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이 인사동에 뜬다는 연락을 받았다.

유목민에 출몰하는 디데이는 7일 오후 네 시로 잡혔다는데, 아마 손님 없는 낮 시간을 택한 것 같았다. 

마치 간첩 접선 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구신들 모이 챙기느라 좀 늦었는데, 한 낮의 술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김신용, 김명성, 조해인, 장경호, 김원명, 노현덕, 김수길 씨가

두 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있었는데, 마치 이산가족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뒤늦게는 김상현씨와 안원규씨도 왔고, 딸 같이 예쁜 소녀 조은영, 박지수양 까지 합류했다.

김신용씨는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며 잠적했으니 근 이년이 가까워 온다.

 

그동안 월북한 게 아니라 시작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사도 두차례나 했다는데, 다음 달엔 다시 홍제동으로 온다고 했다.

돈 벌려고 이사를 자주하는 복부인과는 달리 빈자의 설움이다.

한 편으론 사는 환경에 따라 시적 대상도 새로워 질 수 있겠더라.

 

이 얼마만의 인사동 유민들의 만남이며 얼마만의 술판이던가?

그동안 수행하듯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다니, 몸은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런데, 김신용씨가 몸만 온 게 아니라 새로 낳은 시집 .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를 챙겨왔다

 시가 전과는 달리 짧아졌는데, 시처럼 시집도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앙증맞았다.

 

 

김신용의 아홉 번째 시집에는 90여편의 짧은 시가 실려 있었다.

시의 대상이 자연적인 사물과의 대화에 집중되고 있었는데,

서사적 구조에 중점을 둔 종전과는 달리 함축된 미학적 탐미가 두드러졌다.

'백조출판사'에서 펴낸 시집 가격은 9,000원인데, 갖고 다니며 읽기 딱 좋았다.

 

김신용 시인은 1988년 무크지 현대시사상양동시편-뼉다귀집6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밑바닥 인생인 지게꾼으로 살며 버려진 사람’, ‘개 같은 날들의 기록등을 발표한 대표적 노동자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기며 시도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하잘 것 없는 사물과 대화를 나눈 도장골 시편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몸으로 부딪힌 시에서 감성으로 부딪힌 시로 바뀐 것이다.

 

그동안 장편 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를 비롯하여

산문집 저기 둥글고 납작한 시선이 떨어져 있네등을 발표한바 있다.

문단의 주목을 받아 온 김시인은 '천상병시상', '노작문학상'도 수상했다.

 

김신용시인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텐데, 더 이상 입 아픈 소리는 그만두고

시집에 실린 시 안개’나 맛보기로 소개하련다.

 

안개 자욱한 봄의 들녘에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안개의 심장이 뛰는 소리 같다.

이제 곧 햇살의 작은 새 떼들이

안개의 심장 속을 날아올라

아침을 깨우리라

 

박형준 시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소개했다.

 

맑게 빛나는 사물의 영혼과 손을 맞잡은 느낌이다.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이런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숨결 같기도 하고 이슬 같기도 한 이 아련한 따뜻함이 정겹다.

김신용의 시는 작고 여린 사물이 서로 맞잡은 손에 가만히 쥐어준 손수건 같다.

옹이, 풀잎, 이슬, , 수박, 목화씨 등 쓸모없고 하찮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해준

위로의 힘 덕분으로 나는 그대와 처음 손잡고 걷던 그 길을 다시 가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길에 그때의 벤치가 남아 있다면, 사물들의 영혼이 건네준 손수건을 깔고 함께 앉아

그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그대의 살아온 숨 냄새를 맡고 싶다.“

 

다른 때 같았으면 출판을 기념하는 잔치가 떠들썩했을 텐데,

이 미친놈의 코로나가 무서워 간첩 접선하듯 만난 것이다.

시집 너를 아는 것, 그곳에 또 하나의 생이 있었다로 위안한다.

 

김상현씨와 전활철씨가 불러주는 축가에 술이 술술 넘어갔다.

조용히 살자고 명세에 명세를 하였건만, 술만 들어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막힌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는 건, 노래가 아니라 피 토하는 각혈환자의 절규였다.

 

술과 안주는 또 얼마나 푸짐했으면, 아무리 먹고 마셔도 계속 나왔다.

그 술값은 긴 세월 인사동 유민들을 챙겨온 김명성씨가 냈다.

그 역시 형편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제 버릇 개주지 못한다.

 

헤어질 때도 하나하나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졌는데,

은밀한 접선이라 은밀하게 헤어졌다.

 

지하철을 탔으나,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에 미쳐 있었다.

시집을 꺼내 보고 싶어도 꼰대로 보일까바 참았다.

 

머리에 박힌 고드름시 한 편을 되뇌어 보았다.

물이 되어 흘러내리다 문득 걸어 온 길 되돌아보는,

저 서늘한 눈빛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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