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사진가 엄상빈 선생과 몇몇 전시를 함께 돌아보기로 약속한바 있었다.

지난 3일 오후1시무렵, 통인동 메밀꽃 필 무렵에서 엄선생을 만났다.






제일먼저 사진위주 류가헌부터 들렸다.

그 곳에는 박찬원씨의 숨 젖 잠이란 제목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돼지 사진들이 걸려있고, 스피커에서 들리는 돼지들의 거친 숨소리는

마치, 돼지우리에 들어 온 느낌을 주었다.


오로지 고기로 왔다 고기로 가는 돼지를 통해, 생명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 생명의 의미를 사람에게서 찾는 게, 더 빠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상빈선생은 사람 찍기가 어려우니, 그 기에 이르는 과정일 것 같다고도 했다.  

그 전시 사진들은 눈과 귀는 빠져들게 하였지만,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두 번째는 창성동 온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차장섭씨의 한옥의 ’을 보러 갔다.

이 전시는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보았으나, 시간에 쫓겨 꼼꼼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 전시작가인 차장섭교수가 자리를 지키고 있어, 반가운 만남의 시간도 되었다.

건축부문, 전문 갤러리인 온그라운드는 적산가옥 골격을 그대로 살린 독특한 전시장이었다.


한옥 벽의 조형미에 빠져, 10년에 걸쳐 전국400여개 고택에서 찾아낸 한옥 이미지는 매혹적이었다,

자연스런 비대칭구도의 어울림은 마치 선사의 붓길 같기도 하고, 잘 이해되지 않는 추상화 같기도 했다.

천장 판자 사이로 비쳐내린 햇살의 그림자와 어울려, 한옥의 현장감까지 더해 주었다.

    







그 때 마침 다급한 차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제~ 아제~”라 불렀는데, 유리창 넘어로 고향 친척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전시장을 찾아 헤 메는 것을 먼저 알아차렸는데, 두 분 반가운 만남에 슬며시 빠져나왔다.





세 번째 들린 곳은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는 안옥현, 김병규의 넌 벽에 박혔어.

곳에서 작가인 안옥현씨와 사진평론하는 최연하씨도 만났다.


선생님은 여자 가슴사진을 춘화로 알고 오셨구나라는 농담을 받았는데,

내가 여자 밝히는 게, 동네방네 소문난 것 같았다.

”아이구! 너무 그러지마쇼. 여자 안 좋아하는 사내 있으면 한 번 나와 보라 그래요.“


그리고 전시된 사진들의 감정묘사 하나는 확실했다.

여인들의 리얼한 표정들은 마음 속에 감추어진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젖가슴을 통해 욕정의 찌꺼기까지 다 보여주었다.

 







네 번째는, 최연하씨의 안내로 일정에도 없던, 구기동 아트 스페이스 풀 퇴폐미술전에 들렸다.

전시 제목 자체가 왠지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퇴폐적이라 그럴까? 아니면 퇴폐적인 현실 때문일까?

먼저, 퇴폐미술하면 독일 나치정당이 작품을 퇴폐미술로 규정해 문제를 일으켰던, 1937퇴폐미술전이 떠올랐다.

 

권용주, 김웅현, 안경수, 오용석, 옥인 콜렉티브, 임유리, 장파, 전소정, 정덕현 등의 작가들이 참여해

회화, 비디오, 조각. 아카이브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기획자인 안소현은 나치의 퇴폐미술전과는 반대로, 예술이 먼저 사회의 경직성과 편견을 드러내,

사회를 규정해보고자 했다고 적어 놓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바르게 살자라는 등의 문구가 적힌 돌덩이 형상에도 실소를 머금었지만,

한나라당이라 세겨진, 긴 나무 현판을 옮겨 놓은게, 더 죽였다.







 

오영석씨의 작품은 남성의 아름다운 신체와 동성애 장면을 마치 흔들린 것 처럼 보여 주었다.

한 화면에 화려한 색감으로 풀어내, 마치 금기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오랜 동안 권력자들이 쳐 놓은, 금기의 울타리에 주눅 들어 살아 온 민족이다.

한 번 금기로 정해지면, 그 틀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퇴폐 아닌 퇴폐도 많지만, 퇴폐로 분류되어야 할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들린 동아일보 일민미술관에는 포르투칼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조각가 후이 샤페즈의

멀리 있는 방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러나 너무 불친절한 전시였다.

입장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안내조차 없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둠 속의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소재는 강철인데, 강철 같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먹물을 잔뜩 머금은 붓을 공중에 휘두른 듯, 흐드러진 곡선들이 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조각들도 마찬가지다. 강철 조각들은 육중함을 뽐내기는커녕 날아오를 듯 가벼워 보인다.

어떤 것은 풍선처럼 공중에 뜬 것 같았고. 어떤 것은 천으로 만든 가림막처럼 천장으로부터 늘어져 있다.


이 가벼운 강철 조각들 사이에는 과묵한 영상들이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카메라는 표정 없는 인물을 관찰하였고, 모니터의 흐릿한 빛들만 전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멀리 있는 방'이란 조각과 영상 이면의 관념이 공진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여러 전시를 돌아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일민미술관'을 제외한 모든 전시가 무료였지만,

관람객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작가들의 헌신적인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두지 않았다.

돈에 갇혀, 창살없는 감옥에 사는 많은 대중들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작가들이 불쌍하게 보이겠지만...


작가들의 예술을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도 가슴이 미어터지지만,

무더위에 못 견뎌, 거리에 더러누운 노숙자들의 모습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단양에 사는 설치미술가 김언경씨로 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작년 가을, 그의 딸 자연이 결혼식에서 보고 첫 만남이었다. 숙취에 끙끙댔지만, 서둘러 인사동으로 나갔다.

약속장소인 ‘툇마루’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그 맞은 편 ‘사람과 나무’로 옮겼더라.

들려보니, 곤충사진가 이수영씨와 함께 있었는데, 카메라가방을 두 개나 들고 왔었다.
카메라가 괜찮은지 봐 달라기에 열아봤는데, 오래된 필름 카메라였다.

저급한 러시아산으로 마치 기관총 같은 손잡이도 달려있고, 큰 망원렌즈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모터드라이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렌즈들이 들어 있었지만, 실용성 없는 카메라였다.

폼 잡는 것을 좋아하는 아마추어가 사용한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고철에 불과할 뿐이다.

작년 무렵, 단양에 차린 ‘낭만’이란 카페의 장식품으로 활용하라는 조언을 한 후 자리를 옮겼다.

이른 시간이라 단골술집들이 문을 열지 않아 ‘포도나무집’에 퍼져 않았다.
이수영씨는 곤충사진집들이 잘 팔려 나간다며 신바람 났더라.

주로 5-8세를 겨냥한 책들인데, 이 불황에 8만부나 팔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책 안보는 세상이지만, 자식한테는 아끼지 않으니, 이해가 되었다.

통인동에서 전시하는 장경호씨도 합류했다. 무더운 날, 낮술에 취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창 넘어로 지나가는 강민 선생의 모습이 비쳐 급히 모셔왔는데, ‘예당’에 이행자 시인 만나러 간다는 것이다.

인사동에 자주 나오시지만, 만날 사람이 별로 없다는 노시인의 한숨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짝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올 해로 마무리하고, 다른 곳에서 사람을 찾을 생각이다.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거리로 마중 갔더니, 엄상빈씨와 걸어오고 있었다.

저녁 무렵 ‘브레송’에서 있을 문진우사진전 개막식 보러 일찍부터 나온 듯 했다.

낮 술을 권할 수가 없으니, 사이다로 목이라도 축여야 했다.

한물 간 인사동이지만 이래저래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하루였다.

한 자리에서 너무 오래 죽치는 것 같아 전활철씨에게 전화했다.

빨리 문 열 것을 재촉하고는, ‘유목민’으로 옮겨 초장부터 돌아가며 노래 불렀다.

석파 김언경의 가곡 십팔번들이 우아하게 울려 퍼졌다.

유진오씨 까지 출근했지만, 더 이상 머물 시간이 없었다. 

충무로 전시장으로 떠나기 전에 나도 노래 한 곡 불렀다.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러야 옳으냐?”

사진, 글 / 조문호













































임재천씨의 ‘한국의 발견’ 강원도 편이 지난 7월16일부터 30일까지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와의 대화가 있었던 지난 21일,  ‘눈빛출판사’와 함께해 온 사진가들이 사진전을 보러갔다.

강원도 곳곳의 아름다움을 살펴보며, 사진전의 성과와 보완해야 할 점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가 의외의 선언을 했다.
“앞으로는 싸움 닭 노릇 그만하고, 좋은 책 만드는데 전념하겠습니다.”
갑작스런 심경변화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잘 생각한 것 같았다.


전체 사진인들을 포용해야 할 사진출판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늘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진계을 바로 세워야한다는 이대표의 정의감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게다.

이제, 그를 대신해 사진인들이 힘을 모아 나서야 할 차례다.

참석한 분들이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임재천씨 사진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성과를 격려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하며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평생 강원도와 함께 해 온 엄상빈씨는 안타까운 점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넓은 강원도 산하를 일 년이란 시한 아래 작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작업을 마무리할게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아래 보충촬영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지난 해 ‘제주도’ 작업에 이어 전 국토를 기록하는 임재천씨의 ‘한국의 발견’ 프로젝트는

사전에 후원자를 모집하여, 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추진되는 작업이라,

많은 기대 속에 사진인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 왔다.

전시작도 소장자인 후원자가 골란 사진인데, 전문가의 시각과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대개 아름다운 풍경 위주로 골랐는데, 아무리 소장자 취향이 우선이라지만,

그에 따르다 보면 작가의 자리가 없어질 뿐더러, 작품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자연 풍경 못지않게,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자취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바라며, 모두들 축배를 들었다.


이 자리에 함께한 분은 임재천씨를 비롯하여 신임 ‘스페이스22’ 관장으로 취임한 이유홍씨,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사진가 엄상빈씨와 홍성인 내외, 김보섭, 김상훈, 김 원, 남 준, 한선영,

하지권, 김지연, 김봉규씨 등 열 다섯 명이었는데, 뒤늦게 성남훈, 장 숙씨도 함께했다.

글 / 조문호



















































다큐 사진가 마동욱의 '고향의 사계'사진전이 지난 15일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이었으나, 전시장엔 축하객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장흥에서 올라 온 고향 분들이었다. 대단한 고향사랑에, 대단한 인정이었다.

 

여지 것 전시장 개막식에 그리 많이 돌아다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동내 이장에서부터 방귀깨나 뀌는 분들은 다 왔더라.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이귀남씨를 비롯하여

정동영, 이종걸, 윤호중, 황주홍의원 등 국회의원만 네 명이고, 오명준 장흥 향우회장,

이금호 장흥문화원장, 장흥신문 김선욱 편집인 등 내노라하는 분들이 줄줄이 나와 전시를 축하했다.

작가가 재벌이나 권력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개뿔도 없는 사진가에 불과하다.

이 건 고향사랑도 사랑이지만, 마동욱의 헌신적인 인간성에 매료된 것 같았다.

 

오히려 사진가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엄상빈씨를 비롯하여 이규상, 김보섭, 이기명, 김영태, 고정남,

김형진, 김남진, 남 준, 곽명우, 정영신씨 등 여러 명이 참석했으나, 고향사람들에 가려 버렸다.

 

사진가 마동욱의 고향을 사랑하는 사진작업은 30여년에 걸쳐 이어져 왔다.

그는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에서 태어나 교도관과 소방관으로 근무하기도 했으나,

아예 고향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찍는 사진은 돈벌이와 전혀 거리가 먼 사진이다.

안정된 직장 버리고, 돈 안 되는 사진가의 길을 택한 배짱이 도대체 뭘까?

그를 돈키호테라 칭한 어느 기자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누군들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여지 것 시골을 찍어 고향이란 주제로 책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한 사진가는 더러 있지만,

자신의 고향에 30 여 년 동안 메 달려 온 사진가는 처음이다,

마동욱의 작업이 높게 평가받는 것도 일회성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지속성에 있는 것이다.

그게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치다.

 

장흥댐 건설로 수몰될 수밖에 없었던 유치면 일대도 샅샅이 기록해 두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의 한이 응축된 사진들이다.

그 뿐 아니라 삶의 터전이나, 그 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기록해 왔다.

그의 사진 자체가 장흥의 역사나 다름없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묵묵히 해 온 것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고향으로, 시골 들판이나 정겨운 마을들이 마치 도면처럼 펼쳐져 있다.

드론(Drone) 을 이용해 찍은 300여개 마을 사진을 이어 붙인다면, 한 편의 장흥여지도나 다름없다.

그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모하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전경을 담으려 수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새처럼 날아 조감도를 찍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드론장비가 나오자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가난한 사진가의 형편으론 버거운 일이었으나,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조종이 쉽지 않아 바다 속으로 빠지거나 추락해 파손된 드론만 네 대나 된다고 했으니,

그 경제적 어려움이야 보나마나다.

 

전시된 마동욱 사진은 많은 사진인 들에게 사진하는 의미를 되묻게 했다.

사실적인 현실이 배제된 채,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사진들이 판치고 있다.

예술이란 이름에 포장되어 허구의 이미지만 양산하는 세태라,

작가는 많지만 정작 사진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본질에 대한 사실적 관찰을 중시하는 마동욱의 사진은 정직하다.

스트레이트 사진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의 사진들은 연출이나 트릭이라고는 전혀 없다.

있는 그대로의 직관과 정확한 기록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작가적 권위나 개인의 주장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작가는 자신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사진도 사진이지만, 마동욱의 남을 배려하는 인간성이다.

작품에 앞서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선배들로 부터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싸늘한 가슴으로 머리만 굴리는 작가들이 득실대는 현실이라, 따뜻한 심성을 가진 마동욱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일례로, 장흥에서 서울까지 거리가 어딘데, 전시마다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며 알아차렸다.

이건 단지 돈과 시간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이번에 펴낸 하늘에서 본 고향마을고향사진집 두 권을 비롯하여 ! 물에 잠긴 내고향”,

정남진의 빛과 그림자”, “그리운 추억의 고향마을”, “탐진강의 속살등 아홉 권의 사진집을 펴냈다.

가난한 살림에 잘 팔리지도 않는 사진집을 지속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순한 애향심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사명감이었다. 그래서 2012전남문화상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마동욱이 사진으로 애써 남기려고 했던 것은 우리 모두가 잊고 있는 마음의 고향 이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며 시골마을의 공동화는 가속화 되고 있다. 점점 사라져 가고 변해가는

시골마을을 되살려야 하는 사회적 운동이 절실한 때다.

만약 사진인 들이 힘을 모아 각자의 고향을 찍는다면, 신판 대동여지도도 가능할 것이다.

마동욱의 고향 사진전을 계기로 모든 국민들의 애향심에 불이 붙었으면 좋겠다.



   



전시와 함께 눈빛출판사에서 '고향의 사계‘ -드론으로 본 내 고향 장흥-

'하늘에서 본 장흥’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두 권의 사진집도 나왔다.

'고향의 사계'256, 6만원. '하늘에서 본 장흥'4484만원이다.

 

전시는 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전시 개막식 사진과 '사동집' 뒤풀이 사진들인데, 무려 180여장이나 된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 분 빠션 죽입니더!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갔다.
지난 14일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열리는 마동욱씨 사진전도 도와야 하고,

인사동 사진축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으나, 장모님 병원 모시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후 6시 무렵의 인사동 거리는 여느 때와 달리 한산하였는데,
길거리에서 퓨전피아니스트 윤강욱씨를 만나기도 했다.






‘토포하우스’에 들렸더니 이미 DP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작가인 마동욱씨를 비롯하여 엄상빈, 이규상, 박진화씨 등 몇몇 분이 계셨다.
작품들이 크고 많아 다소 답답한 느낌은 들었으나, 잘 정리되어 있었다.
좀 있으니, ‘한겨레’ 노형석기자도 들렸다.









그러나 서둘러 모임이 있는 ‘허리우드’로 자리를 옮겨야했다.
그 자리에 엄상빈, 이규상씨를 비롯해, 이규철, 이한구, 강제훈씨도 나왔다.
사진전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나왔고, 일할 사람들도 추천했다.
구체적인 기획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큰 틀만 짜고 헤어졌다.







엄상빈, 이규상, 강제훈씨와 마동욱씨가 있는 '토포하우스'로 찾아가,
이야기 나누고 있던 노형석씨와 함께 ‘사동집’에서 만두전골에 막걸리 한 잔 했다.
신방과에 제학 중인 마동욱씨 아들 마일훈군도 함께 했다.

마동욱씨의 파라만장한 삶과 사진이야기 듣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으나,
문 닫으려 기다리는 주인장 송점순씨가 안 서러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던 노형석씨와 ‘유목민’에도 잠시 들렸다.
그 곳에서 김명성, 전활철씨와 어울려 소주 한 잔 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으나, 막차시간이 임박해 더 머물 수 없었다.


사진,글 / 조문호
















내일 인사동 ‘토포하우스’에 열리는 마동욱씨 전시개막식에서 한 잔 합시다.


마동욱의 ‘고향의 사계’ 사진전
장소 : 인사동 ‘토포하우스’
일시 : 2016년 6월15일부터 21일까지
초대일시 6월15일 오후5시




지난 토요일, 급히 만날 분들이 있었다.
술이 취해, ‘인사동사진축제’ 구상안을 이규상씨 페북 메시지로 보낸다는 게,
실수하여 전체공개가 된 것이다.

그 내용에는 이규상씨는 물론 엄상빈씨 이름까지 거명되어 있어,
당사자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많은 분들의 관심 속에 댓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잘못된 경위를 문자로 전한 후, 일단 만나 뵙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5시 무렵, 아내와 인사동 ‘허리우드’로 나갔다.
엄상빈씨와 이규상씨 두 분께, 전 후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일단 운영위원 부터 구성하여 구체적인 기획안이 나올 때, 공개하기로 했다.
사진인들의 힘을 모아, 우리사진의 정체성을 찾는 축제에 공감했다.

‘나우갤러리’에서 박진호씨와의 약속으로 오래 지체할 수 없었다.
이규상씨가 달을 훔친 사나이 만나러 가자는 제안에 모두들 일어섰다.
‘나우갤러리’에는 박진호씨와 여친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 깨며 자리까지 빼앗았지만, 어쩌겠는가.

모처럼 오붓한 자리에서 달과 함께 놀았다.
누구 말처럼, 훔친 달이지만 풍류가 그윽했다.
서예가의 힘찬 붓길 같기도 하고, 추상화 같기도 했다.
이 좋은 달밤에 어찌 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규상씨를 따라 청계천에 있는 국수집으로 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돼지수육을 안주로 소주 한 잔했다.
얼마나 맛있던지, 사진 찍는 일도 잊어버렸다.
얼큰하게 취해, 아쉽지만 헤어졌다.

아내를 앞세워, 다시 인사동 ‘유목민’으로 쳐들어갔다.
그 곳에도 반가운 분이 많았다.
멀리서는 김기영씨가 손을 흔들었고,
이호상씨의 노래소리가 골목을 매웠다.

신성준선생을 비롯하여 조해인시인, 노광래씨도 있었다.
이날은 주인장 전활철씨도 기타 치며 노래했다.
등달아 노광래씨 까지 기타들고 설쳤는데,
좌우지간, 실수로 시작된 하루였지만, 신나는 토요일이었다.


사진, 글 / 조문호























































이틀 전 장흥의 사진가 마동욱씨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시장 계약하러 인사동에 가야하니 저녁식사나 같이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날은 김정헌씨 전시오프닝과 겹쳤으나, 한 시간 늦추어 오후7시로 정하고,

구기동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리는 김정헌씨 전시장부터 들렸다.

그 깊은 골짜기에 반가운 분들이 엄청 많이 모였더라.

그 분들 만나 사진 찍으랴, 작품 보랴, 술 마시랴, 혼자 바빴다.

 

통풍으로 술을 자제하려 했으나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급히 몇 잔 먹었더니, 대번 취해버렸다. 아예 술잔을 들고 다니며 사진 찍었다.

뒤풀이에서 한 잔 더하고 싶었지만, 머뭇거릴 겨를이 없었다.

급히 인사동 약속장소로 달려갔더니, 사진가 전민조씨와 엄상빈씨도 와 있었다.

늦어 미안함도 잠시뿐, 뜻밖의 반가움에 횡설수설했다.

 

된장 비빔밥집 툇마루로 자리를 옮겼다.

마동욱씨는 615일부터 일주일간 토포하우스 전시계약을 했다고 했다.

하늘에서 본 장흥이란 주제의 사진전이라는데, 드론으로 촬영하였단다.

시골양반이 첨단을 걷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런 저런 이야기에 섞어

밥 비벼먹으며 반주도 한 잔 곁들였다.

 

귀천으로 자리를 옮겨 모과차와 커피도 한 잔씩 시켰다.

술이 취해 생각 없는 말들을 마구 지껄였으니, 왜 실수를 하지 않았겠나.

술 못 끊듯이 버릇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냥 죽는 수밖에...

뒤늦은 자책감에 더 이상 자리할 수 없었다.

마누라 핑계대고 도망쳐, 독주를 퍼 마셨다.

 

 사진,글 / 조문호 






































                           -눈빛사진가선 17-

                         '강원도의 힘'

                          엄상빈사진집
                           눈빛출판사 / 12,000원  




엄상빈씨의 ‘강원도의 힘’ 사진집 출판기념 및 전시 개막식이 지난 12일 오후6시30분경 충무로 ‘브레송갤러리’에서 열렸다.

사진들은 강원도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그들의 삶의 환경을 아주 친근하게 보여주고있다.
이는 사진가가 그들 속에 들어가 혼연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본다.
그 사진들에서 강원도 사람들의 순박하면서도, 찔긴 정신력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가 엄상빈씨는 '학교이야기'에서 부터, 아바이 마을 '청호동 가는 길', '고성산불', '들풀 같은 사람들' 등
대부분의 작업들이 강원도에 쏠려있고, 오랜 세월 그 곳에 천착하여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강원도에서 학교와 군대, 직장생활까지 한 전형적인 강원도 맨이다.

토박이로서의 따뜻한 향토애가 '강원도의 힘'이란 큰 결실에 어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은 강원도 사람들의 순박하고 강인한 정신력이 바로 '강원도의 힘'이고,
오랜세월 그들을 지켜 본 엄상빈씨의 작업 자체도 '강원도의 힘'인 것이다.
그리고 그 강원도의 힘을 보며 새삼 '사진의 힘'을  실감했다.

정영신씨가 촬영한 오프닝 사진에는 엄상빈선생 가족을 비롯하여 황규태, 한정식, 김보섭, 이규상, 안미숙,
김남진, 성남훈, 신현림, 장 숙, 양시영, 나떠구, 곽명우, 김지연씨 등 많은 사진가들이 보였는데,
전시장은 축하객들로  발 디딜 틈없이 성황을 이루며, 밤 늦은 시간까지 뒤풀이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 전시는 10월2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정영신, 글: 조문호






-작가의 말 -


강원도내 한 일간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강원도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순박하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 도민들이 타 지역 사람들이 도민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도 역시 순박하다는 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상징물로는 설악산, 역사적인 인물로는 신사임당, 대표음식으로는 도민들은막국수, 외지인들은 감자떡을 꼽았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자연과 생활환경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생겨난 삶의 양식이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본인 역시 나고 자란 곳이 강원도이고, 학교, 직장, 심지어 군 생활까지도 강원도 철원에서 했으니 강원도와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몸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비탈감자바위라는 상징성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강원도 사람이 맞다. 지금은 강원도를 떠나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자동차 번호판에 강원등 지역이 표시되어 있을 때가 있었다.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좌·우회전을 제 때 하지 못하여 우왕좌왕해도 뒤의 차들이 강원도 차임을 이해해주리라는 순박한 믿음이 있었음이 사실이다.

여기에 담겨있는 30여년 세월의 사진 속 주인공들이 바로 강원도민들의 순박한 자화상이다. 강원도 여기저기를 다니며 우연히 만난 우리의 이웃 아저씨들이고 아주머니들이다. 어느 날 볼일 보러 가다가, 사진 찍으러 가다가, 절에 가다가 또는 출퇴근길에 만난 꾸밈없는 모습들이다. 더러는 잘 아는 이도 있고, 사진으로 가까워진 이도 있다. 여러 상황에서 만난 짧은 인연이었지만 하나같이 순박한 인상은 잊히지 않는다.

집중 호우로 다 망가졌던 그 양배추 밭에도 이듬해가 되면 어김없이 다시 파종을 하고 농사일을 이어가는 사진 속 주인공 농부처럼 은근과 끈기, 그리고 순박함이 바로 강원도의 힘이 아닌가 한다.                         


-엄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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