용문, 신동여, 황예숙, 음악인 김상현, 가수 하양수, 김추자, 연극배우 이명희, 소설가 배평모,  패션디자이너 손성근, 그래픽 디자이너 김의권, 인사동 마당발 노광래, 현장스님, 덕원스님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입이 아프다.

 

‘노마드’ 위치는 인사동 16길인 ‘사랑방모텔’ 골목으로 들어가 종로경찰서 가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나온다.

근간에 한 번 들리시어  막걸리나 한 잔 드심이 어떨지?

 

 

 

 

 

 

 

 

 

 

 

 

 

 

 

 

 

 

 

 

전활철씨의 어머님 장갑임여사가 지난 12월 6일
오전 6시30분 연세 노블병원에서 임종하셨습니다.

신촌 '연세 세브란스병원'장례식장에는 지방에서 올라 온 이강용, 김의권, 정명수,
김언경, 이종문, 신동여씨를 비롯한 많은 지인들이 조문하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던 인사동 사람들도 자정이 가까워 오자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김신용, 정명수, 공윤희는 김상현씨 따라 '뮤아트'로 가고,
남은 조문호, 장경호, 김의권, 이강용, 김언경, 주승자, 김민경씨 등은 인사동 '푸른별 이야기'로 갔습니다.
김의권, 장경호, 이강용, 김언경씨 네 사람만 사랑방에 가서 쉬었는데,
단양에서 온 석파는 아침 일찍 일어나 포천 장지가지 따라 갔다고 합니다.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49제 때, 조문합시다.

어머님 편히 가십시요.
저승에서라도 활철이 잘 지켜주십시요.

 

2011.12.7

 

 

 

 

 

 

 





민예품 만들다 인사동에 술집 낸 "노마드"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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