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에서 자연이 빚어낸 색의 향연에 흠뻑 빠져버렸다.
비에 젖어, 좍 가라앉은 단풍색은 꿈길을 걷는 듯 황홀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따라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지난 26일 새벽녘에 일어나 충청도 보은장에 갔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으나,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비오는 날은 또 다른 장터 분위기를 만들어 주니까.
비가 오는 날은 차가 속력을 내지 않으니, 기름 값도 절약된다.
늦은 아홉시 쯤 도착했는데, 젖지 않을 만큼의 가랑비가 내렸다.
그래도 팔 것은 다 팔고, 살 것은 다 사갔다.
그런데, 보은하면 대추로 유명한데, 대추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추가 흔하니 살 필요도 없겠지만, 대부분 농협으로 넘어가는 것 같았다.
한 두 시간쯤 돌아다니다, 장터 백반으로 아침 겸 점심을 해 치웠다.
시장이 반찬이라 듯, 맛있게 먹고는 속리산 법주사로 향했다.
난, 풍경엔 흥미가 없어, 어제 밤에 못잔 잠이나 보충할 생각이었다.
정영신씨만 법주사로 갔는데, 막상 의자를 눕혀보니,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 죽으면 원도 없이 잘 건데, 기념사진이나 찍어주자"며 따라 붙었다.
와~ 그런데, 가면 갈수록 기가 막힌 신천지가 펼쳐졌다.
자연은 색의 마술사였다.
좋아하는 사람에 다친 마음, 자연으로 풀었다.
단풍 구경하러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이해되었다.
평소 남들처럼 산행이나 여행을 떠나지는 않지만, 이처럼 촬영 길에 우연히 맞닥트릴 때가 종종 있다.
도랑치고 게 잡는, 이 맛을 알랑 가 모르겠다.
법주사는 20년전에 기록해 두었어나, 다른 절에 비해 변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에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에 중창된 미륵신앙 중심도량이다.
더구나 올 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던가.
쌍사자석등,·석련지,사천왕석등,·마애여래의상 등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많으나 눈여겨 볼 것은 단연 팔상전이다.
각 층마다 구조가 다르고, 재목의 사용이나 공포구성법·이 다른 우리나라에 단 하나 뿐인 5층 목탑이다.
알랑방구 낀다고, 물든 단풍 아래 정영신씨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 재꼈다.
우리가 언제 비에 젖은 단풍놀이를 다시 할 수 있겠는가?
아! 이런 게 행복이구나.
세상살이 보너스로 준 이 행복감,
고맙고, 고맙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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