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가객 최백호의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마음의 숲에서 출간되어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다.

출판된지 한 달도 되지않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최백호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마음의 숲/ 240면 / 가격17,000원

지난 달 초에 발간된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는 그가 써온 노래가사처럼 깊은 우수와 사유,

삶에 대한 통찰이 오롯이 담겨있다.

 

산문집에는 최백호가 가수가 된 우여곡절과 가수로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살아 온 진득한 이야기,

노래에 얽힌 사연, 그리고 깊은 울림을 주는 삶의 잠언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60세가 넘어 그리기 시작하여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가졌던 그림 30점도 수록되어

산문집의 볼거리를 더해주는데, 그림에 이어 글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하기야! 그가 쓴 시 같은 노래가사들을 보면 일찍부터 노래하는 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수이며 시인이고, 시인이며 화가인 최백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풍류객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4일 오후 4시에는 광화문 교보빌딩 대산홀에서 최백호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북 콘서트가 열렸다.

 

교보빌딩 23층 대산홀은 350석 규모지만 코로나 방역으로175명만 입장할 수 있는데다,

책은 이미 구해 읽은 터라 북 콘서트는 가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뜻밖의 이변이 생겨버렸다.

 

필자가 포스팅한 북 리뷰를 본 울산의 오세필씨가 사발통문을 돌려버렸다.

그 덕에 김명성씨가 좌석을 확보하여 인사동 지인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이십여 명이나 추가로 참석할 수 있었던 것도 객석의 반만 예약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 날 오후 3시 무렵, 정영신씨와 인사동부터 들려 갤러리인덱스에서 열리는

) 김기찬선생의 어게인 골목안 풍경 속으로사진전을 관람했는데,

사진전 역시 모처럼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좋은 사진이었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역술인 신단수씨를 만나 그날 일진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북콘서트가 열리는 대산홀 입구에는 신단수씨의 친형인 김명성씨가 구입한 책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객석에는 오세필, 임태종, 정기범, 이정숙씨등 반가운 분도 여럿 보였다.

 

오후4시부터 시작된 북 콘서트는 최백호의 주옥같은 노래와 함께

가을 낙엽처럼 구수한 이야기들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께서 태어난 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은 자신을 보러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누님으로부터 너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원망과 더불어

공부가 하기싫어 방황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가슴에 맺힌 상처까지 다 털어놓아

그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별도의 사회 없이 혼자서 1시간 30분 동안 끌어가는 북 콘서트 진행 솜씨도 보통은 아니었다.

 SBS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14년 동안 끌어 온 경험이 뒷받침 되지 않았나 싶다.

 

그 날 부른 노래는 부산에 가면을 비롯한 애창곡을 일곱 곡이나 불렀는데,

우수에 젖은 그의 노래는 흩어지는 낙엽처럼 아련한 향수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특히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친구 홍수진 시인을 생각하며 가사를 쓴

영일만 친구에서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왔다.

마지막 구절인 친구를 부르는 대목은 절규처럼 가슴에 내려 꽂혔다.

 

3월 말에는 부산에서 최백호의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북 콘서트가 열린다니,

부산에 계신 분들은 잊지 말고 좋은 시간 만들길 바란다.

 

'인사동 사람들'은 북 콘서트가 끝난 후 미리 예약해 둔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겨 유쾌한 만찬의 시간도 가졌다.

그러나 김명성씨가 마지막 기념사진 찍으며 뱉은 농담 한마디는 영원히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가 되고 말았다.

 

사진, / 조문호

 

정영신 사진
정영신사진
정영신사진

  

하상호, 왕인숙씨의 아들 태영군과 강찬모, 정영임씨의 딸 현인양이

지난 5281230아펠가모 반포'에서 화촉을 밝혔다.

 

이번 결혼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십 년 전인

초등학생 시절부터 가까웠던 친구 사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살다 보면 어린 시절 인연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늘 친구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축원한다.

 

예전에는 딸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딸을 잃은 듯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으나, 이젠 세상이 역전되었다.

아들 장가보내는 부모 마음과 뒤바뀐 것이다.

 

딸을 시집보낸 것이 아니라 아들 같은 사위를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날 결혼식에는 많은 지인이 참석하여 결혼을 축하했다.

 

이성 구로구청장을 비롯하여 조준영, 오세필, 전활철,

이만주, 서길헌, 조해인, 김수길씨 등 많은 분을 만났는데,

김명성씨는 부인 지혜숙씨와 아들 한성군까지 대동했다.

 

강 화백께 다시 한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사진,  / 조문호

 

 

 

항일 무장투쟁 100주년과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아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백범 김구 쓰다'전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14일 김명성씨 연락으로 박물관에 갔는데, 개막한지가 두 달이 넘었더라.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입구에는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이성 구로구청장 내외,

최효준 전 시립미술관장, 화가 강찬모, 전인경씨, 뮤지션 김상현씨등 여러명이 먼저 와 있었다.

 

유묵 소장자인 김명성씨를 비롯하여 김시업 '은평역사박물관장'과

이랑 학예사의 해박한 설명아래 백범 김구선생의 유묵전을 살펴보게 된 것이다.

 

이 전시는 독립운동의 구심체였던 임시정부의 활동을 조망하고

김구선생의 결기에 찬 글씨를 통해 민족 지도자로서의 정신력과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 깊은 전시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경무국장을 시작으로

주석에 이르기까지 27년간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전시에는 해방 후 4년동안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며

민족 분열을 막기 위해 남긴 주요 작품 30여점을 비롯한 68점이 나왔다.

김구선생은 해방 이전에도 많은 글씨를 썼으나 전해지는 게 거의 없다고 한다.

 

김구선생은 글씨를 여기(餘技)로 쓰지 않았다.

그의 글에는 혼란스런 해방 정국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기대가 담겨있어

그의 글씨는 곧 통일운동이었다.

 

이번에 내놓은 ‘백범 김구 쓰다' 기획전은 '백범 김구‘선생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독립운동 사료와 독립지사들의 유묵들을 다수 소장한 김명성씨가 

지난 해 ‘구로문화재단’에서 전시 한 "독립이 맞습니까?"전에 이은 전시다.

 

김명성씨는 “중후한 글맵시와 강직한 기개가 돋보이는 현판 글씨에는

단순히 필획의 형식미를 뛰어넘어 민족주의자가 지닌 신념과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가슴에 맞은 총탄으로 수전증을 얻어 손 떨림이 붓끝에 전해졌으나

정신의 웅장한 기세는 그대로 살아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백범은 1945년 환국 당일 이순신 장군의 ‘진중음’(陳中吟)을 남겼다.

‘바다에 맹세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아주네.’(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

그의 글에는 해방된 조국의 포부가 넘쳐난다.

 

1946년 겨울에는 비서 김우진에게 남이 장군의 시를 써줬다.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두만강의 물은 말이 마셔 없애네’(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로 시작하는 시로 호연지기가 넘친다.

 

이 전시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73년 만에 처음 공개된 백범의 ‘일송오강’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

일송오강’은 사람의 도리를 요약한 5개 강령으로 ‘천지를 위해 마음을 세우고,

부모를 위해 몸을 세우고, 나를 위해 도를 세우고, 백성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만세를 위해 규범을 세운다’는 뜻이 담겼다.

 

이 글은 심산 김창숙선생의 손자가 가보로 간직해온 글을 처음 공개했다.

백범의 평생 동지였던 성균관대 초대 학장을 지낸 심산께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유묵 6점을 소장한 심산의 손자 김위(83세)씨의 말을 한 번 들어보라.

“이 글은 할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전해주셨고, 2017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제가 보관해왔습니다.

아마 할아버지께서 백범 선생에게 이 문구를 요청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백범 선생은 할아버지의 스승인 대계 선생도 잘 알고 계셨거든요.”

 

김구와 김창숙 지사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는데,

비타협 정신으로 일관한 대쪽 선비로, 서로 뜻이 통했다고 한다.

‘일송오강’은 중국 만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독립운동 기지를 세웠던

대계 이승희(1847~1916) 선생이 지어 매일 외던 글귀로 심산에게 좌우명 같은 경구였다.

나라의 장래를 위한 문구로 부족함이 없었다.

 

심산사상연구회장을 지낸 김시업 '은평역사박물관장'은

“‘일송오강’은 백범이 심산에게 써준 글이지만, 백범의 마음 자체였다”며

“그들은 반일,·항일이란 민족적 사명 앞에서 손을 잡은 혁명적 인간 이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백범 글씨의 재평가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글씨는 곧 그 사람’(書如其人), ‘사람과 글씨는 함께 익는다’(人書俱老)는 말처럼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백범의 행적과 정신세계를 두루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백범과 심산의 또 다른 글씨도 처음 공개됐다. 백범이 늘 마음에 새긴 칠언구가 그중 하나다.

‘가지를 붙잡고 나무에 오르는 것은 쉬우나, 낭떠러지에서 붙잡고 있는 손을 놓는 것이 가히 대장부다.’

(得樹攀枝無足奇 懸崖撒手丈夫兒).

 

심산은 송나라 학자 정이의 ‘청잠’(聽箴)을 썼다.

‘사람이 떳떳한 마음을 가진 것은 천성에 근본한 것이다.

그러나 앎이 외물에 유혹을 받아 그 바름을 잃게 되는 것이다.’(人有秉彛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심산의 글 앞에 찍힌 한반도 모양 낙인도 눈길을 끈다.

도장에 ‘남북일가’(南北一家)를 새겼다. 하나 된 남북에 대한 희구다.

 

그리고 백범의 유묵 외에도 임시정부 활동상과

서재필,·이상룡,·조소앙, 박열, 지청천,·이범석 등 다른 독립지사들의 유묵도 소개된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구체적 활약상도 소개한다.

임시의정원의 임시헌장을 비롯해 광복군 자료와 미주 동포의 의연금 영수증 등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3·1독립선언서, 대한독립선언서, 대한국민의회 선언서도 함께 공개된다.

 

이랑 은평역사박물관 학예사는 1947년 쓴 ‘독립만세’와

1948년 쓴 ‘광복조국’은 완전한 독립과 광복을 웅변하는 걸작이라고 소개했다.

“김구선생에게 민족의 완전한 통일국가 수립은 1919년의 3·1운동에 이은 제2의 독립운동 이었다”면서

“남·북한의 분단정부 수립과 함께 실패로 끝난 백범의 꿈이 담긴 글로,

마지막 내면세계가 진하게 밴 유묵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김구선생은 민족의 완전한 자주통일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김구선생의 유묵에서 못다 이룬 꿈과 마지막 내면세계를 만나보기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이 전시는 3월 28일까지 열린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휴관을 고려해 전시 일정을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관람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오후 5시까지 입장) :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1,000원

은평한옥역사박물관: 서울, 은평구 연서로 50길 8 / 은평한옥마을 / 전화 02-351-8524

 

구로구민회관, ‘갤러리 구루지’에서 ‘독립이 맞습니까?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지난 12일 오후5시에 시작된 개막식에는 생각보다 손님이 많았다.

요즘은 손님 많은 개막식은 잘 안 가지만, 이 전시는 안 갈수가 없었다.

전시된 독립자료들이야 촬영할 때 여러 차례 보았지만,

선열들의 의연한 기상을 느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더구나 전시 자료들이 인사동을 사랑하는 김명성씨가

긴 세월동안 어렵사리 찾아 낸 유적들이 아니던가?

 

예전 같았으면 인사동 사람들의 모임인 ‘창예헌’을 통해 전시를 알렸겠지만,

모임이 흐지부지 한데다 시절이 사람을 많이 불러 모을 때는 아니었다.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를 통해서만 알렸는데, 대충 아는 듯 했다.

사이트에 자주 들락거려 하루에 500여명은 찾아오니까...

 

그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라.

아는 체하면 웃거나 손을 흔들지만, 누군지 분간 안 되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 코로나 방역이 생활화되었지만, 사람들 꼴은 말이 아니었다.

언제까지 입에다 팬티를 걸치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숨이 차 못 견디겠다.

 

전시장에는 이성 구로구청장과 구로문화재단 허정숙대표이사, 김명성 독립투쟁사 추진위원겸 에술 감독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을 비롯하여 구중서, 방동규, 박기정, 무세중, 무나미, 정기범, 이정숙, 손연칠, 김규선, 김상환, 김연갑, 박동웅, 강찬모, 최효준, 박인식, 조해인, 김수길, 송일봉, 최유진, 조준영, 박윤호, 김상현, 권경일, 전인경, 전인미, 정영신, 서길헌, 노광래, 이만주, 전활철, 김 구, 임경일, 이상훈씨 등 알아챈 분은 이 정도지만, 100여명은 되는 것 같았다.

 

행사에 앞 서 가진 국민의례는 다른 행사와 달리 꼭 필요한 의례였다.

그 자리에서 어찌 고개 숙여 묵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최 측과 내빈께서 차례대로 나와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다.

 

전시된 갤러리 ‘구루지’는 미술관 사정이 열악한 서울 서남권의 대표 갤러리로

도약하기 위해 확장 공사를 가진  후 첫 전시라고 했다. 전시장 짜임새도 흥미로웠다.

마치 독립투사들의 밀회장을 연상할 수 있는 은밀한 전시 공간이 두 곳이나 있었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100여 년 전으로 세월을 되돌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안타깝고 분한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강화도가 함락되자 이시원과 아우 이지원이 목숨을 끊기 전에

올린 절명시를 비롯하여 박열열사가 옥중에서 쓴 칠언절구 2수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철망 안에서 보내는 나날, 낙원 속에서 사는 것만 같구나.

귀신이 베갯머리 나타나 신선 같다고 속삭인다."

 

그 유묵과 서찰들을 살펴보며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목숨을 바쳐가며 독립을 이루었건만, 아직까지 친일세력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아니던가?

전시 제목처럼 ‘독립이 맞습니까?’란 물음이 절로 나왔다.

모두들 이 전시를 찾아보며 친일청산에 나서야 한다.

 

일본 놈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을 무참하게 죽인 백선엽 같은 인간이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일제에 빌붙었던 ‘조선일보’를 비롯한 왜놈 앞잡이들이 아직까지 깽판치는 세상이 아니던가?

 

다들 인근에 있는 뒤풀이 장소 ‘내고향 숯불갈비’로 자리를 옮겼다.

전시장에선 다들 방역규칙을 잘 지켰지만, 입을 가리고야 먹을 수 없지 않은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여지것 입막고 고생했던 일은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렸다.

죽고 사는 것은 오로지 신의 뜻에 맞길 수밖에 없었다.

 

부어라 마시어라 술을 퍼 마셨다.

이렇게 기분 좋게 어울려 대취할 수 있는 기회가 살아 생전 몇 번이나 더 있겠는가?

 

고기굽는 아주머니의 엉덩이가 내 옆구리에 부딪혔다.

이것도 미투 대상이 아닌가도 생각되지만 기분만 좋더라.

좋을 때는 넘어가고 나쁠 때는 미투가 되는 세상, 여성 혐오감만 짙어가니 이 일을 어쩔까?

 

문제가 되었던 박재동화백은 결백이 밝혀졌지만, 박원순 시장은 목숨까지 잃었다.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장 최효준씨는 아직까지 미결로 남았다.

당사자가 제거되면 누가 득을 보는지, 그걸 보면 알수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 사람은 기획된 함정이 틀림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맞은 편 자리에는 사진가 박윤호씨가 앉아 있었다.

오래 전 페북 사진 때문에 페친관계를 끊은 적이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미안했다.

올 년말에 사진전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은, 한 사람을 모델로 찍은 표정사진이란다.

 

그 전에 문제가 되었던 것도 얼굴을 너무 가까히 찍어 혐오감을 일으켜서인데,

모델만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그 방법을 재연했다고 한다.

나 역시 사진을 찍지만 얼굴에 바짝 렌즈를 들이밀고 반복해서 찍으면 불쾌하기 그지없다.

그 사진으로 전시를 한다니 할 말은 없지만, 일단은 축하할 일이었다.

 

먼 뒷자리에는 인연을 끊은 선배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전시장에서도 부딪히는 걸 의식적으로 피했으나, 후배의 도리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들려 준 모욕적인 험담은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이 들어가니 마음이 흔들렸다.

 

사진사가 사람이 싫다고 객관적인 기록을 않는다는 것은 쪽팔리는 일이었다.

그 선배가 일어서니, 때 마침 '뮤아트'의 김상현씨가 ‘떠날 때는 말없이’를 서럽도록 불렀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맨발로 뛰어나가 그 선배 일행을 찍고 말았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노객의 뒷 모습에 애잔함이 밀려왔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곳은 동자동도 인사동도 아닌 구로동이 아니던가? 은평방면으로 갈 사람을 모았다.

조해인, 김수길, 정영신, 박윤호씨 등인데 택시 한 대에 다 탈수가 없었다.

난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라고 우겼는데, 다섯 명이 한 차에 탈 수 있도록 눈감아줬다.

 

얼마나 끼어 앉았으면 주굴 주굴한 얼굴이 땡겨 펴질 지경이었다.

스님들이 저지르는 불법도, 무임승차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30여분 동안 곤욕을 치르고 끌려간 곳은 조해인씨 집 부근에 있는 ‘치킨호프 응암점’이었다.

 

내일 삼수갑산에 갈지라도 마시고 볼 일이었다.

정영신씨를 위해 김수길씨가 와인까지 사 왔지만, 쓸데없는 짓이었다.

자기는 와인보다 소주잔을 채우기가 무섭게 입에 털어 넣는 만용을 부리면서....

 

이미 술이 취해 술이 술을 마시는 격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 놀란 사실은 박윤호씨가 술과 담배를 끊었단다. 그 긴 시간동안 술 한 잔 마시지 않았다.

아무튼 내가 너무 오래 산 것 같다.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독립투사들 덕에 술 얻어마신 것도 생전 처음이었다.

귀신 술이라 그런지 술은 술술 넘어갔지만,

그 이튿날 방바닥에 엎드려 하루 종일 속죄해야 했다.

다시는 귀신 술에 욕심 부리지 않겠다고...

 

사진, 글 / 조문호

 

'구로문화재단'에서 광복 75주년을 맞아 개최한 특별기획 ‘독립이 맞습니까?전이

지난 12일 구로구민회관 ‘갤러리 구루지’에서 성황리에 개막되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조선의 3·1 봉기’(김의익), 통일무(이응노), ‘칼노래(오윤),

‘새야 새야’(김준권) 등 그림 7점을 비롯해 헤이그 특사로 활약한 이상설의 유묵,

그리고 양기탁선생에 대한 일제검찰의 심문조서, 독립군의 독립자금 영수증,

백범 김구를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의 다양한 유묵과 서지 자료 111점이 전시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불령사를 조직해 천황 폭살을 도모하다 투옥됐던

박열이 일본 운노에게 보낸 편지와 ’법학만초‘ 초고에 대한 이상설의 소개서,

구한말 항일순국지사인 류도발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서 쓴 서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박은식의 <안중근 선생전>, 김두봉의 <조선말본> 등 143점의 서책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전시물을 비롯한 도록에 게재된 300여점 대부분이 독립투쟁사기념관 추진위원으로 있는

김명성씨 개인 소장품으로,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되지 않거나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희귀본이 많다.

 

전시는 ‘동학혁명과 창의’, ‘순절과 순국’, ‘3·1대혁명과 임시정부’,

‘의열과 무장투쟁’, ‘교육계몽과 통일’ 등 5개 주제로 나눠 구성되었는데,

개화기에서부터 광복과 분단에 이르는 100여년 동안의 자료를 통해

독립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삶과 정신을 돌아보는 자리다.

 

“2017 문체부에서 발표한 국립한국문학관의 도서 구입 예산 내역을 보면, 총 예산 9억3459만원 가운데 친일파 이인직의 <혈의누> 구입가가 무려 1억7천만원이고, 이광수의 '무정'을 포함한 친일 문학인 8명의 저작물 가격이 전체의 38.3%인 3억6500만원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신 분들이 300만 명이 넘는데 우리가 찾아낸 선열은 불과 1만 5689분으로 그마저 제대로 예우하지 않아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그 당시 독립자금을 내면 독립군이 영수증을 끊어줬다. 이는 나중에 나라를 세우면 독립투쟁에 기여한 이들에게 빚을 갚겠다는 뜻이 아니었겠느냐”고 이 전시 예술총감독이기도한 김명성씨는 되묻는다. 바로 특별전시회의 제목을 ‘독립이 맞습니까?’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이 맞습니까?" /274면/ 가격 45,000원

 

이 전시는 8월29일까지 열린다. (전시문의 02-2029-1744)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 없이 열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일요일 '천상병기념사업회' 이사장 김명성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성씨가 왔는데, 별일 없으면 집에 놀러오라는 것이다”
별 일도 없지만, 구로구청장 이 성씨 본 지가 오래되어 진관동으로 달려갔다.

이성씨에게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냐?”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안 한다고 했다.
할 만한 사람은 관심 없고, 썩어빠진 인간들만 몰리니 정치판이 개판 아닌가?




창밖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나뭇가지에 쓸리는 “솨~솨~”하는 바람소리가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김명성씨 독립운동자료전을 비롯한 은평 한옥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김명성씨 더러 은평구청장을 한번 만나보라며 이성씨가 다리를 놓았다.
허물없는 사이인지 일요일인데도 김미경 구청장께 전화를 걸었다.


좀 있다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답이 온 모양인데,
한참 후에 나타난 김미경 구청장이 정희석 은평구 정책관을 대동했다.
김명성씨는 물론 나 역시 김미경 구청장을 처음 만났다.
오죽하면, 선거 포스트 사진보다 훨씬 인간적이라는 소리까지 했을까?




진관동 일대를 문화관광벨트로 엮기 위해 애 쓰는 은평구청장과
진관동 주민이며 문화전략가인 김명성씨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았다.

구체적인 논의보다 첫 인사나 나누는 만찬자리였으나,
돌아가는 분위기가 은평 한옥마을에서 좋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았다.

은평구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관광 체험 도시’를 만들고 있다.
수려한 북한산자락에 들어 서 있는 100여채의 한옥마을을 거점으로
2025년까지 옛 기자촌 자리에 “국립한국문학관”을 건립한다.
그리고 문화 예술인들이 창작 활동을 펼치고 시민들이 예술 체험을 즐기는
문화 아지트(예술인마을)도 조성할 계획이다.
진관동 일대를 ‘문화·관광 벨트’로 엮는다는 구상이다.




영원한 사진동지 정영신씨도 은평구에서 수 십 년을 살았지만,
아들 햇님이도 은평구에 산지가 오래되어, 여자로 치면 은평구가 친정 같은 곳이다.
이왕이면 친정 동네에 문화아지트 생기면 좋지 않겠는가.

전시장도 여러 군데 있다니, 좋은 전시를 유치하는데 힘을 보탤까 한다.


더구나 은평구 응암동에는 천재화가 이청운씨가 살지 않는가.
지금은 병석에 있지만, 대부분의 이청운 걸작들이 응암동작업실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김명성씨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진귀한 자료를 대부분 소장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그 많은 자료를 촬영하여 데이터 베이스화 했는데, 대관절 나라에서 그동안 뭐했는지 모르겠더라.

그처럼 역사를 소홀하니, 역사를 뒤 집는 인간도 생기지 않더냐.
그 방대한 자료를 한 번에 전시하려면 '국립현대미술관' 전관을 빌려도 안 될것 같았다.

아무튼 은평구가 우리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우뚝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글 / 조문호















지난 토요일에 참 아름다운 결혼식을 보았다.


글도 그림도 깨어있는 이 시대의 청백리 이 성구청장의 둘째 아들 영일군과

이병직씨의 딸 민석양이 ‘신도림웨딩시티’에서 화촉을 밝힌 것이다.


이 날은 ‘눈빛출판사 30주년 기념전’ 부대행사인 이광수씨의 강의가 강남에서 있었지만,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매번 늦장 부리는 이 못된 버릇은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할 것 같다.
장소를 잘 모르면 일찍 서두르면 될 걸, 뺑뺑 돌아 신도림역에 내렸는데, 이미 결혼식은 치루어 지고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모두 식당으로 옮겼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영일군 장가가는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려 남은 것이다.





어린 소년 소녀로 만나 친구에서 연인으로 부부로 골인한, 그 일편단심 민들레 커플이 아니던가.

그런데, 또 하나 놀란 것은 의례있는 주례사를 생략한다는 것이다.
성혼선언서를 갖고 나온 이 성씨가 주례사 아닌 주례사를 간략하게 대신 한 것이다.
처음엔 좀 의외로 생각되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짜 바람직한 일이었다.
부모보다 잘 아는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이 성씨가 아들 영일군의 장점과 단점을 일일이 열거했다.
착하고 명석한 두뇌는 장점이 되겠으나, 끈기나 용기가 좀 부족하단다.
부족한 것은 신부 민석양이 보완해 주고, 신부가 부족한 것은 영일이가 보완하라는 부탁을 했다.
아무리 유명 인사의 공자 말씀도, 이보다 더 좋은 주례사는 있을 수 없었다.

이름이나 간판 위주로 내 세우는 주례의 내용이라는 게, 다 그렇고 그렇지 않던가?
어떤 이들은 돈으로 주례 설 사람을 사기도 하는데, 다 필요 없는 낭비고,
즐거운 결혼식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일 뿐이다.






잘 못된 허례의식을 가감하게 바꾼 이 성씨의 혜안이 돋보였다.

그리고, 축의금도 오만원이 넘어면 장학금으로 보내겠다고 공지했다.


이 성씨가 누구던가?
80년도에 행정고시로 서울시 공무원이 되어, 시정개혁단장을 역임했다.
많은 일들을 바꾼 장본인으로, 중요한 것은 그의 생각이 항상 깨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글 잘쓰는 '인사동 사람'으로, 지금은 구로구청장을 연임하고 있다.
한 때는 '월간문학'에서 ‘돈바위산의 선물'을 펴냈고, ’아버지‘로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성단장의 온가족 세계 배낭 여행기“는 세간의 화제를 모우기도 했다.





그런데, 아들 영일군 칭찬을 해야 할 자리에서 아버지 이야기만 늘어 놓았네.

사실, 영일이는 잘 모르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워낙 훌륭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처럼. 영일군도 밀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신랑신부가 퇴장하는 사진을 찍고,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회장은 장소가 너무 넓어, 아는 분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연극배우 이명희씨와 소설가 박인식, 시인 김명성, 성악가 이경오씨 등, '인사동 사람들'이 여럿 왔다는 전갈 받았는데...

혼자 음식을 챙겨 소주 반 병만 마시고 나왔더니. 그 때야 전화가 빗발쳤다. 

 

영일아~ 민석아~  부디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아라.


사진, 글 / 조문호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에 대한 경의”, 연남동 공간41’에서 9일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전인경씨는 만다라(Mandala) 안에서는 인간과 우주가 하나다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풀어간다.  수많은 핵으로 형성된 윤회적 표현들은 순환과 회귀로 이어지며, 해와 달의 시간성을 나타내기도 한.


그녀는 캔버스 앞에 앉으면 수행자가 된다. 자신의 일상을 완전히 차단한 채, 마음의 중심을 찾아나서는 내면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마 무의식 세계로 빠져 들어가는 명상적 기도인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에서 부터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향해 덧칠해 가며 만다라의 원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는 성신여자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만봉 스님으로 부터 4년 동안 불화를 사사받아, 불화와 단청 학습으로 자신만의 사유 세계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일관되게 작업해 온 만다라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원으로 표현해 놓아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오했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일가를 이루어 펼쳐 온 만다라 작업에 변화가 찾아 온 것이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뇌과학자의 신경세포 드로잉과 만다라를 결합한 뉴로 만다라연작이었는데, 부제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에 대한 경의라 붙여 놓았다.



 

 

뉴로 만다라전은 100년 전 노벨상을 받은 신경과학의 선구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의 드로잉을 자신의 포스트만다라와 결합하여 새로운 과학예술의 장을 열고자 시도했다. 최초로 신경세포를 관찰하고 기록한 드로잉을 토대로 8점의 오마주 작업을 했으며, 현대 뇌 과학이 밝혀낸 신경세포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 4점도 발표했다.



 

 

이번 뉴로 만다라전에는 신작 12점과 함께 6점의 포스트만다라연작을 소개했는데, 5미터가 넘는 대작 슈퍼노바는 탄소의 탄생을 형상화한 것으로 만다라 연작의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었다. 함께 선보인 작품들도 만다라의 우주적 세계관과 천문학을 결합한 것으로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과학예술로 진화하는 전인경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인경씨의 작업은 세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이후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만다라를 통해 우주의 질서 속에 존재하는 인간 생명의 감추어진 구심점을 찾는 여정을 거쳐 온 것이다. 작년에 가진 두 번의 개인전에 이어 올해도 두 번이나 보여줄 정도로 부지런한 작가이기는 하지만 성급한 전시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따랐다.



 

 

미학의 뇌를 번역한 심희정 미학박사는 전인경의 작업 뉴로만다라는 예술적 상상으로 그려진 신경 체계에 대한 어떤 상이다. 거대한 은하계, 자연 세계의 어떤 단면을 연상시키며, 신경체들이 이루어내는 화면은 우주 기원, 생성과 소멸, 접촉과 변형을 연상시키며 글자 그대로 수많은 차원과 관계를 말한다고 말했다.



 

 

전인경씨는 시냅스는 시냅스작용이 일어나는 것들끼리 강해지고 굵어지며, 신경 세포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도 관계에서 의해서 일어나고, 우리의 인간사도 만나면 헤어지는 관계에 의해 일어난다. 생로병사의 인간 세계는 신경 세포의 생장과 정지, 연결과 단절은 우주에 있는 별들의 생성과 소멸과 같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 14, 연남동에 있는 갤러리 공간41’를 찾았다.

마침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작가 전인경씨를 비롯하여 미술평론가 심희정, 이준기씨, 문학평론가 구중서 선생, 시인 조준영씨, 화가 서길헌씨 등 여러 명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성 구청장과 만봉스님 자제 이인섭선생, 큐레이터 전인미씨 김용국, 김상윤씨가 차례대로

나타나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았다. 처음 보는 신작들과 함께 눈에 익은 작품도 더러 보였으나,

5미터가 넘는 대작 앞에서는 입이 벌어졌다.

전인경씨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뒤풀이 장소에는 무세중선생을 비롯하여 김명성, 이광군씨등 많은 분들이 먼저 와 있었다

 

사진,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