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사진


살아 생선 강민선생께서 주도하신 인사동 오찬 모임이 오랜만에 다시 열렸다.
선생께서 돌아가시고 부터 서서히 잊혀져갔는데,
강민선생은 차지하고라도 김승환, 방동규선생 등 다른 분마저 뵐 수 없었다.
언젠가 자리 한 번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서정란씨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이다.



조문호샘 올해 가기 전에 송년회 한 번 해요. 강민 선생님과 친분 있는 분들이랑요

그래서 "얼씨구나" 만들어진 자리가 지난 30일 정오에 뭉친 나주곰탕오찬모임이다.

인사동 툇마루일층의 나주곰탕은 강민선생 단골이기도 했지만,

탕 속에 고기가 푸짐해 술안주로 안성마춤인 밥집이다.


 


약속장소는 손님이 꽉 차, 다들 그 옆에 있는 찻집에 앉았는데,

방동규, 김승환 선생님을 비롯하여 박희연, 서정란, 이명옥,

이은정, 전태수씨 등 여러 분들이 자리 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보면 반갑고, 앉으면 빨고 싶은 분들이 아니던가?

강민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 말인가?

서정란씨 이야기가 오늘 점심은 돌아가신 강민선생님이 산다는 것이다.

모임이 정해지고 생각지도 않은 전화를 받았는데, 강민선생 아드님이었다고 한다.

아버님께서 자주 만났던 분들께 인사동에서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이심전심이었다.

이건 분명 강민선생님께서 저승에서 아들에게 지령내린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니, 기국서씨가 '나주곰탕'으로 급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가서 찻집으로 데려 왔는데, 차라도 한 잔 하며 여유롭게 즐기라는 계시였다.

다들 연말이라 모이는 곳이 많은 모양인데, 뒤늦게 이행자시인도 나타났다. 

뚜꺼비 같은 소설가 김승환선생은 인증 샷만 찍고 도망치셨다.




 나주곰탕’에서 자리 비었다는 전갈에 다들 밥집으로 옮겼다.

소주 한 잔하며 탕 그릇에서 건져 놓은 수육을 보니, 돌아가신 강민선생님이 생각났다.

술 안주로 건져놓은 수육을 매번 슬며시 내 접시로 옮겼는데, 마치 죽은 울 엄마 같았다.

불의에는 칼날처럼 매서웠던 강민선생님의 그 자상한 모습이 떠오르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눈물이 탕 그릇에 떨어지는 거야 괜찮으나, 누가 볼까 쪽팔려 미치겠더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 지,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요량도 못한 채 취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밀정원으로 차 마시러 갔다.

, 까발리는 걸 좋아하는데, 다들 비밀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비밀정원에 가 있으니, 다른 곳에서 한 탕 뛰고 온 김명성씨가 나타났.

기국서씨는 술이 부족했던지, 보드카처럼 생긴 독주 한 병을 사 왔다.

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두 잔만 마셨는데, 그 술을 혼자 홀짝 홀짝 다 마셨다.


 

오늘은 빠질라고 작정하고 왔어요’라고 했던 귀엣말이 생각났다.

기상천외의 퍼포먼스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자리에서 일어 나 남녀가 약속이나 한 듯 갈라졌다.

방배추선생께서 기국서, 김명성씨등 꼬봉들을 거느리고 유목민을 습격한 것이다

가보니 송일봉씨가 입구에서 뭔가를 정탐하는 것 같았고,

안쪽에는 시인 정동용, 기타리스트 김광석, 발렌티노김도 보였다.


 

여기 저기 다니며 사진 찍을 일도 많은데, 방배추선생 구라 듣느라 퍼져버린 것이다.

방동규선생이 누구더냐?

백기완, 황석영씨와 더불어 조선의 삼대구라로 꼽히는 분이 아니던가.

방배추선생은조선의 주먹등 최고로 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에 노동판에 일하러 가고, 체육관에 다니며 체력 관리하는 분이다.

, 한마디로 선생님을 義人이라고 생각한다. 옳지 못한 것은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태극기부대나 가셔야 할 분이 촛불집회마다 쫒아 다니신다.

얼마 전 김정헌씨 작품 보러 간 영종미술관에서 그림 보며 내려오다 굴러 떨어져

엠블란스에 실려 갔다는 소식도 뒤늦게 들었다.


 

그 날 하신 말씀도 놀랄 노자다.

여지 것 청년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노인이 된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오죽하면 선생님이 살아온 그 소설 같은 실화를 기국서씨 더러 극화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그 날 이야기만도 밤 샐 것 같아 말머리를 돌려야겠다.


 

기국서씨는 귀가 어두워 여기 저기 귀 기울이는 꼴을 보더니, 날 더러 탐색가라 했다.

내 귀에는 색을 탐하는 자로 들렸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두 번째 툇마루에서 열릴 인사모시간이 늦어버렸다.

정동용씨 더러 있으라 해놓고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달려갔는데,

가서 된장비빔밥에 술말아 또 한 잔 걸친 것이다.

반가운 분들과 노닥거리니, 시간은 잘도 갔다.


 

작별 인사하기가 무섭게 유목민으로 달려가니, 이미 술꾼이 바뀌었더라.

방동규선생을 비롯한 잔당은 물론 정동용, 발렌티노김, 김광석씨도 다 사라져버렸다.

새로 등장한 이인섭선생을 비롯하여 사진하는 이정환, 성유나씨가 있었다.

금주 한지가 두 달이 넘었다는 이정환씨는 소주잔에 음료수를 따라 마셨다.

그 술 좋아하는 사람이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니겠는가?

정말 살아남기 힘든 것이다.


 

그나저나 긴장이 풀려 그런지, 술이 슬슬 올랐다.

쪽방 계단 오를 일이 겁나 줄행랑쳤는데, 인사동 밤거리는 축축했다.

어떤 미친 할매라도 납치되고 싶었다.



쇼윈도를 올려다보니, 처녀귀신이 잡아먹을 듯 내려다보았다.

네 이놈!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탐색하냐?

강민선생께 일러바쳐, 저승 오면 곤장이 백대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사진





































도서출판 지성사 刊, 신국판, 96쪽(9,000원)
2018년 11월 15일 (목) 15:50:25 이가온 기자 press@sctoday.co.kr



시인이 만난 사람들, 시처럼 아름답다.


올해 희수(喜壽, 77세)를 맞이한 이행자 시인이 시집 『아름다운 인연』을 펴냈다.

40대 끝자락인 1992년 ‘전태일 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7권의 시집과 3권의 산문집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시집에는 모두 6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표제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집의 중심은 ‘사람들과의 인연’이다.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때로는 그들에게서 상처 받고 때로는 위안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러한 관계 맺음 속에서 좀 더 특별한 관계를 우리는 ‘인연’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에서 노래한 시인의 인연 가운데 이미 고인이 된 ‘아름다운 인연’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자신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그리고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이 한때 사랑했거나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연도 노래한다.


1부는 고(故) 고정희 시인, 김진균 선생, 장기려 선생, 이소선 여사, 소설가 이은성 선생을 비롯해

시인이 존경하는 사람들이 중심입니다. 이후 고즈넉한 산사를 노래한 시는 마음을 정갈하게 여미게 한다.


2부는 ‘노래로 내게 온 너에게’ 연작시 9편을 비롯해, ‘그’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 안타까움이 가득 담겼다.


3부는 시인이 현실에서 맞닥뜨린 일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들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켜켜이 추억이 서려 있던 곳을 떠나 용인시로 정착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비수처럼 날카로우면서도 회한 가득한 감정으로 풀어낸다.


4부는 시인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화가, 사진작가, 조각가에 대한 헌시(獻詩)로 엮었다.

시인이 만난 사람들, 시로 승화한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인연.

이행자 시인은 허사(虛辭)를 싫어한다. 그저 자신이 느낀 대로, 본 대로 거침없이 써내려 간다.

시인이 대상으로 하는 자연이든, 사건이든, 사물이든 그리고 사람이든 시인의 직관과 본능에 충실한 묘사가

그래서 더욱 절절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이행자 시인과 오랜 세월 함께해온 강민 시인의 「추천의 글」로 마무리 짓기로 한다.


이행자시인/ 조문호사진


  





이행자 시인은,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또 혐오한다.

그이가 써온 대부분의 시가 그이가 품어 안은 사람들이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 사람아』…….

문익환 목사, 김정한, 김진균, 박현채, 리영희, 이소선, 이수호 선생 등 손꼽기 힘들 정도다.

그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정의롭고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숙원인 분단 종식과 민중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번 시집 『아름다운 인연』을 봐도 역시 그렇다.

대뜸 눈에 띄는 시인 고정희, 문병란을 비롯한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그뿐인가 언론, 문화계, 운동권의 이름난 이들……수많은 ‘노래로 온 너에게’ 그이는 끝없는 애정을 쏟는다.

그러다가도 뭔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칼날처럼 잘라 버린다.

나는 그이의 주변에서 그렇게 밀려나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이 결벽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독립운동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숱한 고난을 겪은

그이의 성장기와 특별한 생활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매사에 우유부단한 나는 그래서 툭하면 야단을 맞는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그이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이행자 시인의 풍요한 인맥과 그이가 지니고 있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분위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번 시집 역시 ‘아름다운 인연’이라는 표제다. 부디 날개를 달고 낙양의 지가를 올리기 바란다.


- 강 민(시인)-

[이행자 약력]
1942년 서울에서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1990년 제3회 ‘전태일 문학상’의 시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시집 『들꽃 향기 같은 사람들』, 『그대, 핏줄 속 산불이 시로 빛날 때』, 『은빛 인연』, 『11월』 과 산문집 『흐르는 물만 보면 빨래를 하고 싶은 여자』,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아, 사람아!』, 시화집 강민· 이행자 『꽃, 파도, 세월』, 시선집 『파랑새』를 펴냈다



 

지난 21일은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셋째 수요일이다.

요즘 몸이 편치 않아 꼼짝도 싫지만, 안 나갈 수 없었다.

스스로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시인 강민선생과의 약속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있었던 서울문화투데이문화대상 시상식 날,

강민선생을 비롯하여 이행자, 김승환, 방동규 선생등 원로 문인들께서 축하하러 오셨더라.

창피하여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그 노구를 끌고 시상식장까지 찾아 오신 것이다.


 

그러나 주관처가 마련한 수상자들의 자리가 따로 있어,

점심 한 그릇 대접하지 못한 게 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식사 대접 하는 날을 셋째 수요일로 잡은 것이다.


    

이제 인사동에도 자주 나오기가 힘들어, 나온김에 많은 분을 만나고 싶었으나 욕심이었다.

점심과 저녁 사이의 그 빈 시간을 혼자 보낼 일도 예사 일이 아닌지라,

정영신씨 노트북까지 빌려나왔다.


 

정오 무렵, 인사동 나주곰탕으로 갔더니,

강 민, 방동규, 김승환선생께서 먼저 와 계셨다.

옆자리에는 덕원스님과 최명철씨도 있었다.

반갑기 그지없는데다, 날씨마저 받쳐 주었다.

춘분인데도 인사동에 진눈깨비가 내린 것이다.



아직 오시지 않은 분이 계셨지만, 술 없이 앉을 여유가 없었다.

곰탕 건더기를 안주로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첫잔의 술맛이 얼마나 달콤한지...

좀 있으니, 이행자, 장봉숙선생께서 온 몸에 눈을 잔뜩 뒤집어쓰고 들어오셨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할머니로 보이지 않고 소녀로 보였을까?

행여 이 말도 미투에 걸리는 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백기완, 황석영 씨와 함께 조선의 3대 구라로 불리는 방동규 선생께서 첫 포문을 열었다.

따님 방그레양이 중국 대학교수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런 구라라면 확성기 들고 인사동거리에서 소리칠 기분좋은 뉴스였다.

첫딸인 방그레양은 그림을 잘 그리지만, 둘째 딸 방시레는 배추선생처럼 운동을 잘 했다.

방그레, 방시레란 예쁜 이름처럼, 둘 다 예쁘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자식들 재능까지 알아보신 것 같았다.

그림 잘 그리는 그레, 운동 잘하는 시레로 지었으니 말이다.


 

이런 저런 배추선생의 재밋는 구라에 단번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들 앞에서 헛소리도 지껄이며, 미친 망둥이처럼 부산을 떨어댔다.

인사동 눈 오는 풍경도 그냥은 찍기 싫었다.

옆자리에서 마시던 덕원스님과 최명철씨를 밖으로 끌어내어 사정없이 박아버렸다.


 

그런데, 장봉숙선생께서 다음 셋째 수요일은 자기가 밥을 사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동안 여러 차례 얻어 먹은적도 있으나, 다른 선생님보다 형편이 나으니 고맙게 받아들였다.

다음 달 역시 셋째 수요일로 잡는 것은, 셋째 수요일은 인사동 나가는 날로 못 박기 위해서다.

약속하여 만나는 것보다, 우연히 만나는 기쁨이 더 반갑다.


 

'나주곰탕'집에서 나와서는 장봉숙선생께서 커피를 쏘셨고,

강민선생께서는 정승재씨의 개인전이 열리는 토포하우스로 안내해 주셨다.

난 개인전이 열리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정승재씨는 행정법률과 교수지만, 소설가로 더 잘 알려졌다.

그런데, 그림에도 남다른 면이 있어 작년에 이어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진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평창올림픽 개최가 확정되며 그리기 시작한

질주하는 하나된 열정이란 주제의 동계올림픽과 관련된 스포츠 그림인데,

선수나 작가의 강인한 도전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오는 27일까지 열리니 인사동 가는 걸음에 꼭 한 번 보시기 바란다.


 

전시장에서 나왔으나, 난 갈 곳이 없었다.

그 때까지 유목민 문이 열리지 않아, 옆집 커피숍에서 노트북으로 페북 질이나 했는데,

얼마나 지루한지 인사동을 여러 차례 돌아다녔다.



 

이날은 급히 나오느라, 페북에 알리지도 못했지만,

눈이 내린 후 날씨가 추워진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길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술도 못 마시는 화가 이종승씨만 서둘러 돌아가고 있었다.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만, ‘유목민에서 머뭇거리다 그냥 동자동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개인주의로 빠지는 야박한 세상이지만,

인사동을 드나드는 정든 예술가마저 그러지들 맙시다.

평소에는 관광객에게 인사동을 뺏기지만,

그 날만이라도 곳곳에서 반가운 사람들 만나는 날 만듭시다.

셋째 수요일 따뜻한 봄 날, 인사동서 신명 한 번 푸입시더.“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정선다녀 온 여독이 간신히 풀린 지난 10일 정오 무렵,

무의도촌장 정중근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대우빌딩 지하 식당가로 내려오라는 전갈이었다.

더위를 날려버릴 시원한 냉면을 그리며 달려갔다.

조수빈 명창과 와 있었는데, 식당마다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간신히 들어간 곳은 냉면대신 초계국수를 시켜야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로 넘어 온 기분이었다.

후덥지건한 쪽방에서 벗어났으나, 이곳은 간까지 서늘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추워져 빨리 나가고 싶었다.
벌벌 떨며 국수를 어떻게 먹었는지, 나중엔 다리까지 저려왔다.

어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지 모르겠다,






저녁 무렵엔 인사동으로 바람 씌러갔다.
몇 일전 정선 집에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다녀간 적이 있었는데, 깜빡 옷을 두고 간 것이다.

옷을 돌려준다는 핑계였지만, 술친구가 그리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입구에는 이행자시인과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종률씨가 마주 앉았고,

옆에는 판화가 강행복씨와 정동용시인이, 상만 달리한 채 함께하고 있었다.

강행복씨의 전시가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한 쪽에는 공윤희씨가 묘령의 여인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안쪽 자리에는 사진가 이정환씨와 ‘유신의 추억’을 만든 이정황감독도 보였다.
테이블에 소주 병이 일곱 개나 늘린 걸 보니, 어지간히 마신 듯 했다.

같은 찍사 입장이라 서로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늘의 기억이, 오늘의 기록이라며...






정동영시인은 내가 잊고 있던 일을 주지시켜 주었다,

인사동 사람들이 만나기로 한 셋째주 수요일이 다음 16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반가운 사람을 만날지 벌써 기다려진다. 술값으로 신사임당 한 장 쯤은 꼬불쳐 두어야겠다.






맞은편에 앉은 강행복씨가 정동용시인의 시 ‘가시고기새’를 기억하자 정시인 입이 쩍 벌어진다.

그는 한 때 인사동에서 ‘시인학교’란 카페를 운영해 교장선생님으로 통했는데,

돈 안 되는 시로 다 말아먹고, 지금은 노가다 판에 전전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자부는 대단하다.






사실상, 돈이 많으면 돈의 포로가 되니, 없는 것만 못하다.
어디, 돈 많아 얼굴에 개기름 번지르한 예술가를 본 적 있는가?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8일 조준영시인과의 약속으로 인사동에 나갔다.
강민 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을 마련한 것이다.
정오 무렵, ‘포도나무집’에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이행자, 조준영, 김상현씨가 나와 있었다.

뒤늦게 장경호씨도 나왔으나, 주문한 음식들이 형편없었다.
주인이 없으니, 제대로 된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 인사동에 갈 만한 음식점이 별로 없다.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그렇지 않으면 손님이 많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대충 허기를 메우고 ‘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민선생의 순례 코스이기도 하지만, 그 곳은 땅콩이 무제한 제공되는데다, 한적해서 좋다.

좀 있으니, 신경림 선생도 오셨으나, 자리가 편하지 않았던지 슬그머니 나가셨다.
강민 선생도 몸이 편치 않아, 먼저 가겠다고 일어나셨다.







그 때부터 김상현씨의 노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신곡이 많았으나, 그의 음색에 잘 맞는 곡이었다.









그 무렵, '경기도미술관장' 지낸 최효준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처럼의 인사동 나들이라 근황이 궁금했는데,
어디 갔다 오는지, 큰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다.

좋은 술이 있다며 배낭에서 술 한 병을 꺼내 주었는데, 감로주였다.

알콜 도수가 40도나 되어 그 자리에서 비우기는 좀 그랬다.
맥주로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었으나,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옮겼더니, 모두들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조준영씨는 신학철선생 계신 서울대병원으로 떠나고,
장경호씨는 전시 중인 ‘인디프레스’로 떠나며, 나중에 ‘유목민’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마침, 다음 달 12일까지 연장 전시된 김억의 목판화전이 생각났다.
‘나무화랑’으로 올라가니, 작가는 보이지 않고, 김진하관장과 정복수화백이 있었다.
좋은 작품에다, 반가운 분을 만났으니, 어찌 술병이 고개를 쳐들지 않겠는가?
감노주를 꺼내 마셨는데, 전주가 있어 그런지 금방 올랐다.
전시장에서 내려왔으나, 더 이상 지체할 수 가 없었다.













저녁 약속으로 다시 나와야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야했다.
몸도 피곤하지만, 아침일찍 일터에 나가던 아내가 부탁한 게 있어서다.
집에 들어와 숨도 고르기도 전에, 빨리 나오라는 전화가 이어졌다.






‘유목민’으로 나갔더니, 일터에서 곧장 온 아내도 와 있었고,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편집국장과 임동현기자도 와 있었다.

그리고 마산에서 올라 온 변형주씨와 조준영, 장경호, 공윤희씨 등 여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은영씨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이라며 신문을 보여 주었다.

술 취한 분들이 신문을 무시하는 말을 한 것 같으나,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돈 안 되는 문화예술계 소식만 다루는 유일한 신문이 아니던가?

잘 못된 부분이 있으면 정확히 지적하여 시정하도록 해야지,

신문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만든 신문에 시비를 건단 말인가?

난, 어렵게 운영되는 신문을 아끼는 마음에서 원고료도 없이 글을 보내주고 있다.











옆 자리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장성한 아들을 데려 왔는데, 음악을 공부한다더라.
기타를 연주하였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위키리의 ‘눈물을 감추고’란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얼마 전, 부친 상을 당한 이은영씨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제일 좋아하던 노래라며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술이 취해, 결국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눈물을 감추고, 눈물을 감추우고, 이슬비 맞으며 나 홀로 걷는 밤길...”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단양에 사는 설치미술가 김언경씨로 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작년 가을, 그의 딸 자연이 결혼식에서 보고 첫 만남이었다. 숙취에 끙끙댔지만, 서둘러 인사동으로 나갔다.

약속장소인 ‘툇마루’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그 맞은 편 ‘사람과 나무’로 옮겼더라.

들려보니, 곤충사진가 이수영씨와 함께 있었는데, 카메라가방을 두 개나 들고 왔었다.
카메라가 괜찮은지 봐 달라기에 열아봤는데, 오래된 필름 카메라였다.

저급한 러시아산으로 마치 기관총 같은 손잡이도 달려있고, 큰 망원렌즈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모터드라이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렌즈들이 들어 있었지만, 실용성 없는 카메라였다.

폼 잡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가 사용한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 무렵, 단양에 차린 ‘낭만’이란 카페의 장식품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을 한 후 자리를 옮겼다.

이른 시간이라 단골술집들이 문을 열지 않아 ‘포도나무집’에 퍼져 않았다.
이수영씨는 곤충사진집들이 잘 팔려 나간다며 신바람 났더라.

주로 5-8세를 겨냥한 책들인데, 이 불황에 8만부나 팔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책 안보는 세상이지만, 자식한테는 아끼지 않으니, 이해가 되었다.

통인동에서 전시하는 장경호씨도 합류했다. 무더운 날, 낮술에 취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창 넘어로 지나가는 강민 선생의 모습이 비쳐 급히 모셔왔는데, ‘예당’에 이행자 시인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인사동에 자주 나오시지만,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는 노시인의 한숨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짝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올 해로 마무리하고, 다른 곳에서 사람을 찾을 생각이다.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거리로 마중 갔더니, 엄상빈씨와 걸어오고 있었다.

저녁 무렵 ‘브레송’에서 있을 문진우사진전 개막식 보러 일찍부터 나온 듯 했다.

낮 술을 권할 수가 없으니, 사이다로 목이라도 축여야 했다.

한물 간 인사동이지만 이래저래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하루였다.

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죽치는 것 같아 전활철씨에게 전화했다.

빨리 문 열 것을 재촉하고는, ‘유목민’으로 옮겨 초장부터 돌아가며 노래 불렀다.

석파 김언경의 가곡 십팔번들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

유진오씨 까지 출근했지만,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충무로 전시장으로 떠나기 전에 나도 노래 한 곡 불렀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러야 옳으냐?”

사진, 글 / 조문호











































 

오랜만에 시인 강 민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21일 오후1시경 ’하누소‘에서 만나 이행자시인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한 잔 더했다.
강민 선생께서는 한동안 허리가 아파 고생했으나, 이젠 한결 나아졌다고 하셨다.
그날은 가난한 이행자 시인께서 밥값 술값을 계산했는데, 신발마저 예뻤다.

오후6시에는 조준영시인과의 만찬약속이 있었다.
정영신과 함께 한 ‘유목민’ 옆자리에는 노현덕, 정기영씨의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는 뜻밖에도 조해인시인 내외가 나타나 함께 어울렸다.

조해인씨는 명상에 관한 글을 탈고해 ‘해냄출판사’대표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천상병시인의 근거지를 빨리 인사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천상병문학상'의 선정기준도 작품의 우월성에만 한정하지 말고,
천선생의 시 색깔에 맞는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인의 친구 분들은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등 돌린 의정부행사보다는
생전 선생의 삶과 창작의 근거지였던 인사동에서 주관할 것을 모두들 바라고 있다.
천상병시인을 내세워서라도 인사동문화와 풍류를 되살렸으면 좋겠다.

사진,글 / 조문호

 

 

 

 

 

 

 

 

 

 

 

따뜻한 햇살에서 따가운 햇살로 바뀌었던 지난 5월 21일은
오찬약속에다 만찬약속까지 겹쳐 온종일 인사동을 맴돌아야 했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아는 곳을 방문했으나

낯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강 민선생님과 이행자시인을 만나 오찬을 함께 하였고,

인사동 거리에서는 만화가 박재동선생을 만났다.

 

도화가 오만철씨를 비롯하여 김 민씨, 김비아씨, 송정순씨의

전람회장에 들렸고, ‘갤러리 나우’와 ‘공아트’, ‘아라아트’ 사무실에

들려 이순심관장과 공창호씨, 전인미 감독을 각 각 만났다.

‘허리우드’에서는 김명성, 이상훈, 공윤희씨를 만나기도 했다.

인사동거리는 유랑 악사들과 초상화 그리는 이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렇게 바쁘지 않은 나들이객들의 발길을 잡지는 못했다.
파리만 날리는 인사동 전시장과는 대조적으로, 그 많은 관광객들은

기념사진이나 찍으며 관광상품가게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게 일상적인 인사동의 풍경이니 머지않아 관광객도 줄어들게다.

그 관광객들이 물러나야 인사동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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