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1회 한국국제사진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황규태선생 작품이다.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서 옮겼다.


새해를 맞아 일출과 관련된 이미지를 생각하다, 황규태선생의 '원풍경'이 떠올랐다.

사진을 찾으려고 83년도에 발행된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도록을 뒤적였더니, 

뒤 페이지에 실린 원로평론가의 짧은 작품해설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른 ‘고요한 아침의 나라’ 운운하며 화면구성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놓았다.

그만큼 현대사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시기였다.


그건 생태환경의 변화를 예견한 경종이었고, 통렬한 비판이었다.
생태적, 환경적, 문명적인 것에 대한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한 황규태선생의 ‘원 풍경’은 

기록성과 고발성을 겸해 조형적 회화의 속성까지 띄고 있다.

몽타주에 의한 그의 의외로운 해석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에 보여 준 이와 같은 일련의 작품들은 리얼리즘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한국사진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80년대 후반 유학파들이 귀국하여 ‘한국사진의 수평전’이란 새로운 사진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 위에 황규태 선생이 계신 것이다.

선생은 사진의 재현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실험을 거듭했다.

이중노출과 몽타주는 물론, 때로는 필름을 태워 이미지를 얻기도 했는데,

요즘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런 실험정신 덕에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사진가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60년대 초반, '경향신문'기자로 사진을 시작한 황규태선생은 특파원1호로 미국에 건너갔다.

그 곳에서 사진의 한계를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진세계를 개척해 낸 것이다.

그 뒤 사업에도 크게 성공해, 미국에서 사진 공부한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선생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무튼 사진인 들에게 선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선생의  시적감성도 탁월하다.

흐드러지게 핀 벗꽃을 사진에 잔뜩 넣어놓고, 그 밑에 붙여 논 제목이 뭔지 아는가?

<큰일낫다 봄이 왔다> 강현국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후렴은 '가난한 내 사랑도 꿈틀거린다'이다.

서정춘시인의 '봄 파르티잔'에 버금가는 절창아닌가?

머지않아 팔순을 내다보는 연세지만, 탁월한 감각과 번득이는 에너지는 변함없으시다.
대형카메라를 이용한 픽셀 확대 작업이나 ‘기(banner)’시리즈 등의 작품 스타일 뿐 아니라,

생각이나 생활까지 젊은이들 빰친다.

기존상식을 희롱하고, 고상함에 야유를 던지는 선생의 자유로운 창작정신에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글 / 조문호
 





                                       1969년부터 1972년 사진을 ‘한국현대사진의 흐름“작품집에서 옮겼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조문호 사진가



사진의 힘이 커졌다.


옛날엔 글로 역사를 남겼으나, 이제는 사진 또는 영상으로 남기는 세상이다. 사진은 역사이기 이전에 세상을 바꾸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1960년 눈에 최류탄이 박혀 마산 앞바다에 떠 오른, 김주열군의 시신을 찍은 ‘국제신문’ 허종기자의 사진 한 장이 4,19를 유발시켜 역사를 바꾸지 않았나.

사진이 처음 들어 온 광복 이전에는 외국 사진가나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이 고작이다. 본격적으로 사진이 자리를 잡은 것은 광복 이후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아마추어 사진가들에 의해 남긴 사회 기록상도 더러 있지만, 시대적 사건이나 정치적 이슈를 담은 대부분의 사진들은 신문사 사진기자들이 남긴 것 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승만 정권이 하야하기 전 후의 많은 사진파일들이 폐기처분된 것이다. 사진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 그 당시 신문사진 현장의 최 일선에서 계셨던 이명동 선생의 증언은 충격 자체였다.

이명동선생은 한국사진계에 끼친 영향력도 워낙 크지만, 보도사진가로서 기자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19때 총탄이 쏟아지는 경무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비롯해, 육군교도소에 잡힌 서민호선생을 찍기 위한 위장 사건, 정치깡패 추적 사진 등 사진 계에 수많은 일화를 만들어 낸 분이다. 그 외에도 사진단체 창설 등 사진사에 남을 중요한 일들은 모두 선생께서 주도하셨다.


이명동선생은 한국사진계의 전설이자 산 증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선생께서 기록한 그 많은 사진자료들이,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에 의해 깡그리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이명동 선생이 몸담고 계셨던 일개 ‘동아일보’사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더 심각성이 크다.

이명동선생께서 ‘동아일보’ 사진부장으로 계실 때, 일정한 기간이 지난 필름과 사진을 모아 조사부로 넘겼다고 한다. 조사부에서는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사진필름들이 하나의 천덕꾸러기 신세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조사국에 들렸더니 넘긴 필름들이 깡그리 사라졌더라는 것이다. 폐기처분했다는 말에 아연실색했단다. 차라리 폐기처분하기 보다 누가 훔쳐갔으면 좋겠다.

그 것은 선생께서 평생 몸 바쳐 온 사진작품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선생께서는 “신문사에서 월급 받고 신문사 필름을 사용했으니, 그 사진들은 모두 신문사 사진이라”며 필름 한 컷 넘보지 않은 아주 고지식하게 사신 분이다.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던지 평생을 사진하셨지만 댁에 사진 한 장 없다. 몇 해 전 구순을 기념하는 개인전 때도 제자 김녕만씨가 간신히 수소문해 종군기자 무렵의 사진들과 보도된 신문 복사로 전시한 게, 생애 첫 전시였다.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그 시절 사진이래야 일부 사진기자로 부터 흘러나온 필름들이 고작이다. 그 것들이 간신히 살아남아 우리의 역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비양심이 양심을 이기는 사례도 만들었던 것이다. 사회적 여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양심도 버려야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잘 못된 법을 만들어 휘둘러대는 부패한 정권에서는, 법을 어기는 국민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역사를 되돌릴 수 없듯이, 결코 사라진 사진들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1955년 만리동


우유 배급이라도 주는지 냄비를 든 어린이들이 몰려나왔고,

일거리를 기다리다 지쳐 수레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물지게로 아슬아슬하게 물을 나르는 소녀 모습 등,
5-60년대 서민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두들 힘들게는 살았지만, 인정이 넘쳤던 시절이다.


1959년 중림동

1960년 마포 현석동

한평생 사진기자로 사신 원로사진가 정범태선생께서 찍은 사진으로,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정범태사진집/카메라와 함께 한 반세기”에서 옮겼다.




추위를 떨치려고 일을 벌였다.

이름은 “문화 알림방”이고, 하는 일은 전시나 문화행사를 알리는 일이다.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 등 인터넷 포스팅은 물론,

언론사 문화부에 보도 자료까지 보내준다.


행사의 스틸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홍보한 후, 기록물로 넘겨주기도 하고,
기획에서 부터 적합한 전시장이나 전문 평론가를 연결시켜 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문화행사를 성공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대 협력한다는 것이다.

대행료는 10만원에서 100원까지다.

단순한 스틸촬영이나 포스팅 정도로 끝나는 10만원에서부터,
전 부문에 협력하는 100만원까지, 금액에 따른 6개 항목을 선택할 수 있다.

단, 지방 행사는 기름값과 통행료가 추가된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협력할 테니, 한 번 믿어보라.
최소한 한 달 전에 연락해야 일정을 조정한다.
많은 활용을 부탁드린다.

일 하는 사람
정영신(소설가/사진가), 조문호(사진가)
연락처 : 02-355-8926, 010-2955-8926(정영신)


떠나려는 인사동년 치맛자락 붙들고 늘어진지도, 어연 30년이다.
속절없는 인생처럼, 데려가겠다는 세월 앞엔 대책 없더라.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인사동 냄새 맡으려 반나절 넘게 돌아 다녔다.
매번 보던 인사동도 꼼꼼히 살펴보니 아스라한 이야기가 남았더라.

시멘트 사이로 터져 나온 담장 속에서 인사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예술가들이 죽치던 대폿집과 골목골목의 희미한 기억들,
연탄 쌓인 술집 뒷간에서도 예전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었다.
큰 길은 대부분 옷을 갈아입었고, 후미진 골목에서나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몰려드는 돈의 위력에 옛 건물들은 사정없이 흘려 나가고,
사람 사는 정마저 새로 들어 선 건물들처럼 번지레할 뿐이었다.
벗이 떠난 자리를 젊은이들이 채우듯, 인사동 풍정도 그렇게 변해갔다.
낮선 듯 낮 익은, 오랜 석물들만 골목 어귀를 지키며 추억을 대신하란다.

몇 안 남은 터줏대감 따라 인사동도 그렇게 훌쩍 떠나겠지만,
아직은 추억의 끝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어 다행이다 싶다.
그 시절을 기억한 사람마저 사라진다면, 다 무슨 소용이랴!
오늘의 인사동에 불과하지만, 무모한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인사동을 사랑했으니까.

사진, 글 / 조문호




































반려동물 Animal Companions
윤정미展 / YOONJEONGMEE / 尹丁美 / photography

2015_1218 ▶ 2016_0113 / 일,공휴일 휴관


윤정미_길수와 철수, 서울, 용산동_디지털 C 프린트_60×90cm_2014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50602k | 윤정미展으로 갑니다.

윤정미 홈페이지_www.jeongmeeyoon.com윤정미 블로그_blog.naver.com/photyoo

초대일시 / 2015_1218_금요일_05: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료 / 평일_무료 / 토요일_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이화익 갤러리

LEEHWAIK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7(송현동 1-1번지) 1,2층

Tel. +82.2.730.7818

www.leehwaikgallery.com



도시를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의 이야기 ● 「핑크&블루 프로젝트」(2005-)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 윤정미의 작가적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기작에 대한 언급이 불가피하다. 일찍이 「동물원」(1998~1999)과 「자연사박물관」(2001) 연작에서 작가는 인간의 기준과 체계 아래 동물을 오직 관찰의 대상으로 분류하는 동물원과 자연사박물관의 유사한 속성을 중립적 사진들을 통해 비판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후 윤정미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통념이나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위한 분류 체계에 관심을 갖고 사진작업을 진행해왔다. 「핑크&블루 프로젝트」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나온 사진이었다. 작가 스스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한 특정 색에 대한 선호를 계기로 성차와 관련된 사회적 편견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상 윤정미의 사진 중 사회에 관해 말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들 중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도 없다. 그녀는 언제나 개인적인 이유에서 시작해 구체적인 사례들로 보편적인 사회 현상에 대해 말해온 것이다. 사진의 방법론으로는 동일한 소재의 여러 대상들을 유사한 구도로 반복해 촬영함으로써 특정한 사회적 단상을 보여주는 유형학을 주로 사용해왔다. 특히 피사체를 그들의 익숙한 생활공간 안에서 정면으로 촬영하는 구도는 작가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형식적 특징으로, 인물에만 집중하는 일반적인 초상사진과 달리 인물과 관련된 주변의 여러 정보를 함께 제공함으로써 형식 뿐 아니라 내용적 측면에도 기여해왔다.


윤정미_선규네 가족과 코코와 건달이, 서울, 삼성동_디지털 C 프린트_90×135cm_2014


윤정미의 대부분의 사진은 2014~2015년도에 촬영되었으나 일부 2008년에 촬영한 사진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작 「반려동물」(2008~2015)은 여러 면에서 이러한 작가의 고유한 특징들이 겹쳐지는 작품이다.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동물에 관해 다루는 소재의 측면에서부터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해 사회적 현상을 다룬다는 작업 방식과 주인공인 동물보다 그들과 함께 있는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배경에 시선이 가도록 하는 형식적 구도를 반복함으로써 전체적인 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려동물」은 작가가 키우는 강아지 '몽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삭막한 도시의 아이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녀의 아이들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고 오랜 숙원 끝에 생후 2개월 된 빠삐용 몽이를 입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강아지를 실질적으로 돌보는 일은 엄마인 작가의 몫이 되었고 그렇게 그녀와 몽이의 동행은 시작되었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몽이의 "나비날개처럼 예쁘게 펼쳐진 귀 아래 잔털들"이 본인의 흘러내린 잔머리와 닮았으며 그런 몽이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런 막내아들"이라고 적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다소 과도하게 느껴질 정도의 애정 표현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울하거나 힘들 때 몽이에게서 많은 위안을 받는다는 작가는 본인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수십 명의 반려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변의 지인들과 그들의 반려동물을 찍기 시작했고 점차 소개를 받아 대상을 늘려갔다. 강아지, 고양이, 기니피그, 토끼, 거북이, 이구아나까지 동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생활하는 익숙한 공간에서 동물에 친근한 작가가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자연스러운 자세와 표정을 포착해서인지 사진 속 동물과 사람은 모두 매우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은 몽이와 작가처럼 표정, 자세, 분위기, 혹은 그 무엇이 되었건 서로 닮아있다. 마치 처음부터 함께 했던 것처럼 둘 사이에는 어떠한 불안이나 불행도 감지되지 않는다.


윤정미_수현과 찡꼬와 베리, 경기도 지축동_디지털 C 프린트_60×90cm_2014


그러나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저 동물은 어떻게 저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까, 저 사람은 왜 저 동물을 키우게 되었을까, 저 둘의 만남은 서로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등,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된다. 보통 반려동물을 키우게 되는 동기는 아이가 하나이거나 본인이 혼자여서 새로운 가족으로 동물을 들이거나 키우고 있는 동물이 혼자여서 또 다른 동물을 들이는 식으로, 대체로 '외로움'을 상쇄하리라는 기대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때로 그러한 기대의 충족보다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거나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뜻밖의 상황이 오기도 할 것이다. 실제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태어나서 한 사람의 주인과 지내다 생을 마감하는 동물도 의외로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동물의 만남을 특별한 인연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만남일지라도 당시의 기억을 물어보면 "처음 보았을 때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촬영 동의서들을 보면 조금 더 각별한 만남의 이야기들이 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낯선 남자를 보면 사나워지는 갈색 푸들 초코는 현재 주인을 만나기 전 여러 차례 남자 주인들로부터 학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또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우아한 화이트테리어 또봄이는 의외로 두 번이나 파양되었다가 현재 세 번째 주인을 맞은 것이라고 한다. 그밖에도 처음에 딸이 우울해 하는 어머니를 위해 입양했다가 지금은 루게릭병에 걸린 아버지에게 더 큰 의지가 되고 있는 몰티즈 진돌이,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이집 저집 떠돌아다니던 불쌍한 모습 덕에 거두어진 러시안 블루 깐초, 유학 간 딸이 데리고 와서 지금은 딸 대신 부모님 곁을 지키는 몰티푸(몰티즈+푸들) 만두, 시각장애인 주인과 24시간 함께 하며 그들의 눈이 되어주는 리트리버 풍요와 포리처럼 남다른 사연들이 많다. 다행히 현재 이들은 행복해보이지만 만남의 뒷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모든 동물과 사람의 만남이, 또 그들이 사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되어 씁쓸하다. 사실상 「반려동물」은 동물에 관한 사진이라기보다 동물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들이 속한 사회의 다양한 이면을 드러내는 사진일지 모른다.


윤정미_세희와 도희, 서울, 여의도동_디지털 C 프린트_90×135cm_2015


그래서일까 사진에서 의외로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은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공간이다. 사랑하는 동물과 함께 있는 순간 확실히 그들의 얼굴 표정은 밝고 충만하다. 어렵게 만난 사이일수록, 또 오랜 시간 함께 한 사이일수록 애틋함이 더 하고 그러한 감정이 사진에 묻어나는 듯하다. 그리고 그밖에 사람들의 옷차림과 머리모양, 앉거나 선 자세, 페디큐어와 양말 등 작은 부분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취향과 신상을 짐작해보는 일도 사진을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려동물」 연작에서 강조점은 촬영 배경이 되는 공간의 모습과 각 개별 작품의 제목에 포함된 지명을 확인하면서 동시대 가족 및 주거 형태와 생활양식을 가늠하는데 있다. 혼자 사는 대학생의 작은 원룸부터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사는 고급아파트까지 구체적인 가족 형태와 거주 환경은 각기 다르지만, 전체 연작은 크게 2인 이상의 가족 단위 가구와 1인 가구로 양분된다. 가족 단위의 경우 - 혼자 촬영에 임한 경우에도 - 대부분 집 안의 거실을 배경으로 하는 반면, 1인 가구의 경우에는 침실이나 본인의 직업을 짐작케 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시각적인 분류가 가능하다. 특히 「반려동물」 연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가족 단위의 가구보다 동물을 키우며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사람들이다. 갤럽에서 5년 단위로 진행하는 '반려동물 동거 현황 및 동물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여 년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체 반려인의 인구는 줄어든 반면 2~30대 젊은 층의 비율이 10% 내외로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형제자매 수가 적어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들이거나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증가한 것이 이유로 제기된다. 「반려동물」 연작 중 동물과 단 둘이 있는 반려인들의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우연이 아닌 셈이다. 사람이 동물을 키우는 동기가 외로움을 상쇄하려는 이유임이 확인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특정한 사회적 코드가 읽혀지는 사진들도 있다. 예컨대 서초동, 잠실동, 반포동, 판교동, 정자동 등지의 아파트 거실에서 찍은 사진들에는 가죽 소파 뒤편으로 걸린 그림 액자나 주변에 놓인 가족사진 액자가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이태원동, 한남동, 해방촌 등지의 실내외에서 찍은 사진들에는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고 자유를 추구하는 싱글족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생활양식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밖에 가구와 가전제품, 커튼, 쿠션, 침구 같은 패브릭과 집안 곳곳의 소품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취향은 물론, 특정 시대의 유행까지도 짐작케 한다. 그 중 꽃무늬 포인트 벽지나 이케아 철제 서랍장처럼 상징성이 강한 아이템들도 있다. 이렇듯 「반려동물」은 동물에 관한 작업이라기보다 동물과 함께 지내는 오늘날 도시의 사람들과 크고 작은 사회적 양상을 반영하는 작업인 것이다.


윤정미_윤선과 16마리의 개들, 강원도 화천_디지털 C 프린트_90×135cm_2015


윤정미_론과 비천, 서울, 여의도동_디지털 C 프린트_60×90cm_2015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가 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또 반려인이라는 표현을 넘어 '팻팸족(pet과 family의 합성어)'이라는 말이 흔히 쓰일 만큼, 동물을 위한 호텔, 병원, 촬영 스튜디오, 보험, 놀이방 등 다양한 반려동물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강남의 동물병원에서는 탄산수 스파목욕이 인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몇 해 전 겨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지하 보일러실에서 떼죽음 당한 고양이에 관한 충격적인 기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이 아파트 이미지를 헤치고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일부 주민들이 추위를 피해 보일러실 안으로 들어간 고양이들을 가두어 죽였다는 것이다. 당시 끝 모를 인간의 이기심에 아연실색하면서도 인간 '집사'의 극진한 시중을 받고 있을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 다른 고양이들이 떠올랐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동물의 삶이란 그 질은 물론 목숨까지도 인간의 선택과 자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얄궂게 느껴졌다. 최근까지도 쓰레기봉투에 담겨 주인에게 유기된 강아지나 독극물을 먹고 쓰러진 길고양이처럼 아무런 잘못 없이 사람들의 이기심과 폭력성에 희생당한 도시의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여전히 이 도시 한편에서는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가장 좋은 벗이자 또 하나의 가족으로 '인간의 삶'에 동행하고 있다. 윤정미의 「반려동물」은 도시에 사는 동물과 사람을 둘러싼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 관해 암시한다. 가장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해 어떠한 주장도 없는 무덤덤한 사진들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예의 그 고유함으로 말이다. ■ 신혜영


도서반려동물 사진집지은이_윤정미 || 글_신혜영 || 판형_254×180cm || 페이지_96쪽가격_30,000원 || 발행일_2015년 12월 10일 || 출판사_이안북스


Vol.20151218a | 윤정미展 / YOONJEONGMEE / 尹丁美 / photography






내가 태어나기 한해 전 풍경으로, 좀 낯설지만 정겹다.
한국전쟁과 함께 서서히 사라진 이 인력거는 개화기 일본에서 유입된 잔재다.

그 시절엔 유한마담이나 귀부인들이 타고 다녔겠지만,
힘들게 사람이 끌고 가는데, 탄 사람의 마음은 편했을까?

오래된 영화스틸사진 같은 이 장면은 지금의 서울 중앙우체국 앞이다.
마치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는 것 같은 한적한 정경이다.

아침햇살을 받은 인력거 행렬에서, 한 시대의 삶을 읽을 수 있다.

1946년 찍은 임석제선생 사진으로 ‘한국현대사진의 흐름’ 작품집에서 옮겼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모두들 초가 처마 밑에 몰려들었다.
낮선 여자 카메라맨이 의외인 듯, 모두들 웃음꽃이 만발하다.

아마 지금쯤 모두들 어른이 되어 어엿하게 살고 있겠지만,
이 사진을 보면 그 시절이 얼마나 그리울까?

흙냄새를 모른 채, 기계처럼 돌아가는 오늘의 어린이들이 가엽다.
이게 사람 사는 정이고, 사진의 매력이다.

이 정겨운 장면은, 1980년 울산 배춘옥씨가 찍었다.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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