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갑자기 추워 그런지, 년 말이 되어도 인사동이 별로 흥청대지 않았다.
구세군의 종소리를 뒤로하고, 뭐가 바쁜지 다들 종종 걸음만 친다.






인사동에서 열리는 전시로는 ‘민예총’ 기금마련전이 열리는 ‘관훈갤러리’가

그 중 볼거리가 많은 전시라, 보았지만 다시 들렸다.






이층에는 이재일씨와 서인형, 정영신씨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 관람객도 띄엄 띄엄 있었다.
그런데, 전시작의 배치도 바뀌었지만, 처음 보는 작품에 눈이 번쩍 띄었다.






개막식에 없었던 신학철선생의 사진 콜라주 작품이 한 점 나온 것이다,
알아보았더니, 돌아가신 김윤수선생 사모님께서 ‘민예총’에 기증한 작품이라 했다.
그 작품은 민중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가격도 적지 않아, 고마운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리고, 고인이 된 김영수씨 사진도 두 점이 더 걸려있었다.
사진가 정인숙씨가 추가로 가져왔다는데,

한 점은 갯벌이 펼쳐진 을씨년스러운 포구 풍경이고, 한 점은 주재환선생의 젊은 시절 모습이었다.
이젠, 주재환선생께서 ‘미투’작품 판 돈으로, 그 작품을 사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군데군데 빨간 딱지가 붙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 신학철선생 판화를 비롯하여, 주재환, 민정기, 박홍순,
이원식, 이태호, 강요배, 박재동씨등 여러 점에 붙어 있었는데,
한 작가의 작품이 두 점 팔린 것은 세 작품이나 되고,
이태호씨의 판화는 네 사람이 딱지를 붙였더라. 



 


이 정도면 불경기에 괜찮은 전시로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몇몇 컬렉터가 찜해 놓은 작품이 있다니,
‘민예총’이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은 마련할 것 같았다.






이 전시가 끝나는 1월6일에는 모두 나와 신명난 황금돼지의 꿀꿀이 잔치한 번 벌이자.
‘민예총’사람이던, ‘인사동 사람들’이건, ‘사진쟁이’건, 모두들 꼬인 것이 있으면,

그 날 액을 풀며, 새로운 한 해를 맞자,





나쁜 놈인 이승만의 말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말이 생각난다.

“뭉치면 살고, 흩어 치면 죽는다”

사진, 글 / 조문호

















한국의 사진발통 곽명우씨가 사진 소장의 가치를 일깨우는 전시로 훈훈한 연말을 연출하고 있다.

작품을 소장하는 기쁨“의 사진전은 지난 18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렸다. 

이 소장전에는 국내외 작가의 사진 40여점이 선 보인다.



이갑철작

 

 

그는 2003년 프랑스사진가 베르나르 포콩의 사진가의 방이라는 오픈행사에서,

추첨에 당첨된 행운의 사진이 소장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한 점 한 점 모우기 시작했는데, 원로사진가 황규태선생을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도 있어,

유 무명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들을 골랐음을 알 수 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소장할 수야 있지만, 가난한 사진가의 소장전이라 더 돋보인 것이다.



 


사진하는 사람이 곽명우를 모른다면 간첩이나 마찬가지다.

사진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가 

사진바다블로그를 통해 알리는 일을 해 온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이젠 전시 개막식에 곽명우씨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들 의아해 할 정도로 기다리는 사진가가 되어버렸다.

파워 블로그로서의 홍보 역량만이 아니라 상대의 소중한 자료를 기록하지만,

보수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없는 야박한 현실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부지런하게 몰아 붙이는 사진기록에 대한 소명의식은 오늘도 쉼 없이 사진발통을 굴리게 한다.



 


가난한 처지에 허구한 날 봉사만 하고 어떻게 사는지 늘 궁금했는데,

좋아하는 사진을 구입해 소장전 까지 연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사례로 받은 작품도 있다지만, 형편에 맞추어 꾸준히 사 모았다고 한다.

장가를 들지 못한 노총각이라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벌써 쫓겨났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진을 구입해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진인이 사진을 사주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라 더 가상한 것이다

사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순수한 곽명우 작가의 말에서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난 22일 오후5시 무렵 전시장을 찾았는데, 곽명우씨는 스스로의 오프닝 행사를 찍기 위해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양재문, 엄상빈, 이기명, 이규철, 박찬원씨 등 반가운 사진가들도 여럿 만났으나, 모르는 분이 더 많았다.

이미 잊혀진 구세대, 즉 꼰대가 되었다는 걸 다시 절감한 것이다.



    

 

그 날 따뜻하게 데운 와인 두 잔에 마음이 따뜻해 진건, 술 기운보다 사진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진을 갖고 싶어도 사진가들이 가난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현실이 아니던가.

사진가끼리 좋아하는 작품을 교환하는 방법은 어떨까? 생각들기도 했다. 






사진 사랑의 곽명우씨 인사말에 이어 '레드로우'의 공연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나,

다른 약속이 있어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다.





아무쪼록, 그 작품들이 또 다른 분들의 소장으로 이어지는 빛나는 전시가 되어지길 바란다.

새해에는 여러분의 소망이 다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사진, / 조문호





-전시 작품 사진가-

베르나르 포콩, 황규태, 조문호, 엄상빈, 김남진, 양재문, 김대수, 최광호, 김광수,

진동선, 이갑철, 최병관, 신현림, 최영진, 이정록, 양승우, 이동준, 박태희, 이순행,

현경미, 김원섭, 이건영, 차경희, 이주영, 조병준, 최인수, 사  타, 최수정, 정희승,

권도연, 조현택, 박재현, 권오철, 김지연, 손기헌 남 준, 허영환.

우리카미 마스카즈. 래드로우 고니,











연(蓮)의 사계에서 인생을 바라본 ‘연연전’, 오는 25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려..

2018년 11월 16일 (금) 16:18:31 정영신 기자 press@sctoday.co.kr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근원이다. 긴 세월동안 자연은 예술가들의 작품 모티브가 되어 왔다. 꽃은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강한 생명력으로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피고 또 진다. 특히 꽃은 인생을 가르치는 무언의 언어와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꽃을 볼 때 겉으로만 보지 않고, 그 꽃이 갖는 격조와 고귀함을 느끼면서 본다.




▲ ‘연연(蓮緣)’전의 박영환 사진가 Ⓒ정영신



풀꽃사진가로 불리는 박영환씨는 삶이 힘겹던 어느 날, 우연히 연못에 핀 연꽃을 보며 맑고 아름다운 자태에 마음이 끌려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길가의 풀꽃처럼 눈길 받지 못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오브제들을 통해 자연 섭리에 따른 이치로 인생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했단다.

그동안의 풀꽃 작업과도 맥락이 이어지는 연꽃에서, 연이 태어나 살아가고 꽃피우고 떠나가는 삶과 죽음의 과정을 5년 동안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 동안의 작업을 묶어 ‘연연蓮緣’사진집을 출판하며 지난 13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연(蓮)으로 연(緣)을 생각하다’는 전시회를 열었다.




▲ Lotus No.301,2018 삶과 죽음 (사진제공:박영환작가)



그는 연꽃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았기에, 전시제목도 ‘연연 蓮緣’이라 이름 붙였다. 연꽃은 진흙 속에 태어나 비바람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다시 씨앗을 뿌리고, 끝내 뿌리째 다 내어주고 세상을 떠나간다. 진흙 속에 피어나지만, 결코 진흙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의 의미는 작가의 청순한 정신과 너무 닮아 보인다.




▲ 박영환사진가‘연연(蓮緣)’책 표지



풀꽃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진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려, 그는 스스로 ‘풀꽃사진가’라 이름 붙였다. 그렇다면 풀꽃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바로 풀꽃처럼 살아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이른바 ‘민중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굳이 풀꽃만 찍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오로지 가치 있는 사진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 Lotus (사진제공:박영환작가)



그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문득 뒤 돌아보니 오로지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면서도 세상을 바꾸는 정의로운 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병신무란 하야제‘, ’조국의 산하전‘, ’광장, 환대의 문지방‘, ‘박근혜 하야전’, ‘촛불 역사전’등 시국전에도 적극 참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으로 세상을 아름답게’를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 Lotus (사진제공 : 박영환작가)



그는 길가의 풀꽃처럼 눈길 받지 못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을 오브제로 자아의 심연을 두드리는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관심이 많다. 사진으로 흐르는 세월을 멈출 수는 없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진으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비전을 정립해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빛처럼 늘 젊은 생각으로 세상 한 가운데 존재하기를 희망 한다” 고 했다.




▲ Lotus (사진제공:박영환작가)



정세훈시인은 사진집 서문 제목에 ‘연, 지극히 인본 적이고, 민중적인 삶을 발굴하다’고 붙였다. “연연(蓮緣)”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거의 고아한 자태를 앞세우지 않고 있다. 대신 고아함에 가려있는 처절할 정도로 치열한 삶을 발굴해 내었다.

연의 생을 삶 그대로만 본다면, 제 아무리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결코 더러운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이라 해도, 꽃과 연잎을 받쳐주고 있는 뿌리는 진흙 속에 그 근본을 내리고 있으며 연잎 또한 흙탕물에 제 몸을 부려 흙탕물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뿐인가. 때가 되면 연꽃도 반드시 시들고 마르고 낙화한다”고 했다.




▲ Lotus (사진제공 : 박영환작가)



풀꽃 사진가 박영환의 ‘연연蓮緣전’은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오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문의 02-720-2010 (월요일. 휴관)





박영환씨의 蓮緣이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연꽃의 아름다운 자태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는 스러져가는 스산한 자태를 더 눈여겨 보았다.





   

지금 창밖은 낙엽이 떨어지는 스산한 풍경이다.

세월의 무상함이 밀려오는 자연의 섭리를 박영환의 연연(蓮緣)’이 말하는 것이다





모진 비바람 이겨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서는, 다 내어주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연꽃을 통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난, 작품보다 작가의 인간성을 더 중요시한다.

작품은 좋아도 교만과 위선으로 똘똘 뭉친 돼먹지 않은 인간들이 도처에 늘려있다.

작품에 앞서 사람이 먼저 되어야한다는 선인들의 말씀이 절절한 시절에 산다.



 


사진가 박영환씨를 알게 된지는 촛불이 광화문광장을 뒤덮던 때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던 그의 열정에 혹했는데,

사람의 연을 중요시하는 따뜻한 인간미에 또 한 번 반한 것이다



 

 


그가 전시한 사진작품에는 그의 따뜻한 인간미가 그대로 배어있다.

스러져 가는 하잘 것 없는 연잎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바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연이 있는 곳이면 지역과 거리를 상관치 않고 찾아다닌 지 올해로 꼬박 5년이 되었단다.

그 동안 담은 수천여 장의 연꽃 사진 가운데 100여장을 골라 수록한 연연사진집도 출간됐다.


연연사진집은 인연을 주제로 태어나다, 살아내다, 꽃피우다, 떠나가다, 삶과 죽음 등

5개의 섹션으로 풀어낸 사진이야기다.




 

정세훈시인은 작품집 서문에 이렇게 썼다.

선비들의 시각이 연꽃을 사랑했다면, 민중들의 시각은 그에 못지않게 연의 뿌리와 연잎을 사랑했다.

그동안 보아 온 연에 대한 사진작품들이 선비들의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들이라면

박영환 작가의 연연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민중들의 시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지난 13일 오후6시에 열린 개막식에는 사진가 박영환씨를 비롯하여 시인 정세훈씨,

노찾사의 김가영, 문진오씨, 화가 김 구씨, 사진가 정영신, 권 홍, 임성호씨,

정명식, 최병용, 김홍중, 이연희, 이경희, 유성복씨 등 많은 분들이 찾아 와 전시를 축하했다




   


 

정세훈 시인은 축시를 낭송했고, 가수 김가영, 문진오씨는 축하의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사람을 비롯한 앵콜 송까지 여러 곡 불렀는데, 그중 전시와 잘 어울리는 곡은 '세월'이었다.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고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다시 또 가을 오고...“


이 전시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 조문호



    






















































사진, 글 / 조문호

오는 20일까지, '스페이스22'에서 사진책 450여권 선보여

2018년 11월 11일 (일) 23:32:30정영신기자 press@sctoday.co.kr

우리시대의 꾸밈없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어두운 사회 현실을 다루는 사진들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 사장되기도 빛을 보기도 한다. 고통 받는 현실을 기록하며, 한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순간에도 그 누군가는 사진으로 시대를 증명하고 있다.


30년 동안 오롯이 한국의 근현대사 기록사진을 출판해온 ‘눈빛’이 지난 7일 대안공간 ‘스페이스22’(지하철 강남역 1번출구)에서 창립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북페어, 강연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에선 눈빛출판사가 출간한 사진책전종과 사진가들의 원판사진, 눈빛아카이브가 수집한 사진, 구와바라 시세이, 정태원, 권주훈, 엄상빈, 전민조, 장숙, 변순철씨등 20명의 ‘눈빛’사진집 표지로 쓰인 사진과 미 군정기 외국인이 찍은 코닥크롬 컬러사진 10점도 전시 되었다.




▲ 눈빛출판사대표 이규상, 편집장 안미숙 Ⓒ정영신


그리고 혼신의 힘으로 한길을 걸어온 눈빛출판사 대표 이규상씨가 한국사진의 개요를 정리한

‘지금까지의 사진 – 한국사진의 작은 역사 1945~2018)’도 출간했다.

이 책은 현대사진의 경향과 흐름, 역사적 맥락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80여명의 사진가 작품과 작가소개 등의 리뷰를 정리했다.


▲ '눈빛,한국사진의작은역사 1988-2018'이규상엮음 책표지 (사진제공:눈빛)


1988년 사진전문출판사로 시작한 ‘눈빛’은 지금까지 700여종의 책을 출판했다.

눈빛출판사는 미술평론가 정진국선생의 제의로 이규상씨가 편집장,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가 사장 겸 편집인,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유명한 여균동 감독이 주간을 맡아 1988년 설립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발간한 책은 프랑스 사진가 크리스 마커가 1958년 북한사회를 기록한 <북녘 사람들> 사진집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이규상 대표와 부인인 안미숙 편집장, 그의 딸 이솔과 성윤미씨가 직원의 전부다.



▲ 눈빛출판사 자료모음중에서 Ⓒ정영신   


▲ 눈빛출판사 자료모음 Ⓒ정영신


수지타산을 따지지 않고 새로운 사진과 숨은 사진가를 쉬지 않고 발굴해 온 ‘눈빛출판사’는 가난한 사진가들의 든든한 언덕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이미 검증된 사진가의 책을 내기보다는 이름 없이 묻혀 작업하는 사진가들의 사진을 찾아내 책을 만들어왔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바탕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초심으로, 한권 팔아 다음 책을 준비하는 어려운 여건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눈빛출판사 안미숙 편집장은 “사진집은 사진가의 의도를 집약해 보여줄 수 있는 사진출판의 꽃이다”고 말하며 “이미지로 읽은 책이 사진집인데, 우리나라는 활자위주의 교육에 치우쳐, 이미지를 해석하거나 읽어내는 훈련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눈빛이 지금까지 만들어 온 700권의 책은 80%이상이 사진 관련이고, 나머지는 미술이나 문화 관련 책들이다.

안미숙 편집장이 추천한 책은 8.15해방부터 여수. 순천사건, 6.25전쟁까지 역사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집으로,

외세와 남북한 냉전으로 이어진 해방직후의 역사적 민족사를 기록한 이경모선생의 <격동기의 현장>이다.

그리고 골목에서 만난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겼던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과

한 평생 서민들의 모습을 담아 온 최민식선생의 <휴먼 선집>도 꼽았다.

지금은 세 분 다 고인이 되셨는데, 작가와의 인간적인 교류 속에 책을 만들어 행복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눈빛출판사’ 대표 이규상씨는 사진기술서가 전부였던 사진출판 분야에 현대사진의 이론을 소개하고,

30년 동안 역량 있는 새로운 작가를 배출하여 다큐멘터리 사진의 부흥을 일으킨 장 본인이다.

작가주의로 치닫는 사진가의 권위나 형식주의 사진에 선을 그으며,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선별해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평균 한 달에 두 권의 사진 책을 펴내며, 지속적으로 숨은 사진을 찾아낸 것이다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특히 눈빛출판사가 시리즈로 선보인 ‘눈빛사진가選’은 잃어버린 풍경을 기록한 사진을 중점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지금까지 59권을 펴낸 ‘눈빛사진가선選’은 한국사진의 대표시리즈로 발돋움시킬 야심찬 계획이다.

시대적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한다는 책임감이 큰데, 언젠가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 ‘눈빛사진가선善’사진책전시 Ⓒ정영신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100년사 1919-2019’ 자료수집에 몰두하고 있는 이규상대표는

“사진 책으로 멋진 사옥을 짓는 꿈은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며,

‘눈빛출판사’가 걸어온 지난 30년을 디딤돌 삼아 앞으로 30년, 300년이 번창할 수 있기를 소망 한다”고 말했다.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눈빛출판사 창립30주년 기념전은 강남역 1번 출구 미진프라자빌딩 22층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서 오는 20일까지 열린다.

한국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소중한 사진집을 모두 만날 수 있는데, 전시 기간에는 최고50%에서 20%까지 활인 판매 한다고 한다.



▲ 눈빛출판사 연대기 1988-2018 (사진제공:눈빛)


그리고 아래는 전시기간 중 대안미술 공간 ‘스페이스22’에서 열리는 강연 일정이다.


11월 10일(토)

오후 2시- 3시 30분 / '대항매체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 / 김성민 경주대 교수

오후 4시- 5시 30분 / 내가 바라본 격동한국 반세기 /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11월 13일(화)

오후 4시- 4시 50분 / 나와 아바이 마을 30년 / 사진가 엄상빈

오후 5시- 5시 50분 / 세계 속의 한국 사진 / 사진평론가 최연하

11월 15일(목)

오후 4시- 4시 20분 / 전AP통신 사진기자 김천길선생 추모행사

오후 4시 30분- 5시 20분 / 역사의 현장에 선 사진가 / 사진가 정태원

오후 5시 30분- 6시 20분 / 오늘의 기념사진 / 사진가 전민조

11월 17일(토)

오후 2시- 3시 30분 / 눈빛과 한국현대사진 30년 / 사진평론가 진동선

오후 4시- 5시 30분 / 인문학으로서의 한국사진의 지평 / 사진평론가 이광수


전시문의 : 대안공간 스페이스22 (02-3469-0822)


▲ 사진과 책이 전시된 모습 (사진제공:곽명우)








지난 일요일부터 삼일동안 남원지역 및 영암지역의 장터와 그 주변 문화유적지를 찾았다.

 

이 일은 올해 초부터 시작한 정영신씨의 지역장터와 연계한 문화유적 탐방 프로젝트인데,

간다는 기별만 오면 동자동 일이건, 인사동 일이건 모두 팽개치고 총알처럼 따라 나선다.

계약에 따른 동지로서의 협력이기도 하지만, 떠돌아다니는 게 체질이 되어 일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놀이로 생각하니,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어디 있겠는가?



 


단지 정해진 일정과 행선지에 따라 데려다 주는 기사 역할이지만,

장터 사람들의 텁텁한 냄새와 더불어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지역 문화재들을 하나 둘 다시 만나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예전에는 문화재 자체에 대한 관심이었다면, 이젠 문화재와 연관된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풍류를 즐기며 여유롭게 살았던 양반의 유적은 많으나, 상민들이 살아 온 흔적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어차피 역사란 잘 난놈이 만드는 것이니 어쩌겠는가?



 


그래도 이번 탐방지는 성춘향이의 절개로 이름 떨쳤던, 연애사의 고향 남원이었다.

남원만 오면 약간의 설레임이 따르는 것은 행여 춘향을 방불케 하는 미녀라도 만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 때문일까?

그러나 춘향이란 여인의 미색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어찌 찾을 수 있겠는가? 

아마 마음속의 여인상이라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오전 10시경 도착한 곳은 남원장의 고추전이었다.

마침 고추를 실고 온, 두 모자에게 장사꾼이 달라 붙었다.

흥정하는 과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대단한 신경전을 펼쳤다,

장사꾼은 먼저 받을 금액을 말하라하고, 아낙은 살 금액을 먼저 말하라 했다.

똑 같은 말을 반복하며 줄다리기 한 시간이,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20분은 족히 되었다.



 


결국 상인이 근당 6천원을 주겠다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낙이 아들더러 짐 싸라며, 고추포대를 다시 묶기 시작했다.

다급한 상인이 칠천원이라 해도 듣지 않자, 팔천원, 구천원, 만원까지 계속 가격을 올렸지만,

그 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추를 차에 실고 떠나버린 것이다.

아무리 장삿속이라 하지만, 그건 도둑놈 심보였다.



 


그런 치열한 흥정이 벌어지는 중에 한 쪽에선 신명난 놀이 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앰프에선 시끄러운 트로트 곡이 귀청을 울리는 가운데, 남원의 선녀들도 하나 둘 나타났다.

장구야 놀자라는 팀이 먼저 걸방지게 한 판 놀았다. 신바람이 장터를 휘몰아 쳤다.

얼마나 엉덩이를 흔들며 신나게 노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쳐다보았다.



 


정규직이라 명찰을 단 사회 보는 사내가 사진 찍는 늙은이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아제는 캐이 비 에스 방송국에서 나 왔는 것이여?”라고 묻길 레,

캐이 비 에스가 아니라 조선방송국에서 나왔다고 했더니,

우메! 세상 참 좋아 져 버렸네라며 낄낄거린다.



 


두 번째는 동내 아낙들로 만들어진 난타그룹이 나왔는데, 일사불란하게 두들겨 팼다.

아마 애먹이는 신랑 생각하며 북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이름 없는 가수들 까지 나와 알 듯 모를 듯한 노래를 불렀으나,

아쉽게도 춘향이는커녕 향단이의 미색을 떠 올릴 여인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침부터 굶었으니, 배가 슬슬 고파지기 시작했다.

점심 때 쯤 만나서 밥 먹기로 약속했는데사진 찍으러 간 여자는 강원도 포수였다.

그녀를 찾아 장터를 한바퀴 돌아 다녔는데, 한 쪽 구석에서 장터 아지매들과 밥을 먹고 있었다.

난 우야라고? 정말 믿을 년 한 년도 없더라.”



   



오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춘향이를 보기위해 광한루에 있는 춘향이 사당을 찾았다.

누가 그린 초상화인지 모르겠으나, 사람이 아니라 인형 같이 같더라.

왜 우리네 선조 여인들의 초상화는 대개 비슷비슷하고, 개성 없게 그렸는지 모르겠다.

가름한 얼굴에다 대부분 야윈 체구였다.



 


그 때는 자식을 잘 낳을 수 있는 풍만한 육체와 통통한 얼굴이 미인이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의 기준에 맞춘 초상화 같았다.

개성적인 소피아 로렌이나, 마리린 몬로 같은 글래머 여인은 과연 없었을까?

이런 저런 마음속의 춘향을 그리며, 광한루를 돌아 나왔다.



 


그 다음엔 실상사를 갔는데, 절 입구의 석장승이 나를 아는 체 했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툭 튀어나온 눈에다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달고 있었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는 조선 후기인 1725년에 세운 장승으로 적혔는데,

귀신을 쫓는 장승의 표정이 험상궂기는 커녕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실상사에는 삼층석탑과 석등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들이 있지만,

약사전에 봉안된 철제여래좌상은 4,000근의 철을 녹여 만든 통일신라시대 걸작이다.

이 불상은 현재 지리산 최고봉인 천황봉과 일직선상에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기를 일본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호국적 이념으로 이곳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 뒤 혼불 문학관에도 들렸는데, 손님은 커녕 지키는 사람조차 없었다.

문학관을 다 돌아보고 나올 때 까지 개미새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는데,

관리하는 분은 도대체 어디 갔을까?



 


비단 이 곳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지자체에서 조성한 문화재는 놀부 집 같은 한옥만 지어 놓고 관광객을 기다리지만,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결과였다.



 


그 다음 날은 월출산이 아름다운 영암장으로 떠났다.

도갑사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를 돌아보았지만,

책 나오기도 전에 다 불어버리면 정영신씨에게 목 잘릴까 걱정되어 입 다물란다.



 


오후5시 무렵 서울로 출발했는데, 네비에는 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특별한 약속은 없었으나 빨리 가려고 좀 밟았더니, 차가 생 지랄을 떨었다.

휴게소에 들려 살펴보니, 엔진오일이 줄어든 것 외는 별 이상 없었다.

고물차라 천천히 다니라는 계시였다.

2차선에서 화물차 처럼 경제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더니, 아무 이상 없었다



 

 


사실 십 수년 동안 고물차 끌고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죽는다는 것은 발버둥 친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다 죽을 때가 있는 것 같더라.

지켜보던 정영신씨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마디 했다.



 


우린 언제 말썽 피우지 않는 새 차 한번 몰아볼 수 있을까?”

늘 써 먹던 수법이지만, 점잖게 흰소리를 했다.

조금만 기다려. 라이타돌 실은 밀수선이 곧 인천항에 도착할거야.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차부터 한 대 뽑자고 말했더니,

그 놈의 라이타돌 실은 배는 가라앉은 지 오래되었어. 와도 죽고 나서 오면 뭘해?”



 


그래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며 넉살을 떨어댔다.


 

사진, / 조문호



























































 






사진 이미지 홍수 속에 사는 요즘, 사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예술사진이란 이름을 달고 별의 별 사진들이 전시장을 메우지만,
작가의 의도만 전달되면 다 통용되는 세상이다.

어떤 이들은 무차별 남의 사진을 웹에서 퍼 날라 쓰기도 하고,
어떤 사진가는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변형시키기를 밥먹듯이 한다.
사진의 사실성보다 사진가의 표현이 더 중요한 시대에 산다.






요즘 육명심 선생의 ‘이산가족’ 사진집출판에 대하여 사진계에서 말들이 많다.
육명심 선생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사진가로 존경해 온 사진가가 아니던가.
‘백민’, ‘장승’ 같은 일련의 사진들은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보여 준 훌륭한 작업이었다.
그러한 분이 왈가불가 사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사진집에 실린 사진이 본인이 찍은 사진은 일부이고,

다수의 사진이 티브이 화면에 방영된 장면을 촬영했다는데 있다.
문제의 그 사진집을 보지는 못했지만, 곽윤섭기자 글에 의하면 노욕이란 생각부터 들었다.
이 일은 육명심선생께서도 충분히 논란을 예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논쟁에 대한 관심은 효과적인 책 판매로 이어질 것이고, 다시 한 번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원로사진가로서 기존 사진 관념을 파괴하는 젊은 사진가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 삼는 사진가들도 무차별한 지탄을 자제하고, 선생의 의도도 한 번 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아무쪼록 선생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사진집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난, 작품사진을 찍는 작가가 아니고, 세상을 기록하는 사진가다.
좋은 사진이란 사진 자체가 갖고 있는 내용이지, 카메라 앵글이나 기술적인 문제는 둘째로 친다.
그래서 찍은 사진을 사진 일기처럼 모조리 블로그에 올려 왔다.
어떤 이들은 좋은 사진만 올리라는 충고도 하지만, 좋은 사진을 도대체 누가 구분 한단 말인가?
그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일 뿐이고, 난 그냥 기록으로 남길 뿐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사진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기록사진이다.
대부분 해방 직후나 한국전쟁 때 찍은 사진으로, 외국선교사나 외국 기자들에 의해 찍힌 사진들이다.
찍은 이의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귀한 사진을 만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역사로 남은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감이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우연히 문경의 ‘옛길 박물관’을 구경 간 적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벽에 붙어 있는 오래된 장터사진 몇 장 이었다.
여지 것 오래된 장터사진이라고는 30여 년 전에 찍은 정영신씨의 사진이 고작이었지만,
가끔 인터넷에 떠도는 일세기에 가까운 오래된 장터사진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그런데, ‘옛길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들은 모두 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소등에다 장작을 가득 쌓은 사진이나 소달구지 행렬에서, 그 시절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그런 건 둘째 문제였다.
이 보다 더 소중한 장터역사가 어디 있겠는가?






위의 사진은 '옛길 박물관'에 전시된 사진이고, 마지막 사진은 1978년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사진으로 보는 한국백년’에 실린 사진으로, 1925년 무렵의 마포나루 풍경이다.

인천으로부터 각종 해산물을 실은 배들이 오던 한강의 옛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사진은 세월에 숙성되어야 제 맛이 난다.


글 / 조문호





















충무로 '비움 갤러리'에서 열리는 이정환씨 ‘미아리 이야기’사진전에 오래된 추억들이 떠올랐다.
유행가에 나오는 눈물의 미아리 고개가 아니라, 슬프기도, 우습기도 한 “희비쌍곡선”이다.






고등학생 시절 영화에 미쳐, 미아리 있었던 ‘서라벌예대’에 들어가려 안달한 적 있었다.

울 아부지는 “줄만서면 들어가는 딴따라대학 들어가 딴따라 될끼가?”며 어림 반푼어치도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로 도망쳐 할부 책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어눌한 주변머리에 책 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팔았다 하면 망하는 회사에 풀어, 돌려받느라 혼 줄 난적도 여러 차례다.






친구 자취방에서 잠은 끼어 잤지만, 굶기를 밥 먹듯이 하여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모른다.

그래도 틈만 나면 미아리 학교 주변을 기웃거렸다,

고갯길의 중국집에서 공갈빵 하나 사서 간신히 허기를 메웠는데, 그 공갈빵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공갈빵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사서 고생 하다 결국 집으로 잡혀 갔지만, 몇 달 동안 미아리 주변을 맴돌았던 추억이 새록새록했다.






다른 추억 하나는 20여년 후, 사진에 미쳐 두 번째 야반도주했던 때 이야기다.

인사동 친구들 여러 명이 어울려 마시다, 단체로 미아리 택사스에 몰려 간 것이다.

박ㅇ수 시인 덕에 누린 호사였는데, 정말 죽이더라. 그때 난생 처음 계곡 주를 맛 보았다.

그래서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

열 명이 넘는 사내와 계집이 발가벗고 술 마신다고 한 번 생각해보라.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난다.

이정환씨의 ‘미아리 이야기’가 그만 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정환씨의 전시가 열리는 ‘비움갤러리’가 충무로 대한극장 주변에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사진 한다는 놈이 사진전문 갤러리 위치를 모른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대한극장 주변을 맴돌다 결국은 이정환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시장이 마치 미아리 택사스 촌처럼 어두컴컴했다.

전시장에는 사진가 이정환씨와 성유나씨가 있었는데, 푸르스름한 조명이 좀 야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전시된 사진들은 그리 야하지 않았다.





이정환씨는 미아리에서 태어나 55년의 세월을 미아리에서 살아 누구보다 미아리를 잘 알고, 추억과 애정 또한 남다르다.

그는 사진가이기 전에 한 때 영화 전문가였다. 30대부터 컴퓨터 그래픽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각종 CFCG작업을 했다.

신 씨네와의 인연으로 국내 최초의 CG영화 구미호CG디렉터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가 늦게 사진을 시작해 옛날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일찍부터 사진을 했다면, 완전한 미아리 역사를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 사진마다 미아리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옥상 난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개를 찍어 추억을 상기 시키기도 했다.





점집 앞에 제수로 엎어 놓은 돼지가 비정한 오늘의 현실을 말했다.

아파트가 미아리를 잠식해가는 사진에서는 작가의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비닐 막을 통해 보이는 꽂집 풍경과 택사스촌 입구를 지키고 앉은 여인, 음습한 유흥가를 지나는 발길들,

가로등이 조는 밤늦은 뒷골목 등 하나같이, 오랜 기억을 불러들이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그는 골목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그동안 '국제 골목사진전'과 '골목은 살아있다'에서 보여주었듯이 '골목'에 대한 그의 철학이 남다르다.

그의 지난 사진들은 보지 못했지만, ‘북촌’, ‘사라지는 교남동’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장소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지난 해 보여 준, '우연한 의도'전과 '미아리 이야기' 모두 장소에 대한 기억의 연장선상이다.





사진 속 공간 공간에는 사람 살아가는 끈적한 인간애가 배어있고, 변해 가는 고향에 대한 연민의 정이 묻어 있었지만,

작가의 시선은 냉소적이었다. 사랑과 미움의 갈등 같은 것이 묻어났다.






어릴 때부터 살아 온 미아리 전경의 사진에서는 아련한 향수가 밀려왔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긴 하지만, 아직은 골목골목의 정취가 남아있었다.

언젠가는 아파트 무리에 밀려나겠지만, 마지막 파수꾼처럼 묵묵히 지키며 기록하는 것이다.

예술 한다며 멋 부리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바라 본 것이다.
사진에서 만나는 것들은 지나치다 우연히 발견했지만, 늘 찾는 대상이었다.

그 미아리의 아픔을...






아래는 이정환씨 ‘미아리 이야기’ 전시 서문 일부다.

"추석 즈음, 모 교수의 칼럼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걸 따라 하자면 나에게 "미아리는 무엇인가?"
나에게 미아리는 태어난 장소, 곧 자궁이요, 고향이다.
나에게 미아리는 놀이터요, 나에게 미아리는 삶의 터전이요,
나에게 미아리는 사회성을 키워준 공간이요,
그러고 보니 미아리는 내 삶 그 자체인 거다.
나는 미아리에서 태어나서 55년을 살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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