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 돌아오는 길에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이명동선생님 자택을 방문했다.
지난 삼월 중순 사모님을 먼저 떠나보낸 후, 처음 찾아뵙는 문안 인사였다.

약수동 아파트에 혼자 계신 선생님의 모습은 예전과 달리 초췌했다.
말씀으로야 혼자 있으니 편하다지만, 마음고생에 몇 년은 더 늙으신 것 같았다.
이게 혼자 사는 것과 함께 사는 차이인 것 같았다.
몸 단장이나 먹는 것에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선에서 가져 온 두릅도 사모님이 계셨던 예전처럼 그리 반갑지 않은 듯 했다.
맛있는 음식도 혼자 드시니, 무슨 맛이 있겠는가?

사모님께서 돌아가시던 날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몸이 불편해 요양원으로 옮기기 위해 목욕을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고 한다.
앰블랜스를 기다리며 선생님의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작별이며 편안한 죽음인가? 분명 축복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동아일보'에서 평생을 보내셨기에 신문도 ‘동아일보’를 보았고,
혼자 돌아가는 티브이도 A채널만 틀어놓고 계셨다.

거기다 '사진예술'까지 정기구독하고 계시니, 정치판이나 사진판 돌아가는 사정을 나보다 더 많이 알았다.

옛 제자였던 김희중(에드워드 김)씨가 중풍이 걸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국 들어와 다방마담이었던 여자를 잘 못 만나 그 지경이 되었다고 하셨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업소에서 일한 직업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안 일은 도우미가 찾아 와 도와준다고도 하셨다. 

이제부터 몸을 추슬러 가까운 곳이라도 산책을 즐기는 시간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사모님 걱정에 외출을 삼갔지만, 가까운 사진전에도 살살 찾아다니시며,

후배들에게 옛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격려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제 4년만 지나면 백수이시니, 부디 건강을 잘 보존하시기 바랍니다.

글 / 조문호









8월 6일까지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려


“내 사진은 고요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말처럼 사진가 한정식 선생의 ‘고요’는 그가 추구하는 사진 작업의 지향점이자 존재의 모든 것이다.

사물의 가려진 부분을 읽어내며, 사물 안의 본질을 찾아 시(詩)를 쓰는 과정이 그가 추구하는 사진작업이다.




▲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전시실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사진가 한정식 선생



그는 사물이 말을 걸어 올 때까지 기다리다, 소통이 빚어내는 언어를 통해 부처를 만난다.

그는 “내 모든 마음을 비우면 사물의 본질이 명료하게 보인다.


시를 통해 사진이라는 생경한 분야를 개척하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작품으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이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사물이 가진 미학을 추구해오며, 사물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겨냈다.

그러다보니 완전한 무(無)의 경지에 달해, 그 안에서 부처를 만나게 된 것이다.



▲ 나무, 1980년대(201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어느 때가 사진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이냐는 물음에는 “사물과 작가 내면이 마주치며 존재의 리듬이 들리는 순간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했다.

사진이 시간과 빛의 예술임은 누구나 알고 있으나, 그에게는 선(禪)이란 또 한 가지가 더 존재한다.

빛과 사물에 더해 선이 만들어내는 생경한 ‘시각적 의미’를 들려주는 작가의 글을 한번 읽어보라.



▲ 나무, 1980년대(201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언어만이 아니라 어떠한 매체로도 표현 불가능한 시각적 체험은,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빛의 세계,

카메라와 사물이 빚어내는 시각적 ‘비가시체험(non-dejavue)’이라 할 일종의 육감적 체험을 뜻한다.

소위 ‘현대사진’으로의 길을 여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내목표의 하나로, ‘시각적 의미’에 매달리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 발, 1980년대(201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 -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이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장순강 큐레이터는 “한정식은 사진을 통한 추상이라는, 한국사진에서는 짧은 실험에 그친 영역을

40여년에 걸쳐 추구해왔고, 이는 한국사진의 다양성을 위한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주변을 제외한 사물 본래의 모습만 담아내,

마치 물이 융합하는 것처럼 무취무색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묵시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그 고요한 적막은 생성과 소멸을 벗어나, 어떤 언어로도 이룰 수 없는 무(無)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다.



▲ 발, 1980년대(2018),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이것은 은유도 직유도 아니다. 사물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현실을 벗어난 궁극의 경지였다.

사르트르가 말한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다’는 명제처럼, 그 사이에는 사진의 알몸만이 오롯이 드러나 예술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서울대 사범대국어과를 졸업한 문학도였다.

청년시절엔 한국일보 신춘문예 가작으로 뽑힐 만큼 시인의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시인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봤기에, 사진도 마음이 사물에 닿는 순간 시(詩)를 쓰듯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 강원도 홍천, 2012(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제공-과전국립현대미술관)



그의 초창기 사진으로 ‘북촌’ 같은 특정 지역을 기록한 작업도 있었지만, 점점 나무와 사람의 발 등 서정적인 피사체를 대상으로 형상화 해왔다. 그 주변의 풍경과 교감하면서 사물의 본래 형태를 벗어나 새로운 조형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의 예로 나무의 결에서 사람의 형상이 보이기도 하고, 발의 부분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인체를 느끼게도 한다.

그처럼 모딜리아니의 여인의 모습은 형상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에 자유롭게 접근하기에 가능했다.



▲ 경기도 안성, 1985(2017), 젤라틴 실버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작가는 영암월출산 도갑사에서 찍은 사진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이었지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닌가 생각한다.

보살이 그 방으로 안내했지만, 어쩌면 부처가 그 빈방으로 인도했을 것이라 했다.


당시 기와불사를 하던 도갑사에서 기와 한 개당 천원의 시주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주머니에 만원권 지폐뿐이라 거슬러 주겠거니 하며 건네줬는데,

보살이 활짝 웃으며 “웬 시주를 이렇게 많이 주세요?” 라며 웃어넘겨, 차마 거슬러 달라는 소리를 못해 물러났다고 한다.

절 경내를 돌아 본 후 일주문을 나서다 기와 불사를 했던 보살을 다시 만난 것이다.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공양이라도 하시라며 안내한 곳이 그 방이었다고 한다.



▲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도갑사, 1986(2017), 디지털 프린트


빈방에는 밥상으로 쓰는 탁자 하나가 그를 기다리듯 반겼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전등불 하나가 밝혀 주는 소박하고 정갈한 방이었는데,

그 방으로 들어 간 순간이 바로 부처와 만나는 찰나였다.

그 방에 부처가 앉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다.




▲ 경기 가평, 2001(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제공-과전국립현대미술관)



사진도 하나의 말이라는 작가는 월출산 도갑사 빈방의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우연한 인연으로 사물과 만나, 사물의 계시를 기다리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바로 ‘결정적 순간’이라는 작가는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가라고도 했다.


전시장에는 사물의 형태가 지니는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한 초창기 사진이었던 ‘나무’와 ‘발’ 그리고 ‘풍경’이

차례대로 전시되어 평생 화두로 잡고 있는 ‘고요’에 의미를 더해 주었다.



▲ 충청북도 단양, 1998(2017), 디지털 프린트 (사진제공-과천국립현대미술관)


추측컨대, 작가의 전생은 시인도 사진가도 아닌 스님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그러한 작가의 불심이 ‘고요’의 중요한 요체로 작용되었으리라.

말 걸어오는 생명체인 무(無)를 통해 그만의 부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아카이브 공간에서는 사진을 전공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한정식의 ‘사진예술개론’을 비롯한 이론서적과

서울을 찍은‘북촌’등 그동안 발행된 선생의 사진집들이 전시되어 한정식선생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 아카이브에 사진을 전공하는 이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한정식의‘사진예술개론’을 비롯한 이론서적과

서울을 찍은‘북촌’등 그동안 발행된 선생의 사진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두 번째 사진 전시로 추진된 한국 추상 사진의 선구자 한정식선생의

전시는 오는 8월6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198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보여주는 작품 99점이 전시되어 작가의 사진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www.mmca.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2188-6000)


[서울문화투데이 / 정영신기자]





(사진집 / 또 하나의 경계 / 눈빛출판사 / 40,000원)



엄상빈씨는 30 여 년 동안 분단을 상징하는 동해안의 철조망을 지켜보며, 분단의 한을 삭여 온 사진가다.

그 민족을 아픔을 조망한 “또 하나의 경계”전이 오는 14일부터 강남 ‘스페이스22’에서 전시된다.

철조망을 잡은 주름진 노인 사진이나, 철조망에 걸린 죽은 새로 분단의 한을 표현한 다소 인위적인 사진들이 더러 발표되기도 했으나,

그런 사진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진가가 애 끓이며 삭여 온 세월의 무게에 감히 얼굴 내밀 수 없다.

그가 붙들고 있는 분단의 상처에 대한 끈은 ‘아바이 마을 사람들’과도 연결되어 엄상빈씨의 대표적 작업으로 꼽힌다.

철조망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부자 집 담장 위에 쳐놓은 폭압적인 풍경들이다.
그 밑에다 유리조각들을 박아 두었는데, 정말 흉물스러웠다.

도둑 못 들게 하는 짓을 탓할 수는 없으나 조세현 같은 도둑이 그런 철조망 있다고 못 들어가겠는가?

엄상빈씨가 보여주는 동해안에 쳐 놓는 철조망도 마찬가지다. 그런 시대 뒤떨어 진 잔재물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자체가 슬픈 것이다.

처음엔 동물의 침입을 막느라 철조망을 치고, 동물을 가두어 키우느라 쓴 철조망이 이젠 사람을 막는 분단의 상징물로 남게 된 것이다.

이게 우리민족의 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엄상빈씨는 20여년 넘게 지켜 본 오래된 사우다.
떠벌리는 사진가들처럼 말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사람이다.

대개 그 나이가 되면 손자 재롱에나 파묻혀 사진은 뒷전 일 텐데, 미쳐도 제대로 미친 사람이다.

알고 미치는 것과 모르고 미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찍는 것에서부터 마무리에 이르기 까지 그의 치밀함은 알아 주어야한다.

그것도 편하게 프린트하지 않고 암실에서 한 장 한 장 구워내는 프로 근성까지 보여 준 것이다.

오래된 이미지를 확대기에 걸어놓고 보며 당시의 회억에 빠지거나,

약물 속에서 서서히 드러내는 맛을 오래 작업한 사진가들은 대개 알 것이다.






몇 일 전 엄상빈씨가 동자동을 방문했다.

개인전을 연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사진인지 몰랐는데, 새로 출간된 사진집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여지 것 ‘아바이마을사람들’, ‘학교이야기’, ‘들풀 같은 사람들’, ‘창신동 이야기’처럼 사람 중심이 되는 사진은 보아 왔지만,

해안을 바라 본 서정성 있는 풍경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개 풍경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끝나는 것이 많은 데, 엄상빈씨의 풍경은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으면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구질구질하게 말하는 사진보다 묵비권으로 일관하는 사진이 더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좋아하다 넘기는 사진과 여운에 끌려 다시 돌아보는 차이다.

작품의 내용 뿐 아니라 인쇄나 편집도 나무랄 곳 없는 훌륭한 사진집이었다.
전시된 오리지널 프린트의 맛이 좋은 거야 말할 필요 없겠으나, 집중적으로 감상하기에는 사진집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한 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점에다,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하는데도 용이하다.

그의 부지런함 또한 아무도 따를 자가 없다. 여지 것 선배 후배 가릴 것 없이 전시 열림식을 어김없이 챙기고 다녔다.

물론 전시를 본다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일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보려면 조용한 시간에 봐야지

열림식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 감상에 제대로 빠져들 수 없다.

그런대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것은 사진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나도 한동안 폐북을 통해 알게 된 전시에 쫓아다니며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축하주도 마셔왔으나,

폐북 중독증을 알고부터는 일을 줄이려 전시오프닝에 가급적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꼭 볼만한 전시는 조용한 시간에 보거나 사진집 구해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엄상빈씨의 한 맺힌 사진은 슬펐다.
바다를 바라보는 주름진 아낙의 깊은 눈길에 시름이 가득했다. 철조망 너머 아득한 바다에는 보이지 않는 한이 떠돌았다.

두고 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한이 되었는지, 구천을 떠도는 실향민의 넋인지 모르지만 아련히 번져 있었다.

마치 자신만 아는 진실을 지키려는 듯 침묵으로 이념의 갈등에 저항하고 있었다.

바람이나 파도 같은 자연의 소리는 애틋함과 슬픔을 노래했다.

“이미 그 날개 피에 젖을 대로 젖고 시린 바람이 자꾸 불어간다.

목이 바싹 말라버리고 숨결이 가쁜 여기는 아직도 싸늘한 적지“라는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박봉우시인의 ‘나비와 철조망’이란 시 구절이 사진에 너울거린다.

5월2일까지 열리는 엄상빈의 “또 하나의 경계”전은 흑백의 진수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사진전으로 꼭 한번 볼만하다.

흔하지 않은 은염 흑백사진 40여점을 비롯해, 최근 기록한 컬러사진 10여점에서는 시대변화에 따른 또 다른 이질감을 맛 볼 수 있다.



글 / 조문호














김준호의 ‘애오개’ 사진전이 지난 17일부터 26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린다.

전시된 사진들은 마치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잔해더미 같았다.

집들은 폭격 맡은 것처럼 산산히 부서져 버렸고, 유령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틴 것도 있었다.

멀리 버티고 있는 아파트 숲은 마치 점령군 무리처럼 보였다.






이미 전쟁의 판세는 정해졌으며, 앞으로도 백전백패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명의 속성을 어쩌겠는가마는,

최소한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무차별적이라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옛 것을 허물고 새로 만들기는 쉽지만, 옛 것을 보전하고 그 것을 다시 기억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기억하고 보존할 역사가 없거나 지워버리는 국가는 미래 역시 오래가지 않는 법이라 했다.






김준호가 찍은 ‘애오개’사진은 속삭임이 아니라 아우성에 가까웠다.

대개 사진가들이 즐겨찾는 그리움에 대한 향수보다 사회비판적인 시각이 앞서 있었다.

세월의 변화를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분노가 곳곳에 똬리 틀고 있었다.

지금 애오개는 재개발에 의해 모든 것이 사라졌다.

김준호의 사진 속에서만 잔재가 남아 그렇게 사라졌음을 말해주고 있다.






‘애오개’는 아현동과 만리재 사이에 있는 작은 고개로, 서울의 대표적인 서민 지역이었다.
아기고개에서 유래되었다는 애오개 일대는 마포에서 청량리를 잇던 전철이 지나가던 지역이었다.

자그마한 집들이 모여있는 고개 마루의 달동내로 서민들의 진득한 삶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향상을 내세우는 재개발은 동전의 앞뒤 같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사라진 후에는 항상 그리워하기 마련이지만, 돈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몇몇은 철거되기 이전의 모습도 남아 있었다.

빗물이 새지 않도록 천막을 뒤덮어 놓은 지붕, 행여 바람에 날아갈까 돌이나 기왓장을 올려놓은 궁상맞은 풍경들,

가파른 골목 계단과  터져 나온 시멘트벽들이 마치 복잡한 우리네 인생처럼 굽이져 있었다.

그 속에서 일어났던 사연 또한 얼마나 많겠는가?

그 곳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사연들이 다 있을 것이다.

옆집 순이와 연애 걸며 가슴조린 사연에서 친구와 코가 깨지도록 싸웠던 이야기까지 다들 절절할 것이다.





잘 모르는 재개발지역을 촬영하는 것과 자신이 어릴 적 살아 온 마을의 흔적을 찍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래서 김준호의 비판적 시각 속에 보이지 않는 그리움이 차곡차곡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움은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고, 서러움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다”는 싯귀가 떠오르는 그런 쓸쓸한 풍경이었다.

그렇게 사라지는 사물처럼, 사람 또한 차례차례 사라질 것이다.





“이미지는 자신이 의미하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언어가 그것이 의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미지는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에게 낯설게 남아 있어야 한다.

매체로서 비춰지지 말아야하고, 하나의 이미지로 이해되지 말아야 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허구로, 우화로 남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사건이라는 풀리지 않는 허구에 공명해야 한다,

자기 고유의 덫에 잡히지 말아야 하고,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로 한 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재생 속에 갇히지도 말아야 한다.”는

장 보드리야르의 ‘사라짐에 대하여’ 한 단락을 여기 옮겨본다.



전시와 함께 ‘눈밫사진가선’ 38호 ‘애오개’ 김준호사진집(12,000원)도 발간되었다.



전시개막식에서는 주인공 김준호씨를 비롯하여 ‘브레송’ 김남진관장, ‘눈빛출판사’의 이규상대표,

엄상빈, 김문호, 곽윤섭, 정영신, 남 준, 김 원, 제이안, 나떠구씨 등 여러 사진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사진, 글 / 조문호











































▲ 눈빛사진가선 037 '포항송도'안성용사진집 책표지



우리는 허구가 현실을 압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진은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두 세계 속에 섞여 다양한 풍경을 연출한다.

지난 3일 대안공간 ‘스페이스 22’에서 포항의 사진가 안성용의 ‘포항 – 송도’사진전이 열리며 눈빛사진가선 사진집도 출판했다.

이번 전시는 아날로그 작업으로 젤라틴 실버 프린트 작품 50여점이 전시됐다.

그는 1990년부터 송도를 찍기 시작해 26년 동안 포항송도를 주목하고 있으며,

요즘도 날씨가 좋지 않는 날만 찾아 다르게 해석된 송도를 카메라 렌즈에 담는다고 한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행복하다는 안성용작가



그는 “작업을 할 때 세 가지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첫째로는 산업사회에 대한 반성이고,

두 번째는 회고와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예술과 비예술사이의 경계에 주목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세상을 읽어내는 도구로 역사의 목격자처럼 우리사회의 증언이고 얼굴이다.

안성용의 시선은 송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여준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한 부분을 오늘과 내일, 그리고 미래의 시간으로 숙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 눈빛사진가선 '포항송도' 안성용사진집 14페이지 '포항송도 2005'


또한 포항송도는 그의 카메라 앞에서 철저하게 해체 당한다.

처절한 현실의 세계를 사진예술이라는 상상의 도구를 통해 송도를 찾는 관광객과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의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는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가 뒤엉킨 포항송도를 총체적으로 100년 넘게 기록함으로써,

인류학적인 시선이 나온다” 며 후배들에게 포항 송도를 계속 촬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눈빛사진가선 '포항송도' 안성용사진집에서


예술을 향하는 사진은 한 시대를 사실대로 기록하는 현실성에 앞서 작가의 문제의식이 투영된 또 다른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오랜 기억과 미래의 가상공간까지 겹쳐 을씨년스러운 바다풍경이나

아이러니하게도 긴장감이 감도는 장면들을 포착하고 있다.


사진 곳곳에는 현실비판적인 시각이 묻어난다. 상상에 의한 허구일지 모르지만,

거짓이 포함된 진실마저 그 시대의 또 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에 의의가 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바라봄을 넘어 책의 행간을 읽어내듯 사진읽기에 들어가야 그 괴리감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리고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각성하게 한다.



▲ 눈빛사진가선 '포항송도' 안성용사진집에서


포항이라는 거대한 산업사회의 현실너머에 송도해수욕장이라는 허구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관광객이 가족사진을 찍는가하면,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가하면, 또한 스님의 기도도량이 되어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끊임없는 풍경의 변화를 자기경험으로 해석함으로써 지극히 사적인 예술적 색체를 띤다.


송도해수욕장은 포스코라는 산업시설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물질로 인해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작가로서는 상당한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산업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망가질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남아있는 송도를 미치도록 찍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날의 송도를 추억하며...



대안공간 스페이스 22 '포항송도' 전시장모습



다큐멘터리 사진의 힘은 현실기록과 함께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사진가 안성용은 “생각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의 의미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특별하고 사실에 기반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해설을 쓴 철학자 박이문 선생은 “예술적 아름다움은 그것을 구성하는 지적, 정시적, 삼각적, 논리적 다양한 개별적 요소들과 그것들의 각기 가치들 간에 존재하는 구성적 관계의 신선하고도 긴장된 구조적 조화이다. 이런 점에서 안성용의 사진들은 보면 볼수록 아름다우며, 그 아름다움은 부와 권력 그리고 인간의 자연 지배를 상징하는 포항제철의 높은 굴뚝의 숲과 그러한 존재들의 그늘에서 물질적으로 소외된 가난한 해녀들 혹은 지적으로 낙후된 사람들과 조화로운 긴장된 대립을 축으로 한 사진작품의 미학이 구현된다” 고 밝혔다.


안성용작가는 예술은 생각들을 표현하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 사진전은 오는 24일까지 이어진다.


[스크랩 : 서울문화투데이 / 정영신기자]






지난 2월3일 강남사거리의 미진프라자 22층에 자리한 ‘스페이스22’(02-3469-0822)를 찾았다.

좀 늦어 열림식은 끝난 후였고,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거나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

주인공 안성용씨를 비롯하여 정진호, 이규상, 엄상빈, 김문호, 성남훈, 이갑철, 고정남, 조성기, 이 민,

곽윤섭, 신현림, 이주영, 안미숙, 정영신, 이은숙, 오윤택, 차재훈, 손진국씨 등 많은 분을 만날 수 있었다.


난 안성용씨를 잘 모른다. 단지 그 말 많던 최민식사진상 때문에 이름 석자를 알게 된 것이다,

사진도 인터넷에 뜬 두 사진가의 출품사진만 보았을 뿐이다.

수상자 최광호씨의 사진과 밀려난 안성용의 사진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흥분 했던 것은

최민식선생의 인간을 향한 철학이 상의 기준에 배제되었다는 점과 고질적인 갑질에 대한 분노였다,

여지 것 끼리끼리 나누어 먹어 온 사진판의 상이란 게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지만,

아직까지 사진계의 더러운 풍토가 변하지 않고, 젊은 사진가들의 앞길을 막는 걸, 그냥 볼 수 없었다.






나에게 카메라를 들게 했던 최민식선생을 우습게 보는 모멸감도 작용했겠지만,

사진판의 더러운 갑 질을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상이 주는 명예보다, 삼천만원이나 되는 상금에 다들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다큐사진가들의 삶이란 하나같이 빈궁하기 그지없으니, 누군들 거금을 탐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돈을 걸고 작품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도 캐캐 묵은 일이지만,

얄팍한 논리를 앞 세워 칼을 휘두르는 꼴 자체가 웃기는 짜장면이었다.

사진의 우열에서 게임이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은, 한 작가가 그 곳에 집착해 온 세월의 두께였다.

더구나 공모한 사진이 다큐멘터리사진이 아니던가. 잘 찍고 못 찍은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행사장에 몇 번 들려 찍은 사진과 4반세기를 지켜 본 사진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안성용씨는 특정지역을 찍었지만, 그 곳에 사람이 없었다면 긴 세월동안 찍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다큐멘터리사진은 사람이 우선이 아니던가?

단지 따뜻한 정감이 감도는 인간애는 배제되었지만, 사진에 드러난 사람을 통해 뒤틀린 삶의 반성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안성용씨는 산업사회에 대한 문명비판이라거나 철학적 성찰,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라는 점을 작업노트에 밝혔지만,

그 보다는 그 지역에 대한 각별한 연정을 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한 지역에 그토록 집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찍어놓은 포항 송도 사진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많은 사진 속에 선택된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을씨년스러운 바다풍경이거나 아이러니하게 긴장감이 감도는 사진만 골라냈다.

마치 사실과 허구, 사진과 예술의 경계점을 보는 듯하다.






그의 사진에는 변해가는 포항 송도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이 베어있었다.

아마 인간성 상실을 비판하는 것 같다.

이 전시는 24일까지 열리고, 10일 오후4시에는 작가와의 만남도 있다.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눈빛사진가선 안성용의 '포항 송도'시진집도 출판되었다.
가격은 12,000원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스크랩] 서울문화투데이 2016년 1월23일

▲ 조문호 사진가



사자성어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감탄고토 (甘呑苦吐)’란 말이 있다.

입에 발린 칭찬이나 좋아하며 건전한 비판도 수용하지 못하는 오늘의 세상을 말하는 것 같다.

국회청문회나 특검에 나온 피의자들이 좋은 질문에만 답하고 불편한 질문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오늘의 상황도 ‘감탄고토’의 전형이다.

도둑이 오히려 몽둥이를 든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 또한 정치판은 물론이고,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현상이다.

건전한 비판이라면 스스로를 반성하며 개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도대체 받아들이려 하지를 않는다.

고질적인 이러한 풍토가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지만, 새삼스레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저지른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추태를 탓하기 위해서다.

말썽을 일으킨 사진가는 강원도 최북단 저도어장(猪島漁場)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장공순씨다.

그가 지난 5일, 서울 강남에 있는 사진.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22’ 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문제의 발단은 본지에 정영신기자의 전시리뷰가 소개되며 일어났다.

더구나 전시리뷰를 쓴 기자는 30여 년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온 사진가이고,

전시작가보다 한 참 선배이기에 작가를 위한 충언에서 비판을 할 수 있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시작가가 이를 수용하여 재도약의 기회를 삼기는커녕 기사를 삭제하라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것이다.

3일간의 집요한 요구에 못 이겨 기사를 내렸다지만, 그건 아니다 싶다.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사자의 가슴에 상처로 남을 것이 안쓰러워 내렸다지만,

전시를 열었다는 자체는 작가 개인의 일이기에 앞서, 전시를 관람하게 될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할 언론으로서의 책무를 망각한 것이다.

전시된 ‘저도어장’은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남북군사분계선과 접하고 있어 평소에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다 매년 4월부터 12월까지만 고성지역 어민들에게만 개방되는 곳이다.

작가는 단순히 저도의장의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라, 납북어부들이 많았던 비극의 바다였고 애환의 바다라며

바다의 풍요로움과 희망, 분단의 생채기를 함께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작업노트에 적고 있다.

그러나 전시된 사진에는 어민들의 애환을 담기보다는 일반적인 바다풍경이나 어부들의 어로작업이 담긴

전형적인 아마추어 사진인의 시각이었다.

정영신 기자는 ‘세계 유일 분단국가의 생채기 ‘저도어장(猪島漁場)’전‘이란 제목의 전시리뷰에서 ‘작가의 작업노트와는 달리

전시된 작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바다풍경과 해녀, 어망 작업사진이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차라리 최북단이라는 지역의 특색을 살려 실향민들에 대한 애환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전시였다“며

솔직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비단 정영신기자 뿐 아니라 많은 사진전문가들의 공통된 아쉬움이고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작가로서는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앞으로의 작업에 참고하여 재도약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했으나,

자기도취에 빠져 비판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진집까지 출판하며 전시를 갖는 우월감에, 행여 자신의 입지에 누가 될까 안절부절 한 것이다.

평생을 배워도 모자라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이고, 머나먼 창작의 길인데,

그러한 자만이 도사리고 있는 한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자만에 의한 안하무인의 작가가 어디 한 두 사람이겠냐 마는 어떻게 기자가 쓴 전시 리뷰를 지우라고 할 수 있는지 상식 밖의 일이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이런 사례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작가는 오래전 일이지만, 지방지인 ‘고성신문’의 기자로 일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언론의 역할이나 기자의 책무를 잘 아는 자가 행한 일이라, 그 뻔뻔스러움에 더 어안이 막히는 것이다.

현재 ‘수협’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어 사회적 지위로서도 이를 겸허히 받아들여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위치에 있다.

이제, 이런 이기주의적이고 사리분별 못하는 자들은 더 이상 발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

달콤한 말은 독이요. 쓴 말은 약이라는 뜻을 다시 한 번 명심하기 바란다.


김문호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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