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친구에게 발목 잡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주말을 녹번동에서 보내고 동자동으로 복귀할 무렵,

인사동에서 ‘유목민’을 운영하는 전활철씨로 부터 연락이 왔다.

요즘 들어 사람들 만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꺼두었더니

정영신씨 편으로 쓰리 쿠숀을 친 것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온 다는 전활철씨가 나타나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서야 배낭을 짊어지고 나타났는데, 손님이 없어 이틀 동안 가게 문을 닫았단다.

어디를 쏘다니다 왔는지 술안주로 사 온 육회는 이미 상해 버렸다.

정영신씨가 임기응변으로 마련한 야채 안주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요즘 화가 장모씨가 돈이 생겨 사람들 불러모아 흥청망청 술값 낸다는 말도 듣고,

옛 친구였다는 대선주자 윤모씨의 인간적인 면모도 들었다.

'유목민'과 관련된 책을 만들 준비를 한다는 등 이런 저런 이야기 듣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창밖이 서서히 어두워질 무렵, 정영신씨 핸드폰으로 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조해인 시인이었다.

“형 전화가 꺼져 무슨 일 생겼냐?”지만, 그 날이 칠순 되는 생일이란다.

연락이 안 되어 여지 것 김수길씨와 마시다 헤어졌단다.

이미 취한 목소리지만, 고희 맞는 이 좋은 날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올려면 빨리나 올 것이지 양과점에서 케익 사오느라 한 참 걸렸다.

 

생일 케익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롤 케익을 사온 것이다.

그 때까지 안주가 신통찮아 손가락만 빨았는데, 이게 왠 떡이냐?

담콤한 안주가 깔아주니 독한 대마불사주가 술술 들어갔다.

 

나야 칠순 지난지가 오래지만, 고희연을 이렇게 초라하게 보내서야 되겠는가?

코로나 시국만 아니라면 인사동에서 잔치라도 한 바탕 벌어야할텐데...

 

고희란 두보 ‘곡강시’의 “人生七十古來稀”에서 나온 말인데,

옛날에는 70살 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싯귀 중에 '且看欲盡花經眼 莫厭傷多酒入脣"이란 말도 있다.

"지는 꽃 보고 어른거림 잠깐 사이니, 서글픔 많다 말고 술이나 마시자"

덤으로 사는 인생, 어찌 빨지 않을소냐?

쌍팔년도 케케묵은 사연을 안주삼아 “부어라 마시어라” 잘도 들어갔다.

축배에 축배를 거듭하고, 술이 술을 마셔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활철씨는 아랫집 문은 왜 두드렸는지, 난 왜 차안에 들어가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동자동 가려고 차를 탔으나 차마 시동을 걸지 못한 것 같았다.

차에 앉아 술 깰 때까지 기다리다 잠든 것 같은데. 내려보니 술 취한 늙은이들은 오간데 없었다.

마침 지하철이 끊기지 않아 지하철 타고 서울역까지 갈 수 있었다.

쪽방까지는 어떻게 올라왔는지, 선풍기도 틀지 않고 잠들어있었다.

 

눈을 뜬 시간이 새벽 네 시 무렵인데, 더워서 땀 범벅이 된 몸이야 차지하고,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었다. 거짓말 좀 보태 냉수를 한 말은 족히 마셨을 것이다.

정신 차려 엊저녁 기억을 되돌리려 카메라를 열어보니 귀가 막혔다.

그 날은 정동지가 내 카메라로 찍었는데, 가기 싫어 비좁은 문 앞에 버티고 누운 모습까지 있었다.

치매 환자가 제 나이를 잊은 듯 했다.

 

죄 없는 김용만씨의 ‘술이 원수다.’노래나 불렀다.

“술술 술이 원수다.

다음 날 아침에 술병이 났네.

때늦은 후회들 소용이 있나.

맞다 맞다 맞았다. 술이 원수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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