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려 
2018년 04월 09일 (월) 18:24:41 조문호 기자/사진가 sctoday@hanmail.net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김동진의 사진은 현대인들의 편견을 말하고 있다.

다소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면면을 찾아 기록한 사진 자체도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험상 굳게 생긴 사람이나 삐뚤어진 화면, 목이 잘린 여인 등 하나같이 낮 선 풍경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정상과 비정상으로 규정된 고정관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김동진 作, 2016 부산, 구포동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갑자기 보호자에게 떠밀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치자.

보호자는 그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끌려 온 환자는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의사라도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다를 때 ‘비정상’과 ‘정상’을 명확하게 구분 짖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동진 作, 2017 서울, 금곡동


규정해놓은 정치나 법이나 사회의 모든 이해관계도 마찬가지다.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시위를 벌이는 극렬 보수단체를 대개가 비정상으로 보지만,

그들은 지극히 정상으로 생각한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자체가 다수의 판단으로 규정지어놓은 것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구속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김동진 作, 2016 서울, 광화문 광장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모든 가치기준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하고도 추상적인 개념은 '유토피아'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신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통합되어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는 상태가 정상이라는 것이다.

즉 '나 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정상적인 인간일 것이다.



▲김동진 作, 2016 서울, 영등포동


정상이 비정상을 지배하는 구조로 인한 소외, 외면, 박탈, 욕망, 갈등 등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비추려 한

김동진의 사진들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불안과 광기와 욕망을 그만의 어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급박한 현대화로 인간성이 상실되고 급기야는 개인주의로 치닫는 오늘의 슬픈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이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김동진 作, 2016 부산, 남포동


부산 경성대에서 사진학 석사학위를 받아 ‘버스 희망공간’ 등 몇 차례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사진가 김동진씨의 전시 변을 들어보자.

“나는 버스와 지하철, 열차 등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며, 도시와 시장, 해변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앞모습에 가려진 피에로처럼 포장되어 살아가는 사회의 감추어진 얼굴을 드러내고 싶었다.

가려지고 소외되고 상처 입은 세상을 비추는 작업으로 사회에 전염병처럼 만연해 있는

비정상의 모습에 관심을 두면서 정상이라고 말하는 세상의 이면을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전시작 앞에 선 사진가 김동진 ⓒ조문호


전시는 14일까지 ‘갤러리 브레송’(02-2269-2613)에서 열린다.

  



전시작가 김동진씨



김동진의 ‘또 다른 도시’ 사진전이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4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 정오 무렵 찾아 갔는데, 작가 김동진씨와 손님 한 분이 계셨다.

사진을 돌아보며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잖아도 전시장에 오기 전 서울역을 소란스럽게 하는 보수단체의 태극기 퍼레레이드를 보며,

다들 정상이 아니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일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며

비정상적이라 생각되는 일은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가?




2016 부산, 구포동



김동진의 사진들은 현대인의 편견을 말하고 있었다.

다소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면면을 찾아 기록한 사진 자체도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험상 굳게 생긴 사람이나 삐뚤어진 화면, 목이 잘린 여인 등 하나같이 낮 선 풍경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정상과 비정상으로 규정된 고정관념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2017, 서울 금곡동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갑자기 보호자에게 떠밀려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치자.

보호자는 현재 그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끌려 온 환자는 스스로가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의사라도 서로가 주장하는 바가 다를 때 명확하게 구분 짖기는 어려울 것이다.




2016서울 영등포



규정해 놓은 정치나 법이나 사회의 모든 이해관계도 마찬가지다.

거리에 나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시위를 벌이는 극렬 보수단체를 대개 비정상으로 보지만,

그들은 지극히 정상으로 생각한다.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자체가 일반적인 판단으로 규정지어놓은 것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구속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2016 부산, 남포동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이 모든 가치기준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하고도 추상적인 개념은 '유토피아'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통합되어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는 상태가 정상이라는 것이다.

즉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정상적인 인간일 것이다.




2016 부산, 구포동



정상이 비정상을 지배하는 구조로 인한 소외, 외면, 박탈, 욕망, 갈등 등 사회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비추려 한

김동진의 사진들은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인의 불안과 광기와 욕망을 그만의 어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급박한 현대화로 인간성이 상실되고 급기야는 개인주의로 치닫는 오늘의 슬픈 현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것이 다큐멘터리사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2016 서울, 광화문광장



부산 경성대에서 사진학 석사학위를 받아 ‘버스 희망공간’ 등 몇 차례의 개인전을 가진바 있는 사진가 김동진씨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버스와 지하철, 열차 등 대중교통으로 도시와 시장, 해변을 누비고 다녔다. 



2016, 부산, 구포동



"삐에로처럼 포장되어 살아가는 사회의 감추어진 이면을 드러내고 싶었으며,

전염병처럼 만연해 있는 비정상에 대한 편견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시를 본 후, 작가인 김동진씨와 김남진관장 따라 충무로의 어느 식당에 들렸는데,

평소에는, 술 마신 후에나 속풀이로 먹는 맛 없는 북어국이라 생각했으나, 달랐다.

다들 북어국만 시켜 하는 수 없이 따라 시켰는데, 엄청 맛있었다.

만드는 사람의 솜씨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을 음식 자체로 규정지어 온 잘 못된 편견이었다.


오는 14일까지 연장되었으니, 기회가 닿으면 꼭 한 번 보시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작업 노트]














































 


331일까지 정선 그림바위 예술발전소에서 열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 2018년 03월 19일 (월) 00:09:37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다큐사진가 조문호의 산골 사람들사진전이 지난 32일부터 31일까지 정선 그림바위 예술발전소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된 사진들은 급속한 근대화에 빠르게 망각되고 훼손된 우리네 삶과 문화가 잊혀져가고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담겨있다.   그리고 우리네 것을 지키야 한다는 작가의 애착도 느낄 수 있다. , 사람, 생명에 대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어,

나이 드신 분에게는 옛 것에 대한 추억을, 젊은이에게는 옛 것의 소중함과 새로움을 안겨 준다.




 

이 사진들은 동강이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던 1990년도 무렵부터 촬영된 사진이다.

한국환경사진가회에서 자연생태환경을 기록하기 위해 귤암리 만지산 중턱에 캠프를 마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동강의 생태환경과 동굴, 야생화, 조류, 어패류 등 각기 전문분야 사진가들로 구성되어 투입되었을 때,

회장을 맡았던 그는 생태환경에 앞서 그 땅에서 평생을 살아 온 주민들에 더 주목한 것이다.


그는 인본을 외치며 평생 사람만 찍어 온 사진가다.

강보다 사람부터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타 환경단체와 다른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긴 세월의 땜 건설 논란으로 빚더미에 올라 선 농민들부터 살리자며 피해보상을 주장한 것이다.




 

그때 시작된 작업은 한국환경사진가회에서 발행한 동강환경사진집, 그리고 동강 백성들포토에세이 집이 나오며 일단락되었으나,

다른 사진가와는 달리 그는 정선 만지산 캠프에 눌러 앉은 것이다.

주민들과 살아 온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이 전시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200011월경 그는 현지주명 400여명과 함께 명동성당 부근 천막촌에서 농성에 들어 간 것이다.

그러나 추운 날씨의 야외 노숙이란 결코 만만찮았다고 한다.

당시 자신이 관리하던, 충무로의 한국현대사진가회사무실과 강의실 탁자를 치우고,

나이 많은 분들을 모아 잠자리를 차린 것이다.

동시에 지하철 충무로역과 혜화역에서 동강 백성들사진전을 열며,

동강에 투신자살한 수동마을 김진수씨의 사연과 사진을 담은 유인물을 명동으로 오가는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동강현실 알리기에 온 힘을 쏟았다.



 

각 언론사에 알리는 보도 자료를 만들어 보내며, 심지어 청와대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강백성들사진에세이 집과 함께

현 실정을 알리는 글을 보낸 것이다.


그 이튿날 문화일보사회면 톱으로 동강 살렸으면 주민도 살려라는 헤드라인을 단 기사로 크게 알려진 것이다.

자살로 이어지는 주민들의 피폐한 현실과 명동성당 앞에서 투쟁하는 농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도된 것이다.

더 반가운 것은 청와대로부터 수몰지역대책위원장을 맡은 가수리의 이영석씨 등 주민대표를 부르는 연락이 왔고,

보상안으로 주택 건설비 보조, 비닐하우스 건설비 등 실질적인 지원약속을 받아 낸 것이다.


 

그 때의 기분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좋았으나, 지금 생각하니 후회스러운 점도 많다고 한다.

순식간에 오래된 농가들은 흔적을 감추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티브이 안테나가 들어서며 순박한 산골사람들의 인심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당시의 구옥이란 캠프로 사용하던 집만 남았고, 국적불명의 양옥집들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돈이 사람을 망치는 상황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들만 힘든 원시의 삶을 살라고 할 수 있겠냐며 말꼬리를 감추었다.



 


동강 댐이 취소되고 보상이 이루어진 후, 4년 동안 기록한 농민들의 삶이 바로 이번에 선보이는 산골 사람들이다.

2004눈빛출판사두메산골 사람들사진집이 나오며 열린 서울 전시는 호응을 받았으나,

정작 주민들이 살고 있는 산골분교를 찾아다닌 순회전은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14년의 세월의 먼지를 떨쳐내고 다시 전시되자, 주민들도 다시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의 정겨운 산촌 풍경이 반가운데다, 그 때 찍힌 집은 물론 디딜방아, 쇠죽가마, 물지게에서 비롯하여

농기구까지 사라지거나 바뀌어 버린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때 찍힌 가족이나 이웃들도 대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살아 온 삶의 기록이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출판된 사진집 서문에 조문호-두메산골 사람들의 초상을 쓴 미술평론가 박영택교수는 이렇게 적었다.

 

두메산골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기록한 사진들은 뼈저린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새삼 우리네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환영처럼 떠올리게 한다. (중략)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평생 살았을 장소에 앉아 있거나 우연히 산 속에서 만난 사람 앞에서 잠시 멈춰서 있다. 초라한 의복에 대부분 무표정하고 무심한 자락을 온 몸에 드리우고 있다. 전형적인 시골사람들의 초상이다. 작가는 감정과 과잉의 표현을 자제하고 즉물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가능한 유지한 채 인물에 근접했다. 그 인물은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피상적인 수준일 것이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것이 사진이다. 정면은 워낙 많은 것을 품고 있다. 우리가 이 정면에 쓰여 있는 데이터를 제대로 읽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지한 독해가 요구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희노애락과 감정의 표현이 물기를 잃어 바짝 말라버린 듯한, 그러나 모든 것들을 넉넉히 받아들일 표정이 얼굴에 충만하다. 얼굴은 가장 인간적이다. 얼굴은 한 개인의 정체성의 표식이자 문화적, 사회적 징후이다. 얼굴은 세상의 끝이고 시작이다. 평생을 자연에 순응하며 세상과 등지고 살아왔을 이 이름 없는 민중들의 삶과 역사는 무엇이며 어떻게 말해져야 할까? 그들이 땅을 경작하고 식량을 채집하며 강하고 질긴 목숨을 꿋꿋하게 이어온 그 내력이 우리네 전통이고 역사였음을 이들의 얼굴과 몸에서 다시 확인해보는 일은 새삼 한국인의 정체성을 사유해 보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조문호의 사진은 비로소 그들의 소멸과 망각 이후에 유일하게 남아 그들의 삶의 언어를 묘석처럼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전시는 31일까지 이어진다.

















해가 바뀔 때마다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께서 마련하는 신년 오찬회가 인사동에서 열린다.

십년이 넘었건만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데다, 매번 밥 값을 한정식선생님이 낸다는 것이 송구스럽다.






매년 1월에 치루어졌으나, 올 해는 한정식선생 사모님께서 위급한 상황이 생겨 어렵사리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년 말, 폐렴으로 입원하신 사모님께서 이틀 만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의사인 며느리의 응급대처로 삼성병원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숨을 거둔 분을 기적적으로 살려 놓았다는 것이다.

최고의 의술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사람도 알아보고, 말도 알아들어, 한 숨 돌렸기에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 말이 생각난다.





지난 2일 정오무렵, 인사동 ‘수연’에서 가진 모임에는 한정식선생을 비롯하여 김생수, 이규상, 엄상빈, 김보섭, 이재준,

최경자, 정영신씨 등 아홉 분이 함께했다. 그 날 전민조씨는 집안에 응급환자가 생겨 모임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김기찬선생의 미망인이신 최경자씨는 요즘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아 바쁘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 날의 화제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가 많았다.
주로 정식과 생수 두 분께서 배고팠던 시절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름자로 보면 다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휴지가 귀한 시절이라 신문지를 잘라 화장실에 걸어 둘 땐데, 한 번은 화장실에 갔더니 이태준선생 소설책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책도 마음대로 사 볼 수 없는 시절이라 가져가서 감명 깊게 읽었다며, 화장실습득 1호로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고 하셨다.






디지털카메라 기능에 대해 해박하신 김생수씨는 최경자씨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었는데,

단종된 NIKON Coolpix P310카메라를 구할 수 없냐고 여쭈어 보았다.

지난 년 말, 노숙하는 이종민씨와 술 마시다 도둑맞은 카메라인데, 기능도 뛰어 나지만 손에 익은 카메라였다.

컴펙트카메라가 없으니 사진을 못 찍을 경우가 종종 생겨 여러 번 카메라점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가져가 팔 수도 없는 고물카메라이기도 했지만, 중고를 사도 몇 만원에 불과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더니,

엄상빈씨가 인터넷 중고시장에 알아보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뜸, 최경자씨가 오만원을 내 놓으며 좀 구해주라고 부탁하는 통해, 엄상빈씨가 짐을 떠안게 된 것이다.






염치없지만, 그 카메라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뒤늦게 알아보니 중고가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카메라점을 잘 아는 후배 사진가 마동욱씨 에게 한 번 알아보라고 부탁한 모양인데,

오찬 자리에도 없었던 마동욱씨 까지 카메라 구하는 일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결국은 마동욱씨가 십만원, 엄상빈씨가 오만원, 정영신씨가 오만원을 보태어, 25만원에 그 카메라를 구해 준 것이다.





아무튼 한정식선생의 신년오찬회 덕에 반가운 분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도 가졌지만,

한 달동안 고민하던 숙제가 해결된 고마운 자리였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 카메라로 사진이나 많이 찍어드렸으면 좋을텐데,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좋은 사진 찍을 때마다 도움주신 분들의 고마운 마음을 세길 작정이다,






오찬회가 끝난 후, 엄상빈, 이규상, 김보섭, 이재준씨와 함께

‘나무화랑’에서 열리는 김용문 도판화전에 들려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사진, 글 / 조문호





















‘그날 풍경’이 인디프레스서 2월 28일까지 열려...





사진가 양승우의 사진을 보면 온 몸의 피가 뜨거워지는 야만의 본성이 꿈틀거린다.

어떻게 저런 도발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지, 부러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의 사진에는 폭력적이면서도 끈적끈적한 인간애가 도사리고 있다.

그건 밖에서 쳐다 본 시선이 아니라 그 속에 파묻혀 찍었기 때문일 것이다.

폭력과 향락이 난무하는 장면에서 인간애를 느낀다는 것은 작가의 동료애에 비롯된 것이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주먹의 세계를 기록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들과의 동료의식이다.

그리고 예리한 직관으로 잡아내는 장면 장면들은 금방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선마냥 팔딱거린다.

전시 제목이 ‘그 날 풍경’이지만, 살아 꿈틀대는 ‘날 풍경’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양승우는 고향인 정읍에서 동네 친구들과 ‘건달’ 생활을 하다 서른 즈음에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공예대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막일을 전전하며 자연스럽게 야쿠자와 노숙인 속으로 들어가서 그만의 작업을 해낸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두 번의 전시를 가져 신선한 충격을 준바 있었다.

친구였던 우리나라 조폭의 모습을 가감하게 드러낸 ‘청춘 길일’은 인간의 욕망이 꿈틀거리게 했다.

두 번째 보여준 ‘꽃은 봄에만 피지 않는다’는 일본인 아내인 사진가 ‘히사쓰카 마오’와의 생활상을 서로 찍은 사진인데,

봄날의 연분홍 사랑 같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혀 다른 내용의 신선감도 있었지만, 그 정겨움 속에도 그만의 야성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지난 1월 26일부터 열린 양승우의 ‘그 날 풍경’ 기획전은 일본 사진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도몬켄(土門拳) 사진상’ 수상을 기념해 마련되었다.

지난해 4월 수상 이후 도쿄, 오사카, 야마가타를 돌며 기념전을 가진 바 있으나,

정작 수상작을 우리나라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한 미술평론가 황정수씨의 기획으로 추진되었다.


‘도몬켄 사진상’은 1981년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사가 사진가인 ‘도몬켄’을 기려 제정한 상으로

지금까지 37회 수상자를 배출했고, 외국인으로서는 양승우씨가 처음이다.

이번에 보여주는 ‘그날 풍경’전은 수상작인 '신주쿠 미아'를 비롯하여 지난 번 선보인바 있는 ‘청춘길일’ 등 모두 80점을 내 놓았다.






'신주쿠 미아'는 도쿄 환락가의 날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다.
신주쿠 가부키초 야쿠자들의 모습을 중심으로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에서 부터 취객이나 거리의 노숙자 등

하층민들의 일상이 가감 없이 담겨있다.

화려하게 장식한 문신을 드러내놓은 사진 한 장은 마치 인간의 욕망을 조롱하는 듯 했다.

권력과 돈을 무기로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 자들이 득실대는 세상을 향해 비웃고 있었다.

그들의 욕망에 비한다면 인간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본래부터 욕망의 본성을 타고 났다.

잠재된 욕망을 억제하고 살 뿐이지 몸속에는 섹스와 폭력 같은 향락적 욕망은 물론 다양한 욕망이 숨겨져 있다.

그 숨겨진 실체를 사진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양승우의 사진이다. 친근하면서도 그 낯 선 풍경을...






미술평론가 황정수 씨는 "양승우의 사진은 연출이나 기획이란 개념보다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기록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인다"면서 "순간의 움직임을 잡아내지만, 생생한 현장의 움직임이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다"고 평한다.

그의 폭력적이고 도발적인 사진을 보면 무언가 불안해야 되는데도 오히려 편해지는 것은 무엇일까? ‘

나를 닮아 가장 편하기 때문’에 음지를 촬영 한다는 양승우씨의 말처럼,

작업이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하게 해야 보는 사람도 편하게 보일 것이다.
오래전 양승우씨의 사진을 본 이태호교수의 말이 문득 생각난다.


“고급스런 하위문화가 넘쳐나는 세상에 저질스런 고급문화를 본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종로구 통의동 ‘인디프레스’에서 열린다.
(문의 ☎ 070-8917-5113. 010-7397-8498)


글 / 조문호












사진가 양철수씨



지난11일, 창원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양철수씨가 동자동 빈민들에게 겨울용 외투를 보내왔다.

난,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필리피노의 삶과 희망’과 ‘거리에서’란 그가 펴낸 두 권의 사진집을 보았고,
폐북에 올라오는 동향으로 그가 어떤 사람이란 것을 알았을 뿐이다.

그는 사진이 좋아 사진만 찍는 것이 아니라, 빈민운동을 했다.
가만히 보아하니, 제대로 미친 사람이었다.
난 당면한 권익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는 달랐다.
보나 마나인 살림살이에 필린핀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병들어 죽어가는
빈민들을 도와주는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작업에서 항상 사진가들이 당면하는 문제가 ‘사진이 우선이냐? 사람이 우선이냐?’다.
사람이 우선이 아니라면 찍을 자격도 없고, 찍어도 그 사진은 위선일 뿐이다.
예술 지상주의로 사람보다 카메라 앵글에나 신경 쓰는 사람은 다큐멘터리사진가가 아니다.
나 역시 사진에 욕심이 없을 수는 없지만, 어차피 둘 다 이룰 수는 없다.
사진이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에
겉치레는 쓰레기통에 버린 지 오래다.

더 울화통이 치미는 일은 대개의 사진가들이 양철수씨 같은 분의 사진을 폄하하거나
소재주의라는 올가미에 씌워 터부시한다는데 있다.
그러는 그들은 한번이라도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 가보았는가?
양철수씨 역시 한 평생 인간을 주제로 찍었던 최민식선생의 영향을 받았다지만,
돌아가신 최민식 선생도 그 위업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양철수씨의 작업을 높이 사는 것은 사진보다 사람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있다.
말로는 누구나 생색낼 수 있고, 관심 가질 수 있지만,
막상 닥치면 피하거나 모른 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양철수씨는 자신이 애정 쏟고 있는 필리핀 빈민만도 바쁠 텐데, 동자동까지 걱정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사람에 대한 애정에 국적이 어디 있겠는가?






요즘 정초에 걸린 감기로 열흘이 넘도록 빌빌거리며,
외출도 하지 못하고 갇혀 지내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에 한 건씩 일기처럼 올려 온 블로그조차 사진을 찍지 않으니 올릴 게 없었다.
오래된 사진자료나 들추어 엉뚱한 이야기나 올리는 판에
느닷없는 그의 메시지가 온 것이다.


추위에 떨 동자동 빈민들을 걱정해 외투를 구입해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의 사정을 뻔히 아는지라 망설였는데,
진짜 두 박스나 되는 외투를 동자동 4층까지 보낸 것이다.
그러나 비좁은 쪽방에 옷 보따리가 들어차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당장 전해주지 않고는 운신조차 할 수 없어,
제일 좋은 옷 하나를 골라 옆방 사는 정선덕씨께 전해주며 부탁했다.






요즘은 날씨가 추워 공원에도 사람이 잘 나오지 않아,
옷 사이즈가 맞는 사람들에게 전해 달라 했더니, 흔쾌히 들어주었다.
몸만 불편하지 않았다면, 노숙하는 친구들부터 나눠줘야 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추가로 외투17벌을 보냈다는 연락이 왔기에,
그 옷은 노숙하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면 되겠다 싶었다.

어쨌든, 양철수씨 덕에 복 받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 오류고등학교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강연회에 정영신씨가 초청되었다.
오류고등학교의 미술교사인 화가 이운구선생의 요청에 의한 강의였는데,
매년 한 차례씩 문화예술인 초청 강연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그날 강의는 정영신씨가 초청되었지만, 마음은 동자동에 사는 내가 더 바빴다.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자리는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당시 까까머리 남학생의 입장으로서는 여고가 선망의 궁전이 아니었던가.




오류고등학교에 도착하여 이운구선생의 안내로 교장실에 들려 차 한 잔할 기회가 만들어졌다.
임국택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박인옥 교감, 박찬희 행정실장 등 몇몇 선생님과 인사 나누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소탈한 인상처럼, 후덕한 교장선생님의 소박한 꿈에 존경감이 일었다

.



얼마 후 정년퇴임하면 양평 방면에 거처를 두고 변두리 시골장터에서 장사 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유명 예술인을 제쳐 두고, 정영신씨의 ‘전국5일 장터이야기, 그들의 삶과 애환’이란 주제의 강연회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사실상, 기계처럼 인성이 메말라가는 학생들에게 아주 적절한 강의로 여겨졌다.




시간이 되어 강의 장소인 오류고등학교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영신씨는 여러 차례 강연에 다닌 경험이 있어 별 다른 걱정은 안 했으나,
그 많은 장터이야기중 무엇을 들려줄지 궁금했는데, 정해진 시간이 너무 짧을 것 같았다.




강의실에는 2-3백여명의 여학생들이 모여있었는데, 부산하기 짝이 없었다.
다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끼리끼리 나누는 웅성거림이 마치 난장 같았다.
마침, 그 날이 대학 시험 발표 날이라는데,
오류고 재학생 중에 서울대학교에 세 명의 학생이 합격해, 모두들 마음이 들떠 있는 것 같았다.




강의가 시작되었으나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낯 선 장터이야기는 관심 밖이었다.
요즘의 교육현장을 처음 지켜보는 터라 참담함이 일었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에 빠진 청소년들의 현실을 지켜보며, 일선에서 일하는 선생들의 고충이 느껴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앞 서 보낸 PDF의 한글 자막이 알 수없는 기호로 나타났다.
잘 아는 사안이라 강의는 진행할 수 있었으나,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되지 않아 강사가 버벅댔다.
강의하는 정영신씨도 난처했지만, 나 역시 좌불안석이었다.




학생들의 관심을 모우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으로 유도했으나, 잘 먹히지 않았다.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줄 장터사진집까지 챙겼으나, 다들 빨리 끝날 시간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강의는 마쳤지만, 얼마나 마음 조려 지켜보았는지, 기록사진 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강의하는 사진은 한 장 찍었으나, 그마저 초점이 빗나가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이운구 선생으로부터 힘든 교육현실을 들었는데, 오늘은 그중 양호한 편이란다.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듣는 학생들도 많았으나, 일부 학생들의 수군거림에 파묻힌 것 같았다.
뒤늦게 정영신씨의 ‘한국의 장터’ 블로그에 올라 온 유익한 시간이었다는 학생들의 댓글에 위안은 가졌으나,
학생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한 강사의 책임도 따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강한 리드 쉽을 사전에 익히지 못한 것을 뒤늦게 후회했지만 무엇하랴!
명강사가 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9일 한정식선생과 약수동 이명동선생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열흘 전부터 한번 찾아뵙자는 선생의 말씀이 계셨지만,
이런 저런 날을 피하다보니, 토요일로 정해 진 것이다.

그동안 사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로 한 번 밖에 찾아뵙지 못했는데,
요즘은 출입을 일체 안 하시어, 신경 쓰였든 터라 기회다 싶었다.
한정식선생께서 이명동선생 좋아하는 장어구이를 주문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먼저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더니,
혼자 계셔야 할 집에 여러 사람이 와 계셨다.
이명동선생의 아드님과 따님, 그리고 사위까지 있었는데,
그 날이 마침 이명동선생의 생신이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듯이, 잔치 날이었다.

생신이면 음식도 준비해 왔을 터이고, 가족끼리 모인 자리라
날을 잘 못 잡은 것 같기도 했으나 어쩌라! 이미 저질러 진 일을...
곧바로 한정식선생께서 등장하셨는데,
이명동 선생께선 기분이 좋았던지, 옛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일본의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 이야기에서부터
윤주영 선생 이야기에 이르기 까지 그침 없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많이 들었지만,
한 선생께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고 했다.
재방송이지만, 재미있게 들었는데,
오랫동안 들려 줄 사람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났으나,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았다.
충무로에 있는 장어구이 집에 미리 계산해 두고
정오까지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다는데, 30분이 지나도 감감소식이었다.
한정식선생께서 식당에 전화를 하니, 그 때까지 잊고 있었다.
빨리 보내 달라 했으나, 음식 장만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집에 음식이 준비되었지만, 한정식 선생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입장이 난처했겠는가?
한정식선생의 독촉전화에는 화난 표정이 역력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음식이 도착했지만, 배달꾼을 나무랄 순 없었다.






다들 시장했던 터라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는데,
한정식선생께서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장어는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명동선생께서는 그 걸 의식하였는지, 다른 음식은 두고 장어만 열심히 드셨다.
스승과 제자 사이지만, 같이 늙어가며 서로 챙기는 두 원로사진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무튼, 건강 잘 관리하시어 여생을 건강하고 재밋게 사십시오.


"이명동 선생님의 생신을 다시 한 번 경하 드리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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