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은 정영신씨 따라 포천 신읍장에 장보러 갔다.






포천장은 다리 밑에서 열리는 장으로 경기북부에서 가장 큰 장이다.
포천읍내에 있던 장터가 무질서한 교통문제로 지금의 다리 밑으로 옮겨졌단다.






다리 밑이라니 별난 생각이 많이 난다.
어릴 적엔 다리 밑에 내다 버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당시의 다리 밑이란 거지들이 몰려 사는 곳이기도 했지만,
나병환자들이 많아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중엔 다리 밑을 고향처럼 동경했지만... 




 


한 시간 남짓 달려 다리 밑에 당도하니, 장마당이 시끌벅적 했다.






“단감이 한보따리 오천원이여. 오천원! 이제 몇 개 안 남았어요.”


장꾼들 이야기는 숨 쉬는 소리 빼고는 다 거짓말이라 듯이, 한 보따리 라는 게 겨우 일곱 개 담긴 봉다리었다.
그리고 뒤편에 세워 둔 트럭에서 수시로 가져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게 장사꾼이니, 어쩌겠는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게 장터 생리니, 아무도 탓하는 이는 없다.
그래도 사람냄새 물씬 나는 신읍 장터는 고향에 온 듯 정겹더라.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라 장꾼들도 다들 밥 먹느라 바빴다. 
모두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니, 밥 먹는 모습도 빼 놓을 수 없는 정경이다.





뺏어 먹을까 혼자 숨어 까먹는 사람도 있고, 두 내외가 마주앉아 정겹게 먹는 사람도 있고,
장꾼들 여럿이 둘러 서서, 노닥거리며 먹는 등, 먹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심지어 중국집에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휴대용 버너에 라면을 끓이는 장꾼도 있었다.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포장마차도 바글바글, 호떡집은 불난 호떡집처럼 장사진을 쳤다.






노리짝 하게 구운 호떡에 군침이 돌았으나, 동자동서 줄 서는데 질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밥 먹는 것조차 귀찮은 놈은 살 자격도 없다. 그러나 죽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정영신씨는 사진 찍으랴 인터뷰하랴 바빴으나, 물건 사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일 중 하나다.
가평 잣 장사 구라에 못 이겨 잣도 한 봉지, 포천 단감도 한 봉지, 심지어 내 바지까지 사서 갈아 입어란다.






청바지 뒤가 헤어져 팬티가 보인다는데, 팬티는 옷이 아니던가?
어떤 사람은 멀쩡한 청바지에 구멍 뚫어 입고 다니는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포천 신읍장은 시 소재지 장이지만, 시골 장 못 잖게 재미가 솔솔하다.
물이 밖으로 흘러 생긴 이름이 포천이라는데, 물이 밖으로 흐르면 몽정이 아니던가?

다리 밑 장터라 자연과 어울려 정답지만, 흉하게 지어놓은 장옥이 없어 더 좋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포천장에 장보러 가자.
밑져야 본전인 신읍장은 5, 10일에 들어서는 장이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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