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박사의 ‘삶이야기 禪이야기’ 


【서울=뉴시스】

 

우리에게 알려준 화두 가운데 조주 스님이 ‘끽다거(喫茶去)’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차나 마시고 가라’라는 것이다. 이말 저말 수다를 떨거나 지나간 일, 후회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 걱정도 하지 말고 지금 눈앞에 있는 차나 제대로 즐기라는 뜻이다. 살면서 우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러지 말고 그냥 차려진 찻상이나 밥상을 잘 챙겨 먹으면 좋겠다. 차 마시러 왔으면 차나 잘 얻어 마시고 가기 바란다. 영어 시간에 수학 공부하지 말고 영어나 제대로 배우고 가라는 뜻도 된다.

“내가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존재하고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 곳에서 내 생각이 의도치 않게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없어지게 된다.”는 라캉의 말처럼, 스스로 생각을 잘 봐야 한다. 지금 왜 그 생각을 해야 하는지를 봐야 한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이나 이미 지나가서 어쩔 수 없는 일로 쓸데없이 사량 분별이나 분별 망상 일으키지 않는 게 좋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말고 미래의 일을 끌어다 미리 걱정하지 말고 그냥 지금 현재 여기에 집중하시고 충실한 것이 어떨까 한다. 그래야 내 생각과 현실과의 괴리를 막을 수 있다. 그냥 오늘 당장 바로 여기서부터 열심히 살면 된다. 이것이 생활선이며 차 마실 때의 참선인 다선(茶禪)이기도 하다.

부쩍 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힘든 세상이 되었나 보다. ‘많이 힘드시죠’ 다행히도 요즘은 좋은 차나 큰 집과 같이 현실적으로 얻기 쉽지 않은 것을 바라는 물질 지향적 행복보다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정신 지향적인 행복에도 포커스를 맞추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듯하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참선이나 요가, 명상 등을 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적으로 느껴지는 참선이나 명상은 재미가 없고 몸을 힘들게 움직여야 하는 요가도 별로 내키지 않아 선뜻 시작하지 못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도 저도 귀찮고 싫지만, 일상의 고단함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 잠시라도 마음의 행복을 원한다면 차나 한잔 하라고 권하고 싶다.

지유명차 인사점의 문대혁 점장은 “차를 드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차의 장점은 역시 ‘마음이 편해진다’입니다. 스트레스, 화병, 불면, 과민 등의 증상이 있을 때 차 한 잔이 진가를 발휘한다고들 해요. 잘 만든 보이차나 황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 혈액순환을 돕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긴장된 몸이 부드럽게 풀어지면서 마음도 어느새 편안해지고 여유를 찾게 되는 거지요.”라고 말한다.

캐나다, 베이징에 대한 여행서 등을 저술한 바 있는 이선영 작가는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서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받는다고 말을 거든다. “예전에 직장이 가까운 덕분에 칼퇴근을 하는 날이면 쏜살같이 가서 두어 시간 차를 마시는 것이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다”는 그녀는 평소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포지션 때문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취미활동을 할 여유도 없었지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시내 한복판에서 보이차를 마시면서 편안한 점장과 두어 시간의 대화를 통해 힐링을 받고 내일 또 출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아주 고마운 곳이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감정으로부터 한발 뒤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고 하니 차를 마시는 것이 명상 못지않은 효과를 준 셈입니다. 차에 심취한 그녀는 얼마 전 한국차문화협동조합(www.teacoop.or.kr)에서 운영하는 3개월간의 ‘차예사’ 교육을 받고 차산지 현지 답사기행도 다녀왔다.

오래전의 차는 ‘기호식품’이 아닌 ‘생존 식품’이었다.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포랑족은 3200년 전부터 차나무를 재배했는데, 여러 민족 중에서도 차 문화를 가진 민족만이 부족 전체를 전멸시킨 전염병에서도 살아남았다. 차는 기능적으로 방부, 방독, 해독 약리의 작용뿐 아니라 영양분을 공급하는 생존의 수단이기도 했다. 고산지대라 녹색식물이 없고 고기가 주식인 티베트 장족은 차에 야크 버터와 곡식 가루를 섞어 식사를 대체했다. 차를 통해 비타민과 미네랄을 먹고 육류 위주의 식습관 속에서 건강을 유지했다. 이 정도의 이유가 없었더라면 히말라야의 깎아 지르는 고산을 넘나들던 차마고도의 마방들이 차를 운반하는데 목숨을 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17세기에 영국이 중국을 아편 소굴로 만든 이유도 바로 ‘차’ 때문이 아니었던가.

낙원상가 건너편 인사동 초입에 있는 인사코리아 1층 구석에 자리 잡은 지유명차 인사동점은 찾기가 힘들 정도로 겨우 두 평 남짓한 작은 매장이다. 그럼에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테이블 앞에 10여명이 모여 앉아 차를 차분하게 마실 수 있어 신기하기까지 하다. 중국 보이차나 무이암차 등을 시음하는 공간이지만, 화기애애한 사랑방 같은 분위기다. 이들 중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고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도 있다. 1~2시간 동안 2~3가지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지만, 가게를 나서는 그들의 표정에는 분명 ‘행복’이 어려 있다. 말없이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는 위로, 작고 따뜻한 찻잔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쉼과 위로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차를 통해 자연스럽게 ‘열림’과 ‘받아들임’을 갖추고 진솔한 소통의 기회를 통해 나의 문제를 극복할 힌트를 얻는다. 차를 통한 마음 닦음이 바로 다선이다.

요즘 외국여행으로 중국으로 가서 보이차를 사서 올 때가 많다. 가짜는 아니지만, 심할 때는 마시는 것도 위험할 때가 있어 구매에 신중해야 한다. 전문가라면 냄새, 외관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시음을 해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하다. 제대로 된 보이차를 많이 마셔본 사람이라면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처음 드시는 분들은 구별이 힘들 수 있다. 애초에 차를 잘 모르는 여행객이 좋은 차를 좋은 가격에 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오히려 국내 믿을 만한 곳을 통해 차를 사는 것이 좋은 이유다. 늦은 봄 오래된 미래 인도 라닥에도 가야 하는데 감기가 들어 고생이다. 차 카페인은 불포화 카페인으로 흡수되지 않고 몸 밖으로 쉽게 배출이 된다. 보이차나 잘 만든 황차(무이암차, 오룡차)는 많이 마셔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 하도겸은 사회와 문화예술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바라는 입장에서 더 맑고 밝은 나아감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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