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기획전이 25일부터 시작되지만, 아직 사진 프린트도 못했다.
매번 그렇지만,  눈앞에 닥쳐야 허급지급 난리를 친다.
어제 마누라 따라 충청도 영동의 용산장을 비롯하여 청원 내수장에서 부강장까지 다니느라

온 몸의 삭신이 쑤시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침부터, 프린트해야 할 마누라 꽁지 잡고 늘어졌다.
배분된 전시 면적을 생각하니 작은 사진으로는 어려워 롤지를 사용하기로 했다.
액자 없이 걸려니 두터운 종이를 사용해야 할 것 같아 거친 파인아트지를 선택했다.

사진은 ‘두메산골 사람들’중 네 장이 이미 선정되어 있었고,

용지는 미리 한 롤 준비해 두었기에 걱정할 것 없었지만, 잉크가 문제였다.
두 가지 색이 바닥을 보이고 있지만, 일요일이라 주문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한 장이라도 실패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마누라 협박에 잔득 주눅 들었다.
드디어 프린트가 시작되었다. 프린트기 돌아가는 소리에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는데,
프린트농도는 적당했지만 사방의 여백이 일정치 않았으나, 그냥 밀어붙였다.

좁은 작업실에 대형 사진이 나오니 제대로 운신할 틈도 없지만, 하늘이 도와주었다.
30센티미터 쯤 나온 걸, 다시 프린트 한 것 외에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잘 못 나와도 빼도 박도 못할 처지였지만, 한 장도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나왔다.
너무 좋았다. 마누라 프린트 솜씨가 신의 경지까지 갔다며, 추켜세웠다.

사진 네 장이 방 하나를 가득 메웠는데, 의외의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여지 것 풍경 같은 다른 사진들은 롤지 규격대로 뽑아 보았지만,

‘두메산골 사람들‘은 1미터를 초과한 적이 없었으나 만족스러웠다.

다섯 점만 프린트 할 수 있는, 이 사진의 에디션넘버를 적은 노트를 뒤적여보니,

하나같이 3번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 두 장밖에 뽑을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한 장은 남겨두어야 하니, 이번 프린트가 마지막이나 다름없었다.

그 다음 문제는 사진의 디스플레이였다.

액자 없이 큰 사진을 전시하려면 사방을 고정하는 핀이 그에 걸맞게 육중해야 되기 때문이다.

내일 청계천에 가서 육중한 볼트를 구해 침을 용접할 작정인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신이시여! 제발 쪽팔리지 않게 도와주소서!


사진.글  / 조문호







인사동이 노랗게 물들었다.


금빛인가? 똥빛인가?

돈이나 똥이나 초록은 동색이다

금덩이 같은 인사동이
똥덩이 될까 걱정된다.

인사동에서 서정춘 시인을 만났다.
오늘 떠 오른, 그의 시어가 궁금하다.


11월 17일 / 사진,글 : 조문호






















요즘 왜 이렇게 마음이 편치 않은지 모르겠다.

블로그에 ‘사회 불만자’라고 올리는 등 심통을 부렸는데,
아내가 가슴에 박힌 칼을 빼 주겠다며 따라 오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한 밤중에 끌려 간 곳은 인천 을왕도였다.
통행료가 육천 원이나 하는 대교까지 건너는 까닭이 궁금했다.

그 곳에 가보니, 카페를 운영하는 아내의 친구가 살고 있었다.
20년 만에 만나는 친구라는데, 첫 인상이 매혹적이었다.
애숙이란 이름처럼 보조개에 박힌 점도 귀여웠다.
밤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듣는 재즈는 처량했다.


술에 젖고 분위기에 젖어, 몸도 마음도 비틀거렸다.

못 추는 블루스에 애숙씨의 따뜻한 체온도 느꼈다.
놀기는 잘 놀았는데, 돌아 올 일이 걱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붙여놓고, 잠시 눈을 부쳤다.

얼마나 잤는지 일어나보니, 새벽 한 시가 지났더라.
부랴부랴 차를 모는데, 아내 왈 “이제 칼 뽑혔어?”
대답하기 참 곤란하더라.
그 칼은 아무래도 박그네가 뽑아줘야 할 것 같은데...

사진,글 / 조문호














이 사진들은 사진가 김정일씨가 중앙대 사진과를 졸업한 후 KBS미디어 출판사진팀에 입사하기 전인

82년도에 작업한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이 정년퇴임을 맞은 30여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전시된 사진들을 돌아보니 오래 동안 잊고 있던 아련한 향수가 왈칵 밀려왔다.

빨래 줄에 귀저기가 펄럭이는 옛집 마당이 떠올랐고, 권투중계를 보다 텔레비전이 지직거려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와 씨름했던 생각도 났다. 그 당시의 아련한 풍경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 개발이란 폭탄에 깡그리 사라져 갈 때, 그 기억들을 하나하나 묶어 놓았던 것이다.

대개의 사진인들이 풍경이나 찍으러 다니던 시절에 그는 이 땅의 역사를 차곡 차곡 기록해 둔 것이다.

스승이며 사진집 발문을 쓴 한정식선생께서는 ‘이들 사진은 찍을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나 분위기와 함께

그 이상의 매력과 맛이 느껴진다’ 고 말씀하셨다.

‘포토그래퍼스 갤러리’ 코리아 11월작가로 선정된 김정일의 ‘기억의 풍경’사진전은

서울 은평구 증산동에 있는 ‘포토그래퍼스 갤러리’에서 지난 18일부터 30일까지 전시된다.
눈빛사진가선 20호로 김정일사진집 ‘기억의 풍경’도 출판되었다.


글 / 조문호









'갤러리 브렛송'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찍은 풍경사진'  열 일곱번째 기획전인

김문호씨의 ‘THE WASTELAND’사진전이 지난 12일 충무로 ‘브렛송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는 30여 년 동안 도시의 그늘진 곳을 찍어 온 다큐멘터리 사진가다.

문명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 본 그의 대상은 도시 공간 구석구석의 비루한 군상들이었다.

기존의 직설적인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뭔가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다.

반대어법이 주는 은유성이 훨씬 큰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는데, 그 건 한 편의 시였다. 

그동안 발표되어 온 ‘On the Road’가 그랬고, ‘Shadow’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 ‘THE WASTELAND’에서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찍어 내놓았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사람들의 울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찍지는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진이기 때문이다.
김문호씨는 나와 이름도 비슷하지만 20여 년 전 ‘사진집단 사실’이라는 동아리에서 함께 한 적이 있어,

더한 동료의식을 느껴왔던 터다.  그동안 서로의 일에 메 달려 만나보지 못했으나,

폐친이 되며 그의 근황을 엿보게 되었는데, 몸이 아파 병원신세도 졌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한 잔 할 수 있다기에 술을 많이 마셔 위장에 탈이 난 줄만 알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모습이 너무 수척해 알아 보니, 위암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놀랐지만, 경과가 좋다기에 안도했다. 그 와중에 사진까지 보여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전시된 사진들이 한 점에 50만원에서 70만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데, 더 놀랐다.
정말 겸손한 친구였다.

21일까지 전시가 이어지니, 꼭 한 번 가보시기 바란다. (02)2269-2613.


그 날 개막식에는 김남진 관장을 비롯하여 ‘눈빛출판사’ 이규상씨, 엄상빈, 성남훈, 석재현, 이한구,

안해룡, 이상엽, 이재갑, 장 숙, 김지연, 이주영, 남 준, 김봉규, 노형석, 곽명우, 임계제, 타이거 백,

김상수씨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사진,글 / 조문호












































진도 팽목항 포구에 놓인 콘크리트 방파제. 도판 김문호 작가 제공

다큐사진 작가 김문호 개인전
팽목항·폐광산·개펄·고사목 등
전국 곳곳의 상처 앵글에 담아



물속으로 사라진 학생들의 영혼을 마냥 떠올리기만 했던 곳, 진도 팽목항 포구에 놓인 콘크리트 방파제 한 덩어리가 사진 속에서 말을 걸어 온다. 숱한 죽음을 지켜보고 배웅한 방파제는 침묵하는 자신의 몸으로 1년여 전 포구에 아로새겨진 사람들의 상처들을 이야기한다. 사각진 몸 덩어리 정면에 갈라지고 파인 숱한 홈들과 오랫동안 빗물이 흘러내리며 남긴 시커먼 수직의 얼룩들이 화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네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중견 다큐사진가 김문호씨의 신작들은 팽목항 같은 이 땅의 피폐해진 풍경들의 이야기들을 담는다. 지난 30년간 도시 공간 구석구석의 비루한 인간군상들을 찍으며 문명의 뒤안길을 훑었던 작가는 지난해부터 사람들 대신, 이 땅에 사람들의 상처가 남은 곳들을 돌며 앵글을 들이댔다.


지난 1년 사이 각별한 눈길을 쏟았던 팽목항 포구를 비롯해 전북 신태인의 농가 배추밭, 강원도 상동의 폐광산, 경기도 소래포구 옆 월곶 신도시의 개펄, 신탄진 대청호에 잠긴 고사목 등이 등장하는 그의 풍경사진들은 한결같이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겨울이 되도록 수확을 하지 않아 동사한 주검처럼 꼿꼿이 얼어붙은 신태인의 배추밭이나 물속에 있어야 할 물고기가 절집처럼 풍경이 되어 매달린 팽목항의 쪽지 줄, 아름다운 태백산맥 설경 아래 방치된 상동폐광산 건물들의 고즈넉한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독백 같은 느낌은 다른 다큐 작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김문호 사진의 내공이라 할 만하다. 흔들리는 구도로 장노출해 찍은 팽목항의 저녁 어스름 바다와 포구의 풍경은 이런 작가의 힘이 단적으로 드러난 수작이다. 이 어슴프레한 풍경은 세월호가 새겨놓은 유족들의 아픔과 세간의 논란과 의혹, 생명에 대한 절실한 바람 등을 농축한 삶과 죽음의 묵직한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간곡한 기계’(소설가 최옥정)이기에, 작가의 눈힘만으로 캐어낸 객관적 이미지들이 현실에 대한 절박한 웅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전시는 여실히 보여준다. 21일까지. (02)2269-2613.


한겨레신문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자기 키 만한 광주리를 등에 짊어진 어린이의 모습이 애잔하면서도 정겹습니다.
광주리에 담긴 강아지의 모습이 웃기기도 하지만, 등짐 맨 새끼줄이 금방 풀릴 듯 위태롭습니다.

장에 팔러 가는 걸까요? 이사 가는 걸까요?
뒷모습이라 그 표정까지 궁금해지는 재미있는 사진입니다.

1964년 부산의 김복만선생께서 찍은 사진을,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서 옮겼습니다.


왜냐하면,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정치를 개 좆 같이 하니 그런 것 아니가.

왜 열심히 일했는데, 지들처럼 떵떵거리고 살지는 못하더라도,
일한 만큼 대우받고, 최소한 사람답게는 살아야 할 것 아니가?
평생을 권력자들께 당하고, 기득권자들에 밀려 손해만 봤다.
그래서 가진 자들과 권력 쌘 놈들이 대를 이어 나쁜 짓하는 이런 나라가 싫은 것이다.
돈 없으니 나가 살 수도 없고, 죽으려니 가족이 밟혀, 악만 남았다.



나라를 끌고 가는 년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그래도 역사가 중요한 건 알았던지,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된다네.
지 애비 나쁜 짓 한 거는 다 알아...




어제 민중봉기 날에는 끝장 낼 작정하고 나갔다.
페트병에 휘발유 두 병 넣어 가, 분신할 생각까지 했다.
영웅이 되고 싶냐는 마누라의 비아냥거림에 쪽팔려 포기했지만...


경찰들에 시비 붙어 실큰 두들겨 맞아 죽을 작정도 했으나,
헬맷 눌러 쓴 전경들의 눈을 보니 욕도 한 마디 못하겠더라.
다 자식 같은 놈들인데, 지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할 일은 그 날 벌어진 일들을 샅샅이 찍는 일 뿐이더라.
그러나 연장이 신통찮아 걱정스러웠다.
지난번 인사동 시위 때 맞은 물대포로 카메라를 망쳤으나,
돈이 없어 아직까지 카메나도 없는 신세다.
마누라에게 똑딱이 하나 빌려 쓰고 있는데, 이게 내 밤일처럼 작동이 느려
순간 포착이 어렵고, 특히 어두운 밤중에는 맥을 못 춘다.



그렇지만 어쩌랴!  일찍부터 대학로에 나갔다.
여러 집회장이 있지만 역사쿠데타를 저지하는 ‘민주민생수호 범시민대회’부터 갔다.
민중들의 슬픈 마음을 알았는지, 그 날은 날씨까지 우중충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달랐다. 젊은이들이 주축인 이전에 비해 연세 지긋한 분도 많았다.
이건 교과서국정화문제로 여지 것 눈감아주었던 보수층들이 돌아 서고 있다는 정황이다.
함세웅 신부를 비롯하여 김정헌, 장순향씨 등 반가운 분들도 더러 보였다.



조선, 동아일보는 수험생들을 힘들 게 하는 민중궐기라며 비난을 퍼부었으나 광화문으로

이동시간을 학생들의 입실이 끝나는 오후4시까지 기다리는 등,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마치 축제 행렬 같은 분위기였는데, 종로로 행진하는 길에서 판화가 김준권씨도 만났다.



종각 쯤 당도하니, 더 이상 행진을 못하도록 도심을 경찰버스로 성곽처럼 쌓아 놓았더라.
행렬을 벗어나 광화문으로 가는 통로를 찾았으나 쥐새끼 한 마리 못 들어가게 만들어 놓았다.

정말 대단한 경찰이더라. 북한에서 무장공비가 내려 와도 이렇게는 못 할 것이다.
한 업소를 통해 간신히 빠져 나가기는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북한의 광장같이 텅 빈 광화문은 경찰버스만 줄지어 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합류하기 위해 얼마나 돌고 돌았던지, 벌써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사 앞에서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백기완 선생과 이수호, 신학철, 장경호, 하태웅씨 등 여러 명이 식당으로 가던 중이라,
따라붙어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메울 수 있었다. 


 


대치하고 있는 길거리는 캡사이신 물대포를 얼마나 쏘아댔는지 희뿌연 물이 흐르고 있었고,
저지 망을 치우기 위해 버스를 묶어 당기는 시위대 위로 연신 물대포를 쏘아댔다.

어느 놈이 지시하고 조준하는지 모르지만 무자비했다. 사람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도 그 위에 퍼부어 댔다.
급기야는 사람이 다쳐 군중 틈을 뚫고 구급차가 들어왔으나, 더 이상 진입하지 못했다.
길 터라는 군중들의 외침에 누군가 실려 나갔지만, 정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미처 우의를 준비 못했던 터라 온 몸은 물대포를 맞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긴 시간동안 버스를 치우기 위해 밧줄에 엮어 당겨댔으나 허사였다.
경찰들이 미리 전신주나 단단한 지주에 묶어 둔데다, 건너편의 경찰들은 막대에 톱을 달아
묵인 밧줄을 잘라 버리기 때문이다. 온 힘을 쏟아 당기던 군중들이 나 자빠져 다치기도 했다.

화난 군중들은 경찰버스를 때려 부수기도 했으나 그들에게 빌미를 주는 일일 뿐이었다.
오후11시가 되니 연행한다는 선전포고가 시작되고 경찰들의 포위망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사진 찍으려 경찰버스 위를 오르다 곤두박질해 욕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체력의 한계를 느껴, 끝까지 지켜보지도 못한 채, 마지막 지하철을 타야 했다.



옷을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걱정되어 기다리던 마누라께 말했다.
“아들 같은 경찰 놈이 나더러 더럽게 늙은 놈이라 카던데.”
슬프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내 신세가... 

더러운 세상이지만 끝까지 싸워, 다 잘사는 평등의 시대는 보고 죽어야 할 것 아니가?

사진,글 / 조문호














서양화가 신학철씨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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