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의 정체성은 골동품이나 예술품보다 예술가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풍류가 아닌가 생각된다.

 

10여 년 전부터 인사동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김명성씨가

인사동 대표적 묵객으로 여겨지는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선생의 동상을 세우려 했으나,

관청의 협조를 얻지 못해 미루어져 왔다.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선생과 멋쟁이 방송작가 박이엽선생은 차지하고라도

‘귀천’ 찻집을 주 무대로 인사동 낭만을 풍미한 천상병 시인 동상만이라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 일요일 정오 무렵,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가 유진오씨를 데리고 녹번동을 급습했다.

주말은 녹번동에서 개기는 것을 알아 술안주까지 준비해왔는데, 어찌 술자리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두 달 전 술을 사두고 갔으니, 술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유진오씨는 이른 시간부터, 때 늦은 ‘봄날은 간다’를 부르는 흥겨운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술 마시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인사아트플라자’에서 장소를 제공해 그 인근에 천상병시인 동상을 세운다는 것이다.

동상을 제작할 작가는 최민화씨로 정해져, 머지않아 인사동의 상징물 하나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북인사마당에 대형 붓 하나를 오래 전에 세워놓았으나, 사물보다는 사람이 더 정겨울 것이다.

어떤 모습의 천상병 선생이 인사동에 등장할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애들처럼 깔깔거리는 천상병선생의 천진난만한 웃음도 매력적이지만,

천국 갈 시간을 기다리는듯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모습도 생각난다.

그리고 장난 끼 넘치는 모습의 술자리도 연상되었다.

 

다들 낮술에 취해 인사동으로 넘어왔다.

'서울아트가이드' 6월호 구하러 간다는 핑게로 따라나섰지만,

천상병시인 동상 세워질 장소가 궁금해서다.

 

정확한 위치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건물 가까이는 자칫 건축 조각으로 여겨질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동집’ 골목으로 들어가는 코너가 마땅할 것 같았다.

 

주말의 인사동거리지만 거리두기 정도의 사람들이 나왔는데,

예년처럼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모습은 당분간 볼 수 없게 되었다.

 

거리를 지나치는 행인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마치 외계인들 세상 같은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인사동도 세월 따라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천상병시인이 살아계신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목여사 말씀은 곧잘 들었으니, 쓰기 싫은 마스크를 턱 아래 걸치고 거리를 휘젓는 모습이 떠올랐다.

 

사동집 골목 안에 있는 지금의 최대감집이 선생께서 자주 드나들던 ‘실비집’이었으니,

기분 좋은 표정으로 그 골목을 돌아 서는 포즈도 연상되었다.

 

아무튼 최민화작가의 기발한 구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너무 일찍부터 김칫국 마시는 것 아닌지 모르겠으나,

인사동의 멋진 상징물이 들어서길 간절히 기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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