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사는 일 떨치고, 장에 따라 나섰다.
장터와 지역 문화 답사 가는 정영신씨 기사 노릇을 자청해 콧바람 씌러 간 것이다.
첫 날은 경상북도 점촌장에 들렸다.
점촌하면 왠지 점잖은 촌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동내이름도 그렇지만, 야박한 다른 장 인심에 비해,
몇 년 전 받은 후덕한 인심이 그런 생각을 각인시킨 것 같았다.
점촌장은 급변하는 장터에 비해 아직 덜 망가진 시골장이다.
난전에 둘러앉아 한담 나누는 할머니의 모습도, 무뚝뚝한 사내들 사투리조차 정겹더라.
장에는 벌써 송이버섯이 나왔는데, 고추만한 버섯 여섯 개 놓고 팔 만원이라했다.
가난한 사람들 눈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그 돈이면 고기로 온 가족이 맛있게 먹을텐데...
장터를 기웃거리며 떠도는 여인도 만났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장터에 이런 사람들이 간혹 있다.
세상이 미치도록 했겠으나, 어쩌면 그녀가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단돈 천원에 싱글벙글 좋아했는데, 요즘은 어린애들도 천원을 우습게 여기는 세상 아니던가?
큰 욕심 없이 즐겁게 사니,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장터에서 문경의 문화 활동가인 이선행씨를 만났다.
아마 정영신씨와 연락 닿아 나오신 것 같았다.
지난 겨울 정선 동계올림픽 얼음축제장에서 열린 정영신씨 장터사진전 때 한 번 뵌 적 있는 분이었다.
문경에서 정선까지 장터 전시 보러 온 지극정성에 놀랐었다.
정영신씨의 페친으로 장터문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는데, 이번 문경 여행 안내를 맡아주셨다.
점촌과 함창의 맛집에서 음식도 사 주셨는데, 너무 황송스러운 환대를 받았다.
그 중 함창의 버섯요리전문점 ‘테마촌’에서 먹은 버섯탕수육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오디로 만든 달짝한 소스에 찍어 먹으니, 입에 살살 녹았다.
그 뿐 아니라,'문경새재도립공원'에 있는 ‘옛길박물관’을 비롯해 문경의 여러 곳을 안내해 주었다.
‘옛길박물관’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선시대의 오래된 장터 사진으로 처음 보는 사진이 많았다.
산북면 사불산에 둥지 튼 '대승사'로 향하니, 죽도록 고생한 이십사년 전으로 필름이 돌아갔다.
한국의 불교 유적을 찾아 전국 사찰을 돌아다닐 때인데, 새벽에 도착하기 위해 매번 한 밤중에 떠났다.
지금에야 길 안내 해주는 내비라도 있지만, 그 때는 사람조차 만날 수 없는 시골 밤길 헤매느라 곤욕을 치루었다.
그 뿐 아니라 졸음을 견디지 못해 창을 내려 운전하다보니,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불구가 되어버린, 고난의 시절이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 전국 명찰 문화재를 모두 촬영해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으나,
일곱 권의'한국불교미술대전' 도록을 만들다 경영난에 허덕인 출판사의 부도로 원고료조차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돈 되는 일 하나 맡았다고 생각했으나, 되는 일이 없었다.
그 덕에 사진이라도 남았지만, '대승사'를 보니 갑자기 힘들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이어 이선행씨는 전통도예가 천한봉 명장의 ‘도천도자미술관’으로 안내했다.
도천 천한봉선생과 선생의 따님 천경희 도예가를 소개해 주었는데,
같은 듯 다른 두 작가의 도자를 감상하며 우리 고유의 멋에 빠지는 시간을 가졌다.
천한봉 선생께서는 일본을 자주 가신다고 하셨는데,
일본의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선생과 가까운 사이라고 하셨다.
구와바라 시세이선생께서 반세기 동안 천선생의 가마터를 오가며 기록했던
흑백 사진앨범 두 권을 보여주었는데, 한국전쟁 직후의 희귀한 사진도 있었다.
그런데,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께서 치매에 걸렸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삼년 전 귀국하셨을 때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한 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아무쪼록, 별 탈 없기만을 빌 뿐이다.
그리고 점촌장에서 사주신 머루포도는 먹을 때마다
이선생의 고마움이 새록새록 나는 감칠 맛이었다.
"이선생, 고마웠습니다.
서울 오시면 맛있는 것 사드릴께요."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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