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고병수가 엄청 잘 생겼더라.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노래도 가수 빰 치데.
예쁜 소라 양을 만나 입이 찢어지는데, 솔직히 사랑 좀 받겠더라.
‘병수야!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라.’





그런데, 병수보다 아버지 고영준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겠다.
병수야 어린 시절 한두 번 본 게 전부지만, 고영준은 40년 지기다.
79년 쯤 만났는데, 그는 사진가이기 전에 ‘사협’의 반세기를 지켜 본 증인이다.






‘사협’의 총무라면 하나의 권력라인이다.
총무에서 사무국장으로 바꾸어가며 이사장을 좌지우지했던
웃기는 사협의 세월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감방까지 오가며..






세상에! 이사장 바뀌었다고, 먹고 사는 총무 목을 자르는 놈이 어디 있노?

이명복과 이명박이 비슷한 과다.
오죽하면, 옆 사무실에 있던 ‘예총’소속 ‘연예인협회’ 사무국에서 일했겠는가?






고영준은 천성이 못된 짓을 못한다. 그러니 못된 패거리들과 조가 맞을 수 없다.
대신 너무 착해 빠져, 아내 한선혜씨 고생깨나 시켰다.
서울예전 사진과를 나온 아내 한선혜씨는 사랑 때문에 하던 일을 포기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초창기에 본 한선혜씨의 사진은, 솔직히 고영준 사진보다 한 수 위였는데 말이다.






고영준씨는 일찍부터 ‘사협’에서 총무 일을 오래 한 덕에,
‘환경사진가회’나 ‘현대사진가회’의 총무 일도 도맡아 했다.
사람 좋은 덕에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몰린다.





당시에는 ‘예총’에 소속된 ‘사협’ 사무실도,
신희순씨가 운영한 ‘꽃나라’라는 흑백현상소도 모두 인사동에 있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사진동아리도 만들었는데,
이름 하여 ‘眞友會’라고 했으나 대개 ‘진로회’라 불렀다. 




 


돌아가신 양은환, 신회순씨를 비롯하여 유성준, 정용선, 하상일, 고영준, 정영신씨
등 10여명 남짓 되었으나, 뒤늦게 들어 온 분들은 헷갈려 정리가 잘 안 된다.
그 중 사진으로 돈 번 친구는 강남에서 폐션 사진 한 정용선씨가 유일하다.






어떤 특정한 색깔 없는 친목단체였기에, 사진 기억보다 술 마신 기억이 더 많다.
그 모임의 중심에도 언제든 고영준씨가 있었지만, 어느 날 홀연히 털고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빨간 불에,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 헌신짝처럼 버려 버렸다.
고생만 죽도록 한 사진판을 뒤로하고, 태국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82년 서울 올라 왔을 때, 잊을 수 없는 추억 하나 있다.
취직하기 위해 면접 보러 간다니까, 면접 볼 사람이 그 꼴로 어떻게 가냐며
카드를 빌려 준, 그런 위인이다. 






본래부터 정장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그 따뜻한 마음에 촌놈처럼 빼입고, 면접 보러 간일도 있다.
그러나 매사가 쉽지 않았다. 사진 때문에 잘 나가던 장사도 날린 놈인데,
차라리 거지로 살며 마음대로 사진 찍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꼴리는 대로 살았으니, 아무 여한은 없다.






고병수 장가가는 날에 갑자기 삼천포로 빠진 것은 고영준과의 만남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다.
그날 결혼식장에 모인 분들이 대개 ‘진우회’와 관련 된 오래된 사우였다.
하상일 선생의 오붓한 가족을 비롯하여 유성준, 정용선, 이혜순, 김종신, 목길순,
정철균, 배창완, 우숙자, 최성규, 정영신, 김흥묵씨 등 많은 분들이 어울렸다.
옛날 ‘한국일보’자리의 ‘무드블랑’ 예식장에서 한 잔 했으나, 이차는 인사동이었다.






옛날 ‘꽃나라’ 자리에 가본 후, ‘유목민’에서 한 잔 더 하려 했으나, 생각을 잘 못했다.
주말의 인사동은 관광객에게 뺏긴지 오래라, 단골집 모두가 문을 닫아 버렸다.
골목은 텅텅 비어 허허로웠고, 큰 거리만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했다.
그들은 밥도 술도 먹지 않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먹을 것을 싸들고 다닐까?






사람이 많으니 한 사람 찾고 나면, 한 사람 잃어버리는 돼지 가족처럼 돌아다니다
간신히 자리 잡은 곳이 인사동 ‘마중’이었다.





정용선씨가 ‘화요’를 비롯한 기똥 찬 술로 한 턱 쏜다지만,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사실은 축의금을 부탁하고, 전 날 강진 가기로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았다.
날이면 날마다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엔 결혼식이라 한선혜씨 까지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결혼식만 끝나면, 출발할 작정으로 차를 끌고 나온 것이다.






‘진로회’답게 삼차를 간다기에 도망쳤지만, 주차비 문제로 또 씨름했다.
요즘은 카드가 없으면, 주차도 못하는 지랄 같은 세상이다.

하기야! 카드 내지 않고 현금 내니, 탈세 조장한다는 양반도 있더라.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