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명성씨가 ‘아라아트’를 개관한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6년이 되었다.
재벌도 그 정도 건물을 짖게 되면 이리저리 재느라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데,
그는 초지일관 생각대로 밀어붙였다.





인사동 메카로 만든다며 건평 100평이 넘는 지상5층, 지하4층에
다른 매장 하나 들이지 않고 갤러리만 고집한 것이다.
결국 못 버텨 중국 업자한테 넘어갈 때는, 인사동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 했다.





그동안 삼십여 년 동안 그에게 신세 진 예술가들이 너무 많다.
더 이상 도움 못 받아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인사동 예술가들의 꿈이 좌절되었기에 더 슬프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던 그를 믿기 때문이다.





지난 9일은 김명성씨 생일이었다.
둘도 없는 사람의 생일과 하루 차이라 잊을 수가 없다.
여지 것 생일 때마다 잔치를 같이 했는데, 이번엔 동지가 일이 생겨 갈수 없단다.





하필이면 잘 모르는 ‘송추 가마골’이라, 식당 찾느라 좀 헤맸다.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서길헌, 전인미, 박성식씨가 와 있었다.





김명성씨로 부터 오랫동안 신세졌지만, 그동안 밥 한번 산 적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손님이 많아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이번에는 밥 값이라도 내고 싶었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더구나, 그때처럼 잘 나가지 않을 때라 기회다 싶었다.






그런데, 그 집 음식 값을 살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꼬불쳐둔 신사임당 두 장으론 어림없었다.






마침, 박성식씨가 산다기에 단번에 꼬리 내렸지만, 거지가 밥 산다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었다.
돈도 돈이지만,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좌우지간 원님 덕에 나팔 불며 잘 먹었으나, 양쪽으로 한 알뿐인 이빨로 고기 먹느라 바빴다.
부디 생일 복으로 소원성취하길 빈다.


김명성씨가 살아야, 인사동도 살고, 작가들도 산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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