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문화제 구경 나온 사람들이 산더미 를 이루고 있다.
무슨 볼거리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다.

이 구릉은 산이 아니라 경주왕릉이라고 한다.
어느 왕인지 모르겠으나, 국민들에게 밟혀 고생께나 하셨겠다.

1966년 경주에서 찍은 정범태선생의 사진으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정범태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에서 옮겼다.



말의 발굽에다 편자를 박는 장면이다.
말이 날 뛰지 못하게 나무틀에다 쇠사슬로 묶어 놓았다.


장제사는 편자를 박기위해 말발굽을 점검하고 있고,
말 주인 같은 사람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자동차정비소에서 타이어 바꾸는 일일게다.
세상은 엄청 살기 좋아졌으나, 예전처럼 재미가 없다.


1969년 온양에서 찍은 홍순태선생 사진으로,
“3인의 교수전”작품집에서 옮겼다.




사진가 임채욱씨의 “인터뷰 설악산”전이 인사동에서 열리고 있다.
임채욱씨는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해서인지, 산 사진들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재작년 이 자리에서 열었던 'inside mountains'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에는 설악산 사진만 들고 나왔다.
한지를 사용한 것도 일조했겠지만, 프린트 질감을 잘 끌어내어,
사진의 계조가 마치 산속으로 파고들 만큼 깊었다.




마치 동양화의 필선처럼 설악산의 뼈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봉정암 부처바위의 대형 사진을 입체적으로 설치한 작품도 내놓았다.




봉정암을 내려다 보는 부처바위에서 부터 울창한 숲과 운무에 뒤덮인 설악의 능선까지,
자연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그 무한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전시 하는 목적도, 이 아름다운 설악에 어떻게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냐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설악산을 관광단지로 만들어 훼손하겠다는 것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지난 6일 오후5시, 아라아트1층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임채욱씨를 비롯하여 박인식, 박성식, 김준기,

박종우, 유시건, 황예숙, 김정남, 조명환, 이길헌, 강선화, 박기성, 이지하, 홍성식씨 등 많은 분들이 자리했다.




작가는 인사말에서 ‘인터뷰 설악산’이라는 전시이름을 박인식씨가 지었다고 했다.
처음엔 왠 인터뷰냐는 생각을 했는데, 전시 준비를 하다 보니 너무 적합한 제목이었다며,

바로 설악산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1층부터 지하4층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3월2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와 함께 '설악산: 아름다움에서 무한으로'사진집도 도서출판 다빈치에서 출간됐다.


사진,글 / 조문호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는 마지막 순간이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자유당정권의 마지막 발악이다.
경무대진입을 막으려 총을 쏘았지만, 피는 피를 불렀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권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다.

1960년 4월19일, 서울해무청 앞에서 찍은 정범태선생의 사진으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정범태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에서 옮겼다.



1966 세월


현일영(1903-1975)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사진가로 평가받는다.
객관적인 향토서정주의가 판치던 시절에 신즉물적인 경향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분이다.


좌로부터 현일영, 박필호, 서순삼선생


1958 무제


그는 일본에서 사진교육을 받았으며, 사회주의에 심취한 지식인이었다.
30년대에 종로에서 ‘현일영사진관’을 운영하기도 했고, 
5-60년대에 세 차례의 개인전을 가지며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1960 실패


1960 태극기


그는 이야기를 끌어 담는 걸작주의를 피해, 사물과의 관계성에 치중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독한 탐색’이란 작가의 말처럼,
작품 하나하나가 선생의 고뇌에서 나온 사색의 파편이었다.


1960 무제


1960 손목시계


사진만 봐서는 철학자인지 시인인지 혁명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알 수도 없었지만, 너무 깊숙이 알게 되면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그 정도만 알고, 존경의 마음을 가져 왔었다.


1958 무제



지난 2일, 원로사진가로서 제일 연세가 많은 이명동선생을 뵐 기회가 있었다.
새해 인사차 약수동 자택을 방문했는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모님의 건강도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았다.
짐을 정리하다, 85년 “예술계”란 잡지에 투고한, 내 사진에 대한 글을 찾았다며
전해 주기도 했다. 꼼꼼하게 챙기시는 성격은 여전하셨다.



일부러 식사시간을 피해 들렸는데, 기어이 설렁탕 먹으러 가자신다.
밥값 낼 요령인지, 얼핏 사모님에게 용돈 타시는 걸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천하의 선생님도 사모님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는 걸, 안 것이다.



설렁탕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소주까지 주문하셨다.
나를 위한 배려지만, 새해에 건배라도 한 번 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건배를 하고, 이 날은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여쭈었다.
현일영선생에 대한 궁금증이 갑자기 발동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돌아가신 현일영선생님, 아시는 것 있으면 이야기 좀  해 주이소.”


그 분은 남다른 면모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 당시 모두가 그 분 사진에 관심은 많았지만, 동조한 사람이 별 없었다는 것이다.
좌익이란 빨간딱지까지 붙어, 요시찰인물이었다는 점도 한 몫 했을 거라 하셨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더 깊숙한 얘기를 듣지 못해 아쉬웠다.





사물이 주는 시적 울림까지 드러낸 현일영선생의 사진은, 앞서가도 한 참 앞선 것이다.
그러니 사진계 이단아로 취급되어 뒷전으로 밀려난 게 아닐까?
한 발 앞서면 지도자가 되고, 두발 앞서면 미친놈 소리 듣는 다는
스코트 니어링의 명언이 생각난다.


글 / 조문호


현일영선생 작품사진은 '한국사진역사전, '한국현대사진의 흐름', '한국현대사진60년'도록에서 옮겼다.



































권태균씨의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왠지 애잔하고 처연한 느낌이 든다.
아름다운 꽃과 천진난만한 애기를 찍었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들까?
애기의 표정도 한 몫 했겠지만, 꽃이 가진 양면성도 작용한 듯 싶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마치 권태균씨의 자화상 같았다.

권태균씨가 세상을 떠난 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되었단다.
신이 어찌 나같이 못된 놈들은 살려두고, 착한 사람들만 데려갈까?
그래서 지옥같은 이승보다는 저승이 좋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그 친구는 복 받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일찍부터 사진에 입문하여 좋은 직장에서 돈 걱정 안하고

유목민처럼 떠돌며 사진만 찍지 않았나?
사랑하는 처자식과의 잠깐 이별이 아쉬울 뿐,

더 좋은 천국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일찍 준 것이다.

내일 그가 이승에 잠시 내려와 사랑하는 이들을 불러 모아 사진전을 벌인단다.
80년대에 기록했던 사람사는 모습이라기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 거린다.
분명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사진들이 나를 감동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그를 만나, 저승에 먼저 가신 분들의 소식도 들어보고,

저승사자에게 와이로 쓰는 방법은 없는지, 한 번 물어봐야겠다.

글 / 조문호



권태균 1주기 추모전 "노마드"는 1월4일 오후6시에 개막되어 2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장소는 "스페이스22" 인데, 강남역 1번출구로 나가는 미진프라자22층이다.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권태균 '노마드'사진집 출판기념회도 있다.




새해를 알리는 시계바늘 따라, 우리가 시작할 ‘문화알림방’을 페북에 올렸다.


아내와 성공을 다짐하는 축배를 들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하는 일이, 후배들의 일에 초를 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느라 밤을 꼬빡 세웠다. 새벽 녘에 일어나, 아내와 함께 인천 월미도로 갔다.

뒤늦게 떠 오른, 새해의 눈부신 햇살이 출렁이는 바다를 은하수처럼 수놓더라.


그 곳에서 사진 찍는 노부부를 만났다. 오래 전 공원의 완장 찬 사진사가 떠 올랐다.

사진찍어 한 장에 1,000원씩 팔았는데, 일하는 모습이 그처럼 정겨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나도 문화판의 사진사로 출사표를 던졌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던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그 노인은 강하게 거부했다.

뒤늦게 나선 일이 자랑스럽지 않다는데. 왜 그런 생각을 갖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옮겨가며 많은 갈매기들의 자유로운 춤을 보았다.
때로는 재주도 부렸지만, 열심히 살아 있음을 뽐내더라.

마치 자연의 순리를 거스러는 인간의 오만함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욕심 버리고 자유롭게 날아보라는 듯, 용기와 힘도 실어 주었다.


을왕도에 들려, 아내의 옛 친구 애숙씨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아갔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 수다 떨 시간이 많을 것 같아 자리를 피해줬다.

혼자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자성과 다짐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늙어 직업전선에 뛰어던 건 부끄럽지 않지만, 후배 사진가들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좋은 게 좋다지만, 싸구려 처신은 사진가들에게 상처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밤에 공개한 “문화알림방‘에 대한 내용을 일부 고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문화알림방'이란 일 자체가 문화행사를 널리 홍보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하기에,
"품삯 세 번째, 보정된 사진원본 파일제공 10만원"이란 항을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꼭 필요하다면 용량을 줄인 이미지와 프린트된 사진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다큐사진가들의 마지막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청춘들이여! 우리도 갈매기처럼, 힘차게 날아보자.

다 잘 사는 세상을 향해...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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