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팽목항 포구에 놓인 콘크리트 방파제. 도판 김문호 작가 제공

다큐사진 작가 김문호 개인전
팽목항·폐광산·개펄·고사목 등
전국 곳곳의 상처 앵글에 담아



물속으로 사라진 학생들의 영혼을 마냥 떠올리기만 했던 곳, 진도 팽목항 포구에 놓인 콘크리트 방파제 한 덩어리가 사진 속에서 말을 걸어 온다. 숱한 죽음을 지켜보고 배웅한 방파제는 침묵하는 자신의 몸으로 1년여 전 포구에 아로새겨진 사람들의 상처들을 이야기한다. 사각진 몸 덩어리 정면에 갈라지고 파인 숱한 홈들과 오랫동안 빗물이 흘러내리며 남긴 시커먼 수직의 얼룩들이 화자가 되는 것이다.


지금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네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중견 다큐사진가 김문호씨의 신작들은 팽목항 같은 이 땅의 피폐해진 풍경들의 이야기들을 담는다. 지난 30년간 도시 공간 구석구석의 비루한 인간군상들을 찍으며 문명의 뒤안길을 훑었던 작가는 지난해부터 사람들 대신, 이 땅에 사람들의 상처가 남은 곳들을 돌며 앵글을 들이댔다.


지난 1년 사이 각별한 눈길을 쏟았던 팽목항 포구를 비롯해 전북 신태인의 농가 배추밭, 강원도 상동의 폐광산, 경기도 소래포구 옆 월곶 신도시의 개펄, 신탄진 대청호에 잠긴 고사목 등이 등장하는 그의 풍경사진들은 한결같이 과거의 쓰라린 기억들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겨울이 되도록 수확을 하지 않아 동사한 주검처럼 꼿꼿이 얼어붙은 신태인의 배추밭이나 물속에 있어야 할 물고기가 절집처럼 풍경이 되어 매달린 팽목항의 쪽지 줄, 아름다운 태백산맥 설경 아래 방치된 상동폐광산 건물들의 고즈넉한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독백 같은 느낌은 다른 다큐 작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김문호 사진의 내공이라 할 만하다. 흔들리는 구도로 장노출해 찍은 팽목항의 저녁 어스름 바다와 포구의 풍경은 이런 작가의 힘이 단적으로 드러난 수작이다. 이 어슴프레한 풍경은 세월호가 새겨놓은 유족들의 아픔과 세간의 논란과 의혹, 생명에 대한 절실한 바람 등을 농축한 삶과 죽음의 묵직한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는 간곡한 기계’(소설가 최옥정)이기에, 작가의 눈힘만으로 캐어낸 객관적 이미지들이 현실에 대한 절박한 웅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전시는 여실히 보여준다. 21일까지. (02)2269-2613.


한겨레신문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