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반가운 손님 오셨다는 연락을 정영신씨로 부터 받았다. 문경의 문화활동가 이선행씨가 인사동 왔다는데, 점심이나 같이 먹잖다.
하필 ‘헌법제판소’ 부근이라는데, 요즘은 헌법 이야기만 들어도 열 받는다. 부지런히 내려가니, 이선행씨와 함께 골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9월 문경장에서 뵙고 처음인데, 그 때보다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여자 분들은 살이 빠지는 것이 좋은지 모르지만, 난 든든한 미인이 좋더라.
그 곳에 맛있는 만두집이 있다는데, 자주 들락거리는 나보다 시골 사람이 더 잘 알았다. 가보니 '깡통만두'집인데,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동자동에서 줄 세우는 게 지겨워, 줄서는 건 딱 질색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두라 먹기도 편하지만, 기다리다 먹으면 더 맛있잖아.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지, 빈대떡 도시락까지 싸 왔다. 두 분이 인사동에서 차 한 잔 한다지만, 난 자판기 스타일이라 빠졌다.
나온 김에 볼 전시가 있어 인사동 거리로 나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돌아보니 안면 있는 분인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야! 이럴 때, 정말 입장곤란하다. 기억이 날 듯 말듯 머뭇거렸더니, 봉화 도예가 신동여씨 이야기를 꺼냈다. 그 때야 오랜 기억이 떠올랐는데, 영주의 권오진씨 였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종문씨와 적음까지 그리워졌다.
잘 아는 분 전시가 있어 왔다기에 따라갔더니, ‘인사아트’에서 열리는 김흥배씨의 ‘달항아리’전이었다. 달 항아리가 정말 달덩이처럼 훤하게 잘 생겼더라. 녹차는 얻어 마셨지만, 그 곳도 자판기 커피는 없었다.
전시장을 나와 김진열, 장경호, 정복수씨 삼인전이 열리는 ‘나무화랑’으로 올라갔다. 전시장에는 김진하 관장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4년만의 "조우 또는 해우“ 김진열, 장경호, 정복수전은 ’나무화랑‘ 기획전이다. 김재홍, 김영진, 박불똥의 36년만의 만남-오!레알?』展에 이어 '중견작가 되돌아보기 시리즈' 두 번째 전시다.
강렬한 물질성과 형상성으로 민족의 아픔을 말하는 김진열씨, 초지일관 인간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는 정복수씨, 한 때 ‘한강미술관’을 운영하며, 민중미술에 기름을 부었던 장경호씨 등 다들 한 가닥 하는 배트랑 작가전이라 볼만하다.
그러나 방명록에 흔적만 남기고, 얼른 줄행랑쳤다. 사실 장경호 만나지 않으려고, 개막식을 피해 일부러 일찍 간 것이다.
그는 동생처럼 생각하는 친구지만, 요즘은 일체 상종을 않는다. 한 달 전에 부린 주정이 내게 부린 술주정이라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건 정영신에 대한 모욕이라 참을 수 없었다. 지금은 내 기집이 아니지만, 십 몇 년 살아보니 참 착한 년이더라. 여지 것 그 여자 힘들게 하면 누구든 그냥 두지 않았다.
그러나 화는 시간만 지나면 풀리지만, 이 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칠 작정이다. 그만큼 서럽고 외로웠으면 작업으로 토해낼 때도 되었는데, 허구한 날 술로 세월 보낸다. 그것도 조용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쌓인 분노를 술 친구에게 다 풀어 주변에 술친구가 없다.
사실 좋은 신작이라도 내놓았다면, 오히려 내가 사과하려 했다. 무슨 철천지 원수진 것도 아니지만, 작업에 매달리지 않는 한 보지 않을 생각이다.
나 역시, 존경하는 선생이던 친구든 후배든, 가리지 않고 입 바른 소리를 해 사람 많이 잃었다. 그렇지만, 그런 모욕에도 깨우치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필요 없다. 좋은 사람 만나기도 바쁜데, 덜 된 사람 만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나저나, 커피생각은 간절한데 인사동에는 커피자판기가 없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러 계동 ‘민예총’사무실로 올라갔더니, 정영신씨는 없고 서인형 국장과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있었다. 다들 ‘민예총’ 기금 마련전 준비로 바쁜 것 같았다.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니, 그때야 정영신씨와 이선행씨가 올라왔다.
마침 탁자 위에 2003년도 ‘문예진흥원’에서 만든 신학철선생 전시도록이 있었다. 신학철화백의 걸작들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끔찍한 작품 한 점이 눈에 밟혔다.
난, 세상만사 미리 정해져 일어난다는 운명론보다 인간이 짓는 업보를 믿는 편이다. 저 그림이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지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세상사 누가 알겠냐마는, 좋은 것이 좋다는 어른들 말씀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게다.
지금 선생께서 처한 슬픔이, 한낱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길 빈다. 간절히...
『김진열/장경호/정복수- 34년만의 조우 또는 해후』展은 나무화랑의 지난 『김재홍·김영진·박불똥의 36년만의 만남-오!레알?』展에 이어 '중견작가 되돌아보기 시리즈' 두 번째로 기획 되었다. ● 1984년 관훈미술관(지금은 갤러리)에서 김진열/장경호/정복수 3인전이 열렸었다. 80년대 초반, 뒤숭숭하고 혼란스런 화단엔 온갖 다양한 모색과 발언들이 70년대식 미술을 거부하며 명멸했다. 많은 그룹들과, 많은 기획전, 그리고 많은 선언들이 스스로를 80년대의 적자라고 주장을 하며 등장 했다.
김진열_두일리 농부_종이에 아크릴채색, 금속_2018
김진열_두일리 농부_종이에 아크릴채색, 금속_2018
장경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11
이때 이들 3인전의 '형상성'은 놀라웠다. 기존에 전혀 보지 못했던 양식과 스타일로 회화의 근거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던졌다. 그리고 자신 내부로부터 동시대 현실을 향해서, 또 동시대인으로서 자기 내부에로 무언가 강력한 신호를 교신하고 문제를 제기했다. 개별 존재인 화가 자신과 세계와의 이질과 불화를 직접적 몸의 표현성으로 남기면서. ● 거기에 회화는 잘 어울리는 미디어였다. 촉감과 액션, 붓질과 흔적, 속도와 물질감 등이 빚어내는 야생적 원초성은 오히려, 관습화된 미술의 허구에 일대 파열구를 내기에 충분한 현실적결과물이었다. 미술이... 그림이... 생생하게 살아서 말하고 배설하고 욕을 하고 일기를 쓰는 것처럼, 회화가 우리들의 피부가 되고 근육이 되고 움직임이 되는 원시적 충동의 새로운 형식으로 전치되었다. 이들 3인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선모델링이나 매너리즘 같은, 앞선 미술사에 대한 표절 없이 당시 자신이 마주한 세계에 대한 생생한 형상성과 표현성에 접근한 것이었다.
정복수_기쁨의원형12_하드보드지에 색연필, 연필_41×28cm_2003
정복수_마음의일기_패널에 유채_110.5×121cm_2003
이들이 34년 만에 다시 '조우'했다. 아니 '해후'라 해야 하나? 30대 젊은 시절의 강렬한 물질성과 형상성을 유지하고 있는 김진열, 초지일관한 주제의식으로 더 세련되어진 화면으로 인간에 대한 발언을 지속하는 정복수, 동일자의 지옥에서 아토포스적 타자를 묵시적으로 호명하는 장경호의 재회는, 60대 중반에도 쉬지 않고 자신의 작업을 반성하는 결과를 보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그만큼 이 작가들의 작업에 대한 쉼 없는 모색은 비판적 형상미술의 토대를 풍부하게 해 주는 단서가 되고 있다. ■ 김진하
화가 박흥순씨가 아들 조햇님에게 결혼 선물을 보내왔다. 4년 전에 그린 내 초상화로, 아들 내외가 좋아할지 모르겠다. 단칸 방의 좁은 공간이라 결혼사진 걸 자리도 빠듯할 텐데, 징글징글한 애비 얼굴을 매일 보는 게 큰 고문이 아니겠는가? 장롱 위에 숨겨두었다 죽어 생각나면 한 번씩 꺼내 보거라.
아무튼, 박흥순씨께 거듭 감사 인사드린다.
인사동 ‘풍류사랑’에 맡겨 둔다기에, 나가는 걸음에 잠시 들렸다. 진즉 정선으로 떠나야 했으나 몸이 편치 않은데다, 모처럼의 ‘인사모’ 모임이 있어 이틀 동안 꼼짝도 않고 드러누워 있었다.
어제는 가봐야 할 사진전만 세 군데나 있었지만, 모두 포기했다. 북촌 ‘서이갤러리’에서는 이완교씨의 전시가 열렸고, 인사동 ‘나우갤러리’에서는 오상조씨의 전시가, ‘토포하우스’에서는 조명환씨의 사진전이 열렸는데, 다 같은 시간에 개막되었다.
이제 전시가 줄줄이 열리는 가을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조용한 시간에 들릴 작정을 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사진전 개막식에는 반가운 사람들도 많겠으나, 거들먹거리는 보기 싫은 사람이 많아, 가능하면 안 가는 것이 속 편하다.
문제는 반가운 사람 만나면 사진 찍는 습관 때문이다. 보기 싫은 사람은 안 찍으면 되겠지만, 그게 안 된다. 개밥에 도토리 끼이듯이 꼭 끼어든다.
다음 날 ‘인사모’ 모임 가는 길에 초상화를 맡겨 둔 ‘풍류사랑’에 잠시 들렸다. 술집 안을 들여다보니, 술시로는 이른 시간에 장경호씨가 앉아 있었다. 최혁배 변호사를 기다린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최혁배씨와 휠체어를 미는 공윤희씨가 서 있었다. 제일 반가워하는 분은 보영이 엄마였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뽀뽀세례를 퍼 붓는데, 혁배씨가 얼떨떨한 모양이다.
난 언제 저런 환대 한번 받아볼까? 생기길 잘 생겼나? 그렇다고 돈이라도 많나? 하는 일이란 게 미운털 박힐 일만 도맡아 하고 다니니,,,ㅉㅉ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